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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London
작가 : 해롯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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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뱅크역 그리고 레든홀 마켓. 너를 발견하다.
작성일 : 17-12-01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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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6시. 지나치게 빠른 시간에 눈을 떴다. 아침 6시면 한국시간이 오후 5시였다.

 

 한창 활동할 시간이여서 시차적응 때문에 일찍 깼나? 아니면 비행기에서 자고도 피곤해서 밤에 잘 잔 탓에 많이 자서 일찍 깼나?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백수처럼 생활하려던 야심찬 계획이 허무하게 틀어진 것에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잠이 깼음에도 불구하고 침대에 파묻혀 꼼지락대던 재희는 걸려온 영상통화를 이불 속에서 받았다.

 

 “야 한재희. 뭐하냐. 설마 지금 이불속?”

 

 “지금 런던 오전 6시거든?”

 

 “원래 여행 일정은 새벽부터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거 몰라?”

 

 분단위로 여행 계획을 짜서 강행군으로 여행을 진행하기로 유명한 해수가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는 재희에게 얼른 일어나라며 다그쳤다.

 

 “아, 됐어. 나 혼자 있으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잘 도착했어?”

 

 “아니, 나 이제 국적기 아니면 안탈 거야. 방콕가기 전에 저승길 가는 줄 알았다.”

 

 “재희야, 나 너무 무서웠어.”

 

 “나 진짜 죽는 줄.”

 

 한사람도 아닌 전부 다 난리치는걸 보면 엄살이거나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지?

 

 재희는 궁금증만 유발하는 셋에게 얼른 말해보라며 재촉했다.

 

 “일단, 연착이 5시간이었어.”

 

 “뭐?”

 

 1시간 연착도 겨우 참아내는데, 5시간 연착이라니.

 

 “가는 길에 비행기 흔들리는 건 예사고, 착륙할 때 무슨 땅에 처박히는 줄 알았잖아.”

 

 “막 비행기가 땅에 닿았다가 반동으로 튕겼다?”

 

 “나 비행기 타면서 그런 착륙 처음 경험해 봄.”

 

 “와, 진짜 최악이었네.”

 

 줄줄이 이어지는 가히 최악이라고 칭할만한 생생한 경험담에 재희가 한마디 보태자마자 그렇지! 하고 동시에 외친 셋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거의 5분 동안이나 더 떠들어댔다.

 

 “아, 근데 호텔 오니까 다 잊혔어.”

 

 “맞아. 재희야 여기 진짜, 진짜, 진짜 좋아.”

 

 “같이 안 온거 후회할걸?”

 

 “우리가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그래, 그래. 우연이한테는 연락 했어?”

 

 “응, 근데 짐 싸느라 지금 완전 영혼 없어.”

 

 “맞아. 나 걔한테 들은 말 응, 그래? 밖에 없음.”

 

 “정신 없을 때긴 하지. 지금 현실에서 신파드라마를 찍느라 난리셨으니.”

 

 “근데 지금 뮤지컬 알아본다고 하던데?”

 

 “혼자 가는건 맞지?”

 

 십년지기의 눈물겨운 사랑을 우려 조금과 흥미 과다로 승화시킨 넷은 그 후 한 시간 가량이나 통화를 계속했다.

 

 나가자는 해수의 재촉 끝에 겨우 영상통화를 끊고나니 벌써 여덟시. 일어나야할 시간이었다.

 

 “아, 일어나기 싫다.”

 

 마지막 발버둥처럼 이불을 꽁꽁 싸매고 침대를 굴러다니던 재희는 30분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자신을 달래가며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 밤, 면세품을 뜯은 흔적들이 테이블과 쇼파에 가득이었다. 과대 포장되어 있는 에어캡들은 모두 곱게 봉투 안에 담았지만 내용물인 섀도우, 브러쉬, 파운데이션, 블러셔, 립스틱들은 테이블 위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으로 화장을 해볼까나.”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새로운 화장품이다.

 

 라는 거창한 모토를 가지고 있는 재희는 기분 좋게 포장을 뜯어 화장을 시작했다.

 

 

 호텔 방문을 나서며 런던 도착 후 최대의 고민의 기로에 들어섰다. 조식을 먹을 것인가, 따로 카페에서 아침을 사먹을 것인가.

 

 여행의 묘미는 매일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재희는 갔던 식당을 다시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당연히 조식은 신청해놓고도 한번밖에 먹으러 가지 않았다.

 

 오늘이 바로 그날일 것인가.

 

 사소한 일을 중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고민하던 끝에 정말 결정하기 귀찮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기로 하고 미련 없이 호텔 로비를 나섰다.

 

 

 호텔을 나서 근처를 걸어 다니던 재희는 아담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고 주저 없이 들어섰다.

 

 창가자리에 앉아 베이글과 함께 아메리카노를 테이블에 놓고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한참이나 구경했다.

 

 밖을 구경하다가, 음식을 먹다가, 점심 먹을 곳을 정하다가 하며 얼마만인지 모를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쳤다.

 

 일어나기 전 오늘의 유일한 목적지인 뱅크역과 레든홀 마켓이 여기서 얼마쯤 걸리는지 드디어 검색을 시작했다.

 

 지하철로 30분가량. 센트럴 라인을 타고 7정거장을 간 후 내리면 되는 쉬운 길이었다.

 

 ‘언더그라운드라니. 이름도 멋있어.’

 

 뭐, 볼 것도 없잖아. 라고 생각했던 여행 전 자신은 가볍게 모른 척 한 채 한껏 감상적이 된 재희는 오이스터 카드 구입 후 무사히 지하철에 탑승했다.

 

 처음 타보는 지하철이라 그런지 내려야 하는 곳을 지나칠까봐 긴장해서 역에 하나하나 설 때마다 지도를 보고, 역 이름을 확인하고,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며 가슴을 졸였다.

 

 특별히 못 찾아갈만한 복잡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제대로 도착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건물들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와, 은행건물이 무슨 세계유산이네.”

 

 저번 여름휴가 이후 오랜만에 보는 건물양식에 걸음걸음마다 건물사진을 찍어대더니 몇 걸음도 안가 금세 흥미를 잃었다.

 

 여전히 멋있긴 하지만 대학생 때 떠났던 배낭여행부터 각 나라마다 보던 양식이었다.

 

 처음 배낭여행이었을 때는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여전히 멋있었지만 원래 아무리 좋고 멋진 것이라도 자주 보다보면 감흥이 없어지는 법이다.

 

 마치 무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거리의 풍경에 무덤덤해지자 그제야 길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근처라 건물에서 쏟아져 나와 거리에 사람이 가득이었다.

 

 단정히 수트를 입고 돌아다니는 남자를 보니 친구인 말대로 멋져보였다.

 

 잠시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하게 쳐다보던 중 왠지 여의도 점심시간이 생각나며 설레는 마음 사이로 짠한 감정이 불쑥 찾아들었다.

 

 ‘여의도 점심시간이라니. 하필 지금 생각날게 뭐야.’

 

 자신을 뒤늦게 원망해보았지만 이미 머릿속에 박힌 생각을 뒤엎을 수 없었다.

 

 이렇게 거리 구경도, 사람 구경도 끝나버리고 싱겁게 막을 내리는 하루 일정에 천천히 레든홀 마켓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기 전 레든홀 마켓을 둘러보던 재희는 한쪽으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다.

 

 ‘식당도 아닌 것 같은데, 뭐지?’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다 이내 포기하고 앞서 줄서있는 사람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기 이거 무슨 줄이에요?”

 

 “*음, 해리포터 줄?”

 

 “아, 뭐라고 하더라.”

 

 한국말로 속삭이는 혼잣말에 재희는 반갑게 한국분이세요? 물었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손을 마주잡고 붕붕 흔들어 대던 둘은 이내 정답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여기가 해리포터 호그스미드 촬영지 배경이잖아요. 저기 앞에 문이 해리포터가 지팡이 맞추던 올리벤더 지팡이가게거든요.”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재희는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근데 어떤 사람이 해리포터 영화 사진을 앞에 붙여놓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한 두명씩 사진 찍고, 모여들고 해서 줄까지 서게 됐어요.”

 

 “그렇구나.”

 

 줄을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해리 포터’라는 공통주제가 생긴 둘은 책부터, 영화, 좋아하는 장면, 좋아하는 캐릭터 등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주제는 여행.

 

 재희는 이제 몇 년 전이 되어버린 배낭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몇가지 팁을 알려주기도 하고, 다음에 갈 나라에 대한 좋은 기억을 이야기 해주기도 했다.

 

 “언니 다음 일정이 뭐에요? 오늘 같이 다니실래요?”

 

 무계획, 유유자적을 다짐했던 여행이 위협받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착하고 성격도 좋으니 오늘 하루 같이 다녀도 괜찮을 것 같지만 상대방은 20살, 첫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동네사람들처럼 거리를 생각 없이 어슬렁거리거나, 거리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으로 방향을 트는 일은 불가능해보였다.

 

 게다가 높은 확률로 강행군까지 예상되는 하루에 재희는 에둘러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예은은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이었다. 여행 20일차에 들어섰다고 하니 그동안 수락만큼 거절도 많았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뿐이니 줄은 빠르고 착실하게 줄어들었다. 사이좋게 사진을 번갈아 찍어준 둘은 즐거운 여행되라는 덕담을 주고받고 각자의 갈 길로 걸음을 옮겼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가게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 사이로 힘겹게 한 가게에 들어선 재희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해리는 오늘따라 동료인 마크의 유난스러운 보챔에 끌려나오다시피 레든홀마켓에 도착했다.

 

 “*해리, 오늘 같이 나가자.”

 

 “*내가 진짜 끝내주는 집 발견했다니까?”

 

 “*같이 가서 먹어도 후회 절대 안 할 거야.”

 

 일을 처리하는 오전 내내 옆에서 같이 가자며 끈질기게 설득을 해대는 탓에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실수는 없었지만 무시로 일관하던 해리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끊어지질 않는 방해에 귀찮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 마크를 쳐다봤다.

 

 “*나 상처받았어. 어떻게 내 소중한 호의를 그런 식으로…”

 

 가짜 눈물을 짜내며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는 척 책상에 기대어 있는 마크를 보며 해리는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갈 테니 네 자리로 좀 가있어.”

 

 마크는 해리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해맑은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일어서 바로 뒷자리에 가 앉았다.

 

 해리는 자리에 앉는 모습까지 확인한 후 고개를 저으며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2시 근처. 팀원들이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마크는 해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봐 이미 10분 전부터 일에 열중하고 있는 해리의 책상을 맴돌고 있었다.

 

 “*마크, 해리 일 좀하게 내버려둬. 그러다 한 대 맞겠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해리의 업무를 방해해대는 마크를 보고 참다못한 다니엘이 뒷덜미를 끌고 책상에서 떨어뜨렸다.

 

 “*안 돼. 해리가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걸 잊었으면 어떡해.”

 

 소란스러운 둘의 모습에 이 상태로는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마무리 짓지 못할 것 같아 보던 서류를 덮고 책상에서 일어섰다.

 

 “*가자. 밥 먹으러.”

 

 

 식사를 하며 못 다한 회의를 하고, 업무상 통화를 하기도 하고, 업무를 위해 빠르게 거리를 걸어가는 직장인.

 

 사진을 찍고, 다음에 갈 곳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하느라 바쁜 여행자들.

 

 해리 또한 시류에 편승하여 음식이 나오는 동안 일처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나긴 통화를 끝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제각기 바쁜 일상 속 홀로 느릿한 재희가 보였다.

 

 재희는 테이블에 핸드폰마저 뒤집어 놓고 주변 사람들의 속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며 턱을 괸 채 사람들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테이블에는 한사람의 양이라기엔 많아 보이는 접시들과 음료한잔, 카메라,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식사는 뒷전인 것처럼 음식을 먹다가도 잠시 쉬고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바쁜 사람들을 느긋하게 관찰하기도 했다.

 

 재희 주변의 시간만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마크가 오늘따라 집요하게 군것도, 일 처리하는 내내 옆에서 따라다니는 게 귀찮아 제안을 수락한 것도 모두 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구나.

 

 해리는 갑작스럽게 운명론신자가 되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다가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던 해리는 재희가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려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크, 펜하고 종이 있어?”

 

 “*나야 준비된 사람이니까 당연하지.”

 

 노트와 펜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자랑하듯 흔드는 마크의 손에서 빼앗듯이 종이와 펜을 가져간 해리는 나중에 보자며 미련 없이 식당을 떠났다.

 

 “*야, 해리 애들러. 너 어디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마크의 말을 무시한 채로.

 

 

 바로 뒤따라 나온다고 움직였으나 어느새 재희는 시야에서 사라진 채였다.

 

 해리는 머리를 헤집으며 잠깐 식당 앞에 서 있다가 이내 재희를 찾아 빠르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레든홀 마켓 구석구석과 근처를 전부 돌아다닌 해리는 마켓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카페 안, 창가에서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재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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