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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London
작가 : 해롯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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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생각하다.
작성일 : 17-12-03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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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의자에 앉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그대로인 업무속도에 이내 의미 없는 행동을 그만두었다.

 

 식당 안에서 무언가 바라보던 눈빛, 카페 안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열중해 글을 적던 모습, 이야기할 때 무의식적으로 하던 손짓.

 

 재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떠올랐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보면서 초조하게 화면을 밝혀두었다가 검은색 화면이 되면 다시 화면을 켜놓는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안녕하세요, 한재희입니다. 점심시간에 만났던.]

 

 [저는 타워브릿지 근처에 있을 거예요. 괜찮으시면 문자주세요.]

 

 드디어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타워브릿지, 타워브릿지라.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뭐가 있었지?

 

 혼자 끙끙대며 고민을 하던 해리는 내키지는 않지만 한창 데이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조나단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조나단, 타워브릿지 근처에 분위기 좋은 식당 알아?”

 

 뜬금없는 해리의 말에 모처럼 집중해서 서류를 보고 있던 조나단은 머리를 긁적이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글쎄. 메이 오브 타이, 스몰차이나, 딤섬월드?”

 

 메이 오브 타이, 스몰차이나. 딤섬월드. 조나단이 추천한 식당들의 이름이 낯익었다. 어디였더라…

 

 차분히 식당이름을 곱씹던 해리는 식당들이 모두 야근 시 배달해먹는 타이음식점, 중국음식점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마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보고 의자에 앉은 채로 해리의 자리로 이동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오후 업무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식사 전 마무리를 향해 가던 서류를 아직도 펴놓고 있는 해리의 책상이 보였다.

 

 평소대로라면 그 서류는 일찌감치 마무리 짓고 팀원에게 이상한 말은커녕 일상적인 이야기도 한마디도 하지 않을 사람이 이렇게 얼빠진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다.

 

 ‘내가 너무 막무가내로 끌고 갔나?’

 

 출근 후 해리의 보통 일상에서 벗어난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원인제공자인 마크는 양심이 조금 찔렸다.

 

 “*아까도 음식 시켜놓고 그냥 뛰쳐나가더니.”

 

 “*옆에서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일이나 해.”

 

 그래, 이게 해리 애들러지. 정상적인 말투에 마크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저번 실적보고서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야. 금요일이 마감기한이었던 것 몰라? 2분기에 이어…”

 

 쏟아지는 날카로운 말에 마크는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하하 웃었다.

 

 정상, 완벽히 정상이네.

 

 슬금슬금 자리로 돌아가던 마크는 순간적으로 책상 위 밝게 켜져 있는 화면을 보았다.

 

 무심결에 읽고 난 후 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초, 2초, 3초.

 

 그리고 일이 터졌다.

 

 “*야, 해리 연애한대! 식당 추천해줄 사람!”

 

 해리는 뒤늦게 핸드폰을 가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용이 없었다.

 

 의자에서 번쩍 일어나 온 사무실에 울리도록 소리치는 마크를 보며 해리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 피곤해.’

 

 각종 통화에, 서류처리에, 메일 보내기까지 바쁘게 움직이던 동료들이 한순간 정지했다.

 

 통화하던 동료들은 급히 일이 생겼다며 나중에 전화 드리겠다고 끊고, 서류는 급하게 덮어 책상위로 떨어져 내린 것들이 한두 장이 아니었으며, 끊임없이 들리던 타자소리도 멈추었다.

 

 순식간에 해리 자리로 모여든 직원들은 드디어 생긴 애인과의 데이트를 축하하며 한마디씩 내던졌다.

 

 “*내가 엠마랑 첫 데이트했던 식당 알려줄까? 분위기가 끝내줬다니까. 밥 먹고 나서…”

 

 “*여기 가봤어? 이번 주 주말에 꼭 가자고 했던 곳인데.”

 

 “*야, 비켜봐. 요즘 데이트 최고 인기 장소는 여기라고.”

 

 해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팀원들을 각자 자리로 몰아내면서도 언급되었던 식당 이름 하나, 하나 기억해두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후 찾아온 평화에 방금 전 언급되었던 식당 중 자신이 가봤고 괜찮았던 곳을 하나 선별하여 예약했다.

 

 아직 3시. 퇴근까지 한참 남은 시계가 조금 더 빨리 움직이기를 바라며 전보다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남자는 친절하고, 다정하고, 잘생겼다.

 

 간결하지만 정확한 첫인상이었다.

 

 수트를 잘 차려입은 채로 홀짝이는 핫초코가 조금 귀엽기도 했고, 최대한 다정해보이려고 애쓰던 모습과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무뚝뚝한 모습이 묘하게 어울렸다.

 

 그럴듯하게 완벽한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할 때 거절하는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밥 먹자는 게 뭐 나쁜 것도 아니고. 같이 먹으면 뭐 어때.’

 

 ‘어차피 오늘 계획은 이미 끝났잖아? 난 버려진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것뿐이라고.’

 

 ‘런더너니까 숨겨진 명소를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선택한 결정을 재희는 걸음걸음 걸을 때마다 이성적으로 선택했다는 듯이 포장하기 시작했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건물들을 풍경속의 하나로 둔 채 지나쳐 지도를 보며 대충 가까운 관광장소인 타워브릿지를 향해 걷던 중 런던탑이 보였다.

 

 투박한 성모양은 취향이 아니여서 건너뛰려고 했다.

 

 정보화시대답게 뒤늦게 런던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내부 전시실이 잘 되어있고 오디오 가이드도 있다고 하는 말에 들려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계획이 엉성하니 마주하는 돌발적인 상황에도 멋대로 결정하기가 쉬웠다.

 

 물론, 거기에는 오늘 저녁식사도 포함되었다.

 

 [네, 좋아요. 퇴근 후 제가 그리로 갈게요.]

 

 지갑을 꺼내다 같이 딸려 나온 핸드폰에 도착한 문자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여행 중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로맨스는 조금 무료하고 대책 없었던 일정을 보다 다채롭게 바꿔줄 것 같았다.

 

 재희는 그 시대의 건물보다 건물 안 인테리어를 좋아했고, 조각상보다 유행했던 의복을 좋아했다.

 

 그리고 관람실 안은 구경할까 말까 망설인 순간이 아까울정도로 재희 취향과 꼭 들어맞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왕실의 각종 보석, 왕관, 검들. 궁의 여러 방의 모습 재현, 전쟁 때 입었던 갑옷, 왕과 귀족이 입었던 옷들까지.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선 재희는 자연스럽게 해리가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조용히 웃었다.

 

 여러 옷들을 머릿속에서 입혀보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기사의 제복 옷이 제일 잘 어울렸다.

 

 ‘안녕하세요. 공주님.’

 

 해리가 금방이라도 이 옷을 입고 나타나 이렇게 인사할 것만 같았다.

 

 장난스럽게 주고받았던 마지막 인사의 영향일까.

 

 풍성한 로코코풍의 드레스를 입고 조심스레 손을 잡는 상상을 하며 적당한 노래로 바꾸었다.

 

 “음, 음, 음.”

 

 입안에서 맴도는 허밍은 재희의 기분을 대변해 주었다.

 

 타워브릿지 중간에 서서 감상하는 템즈강이 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인다.

 

 다리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유람선을 탄 관광객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보통의 관광객처럼 타워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풍경도 한 장 찍었다.

 

 “*저기, 저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혼자 온 여자 여행객의 부탁으로 찍은 사진 한 장. 그 후 어떻게 하다 보니 어느새 자발적으로 무료 사진사가 되어 줄지어 선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뭐, 시간도 많으니까.’

 

 인증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달리 동네 백수처럼 한참이나 더 카메라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어주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타워브릿지 반대편으로 내려오자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포터필즈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한가로이 공원에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강을 따라 걷던 중 시선 끝에 버스킹이 보였다.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하고 조금 속도를 높여 걸어가니 멀리서 보던 것과 달리 사람이 꽤 모여 있었다.

 

 템즈강을 배경으로 감미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삼삼오오 모여 구경하는 사람들, 연인들이 뒤섞여 작은 공연장을 연상시켰다.

 

 몸을 좌우로 흔들고 호응을 하며 감상하던 재희는 두, 세곡 뒤 끝나버린 공연이 아쉬웠으나, 이를 뒤로하고 영국에서 갈 수많은 공원 중 우연히 처음 도착한 공원을 마음껏 만끽하기로 했다.

 

 잔디밭 곳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피해서 적당한 곳에 자리 잡은 재희는 털썩 주저앉은 뒤 곧바로 완전히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쨍쨍한 여름 해와 조금 떠있는 구름, 그리고 시야 끄트머리에 보이는 높은 건물들이 어우러졌다.

 

 노래를 들으며 잔디밭에서 한참이나 누워있던 재희는 조금 무료해지자 아침에 챙겨온 책을 꺼냈다.

 

 일부로 여행지에 맞게 런던이 배경인 고전 소설으로 선별해온 재희는 책에 등장하는 어딘지 모를 지명을 멋대로 자신이 가본 길 중 하나에 대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누워서, 앉아서, 엎드려서. 불편해질 때마다 꾸물꾸물 자세를 바꾸며 독서를 이어나가는 중 유일하게 중단될 때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릴 경우뿐이었다.

 

 진동이 울리면 한시도 참지 못하고 뒤집어놓은 핸드폰을 재빨리 들어올린 재희는 해리의 문자에 웃으며 답장하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온 연락에 조금 실망하며 답장하기도 했다.

 

 울리는 문자가 독서의 진행을 방해했지만 짜증나기보다 그 방해가 기다려졌다.

 

 [어디쯤에 있어요?]

 

 책을 삼분의 일가량 읽었을 때 퇴근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공원 안이라고 해도 잘 찾아올까?’

 

 포츠필드 공원이요. 라고 대답하려던 재희는 꽤 넓은 공원의 크기에 조용히 지도 앱을 켜서 사진을 전송했다.

 

 [여기에요.]

 

 사진을 보내주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도착한 문자.

 

 [그리로 갈 테니 기다려줘요.]

 

 ‘역시 현지인.’

 

 자신에게 회사근처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라고 할 확률이 80퍼센트가 넘었지만 그런 사실은 가볍게 무시했다.

 

 문자를 확인하고 테이블에 놓아둔 책을 다시 집어 들었지만 마음이 떠났으니 활자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날아다니는 글자들에 책읽기를 포기한 후 해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템즈강을 배경으로 벽에 기대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해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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