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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London
작가 : 해롯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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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어색함과 설렘 사이의 첫 저녁식사.
작성일 : 17-12-03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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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통유리로 되어있는 창문에 어둑해진 런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단 밑, 동그란 테이블과 은은하게 켜진 불빛아래 조곤조곤 말소리와 함께 식사중인 사람들.

 

 재희는 풍경 자체보다, 풍경과 어우러져 있는 그 관경이 마음에 들어서 계단을 내려가기 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갈까요, 공주님?”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 눈앞에 내밀어진 손에 재희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가지런히 내밀어진 손 위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한껏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테이블로 안내 후 메뉴를 고르면서도 옆에 펼쳐져있는 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중인 배우가 된 것 같아 신기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들뜬 기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재희의 표정과 행동에 해리는 그 자체로 뿌듯함을 느꼈다.

 

 사무실에서 일어났던 모든 상황들을 감내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샐러드 하나와 메인요리, 해리의 추천에 의존하여 샴페인 한 병을 고르고 나니 테이블엔 침묵만이 남았다.

 

 가벼운 접촉과 메뉴를 고르기 전까지 간간히 이어지던 대화는 식전빵과 샐러드가 놓이고 재희가 샐러드포크를 들고 말하기 전까지 단절되었다.

 

 해리는 새삼스레 몰려오는 긴장에, 재희는 상대방의 영문 모를 침묵에.

 

 “맛있게 드세요.”

 

 습관처럼 한국어로 중얼거린 재희는 아, 소리와 함께 멋쩍게 웃었다.

 

 “*맛있게 드세요.”

 

 자연스럽게 깨진 침묵에 해리는 긴장을 풀며 말을 건넸다.

 

 “*오후에 어디 다녀왔어요?”

 

 “*음, 글쎄요. 산책?”

 

 샐러드를 먹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샐러드 채소와 토마토, 이탈리안드레싱이 어우러져 상큼하고 신선한 맛을 자아냈다.

 

 ‘음, 맛있다.’

 

 재희는 다시 포크를 접시에 가져가며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고기, 밀가루, 빵, 커피 등만 먹다보니 싱싱한 채소가 그리웠는데 마침 샐러드라니.

 

 “*산책?”

 

 “*사실… 오늘 일정이 거기서 끝이었거든요. 그래서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여기저기 갔다가… 보셨다시피 좀 뒹굴었죠.”

 

 이야기하다말고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혹시 잔디가 묻지는 않았나 확인해보았다.

 

 “*여행은 하루 종일 끝없이 돌아다니고 하는 줄 알았는데…아닌가 보네요.”

 

 “*뭐 각자 여행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저번에 여행이 정말 죽도록 돌아다녔는데 끝나고 회사에 오니까 제가 휴일을 보낸 건지, 노동을 하다 온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분명히 휴가를 보내고 왔는데 가기전보다 더 힘들고.”

 

 말하다보니 중노동에 가까웠던 지난휴가가 떠올라 반사적으로 어깨를 조금 떨었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조금 여유롭게 보내기로 하고 일부로 저녁일정은 거의 안 잡았거든요.”

 

 “*그 저녁일정을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물을 먹으려던 행동을 멈추고 말하다 보니 잔을 들고 있는 행동과 말이 오묘하게 축배사를 연상시켰다.

 

 그 틈을 놓칠 일 없는 재희가 재빨리 물 잔을 잡고 팔을 뻗어 가볍게 부딪혔다. 그리고 키득키득 웃으며 물 잔을 내려놓았다.

 

 해리는 재희의 개구쟁이 같은 행동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색함은 점점 사라지고 가벼운 긴장과 설렘만 남았다.

 

 “*타워브릿지 열리는 게 신기하다고해서 보고 싶었는데 역시 우연은 없나 봐요.”

 

 “*자주 열리는 게 아니니까요. 보기 힘든 게 당연합니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특이한 경험여서 여행을 온 김에 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떤 때 열리는지 조사도 하지 않아 큰 바람은 아니었다.

 

 해리의 다소 딱딱하지만 위로 섞인 말에 재희는 쉽게 수긍했다.

 

 “*타워브릿지 열리는 거 보셨어요?”

 

 어릴 적 자기 전 듣는 동화처럼 경이롭다거나 위엄이 있었다거나 하는 경험을 기대하며 토마토를 포크로 집었다.

 

 “*네. 저도 본지 얼마 안됐습니다.”

 

 “*런던에 그렇게 오래 살면 서도요?”

 

 “*뭐, 신경 써서 보질 않으니까요. 한번 퇴근하는데 브릿지가 열려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더군요. 그래서 봤습니다.”

 

 “*음, 불편했겠네요.”

 

 관광객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만약 출근 중에 한강대교가 열려 지나가지 못한다고 한다면?

 

 아마 당장 팀장님에게 전화해 욕을 하며 연차를 쓴다고 협박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에 재희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브릿지가 열리는 건 그저 신기한 일이지 아름다운 관경은 아니니 그렇게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보는 관경이 더 근사하니까요.”

 

 “*리프트? 엘리베이터 말하는 거죠? 엘리베이터도 있나요?”

 

 타워브릿지를 방금 건너왔는데도 기억나지 않는 장소에 재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다리 위에 탑 두 개를 연결하고 있는 통로로 갈 수 있는 리프트에요. 탑 안에도 관광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꽤 유명한 관광코스인데 모르셨나요?”

 

 재희는 대답 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뭘 보고 온 거지.

 

 꼭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나 알고도 보지 않는 것과 모르고 못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야경이나 풍경에 별다른 흥미는 없었지만 모르고 지나쳤다고 하니 괜스레 아쉬움이 몰려왔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샐러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음에 같이 가보죠.”

 

 갑작스러운 말에 로메인과 파프리카를 꿰뚫던 포크가 멈추었다.

 

 “*다음에요?”

 

 “*네. 다음에요.”

 

 다음, 다음이라…

 

 노골적인 약속도 아니었고 그저 스쳐가는 말도 아니었다. 다소 산뜻하지만 배려와 기대가 뒤섞여 있는 말이었다.

 

 입을 열어 대답을 하려던 순간 메인요리가 각자 앞에 놓였다. 해리 앞에는 레몬을 곁들인 농어 요리가, 재희 앞에는 조각조각 플레이팅되어 있는 스테이크가 자리했다.

 

 스테이크는 미디움레어로 익혀져 한 조각, 한 조각 예쁘게 배치되어 윤기가 흘렀다. 미니당근이 스테이크 주변을 둘러싸며 앙증맞게 자리하고 접시 위편에는 파슬리 오일이 동그랗게 뿌려져 있었다.

 

 자신 앞에 놓인 사랑스러운 음식을 바라보며 정신이 팔려 길게 대답하려던 말을 한단어로 줄였다.

 

 “*좋아요.”

 

 기다란 잔에 조심스레 샴페인이 채워지며 황금빛 액체 속 기포가 톡톡 터졌다.

 

 재희가 웃으며 샴페인 잔을 들자 해리도 따라 잔을 들었다.

 

 이번엔 일방적인 것이 아닌 쌍방의 행동으로 챙-하고 테이블 중간 허공에서 잔이 부딪히며 샴페인이 가볍게 흔들렸다.

 

 “식사와 같이하는 술은 부드럽고 약한게 좋을 것 같아서 골라봤습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재희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꿀을 퍼부은 것처럼 달콤하고 꽃을 농축해서 만든 것처럼 약하게 꽃향기가 났다.

 

 “*술을 좋아하시나 봐요.”

 

 “*자주 마시지 않긴 하지만 요리와 곁들여 먹는 건 꽤 좋아합니다.”

 

 재희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는 게 아니라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 것 아닌가.”

 

 한국어로 다소 주정뱅이같이 들리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한국은 소주, 맥주, 소맥으로 통일된다지만 유럽은 와인하나에서도 라벨마다 향과 맛이 다르다고 하니 그에서 오는 차이인건지도 몰랐다.

 

 재희에게 와인이란 그저 소주보다 넘기기 좋고 맥주보다 빨리 취하며 어떤 술보다 분위기 있어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뜬금없이 내뱉은 한국어에 영어로 직접적인 번역을 기다리는 해리를 보며 재희는 괜스레 웃음이 쿡쿡 터져 나왔다. 이유도 없이 유발된 웃음은 도무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뜬금없는 웃음에도 해리는 묵묵히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지켜보기만 했다.

 

 재촉도, 핀잔도 없이.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계속되는 궁금증이 섞인 표정에 재희는 조금 말을 포장해서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에 술을 맞추기보다 술에 음식을 맞추거든요. 그래서 조금 신기해서.”

 

 “*그러고 보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지금까지 묻지도 않았네요.”

 

 “*그러게요. 이름과 함께 꼭 따라붙는 질문인데.”

 

 재희가 조금 자조적인 뉘앙스를 풍기자 해리는 그 미묘한 기운을 알아차리고 애매하게 웃었다.

 

 “*한국이에요.”

 

 “*한국. 그렇군요.”

 

 “*북쪽인지 남쪽인지는 안 묻네요?”

 

 “*당연히 남쪽이죠.”

 

 “*흠, 어떻게 자신해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하는 표정으로 되물어오자 해리는 약간 당황했다.

 

 동료인 유진의 말에 따르면, 런던에 처음 왔을 때 인종차별을 제외하고 가장 기분나빴을 때가 북쪽에서 왔냐고 물었을 때라고 했다.

 

 “*아니, 상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김정은에 대해서 그렇게 떠들면서 어떻게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하나도 모를 수가 있냐고.”

 

 술자리에서 위스키를 진탕 마신 후 내뱉던 울분어린 말이 아직도 뚜렷했다.

 

 근데 앞에 있는 재희는… 당황, 분노보다는 오히려 그래, 궁금증, 재미가 강했다.

 

 “*동료 중에 유진이라고 한국에서 온 사람이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속일 수 있었는데 아쉽다.”

 

 “*네?”

 

 “*정확하게 알고계시다구요.”

 

 재희는 살면서 처음으로 듀얼 랭귀지를 하는 사람들의 이점을 깨달았다.

 

 이렇게 면전에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니!

 

 자신의 새로운 적성을 이제야 발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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