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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London
작가 : 해롯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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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리시안셔스의 꽃말
작성일 : 17-12-09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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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를 마치고 퇴근준비를 할 때 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당연하게 버로우 마켓 근처로 가려고 했던 해리는 저 지금 여기에요. 라는 말과 함께 도착한 사진에 재킷을 들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사진에는 언더그라운드 마크 안에 BANK 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회사에서 언더그라운드까지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숨이 약간 가빠왔다.

 

 순전히 급격한 운동 탓인지, 아니면 감정이 섞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벽에 기대어 이어폰을 귀에 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가롭게 쳐다보고 있는 재희는 첫 만남 때처럼 마치 혼자 다른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그 차이를 허물고 싶은 동시에 그 세계 안에 자신만이 초대되고 싶은 충동이 서로 격렬하게 부딪혔다.

 

 두 가지 모두 재희 앞에 빨리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었기에 해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왔어요?”

 

 재희는 벽에 기댔던 몸을 살짝 떼고 왼손으로 한쪽 이어폰을 빼며 환하게 웃었다.

 

 세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마주선 후 해리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마주 웃어주었다.

 

 재희의 표정이 미묘하게 긴장돼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작은 꽃다발이 불쑥 나타났다.

 

 오른손에 꽃다발을 들고 몸과 벽 사이 티가 안 나도록 숨기고 있던 것을 내민 것이다.

 

 재희는 꽃다발을 양손에 든 채로 수줍게 웃고 있었다.

 

 “*어때요? 예쁘죠?”

 

 꽃을 받아 들기 위해 한걸음 다가선 해리는 조심스레 이를 넘겨받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버로우 마켓 갔는데 꽃이 엄청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몇 송이 샀어요.”

 

 “….”

 

 “*색도 예쁜 걸로만 골랐어요. 하얀색하고 연한 분홍색. 제가 좋아하는 색이에요.”

 

 “….”

 

 “*아침에 심술부린 거 미안해요. 사과의 선물이에요.”

 

 “*고마워요. 잘 간직할게요.”

 

 조금 넋을 놓고 쏟아지는 말을 듣고 있던 해리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흰색과 연분홍 꽃, 그리고 잎을 적절히 섞어 크레프트지에 싼 꽃다발.

 

 꽃이 좀더 풍성하고 크레프트지가 아니라 흰색 레이스로 쌓여있었다면 영락없는 부케였다.

 

 망가지지 않도록 가장자리의 꽃잎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얇디얇은 꽃잎이 손에서 작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리시안셔스.

 

 언 듯 장미와 닮은, 하늘거리는 두 겹의 꽃잎을 가지고 있는 꽃.

 

 영원한 사랑. 이 꽃의 꽃말이었다.

 

 재희는 단순히 색과 모양이 마음에 들어 골랐겠지만 꽃말을 아는 해리는 적당한 기쁨으로 표정을 관리하기 어려웠다.

 

 ‘*해리, 이 꽃 꽃말이 뭐하고 했지?’

 

 커다란 창이 있는 방, 창 밖에는 햇살이 내리 쐬고 잘 관리되어 있는 잔디밭은 푸르며 일정한 간격과 설계대로 심어져 가꿔진 나무와 꽃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어머니는 해리를 무릎에 앉히고는 동그란 원목 테이블 위 화병에 조화롭게 꽂아진 꽃들 중 가운데쯤에 있는 꽃을 손으로 가리켰다.

 

 ‘*영원한 사랑이요.’

 

 ‘*그래. 영원한 사랑.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청혼할 때 주었던 그 꽃이란다.’

 

 해리는 이미 다섯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에 고개만 대충 끄덕이며 나가 놀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해리도 만약 진정한 사랑을 찾으면 꼭 이 꽃을 주어야 해. 알겠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비록 준 게 아니라 받은 거지만 오래전에 어머니와 했던 약속을 지킨 셈이다.

 

 해리는 꽃다발을 들어 향기를 맡은 다음 짧은 입맞춤으로 감사를 표했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요?”

 

 

 어제와 비슷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생각했던 해리는 갑작스레 마음을 바꾸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곳은 너무 격식을 차린 곳도, 로맨틱한 곳도 아닌 적당히 깔끔하고 캐주얼한 느낌이었다.

 

 한 손에 꽃을 들고, 한손에는 재희의 손을 잡고 걷던 걸음은 얼마 가지 않아 멈췄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저기 저 건물을 보고 한참이나 서있었어요.”

 

 재희는 잉글랜드 은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건물은 잉글랜드 은행으로 처음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졌었어요. 지금은 재건하며 대부분 소실되어 저기 정면의 저 장식이 약간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렇구나.”

 

 수없이 출퇴근을 반복하면서도 딱히 건물에 관심이 없던 해리는 만족할 만큼의 답변을 해주지 못 하는 게 아쉬웠다.

 

 재희는 짧은 설명으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스스로 자책감에 빠졌다.

 

 “*예전 모습이 안남아 있다니 아쉽지만 그래도 예쁘니까 괜찮아요. 오후에 셰익스피어 글로브에서 원형 극장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길게 감정에 빠져있을 틈 없이 화재는 빠르게 전환되어 만나기 전 있었던 일로 넘어갔다.

 

 오후의 동선이었던 셰익스피어 글로브, 테이트 모던 그리고 버로우 마켓까지.

 

 버로우 마켓의 감상을 말하던 재희의 입에서 빠에야라는 단어가 10번 이상 반복되자 해리는 내일 메뉴를 스페인 음식으로 정했다.

 

 감상평이 마무리 될 때 쯤 도착할 만큼 짧은 거리인 목적지에 도착하고 해리가 몇 걸음 앞서 걸어가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식당 안으로 재희가 먼저 들어서고 해리가 따라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해리!”

 

 마크, 유진, 테오, 모리스 였다.

 

 자신을 발견을 하지 못했다면 조용히 그대로 식당을 나서 다른 곳으로 갔겠지만 아는 척을 한 이상 어려워 해리는 조용히 인상만 찌푸렸다.

 

 해리의 표정이 이렇거나 말거나 넷과 재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크, 차례로 유진, 테오, 모리스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제이라고 불러주세요.”

 

 “*제이! 정말 만나서 반가워요.”

 

 처음 만난 게 아니라 꼭 10년을 강제로 떨어져서 지내다가 재회한 것처럼 셋은 호들갑을 떨며 재희를 대했다.

 

 “*오늘 해리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매몰차게 거절당했거든요. 근데 이유가 바로 여기 있네요.”

 

 재희를 쳐다보며 눈을 찡끗거리는 마크를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해리는 굳은 표정으로 재희 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게요. 제가 눈치 없이 기회를 가로챘네요.”

 

 완벽한 타인이 관경을 목격한다면 해리가 아니라 재희가 친한 직장동료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쓸데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자신을 대할 때보다 미묘하게 편해지는 재희의 어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화는 가벼운 메뉴추천으로 막을 내리고 해리는 최대한 그들과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많이 친한가 봐요.”

 

 의자에 앉은 후 고갯짓으로 방금 전까지 있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닙니다.”

 

 생각할 필요 없이 단번에 한 대답에도 재희는 그 말을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웃었다.

 

 메뉴판을 대충 눈으로 훑다가 탁하고 덮으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는 그럼 아까 마크가 추천한 라자냐로 할래요.”

 

 맛없으니 다른 걸 고르라는 말은 죽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 말은 치졸함의 끝을 보여주는 말이었으므로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미간을 찌푸리지 않으려 애쓰며 자주 가던 식당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마크가 있는 테이블이 자꾸 신경 쓰여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체를 벽을 향해 틀고 고개를 살짝 숙여 시야를 차단시킨 해리는 재희의 물 잔이 비어갈 때 쯤 겨우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식사는 완벽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알려진 관광지의 맛 집이 아닌 직장인들의 숨겨진 맛 집인 이곳은 모든 여행자의 로망인 현지인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정히 수트를 입고 업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속 나 혼자 관광객이라니!

 

 회사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외국인이 들어오면 많고 많은 좋은 곳을 두고 왜 이런 데를 와서 밥을 먹을까 생각했던 것은 잊은 지 오래였다.

 

 적당한 대화와 적당한 웃음 속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 할 때 쯤 마크를 비롯한 넷이 해리와 재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마크는 재희가 시킨 음식을 보며 자신의 추천이 어땠냐고 운을 띠운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이, 같이 술 한 잔 할래요?”

 

 거절할 것이 뻔한 해리가 아니라 재희에게 묻는 치밀함.

 

 넷은 해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눈길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애타게 재희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좋아요.”

 

 간결한 긍정에 셋은 환호성을 외쳤고 해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지막한 한숨을 들은 재희는 왜요? 하고 작게 물어왔지만 해리는 가까스로 미소 짓는 것에 성공하며 그저 재희의 손을 매만졌다.

 

 승리의 세레머니를 날리던 마크는 양해를 구한 후 멀지 않은 자리에서 통화를 시작했다.

 

 “*대니, 나야. 우리 펍에 갈 건데 너도 올래? 뭐? 조쉬도 같이 있다고? 데려와. 해리랑 해리 여자 친구인 제이도 올 거야. 그럼. 내가 누군데…”

 

 숨길 생각이 없는 통화 내용은 너무나 잘 들렸다.

 

 온 팀원을 동원할 것 같은 모양새에 마주잡은 손에 약간 더 힘을 주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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