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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London
작가 : 해롯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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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끊임없는 폭로전
작성일 : 17-12-11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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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지상과 지하, 애매한 공간에 걸쳐 있는 펍은 위치만큼이나 내부의 정체성도 뚜렷하지 못했다.

 

 바와 결합되어 있는 펍은 바에서 칵테일과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사람, 원형 테이블에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 바 뒤쪽에 마련된 쇼파가 있는 테이블에 앉아 데이트하는 연인까지.

 

 온갖 사람들을 모아놓은 집합체 같았다.

 

 팀원들은 어떤 술을 마실지 한참이나 토론 끝에 종류대로 마시자. 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 쇼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각자 돌아가며 좋아하는 술의 이름을 댄 사람들은 술을 잔뜩 시키고 계산은 당연하게 해리에게 떠넘겼다.

 

 맥주, 보드카, 와인, 칵테일까지. 각자 취향을 반영하는 술들이 앞에 자리했다.

 

 재희는 모두의 안내대로 얼떨결에 중앙에 앉아 눈만 도르륵 굴리며 맥주를 홀짝였다.

 

 각자 오늘 있었던 업무적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고 끼어들 틈이 없는 재희는 해리의 어깨에 기대어 안주를 집어먹으며 시끌벅적한 사람들을 구경했다.

 

 벌써 반쯤 취해서 얼굴이 달아오른 사람, 이야기에 심취해 언성이 높아진 사람,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등.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크는 유진, 다니엘과 환상적이었던 시뮬레이션 적중률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중 다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둘을 발견했다.

 

 ‘아주 다른 차원에 있네.’

 

 눈을 가늘게 뜨고 잔을 비운 마크는 해리가 조심스레 머리를 넘겨주는 것을 보고 탕 소리가 나도록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삼삼오오 모여 하던 이야기가 끊기고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됐다.

 

 “*제이. 해리 회사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아요?”

 

 본격적인 폭로전의 시작이었다.

 

 “*일 처리할 때 습관이라던가, 팀원들하고 관계라던가 기타 등등.”

 

 “*뭐….”

 

 사실 재희는 그다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알려준다고 하면 기꺼이 듣긴 하겠지만 캐물을 정도로 궁금하진 않은 정도였다.

 

 마크는 예상외로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똑 부러지는 부정이 아니니 줄줄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해리는 냉철한 독설가 타입이죠. 직장에서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바로 이런 모습은.”

 

 재희에게 치즈가 얹어진 감자튀김을 전달해주는 해리를 손으로 올곧게 가리켰다.

 

 모두들 맞아, 그렇지 소리를 내며 쳐다보는 대도 재희는 그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가져다준 안주를 손이 아니라 입으로 직접 받아먹었다.

 

 해리는 당황한 듯 했으나 바로 옆자리에 앉은 재희는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나머지의 팀원들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해리는 아홉 가지 장점이 아니라 한 가지 단점을 눈여겨보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완벽한 분석을 했다고 생각해도 한 가지가 빠져있으면 그건 폐기 대상이죠.”

 

 아무렇지 않은 반응에 마크는 수위를 높였다.

 

 “*맞아. 저번에 내가 쇼나 기업 보고서 작성할 때 환율 계산 좀 잘못했다고 뭐라고 했다니까?”

 

 “*아, 그 사건?”

 

 “*잠깐만, 그 실수한 게 너였어?”

 

 “*야, 그건 네가 잘못한 거지.”

 

 “*멀쩡하게 네가 여기 다니고 있는 게 신의 축복이야.”

 

 분위기는 반전되어 해리의 냉철함이 아닌 테오의 치명적이었던 실수로 넘어갔다.

 

 “*유진, 너는 기업 이름도 잘못 쓴 적 있잖아.”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어? 마감기한 내에 보고서도 제출 못하면서.”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서로의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물귀신 작전인가.

 

 업무상 팀원들과 각자 별개의 일을 하는 재희는 이런 대화가 신선했다.

 

 업무의 힘듦에 대해 토로하려면 배경부터 시작해 진행경과를 넘어 제품의 특성까지 줄줄이 나열해야 했다.

 

 A에 대해서만 말해도 자연스럽게 B와 C로 연결되는 대화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잠깐만, 대화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 거야?”

 

 마크가 주도적으로 나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아무튼, 해리가 회사에서 이정도입니다. 제이에게는 그렇지 않죠?”

 

 “*네, 다정해요.”

 

 웃으면서 하는 말에 모두 재희와 해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몸서리를 쳤다.

 

 “*해리 애들러가 다정하다니.”

 

 “*다정의 정의가 그새 바뀐 거 아니야? 종종 바뀌기도 하잖아.”

 

 “*착하고 상냥한에서 냉정하고 이성적인 쯤으로 바뀌었나보지.”

 

 “*맞아. 찾아보자. 희망을 버리지 말자.”

 

 충격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핸드폰을 들어 S.W.E.E.T을 사전에 검색한 다니엘은 핸드폰을 붙잡고 좌절에 빠졌다.

 

 내뱉은 말에 대한 부정과 부정, 그리고 부정에도 재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처리는 확실한가보네. 뭐 내 상사도 아니고. 일만 같이 안하면 깔끔하고 냉정한 게 일하기 좋지.’

 

 해리의 냉정함에 놀라기에는 자신의 매정한 친구인 서우연씨가 한수 위였기에 그저 태평한 생각만 들었다.

 

 사무실 그리고 교우관계 어쩌면 사랑하는 사이에서까지 냉정하기로 유명한 우연을 떠올리며 다시 맥주를 마셨다.

 

 “*해리는 데이트로 어디를 데려가요?”

 

 “*맞아. 혹시 더 듀랑 같은 곳은 아니겠지?”

 

 “*더 듀랑은 너무 하잖아.”

 

 모리스는 테오에게 안주로 놓인 미니 프레첼을 던졌다.

 

 더 듀랑은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정찬이 정확히 순서를 지켜서 나오고, 먹는 사람도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다소 딱딱한 곳이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잡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예의라는 단어 아래 움직이는 그 곳은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 특히 젊은 층에게 환영을 받기 어려웠다.

 

 오늘 원래 계획은 더 듀랑에 갈 생각이었던 해리는 표정을 조금 굳혔다.

 

 ‘그렇게 별로인가.’

 

 의심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격렬한 반응에 따라 얼마 없던 저녁 식사 장소 명단에서 영원히 제외시켰다.

 

 “*더 듀랑이 어디에요?”

 

 재희는 손짓대로 고개를 조금 내린 해리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그저 음식이 맛있는 곳. 정도로 생각했던 장소는 되짚어볼수록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었다.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은 식사예절 또한 무시하면 눈초리를 받는 곳에서 외국인인 재희가 살아남을 리 전무했다.

 

 마크를 만난 것을 제외하고 장소를 바꾸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애매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어디기에 그러지?’

 

 더 이상 캐묻지 못한 채 더 듀랑, 더 듀랑. 이름을 되뇌며 나중에 검색해봐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의 찝찝함을 씻어 내렸다.

 

 “*그래서 주로 어디에서 데이트해요?”

 

 모리스에 의해 질문이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이목이 집중되었다.

 

 “*음, 저도 어제가 첫 데이트라 서요.”

 

 “*네?”

 

 “*‘어제’가 첫 데이트였다고요?”

 

 모리스는 양손을 올리고 어깨위로 올리고 브이자를 한 상태로 손가락을 접어 내리며 어제를 강조했다.

 

 “*그래서 해리가 어제부터 반쯤 넋이 나가있었구나.”

 

 경악에 휩싸였던 분위기는 유진의 말에 납득가능한 쪽으로 바뀌었다.

 

 재희는 시시각각 바뀌는 팀원들의 반응과 펍에 들어온 후부터 내내 굳어있는 표정의 해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웃었다.

 

 “*어제부터 얼빠진 것 같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업무 하다가 중간이 없어요.”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니까.”

 

 “*어제 마크가 연애 시작했다고 했던 얘기가 진짜 ‘어제’ 시작한 거였네.”

 

 “*어쩐지. 뜬금없이 식당 추천해달라는 말은 신기했지.”

 

 “*아, 이사진 볼래요?”

 

 혼란한 틈을 타 마크가 자랑하듯 내민 핸드폰에는 해리의 옆얼굴이 찍혀 있었다.

 

 올라간 눈썹, 동그랗게 뜨여진 눈동자, 조금 벌어진 입은 확실히 넋이 나간 표정 같긴 했다.

 

 빼앗듯이 마크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챈 해리는 거침없는 손길로 사진을 삭제했다.

 

 “적당히 해.”

 

 나지막한 경고와 함께 핸드폰을 돌려준 해리는 재희의 손을 마주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이 얽혀들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의 심각성을 느끼자 다들 사뭇 진지해졌다.

 

 분위기에 심취해 선을 두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팀원들은 그 선을 지금 막 넘었음을 알았다.

 

 “*미안.”

 

 “*미안해, 해리.”

 

 해리는 이렇다 할 말없이 조용히 재희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되지 않은 연인 앞에서 원치 않은 수모를 당한 사람치고 정중했다.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으며, 핸드폰을 내던지지도 않았으며, 재희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그저 쇼파 깊숙이 기대어 앉아 마크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재희가 해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지만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침묵이 계속될수록 사과는 길어지고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기, 듣고 있어?”

 

 술자리의 시작부터 구석에 앉아 내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들이키던 조슈아는 결국 한 병을 비우고 나서 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인 엘리샤.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통화목록을 뒤져 기어코 전화를 건 조슈아는 쇼파에 반쯤 누워 핸드폰을 얼굴 위에 올려놓고 통화하는 중이었다.

 

 “*잠깐만, 쟤 지금 전화 한 거야?”

 

 “*맙소사. 대니, 조쉬 핸드폰 당장 뺏어!”

 

 동료의 찌질한 행동에 모두들 합심하여 조슈아를 저지하고 핸드폰을 압수했다.

 

 술에 취한 조슈아는 허우적거리며 핸드폰을 빼앗고자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슈아는 사랑한다고 소리 지르며 저항했지만 결국 순순히 다니엘과 모리스에게 끌려 나갔다.

 

 한바탕 소란으로 인해 시끄럽던 테이블이 차츰 정리되면서 다시 말이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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