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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London
작가 : 해롯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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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그날 밤 있었던 일.
작성일 : 17-12-14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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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희가 문 바로 옆에 카드키를 넣자 호텔 방이 환하게 밝혀졌다.

 

 서 있는 재희 너머 방안의 모습이 대략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 책상, 쇼파, 그리고 침대 끄트머리…

 

 자신이 저 안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들어가면 안 되는 곳. 이라는 생각보다 들어가지 못하는 곳.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참 아무 말이 없자 재희는 이상한 침묵에 뒤를 돌아섰다.

 

 벽에 기대어 서서 눈을 감듯이 아래로 두고 있는 해리가 보였다.

 

 “*싫어요?”

 

 호텔 앞에서 해리에게 던진 물음과 똑같은 말이었다.

 

 한없이 가볍게 던진 말.

 

 서로 소리없이 물음표 섞인 표정만 주고받던 중, 이내 재희가 아.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힘이 순간적으로 빠지면서 문이 점점 닫혀 결국 문에 끼어있는 형태로 서 있게 되었다.

 

 보기보다 오래 잡고 있기 힘든 무거운 문은 재희를 방안으로 들이고 닫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고 겨우 빠져나와 앞에 서자마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니, 저, 제 말은, 그러니까.”

 

 당황하자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허둥대며 대각선 방향으로 슬금슬금 물러나서 멈추어 섰다.

 

 얼굴이 굳은 채로 입꼬리만 겨우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재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가 금방 들어가서 가지고 나올게요.”

 

 다급한 손짓으로 방문을 힘껏 잡아당긴 재희는 꼼짝도 하지 않는 문에 당황했다.

 

 ‘이게 왜 안 열리지?’

 

 한참 손잡이를 돌리고, 잡아당기던 재희는 키를 방에 꽂아놓은 채로 방문을 닫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망했다.’

 

 뒤돌아서는 순간 모든 게 꿈이고 침대에서 깨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제발.’

 

 눈을 질끈 감으며 어렵사리 몸을 빙글 돌렸지만 매정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이…잠겼어요.”

 

 차마 해리의 얼굴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 발치에 시선을 두었다.

 

 발이 자신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몇 걸음도 못가 벽에 가로막혀 꼼짝 못 하게 된 재희는 긴장되어 땀이 난 손을 가볍게 쥐었다.

 

 “*괜찮아요?”

 

 고개가 들리고 가까이 해리의 얼굴이 보였다.

 

 재희는 앞에 있는 초록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괜찮은 것인지도 모른 채로.

 

 그리고, 한없는 다정한 말과 걱정하는 눈동자에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해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얼굴로 흘러내린 눈물을 조심히 닦아 주었다.

 

 그저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기 귀찮다는 자신의 짧은 생각.

 

 그 단순하고도 위험한 생각에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있는 해리에게 미안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슬픔이 아니라 화로 인해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해리는 갈수록 서럽게 우는 재희에게 조심히 다가서 등 뒤로 팔을 둘렀다.

 

 해리의 단단한 상체에 몸을 기대고,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은 재희는 오래도록 그렇게 울었다.

 

 

 “*리셉션에 다녀올게요. 여기 있어요.”

 

 “*아니요. 제가 갈게요. 제 방이고 제가 쓰고 있는 곳이니까.”

 

 여전히 울음기가 베여있는 목소리이지만 단호함이 묻어나왔다.

 

 재희는 한껏 부어오른 눈꺼풀이 신경 쓰이는지 네 번째 손가락으로 눈을 만지작거렸다.

 

 해리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재희는 축 처진 어깨로 발걸음을 옮겼다.

 

 난데없는 소동은 호텔직원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무사히 방문을 연 재희는 시계를 힐끗 본 후 다시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할 텐데.’

 

 새벽까지 이런 이유로 붙잡아 둔 것이 미안했다.

 

 방문을 가리키며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선 재희는 문 옆 옷장에 곱게 걸려있던 재킷을 들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이번엔 호텔 키를 가지고 나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요.”

 

 이 상황의 최초 원인 제공자인 재킷이 드디어 해리 손으로 넘어갔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빠른 사과에 해리는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표정이 환해지자 잘생겼지만 다소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가볼게요. 쉬어요.”

 

 남자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다정하게 이마에 키스를 남긴 채 뒤를 돌아 걸어갔다.

 

 *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자정이 훨씬 넘어 잠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다시 잠들기 전 잠시 깬 것이라면 몰라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한재희!!’

 

 ‘거기서 그냥 귀찮다고 막 같이 올라오라고 해?’

 

 ‘뭐? 방안에 들어와서 맥주를 마시고 가?’

 

 ‘그 상황에서 울긴 왜 울어?’

 

 자기 전 자꾸 그 일이 떠올라 한껏 발버둥 치며 소리 없이 속으로만 한껏 소리친 것이 30분.

 

 잊자고 자신을 달래며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린 것이 30분.

 

 그 시간을 더해도 잔 시간이 4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자자.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자.’

 

 자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자꾸 머릿속에서 글자가 맴돌았다.

 

 해리포터 스튜디오.

 

 드디어 영국여행의 핵심이자 목표였던 곳에 가는 날이었다.

 

 안 설레려고 해도, 안 설렐 수가 없는 날이었다.

 

 고요한 침대에 누워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던 재희는 결국 몇 분 안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굳게 쳐져 있던 커튼을 걷으니 어슴푸레한 해가 뜨는 것이 저 멀리 보였다.

 

 ‘준비시간 2시간, 이동시간 3시간이라고 하면… 적당하겠지?’

 

 1시간이면 차고도 넘치는 이동시간을 3시간이나 잡은 재희는 가히 누구나 인정하는 길치다웠다.

 

 GPS 위치 및 방향 화살표가 생긴 이후로 두려울 게 없어진 그녀였지만 그래도 일생일대 중대한 날 괜히 늦고 싶지 않았다.

 

 쓸데없이 굳은 결의를 다지고 많이 이른 시간부터 답지 않게 부지런히 준비를 시작했다.

 

 

 수분 크림과 선크림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기 전.

 

 습관적으로 옆에 놔둔 핸드폰으로 손과 눈길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익숙하게 검색창에 런던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검색한 재희는 읽었다고 표시되어있는 수많은 게시글 중 하나를 클릭해 처음 보는 것처럼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티켓을 바꾸고 들어가면 보이는 계단 밑 벽장, 연회장, 해리가 있던 기숙사, 그리고 수업을 받았던 호그와트의 교실,

 

 수없이 많은 사진이 손짓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중 제일 열심히 찾아본 것은 기념품샵.

 

 세트장 제일 끝에 있는 기념품샵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물품을 파는지, 어떤 게 제일 예쁘고 좋았는지 알아내기 위해 50개도 넘는 후기를 뒤적거렸었다.

 

 의외로 여러 종류를 산 사람이 없어 실망하길 여러 번, 내가 사서 나오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설레기도 여러 번.

 

 게시물이 끝을 보이고, 기념품샵에서 파는 마법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애꿎은 손만 쥐었다 폈다, 입에 가져가 깨물기도 하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드라이기를 집었다.

 

 

 해리는 출근해 내내 중요한 일에 적당한 시간을 찾고 있었다.

 

 ‘언제 연락을 해야 할까.’

 

 제일 먼저 그 생각이 든 것은 다름 아닌 출근길 차 안에서였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는 핑계로 보류.

 

 출근해서 오전 회의 전에도 재희의 어제 기상 시간을 봤을 때 너무 이른 것 같아 핸드폰 소리가 잠을 깨울까 봐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기상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 된 지금은 어제 새벽까지 같이 있다가 헤어졌다는 핑계로 연락을 망설이고 있었다.

 

 늦게 들어가 늦게 잠이 들었으니 아직 깨어나지 않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으로.

 

 

 한참을 망설이던 해리는 오늘 일정을 한번 확인 한 뒤, 지금 시간을 다시 보았다.

 

 당장 시작해도 퇴근 시간까지 아슬아슬한 양이었다.

 

 하, 하고 깊게 숨을 내쉰 해리는 호흡도 멈춘 채로 신중하게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일어났어요?]

 

 너무 단조롭고, 어제와 같은 문장. 최악이었다.

 

 그러나 대체할만한,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할 만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길 한참.

 

 결국, 그대로 문자를 보내고 한 문장을 덧붙이기로 했다.

 

 [*저는 출근해서 일하고 있어요.]

 

 [*네ㅔㅔㅔㅔㅔ!!! 저 해리포ㅗ터 스튜디오에요.]

 

 연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흥분감이 넘치는 문자와 함께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은 거의 매분마다 착실히 도착했다.

 

 한 번에 한 장이 올 때도 있었고, 시간텀이 생긴 후 한꺼번에 여러 장이 몰아칠 때도 있었다.

 

 해리는 점심시간도 마다한 채 업무를 계속할 정도로 처리할 서류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재희가 보내준 사진을 한 장 한 장 유심히 보고 최선을 다해 호응해 주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곳에 혼자 갔는지 얼굴이 나온 사진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쉬웠지만, 가끔 있는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서, 재희가 찍어 보낸 배경에서 신난 모습이 느껴져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저,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젯밤 일이 전혀 언급 없이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굳이 들추자는 것은 아니었으나 처음 본 재희의 눈물은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았다.

 

 ‘진짜 기분이 괜찮은 걸까.’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눌러놓은 것인지,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미안하다며 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 위로 웃는 재희가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제 일은 분명 자신의 우유부단한 결정과 애매한 행동들이 엮어져 나온 참사였다.

 

 사과해야 할 건 재희가 아니라 자신이었는데.

 

 당황해 웃음으로만 얼버무렸던 어제의 나를 한껏 탓하며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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