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힘들어’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역이다. 입학한지 3주, 적응을 아직 하지 못한 건가. 욕실로 가 거울을 보자 얼굴도 정상은 아니다. 서둘러 씻고 교복을 챙겨 입었다.
서둘러 학교로 뛰어갔다. 아침부터 뛰는 건 오랜만이다. 몸은 잠을 자서 피로를 회복한다고 해도 정신적으로의 피로는 거의 없어지지 않는다. 어찌어찌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으려고 내려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하 준아.”
목소리만 듣고 바로 알았다. 1학년 국어교사다.
“왜요?”
“이따 국어 시간에 숙제 검사한다고 친구들한테 말해 놔. 안했으면 지금이라도 하라고.”
“네”
국어선생은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데 아직 결혼을 안했다고 한다. 혼자 사는 덕에 홀 애비 냄새나는 건 어쩔 수 없나. 자기보다 훨씬 어린 내가 혼자 살면서 깔끔히 사는걸 알게 되면 적잖게 놀라겠군.
너무 장난스럽고 가벼운 교사라 나는 좋은 교사라고 보지는 않는다.
또다시 2주가 지났다. 신입생들은 제법 적응 한 것 같고 동급생들끼리 이미 상당히 친해졌다.
4월의 아침은 날씨가 많이 풀려 이제 조금 있으면 여름이 된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교사들 분위기 심상치 않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자세히는 몰라도 무슨 일이 있다는 건 눈에 띌 정도다.
순간 교실로 들어오자 승우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왔다.
“야. 대박이야!”
“뭐가?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데?”
다른 녀석들도 평소랑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 초등학교 때 알던 애, 김 진형”
“걔가 왜?”
“걔가 죽었대.”
“뭐?”
무슨 소리인지 순간 알지 못했다.
“아까 옆 반 얘가 선생들 하는 얘기 들었어. 근데 자살인 것 같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살?”
자살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왜 그 얘가 자살을 해?
“야, 장난이지? 그런 장난 재미없어.”
“내가 사람목숨가지고 장난을 치겠냐? 다른 반까지 소문 다 났어.”
‘소문 한번 빠르군.’
아니, 애당초 누가 이런 걸 소문낸 거지? 본인은 그냥 놀라운 소식이라 친구에게 말했고 어느샌 가 소문으로 돌고 있는 거겠지.
잠시 뒤 조회시간이 되고 담임이 들어왔다.
“선생님, 3반 김 진형이 정말 자살했어요?”
담임이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불티나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말만 다를 뿐 전부 정말 진형이 자살했는지 묻는 말이었다.
“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누가 자살이라고 그래?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고야, 사고. 자살이라니 누가 그런 말을 한 거야?”
담임의 반응이 예상외자 다들 말문이 막혔다.
어찌되든 정말 죽었다. 그녀석이 정말 죽었다. 진형이 확실히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자, 아이들은 더욱 어수선해졌다.
“조용히 하고 일단 1학년 학생들은 장례식 조문 최대한 하라고 지시가 나왔어. 전부 갈수는 없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같은데 나온 사람은 내일 아침에 들렸다와. 교복입고 가도 되니까.”
담임은 말을 마치고 장례식장 위치를 칠판 구석에 적어 두었다.
도대체 이 학교 선생들은 어떻게 돼먹은 모양이야. 그런 걸 묻는 다고 대답해주다니, 어린 학생들에게 전하지 말아야할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쨋든, 그날 1학년학생들의 최대 화제는 진형이 정말로 ‘자살했느냐’였다. 모든 교사가 자살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 얘들에게는 진형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자살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해보였다. 몇몇 아이들은 뜬금없이 살인이라는 소리가 나돌기 시작했다.
나 역시 정말 자살일지 궁금했다. 물론 진형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지만 만약 정말 자살이라면? 그 얘가 자살할 이유가 있을까.
난 아는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다. 그것도 아직 수십 년은 더 살아갈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라니 이러면 정말로,
“정말 자살일까?”
수업이 끝나고 현준과 만나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현준이 말했다.
“어? 뭐라고?”
내가 당황스럽게 말하자 내 쪽을 보지도 않는 현준이 다시 말했다.
“김 진형 그 녀석, 진짜로 자살일까?”
“글쎄 아마 소문이겠지?”
“소문이건 사실이건 누가 그런 이야길 퍼뜨린 거지?”
“누가 선생들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고.”
“교사들 모두 하나 같이 자살이야긴 처음 듣는 것처럼 보였어. 만약 자살이란 걸 우리에게 숨길 거라면 학생이 듣는 곳에서 혹은 들을 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런 말을 하진 않을 거야.
적어도 내가 아는 교사라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
제길, 이 녀석은 너무 예리하다. 나 역시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했으니 그 정도 결론에는 이미 도달했다.
“하지만, 그러면 소문을 낸 애가 근거 없이 헛소문을 냈다는 거야?”
“어쩌면 소문의 유포 자가 애가 아닐 수도 있지.”
뭐, 그건 무슨 소리야 애가 아니라고?
“설마 그럼 학생이 아니라 교사라고? 아니, 어떤 교사가 미쳤다고 학생한테 그런 소릴.”
“어쩌면 이라고 가정이긴 한 데, 우리가 아는 교사 중에 그럴 교사가 얼마나 있지?”
순간 누군가 뇌리에서 떠올랐다. 학생에게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라도 할 교사, 장난스럽고 가벼워 나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은 교사
“국어 선생.”
현준은 내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사흘 전 국어 수업이 떠올랐다. 전날 뉴스에서 정치인의 비리가 나왔던 지라 국어 선생은 그 이야기로 수업의 30분 이상을 날려 먹었다. 이야기의 반은 이 나라에 대한 서슴없는 독설이었다. 물론 학생의 대다수가 거의 듣지 않았다.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학생에게 교사가 저런 얘길 해도 되나 싶었다.
그 일이 떠오르자 납득이 갔다.
“그래, 국어 교사 그 사람이면 학생한테 못할 소리가 없는 사람이지. 하지만 어떻게 그 사람만 알지?”
“사고 던 자살이건 경찰이 조사하고 학교에 연락할거야. 아마 모든 교사가 진상을 알겠지. 담임 말대로 사고일 확률이 높지만 거짓이라면 정말 자살일 수도”
거기까지 얘기하자 골목이 끝나고 찻길이 나왔다. 현준은 옆길로 가야 한다. 그걸 알기에 조급해졌다.
“담임은 자세히는 모른다고 했어. 경찰이 연락했는데 자세히 모른다면?”
“경찰도 조사 중, 혹은 담임이 거짓말을 했던가.”
“만약 거짓말이라면?”
“정말로 자살 혹은 누군가 말했던 데로 살인.”
“잠깐 그럼 살인이라는 소문도 국어교사가?”
“글쎄? 내일 본인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 국어교사에게도 장례식장은 김 진형에게도”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거 전부 네가 생각한 거야? 추리소설 속 인물처럼?”
“아마 비슷 하겠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 정도? 만약 소설이라면 언젠가 범인과 함께 진실이 밝혀지겠지. 주인공에게 혹은 탐정 같은 경찰한태,”
“그 말은 정말 살인?”
내 몸이 떨고 있다. 처음이다. 이렇게 두려운 적은, 처음이다, 내 눈앞에 있는 존재, 현준이 이렇게 무섭고 동시에 뛰어나 보이는 건.
“글쎄, 네 의견은 어때? 난 그냥 셜록 홈즈 같은 사람 흉내 내본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돌아서려 했다. 지금 당장 말해야한다.
“난 아무 것도 모르겠어. 너처럼 뛰어난 추리능력도 없어. 하지만, 이상하게 알고 싶어. 정말 사고인지, 자살인지.”
살인인지, 그 말만은 집어 삼켰다. 그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겠다. 말하면 사실이 될 것 같다. 이게 책이 아닌 현실이란 걸 알면서도
“궁금해? 그럼 알아봐야지.”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현준은 돌아서서 걸어갔던 거다. 그 뒷모습에서 빨리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나 이상한 말을 남긴 지 윤이 떠올랐다. 모두가 이상해 보였다.
4월, 제법 해가 길어졌지만 이제 해가 지고 있다. 붉어진 해가 왠지 원망스러웠다. 그냥 심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