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소년소녀
작가 : 레슨
작품등록일 : 201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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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닮은 꼴
작성일 : 17-12-05     조회 : 40     추천 : 0     분량 : 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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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여느 아침과 같다.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르고 난 그런 사람들을 보며 학교에 간다. 집과 멀지 않아 걸어 갈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늘 그렇듯 집을 나와 골목을 지나고 큰길가를 따라 걸어간다. 큰길을 지나 골목에 다시 들어서고 골목을 올라 학교로 온다. 평소와 아주 똑같은 등굣길이다. 아, 지금 나와 같은 곳을 향하는 학생들에게는 조금 다르나?

 비가 왔던 그날로부터 벌써 한달이 지났다. 4월 마지막 주인 오늘은 시험 마지막 날이다. 더군다나 금요일이니 내일과 모레는 주말이다.

 아마 학생들은 평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를 향할 것이다. 오늘 시험만 보면 당분간은 자유로워 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올 때가 더 신나겠지만.

 난 절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므로 그동안 시험을 만족스럽게 보진 못했다.

 

 첫 번째 시험을 보고 잠깐 머리나 시킬 겸 복도로 나가 창문 밖을 보는 데 누군가 뒤에서 내 귀 바로 옆에서 말했다.

 “아래에 정문 기준 10시 방향”

 목소리, 또래와 전혀 다른 표현, 누군지 바로 알았다. 아니, 이젠 발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갑자기 뭐.”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조금 왼 쪽을 보니 교정 앞에서 중년 남자와 여학생, 그리고 교사 한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교장과 우리 담임이었다. 그리고 여학생은,

 “뭐야, 저 애, 누구지? 분명 옷은 교복이고 우리 학년 같은데 처음 보잖아. 누구지?”

 내가 모르는 학생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한 달 보름 만에 300에 가까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기는 어려우니까.

 “근데 저게 왜?”

 “저애 가슴 쪽 봐봐. 그리고 얼굴도 자세히 봐봐.”

 “가슴 쪽? 얼굴?”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었나?

 다시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보니

 “명찰도 없잖아? 그리고 완전히 새 옷인데?”분명 지급된 본인의 이름이 한글과 한자로 적힌 명찰을 교복에 고정시키는 것이 교칙이다. 게다가 옷 자체가 주름이 남아있는 새 옷이다.

 그리고 얼굴은 낯선 얼굴은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누군지 알아?”

 “아니, 하지만 저 애에 관해 딱 한 가지는 알아.”

 “그게 뭔데?”

 “우리가 3월에 입학식 가려다 경찰서 앞에서 본 그 애.”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니, 생각해보니 있었다. 그날 경찰서에서 나오던 여학생, 현준은 우리 중 가장 먼저 그 학생을 보고 가장 신경 썼다. 헌데,

 “야, 넌 무슨 얼굴까지 기억하냐?”

 “너도 익숙하다고 느끼지 않았어? 그냥 생각해보니까 기억난 거야.”

 나도 낯선 존재라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저애가 우리랑 무슨 관련인데?”

 “관련 없지. 하지만 생길 것 같은데 저 상황 보면.”

 “뭔 소리야?”

 “대충 상상 안가? 너라면 알줄 알았는데. 적어도 저애를 기억도 못할 승우 녀석보단.”

 나도 대충은 상상이 간다. 하지만, 저애랑 우린 상관없다.

 “오지랖 부리지마. 넌 왜 그렇게 남을 신경을 써?”

 내 표정과 말에서 내 진심이 나왔는지 그는 더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지금 남 신경을 왜 써.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솔직히 화난다. 상관도 없는 일에 끌어들이는 것 같다. 그 여자애가 여기 오던 교복이 새 옷이던, 우리랑 관련 없다. 생겨도 무시할 정도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우리와 전혀 인연 없는 존재다.

 몇 주 전, 진형이 죽었을 때도 쓸데없이 참견했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살아있을 때 신경써주지, 정말 자살일 수도 있는데.

 ‘한심해’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모르겠다. 그냥 의자에 앉는 순간 신경과 기억이 완전히 차단돼버린 기분이다.

 정신 차리니 나는 이미 학교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험은 이미 모두 끝나이었다. 첫 시험부터 완전히 꽝이다.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혼자 소리 내어 중얼 거리니, 길거리의 다른 사람들이 쳐다본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뭐야 너? 사춘기라도 왔냐?”

 진형의 장례식에서 오던 날 현준의 말이 떠올랐다.

 ‘닥쳐.’

 머릿속으로 그에게 수 십 번 입 다물라고 소리친 후 걸어갔다. 골목을 다 내려가 큰길가를 지나 다시 골목으로 들어서려는데 누군가가 보였다. 지난 달 봤을 때 짧아졌던 머리는 한 달 정도 만에 제법 길어졌다. 혼자서 신호를 기다리는 그 옆모습을 보자 입학식이 있던 날 나에게 영문 모를 인사를 남긴 채 뒤돌아선 그녀가 떠올랐다.

 다들 이상하다. 현준은 이상한 일에 신경 쓰고 지 윤은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진형은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횡단보도에 섰다. 건너갈 이유도 없고 큰 도로라 신호도 자주 있지 않다. 건너가면 오히려 집에 도착하는 시간만 늦춰질 뿐이다.

 내가 옆에 서자 그녀는 힐끗 옆을 본다. 하지만 금세 다시 앞을 본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건너편에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 다른 곳을 본다. 몇 초정도 지나 신호가 바뀌자 그녀는 길을 건너기 위해 인도를 내려가 횡단보도에 섰다. 고작 한 달 몇 주 전에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나에게 먼저 말을 건건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혹시라도 이번엔 그녀가 나를 알보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고 더 이상 그날의 말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날 그녀가 말한 ‘인사’라는 것이 거슬린다. 나는 지 윤에게 그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있는 걸까 싶다.

 내가 신경써버린 걸 안건지 그녀는, 지 윤은 돌아서서 내 눈을 보지 못한 채 말했다. 이래서 여자 앞에서 표정관리만 잘 못해도 안 된다 하였던가. 헌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하여서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닮았어. 우리 오빠랑 많이. 죽어버린 우리 오빠랑.”

 뭐, 죽어버려? 죽었다고. 흔한 표현으로 내 귀를 의심했다.

 “무슨 소리야?”

 작은 소리로 되물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가엾어 보였다. 아니, 눈을 깜빡여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려야만 할 것 같았다. 죽은 자신의 오빠를 떠올린 탓인가? 내가 그녀의 오빠와 닮았다니,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죽은 사람이라니. 나름의 충격을 견디기 힘들었다.

 잠깐, 그녀는 그를 떠올린 것으로도 길에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슬퍼한다. 그럼 그녀는 나를 볼 때 마다 그를 떠올렸다는 건가? 죽어버려 아무리 보고 싶고 울부짖으며 불러도 돌아올 수 그를?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려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힘겹게 참아내었다. 이래도 오빠의 장례식에서는, 아마 크게 울었겠지. 그 모습은 차마 미안해서라도 상상할 수 없었다. 나한테 인사하고 싶다던 말도 더 이상 오빠와 닮은 나를 보지 못해 서운했던 걸까. 나는 왜 그리 그날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을까?

 “미안”

 “미안해”

 동시에 우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서로에게 사과하는 말이었다.

 “괜한 말했지? 미안.”

 ‘사과해야 하는 건 나잖아.’ 이 말은 결국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이미 신호가 바뀌기 전에 서둘러 건너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닮았어. 우리 오빠랑 많이. 죽어버린 우리 오빠랑.’그 말을 되씹었다. 집에 들어올 때까지 계속 무한히 되씹었다. 책상 앞에 앉자,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조용히 책상 위에 읽던 책을 들었다. 어떤 작가가 낸 신작이다. 수학교사가 읽는 것을 보고 나도 한 번 읽어 보려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냥 읽었다. 기분이 너무도 이상했다.

 한참 뒤 휴대전화를 보고 전원이 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충전기를 연결해서

 살인자의 교묘한 트릭을 풀어내는 경찰의 활약상을 그린 이 소설은 나에겐 별로 재밌게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내일 천천히 다시 읽어 보기로 하고 다른 책을 꺼냈다.

 이번 주말은 혼자 집에만 가만히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도 외롭지도 않겠다. 읽을 책은 넘친다.

 다른 생각이 나지 않게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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