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소년소녀
작가 : 레슨
작품등록일 : 201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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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느린 엘리베이터
작성일 : 17-12-06     조회 : 36     추천 : 0     분량 : 5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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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이 오고 나서 사흘이 지난 목요일이다. 가연은 별다른 일없이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나 역시 평소와 똑같다. 어제도 세정에게 덜렁거리며 제대로 수업 준비도 못한다고 한마디 한 것을 제외하면 탈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금요일인 내일은 5월5일로 한국에서는 법정 공휴일이다. 덕분에 주말까지 사흘 간 연휴가 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상당히 여유롭고 기분 좋아 보인다.

 마지막 수업이 시작하기 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신 현준 그놈 한 번도 못 봤네.’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본의 아니게 마주쳤는데 오늘은 한 번도 못 봤다. 그때 내 옆자리에 승우가 앉더니 말한다.

 “끝나고 현준이 좀 보러 갈래?”

 “응?”

 이는 또 무슨 소리인가?

 “너한테는 연락 안했어? 어제 저녁부터 사고 났다고 하소연했는데.”

 “사고?”

 “어제 저녁에 오토바이가 치고 갔대. 목숨이 위험하고,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다리가 아작 나서 지금 입원 중이래.”

 “치고 가? 뺑소니야?”

 “그런가보지. 끝나고 한번 가볼 건데, 같이 가자.”

 평소 무단횡단은 물론, 애매한 신호는 뛰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그 안전주의자가 교통사고라니 거참 특이한 일이다.

 수업이 다 끝나고 곧바로 승우와 나가며 다시 물었다.

 “좀 정확히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대?”

 “나도 몰라. 가서 물어보지 뭐.”

 그런데 승우 이놈이 수업시간에 교사 말에 상당히 대들더니 그 문제로 담임이 잠깐 보자고 하는 바람에 나도 같이 20분 넘게 기다렸다. 어느 병원인지 나는 모르니 버릇없이 교사에게 대든 철없는 친구 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난 지 거의 40분 만에 승우와 함께 도착한 현준이 입원한 병원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종합 병원이었다. 환자들이 입원한 병동은 6층부터인데 정확한 층을 모르니 안내 데스크에 물었다. 교복을 보고 동급생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믿고 8층 두 번째 육 인실로 가라고 한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르고 위를 보지만 9층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엘리베이터는 고장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우리 뒤로 갑자기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뒤쪽에 있던 병원 현관이 열린 것이다. 어차피 종합병원은 사람의 출입이 시도 때도 없으니 현관 자동문은 힘들게 열렸다 닫히기를 하루에 수백 수천 번 반복해야한다. 그런데 잠시 뒤 우리 바로 뒤에 있는 데스크에 누군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중학생인 신 현준이라는 사람, 여기 입원했죠?”

 작지만 확실한 목소리, 귀에 익다. 누군지 뇌가 판단을 내려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기 전에 승우가 먼저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여, 너도 왔냐? 근데, 네가 현준을 왜 찾아?”

 뒤로 돌자 그 목소리를 듣고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가 보였다. 승우를 보더니 살짝 웃으며 데스크 간호사에게 말한다.

 “일행이 있었네요.”

 그녀의 웃는 모습은 사흘 전 내가 본 것과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사고 났다고 한 번 와보라고 하던데. 가급적 쟤랑 같이 오라고.”

 약간 당황하며 서있는 나를 가연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뭐야, 우리한탠 오라고 안하더니, 그 녀석하고 친해?”

 “그냥. 어느 정도? 같이 가려했는데 먼저 가버리더군요. 하준 씨.”

 그녀가 나에게 몸을 수그리며 말하자 간격이 좁아졌다. 그녀의 눈이 완전히 마주치자 다시 소름이 돋아 오르며 신경을 고통스럽게 했다.

 승우가 학교에서 담임에게 한소리 듣는 동안 집에 들렸다왔는지 사복차림이었다. 짧은 청바지에 밝은 상의의 전형적이 여름차림의 그녀는 분명 예쁘장한 외모다.

 또래들은 많이들 하는 가벼운 화장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얼굴은 희고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호감이 가지 못했다.

 “그래? 미안하게 됐네. 미리 말이라도 하지.”

 평소 여자에게 지나치게 상냥한 사람이 아니니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 목소리가 너무도 어색하게 들렸다. 마치 지옥행을 피하기 위해 죽음의 재판장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는 죄 많은 인간처럼. 변명이 많으니 심판결과는 당연히 지옥행이겠지.

 그녀는 예쁜 눈을 빛내며 풋 하고 웃는다.

 “빨리 올라가자. 엘리베이터 왔어.”

 발랄하게 밝게 웃으며 우리를 지나 앞장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승우의 눈빛이 이상하다. 설마, 저놈?

 나와 승우는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병원의 엘리베이터인 만큼 공간이 넓고 속도가 느리다. 난 습관처럼 가장 구석이 몸을 기대며 섰지만 승우는 가연의 바로 옆에서며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야, 근데 네가 현 준이를 왜 찾아와? 둘이 벌써 그렇게 친해졌나?”

 그녀는 그 물음에 슬쩍 옆으로 흘겨봤다. 날카로운 눈빛에 승우는 제법 놀라는 눈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밝은 표정을 올리더니 웃으며 대답한다.

 “아까 말했잖아. 걔가 와보라고 연락했어. 많이 친한 사이라기보다 그냥 아는 사이? 엊그저께 갑자기 오더니 말 걸고 연락처 물어서 놀라긴 했지만.”

 엊그저께면 가연이 전학 오고 바로 다음날이다. 현준이 다가가서 놀랐다는 건 그녀는 현준을 기억하지 못한 건가? 현준은 두 번이나 나보다 먼저 그녀를 발견했고 적잖게 신경 쓰는 듯 보였는데. 실제로 전학 오자마자 다른 반 남학생이 대뜸 연락처를 묻는 다면 놀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급생중엔 나중에 아무 여자나 만나고 다닐 것 같은 놈들도 많지만 현준은 분위기나 말투부터 그런 부류와는 확연히 달라 일반적이라면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녀는 날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본 그날, 나와 현준은, 그녀를 신경 썼고 그녀와 난 눈이 마주쳤다. 현준은 신경 쓰지 말라는 승우의 말에 고개를 돌렸던가?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현준은 기억 못하고 자신을 보고 있던 나는 기억한 것 일지도 모른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그녀는 나를 왜 기억한 것이고 우린 왜 그녀를 기억한 것인가.

 승우는 계속 그녀 옆에서 여러 이야기를 한다. 원래 어디 있었는지, 왜 전학 왔는지 등 그녀는 전혀 귀찮지도 실례되는 질문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성실히 철없는 남자 동급생의 질문에 답한다.

 “아버지 일 때문에, 원체 여기저기 다니는 경우가 많거든. 예전엔 경기도 쪽에 있었어. 이번에 이쪽으로 오면서 나도 전학 온 거지 뭐.”

 그녀는 붉은 입술을 올려 웃으며 뒤 쪽의 나를 돌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웃는 모습이 왠지 누군가와 닮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리 크지 않은 비중의, 거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 존재인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굴까.

 “그런데 넌 내가 계속 신경 쓰이나봐?”

 그녀가 다시 나에게 몸을 숙이고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나와 그녀의 간격이 좁아지자 승우의 표정이 좋지 않다.

 “신경 쓰다니, 무슨 소리야.”

 조금 힘들게 웃음을 품고 말했다. 지나치게 딱딱한 표정은 어색해 보인다. 그나저나 역시 그녀도 알고 있었나. 지난 사흘간 그녀가 전학 오고 계속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에이, 계속 보고 있었으면서. 왜? 내가 그렇게 예뻐?”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이 천진난만해 보인다. 하지만 그 웃음도 그녀가 창밖을 보다 나를 돌아보았을 때의 그 웃음과는 다르다. 어느 쪽이 진짜 너의 웃음이니? 지금 그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그래, 아주 예쁘니까 저리 좀 비켜봐.”

 내 말이 끝나고 그녀가 한걸음 물러서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위를 보니 숫자 5가 보였다. 5층에 멈춘 엘리베이터에 10명 남짓한 어린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가 탔다. 아무래도 5층에는 소아과가 있는 모양이다. 넓은 병원 엘리베이터라도 사람이 많으면 좁다.

 엘리베이터 하나가 고장 나, 내려가는 사람들도 올라가고 있는 이 엘리베이터에 탄 듯하다.

 가연과 엘리베이터 가운데 있던 승우가 사람들에게 밀리더니 엄마 손을 잡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를 다리로 밀어버렸다. 승우에게 치여 넘어진 아이를 미쳐보지 못한 한사람이 몸을 움직이며 구둣발이 그 아이를 손을 밞아버렸고 아이는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진 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부모가 사람들을 제치고 아이에게 손을 뻗기 전에 옆에 있던 가연이 최대한 빨리 아이를 일으키며 손을 보았다.

 “어머.”구둣발에 강하게 밟혔는지 손톱 두 개가 깨지고 피가 난다. 피부가 찢어진 모양이다. 서둘러 아이에게 온 아이엄마도 당황하는 모습이다.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다.

 넘어져 우는 아이를 엄마보다 먼저 안아 달랜 건 가연이었다. 아이를 안더니 그대로 다친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아프지? 괜찮아. 울지 말고.”

 그녀의 손에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을 리 없고 그녀는 유아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그녀의 품에 안겨 떨어질 줄을 몰랐다.

 승우와 나는 그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는 8층에서 멈췄고 아이를 안은 엄마와 우리는 내렸다. 뒤에 탄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는 모양이다. 다른 엘리베이터가 고장인 것이 떠올랐다. 힘들게 8층까지 올라와 다시 내려가야 한다. 승우와 나는 아이 엄마에게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내게 사과 할 이유는 없지만 고개 숙이는 친구 옆에서 고개를 처 들고 있을 재량은 없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이나 소아과로 갈 것이다. 가연과 헤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아이 엄마가 억지로 안고서 가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했다. 아이와 아이엄마를 대할 때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들과 헤어진 우린 두 번째 육 인실을 찾아 들어갔다. 육 인실은 제법 안쪽이고 엘리베이터 근처는 전부 2인 내지 4인실이다. 조금 안 쪽으로 들어가 두 번째 육 인실로 들어가자 문의 왼쪽 옆은 빈 침대고, 그 옆 두 침대는 중년의 남자들이 자고 있었다. 맞은편의 세 개중 가장 안쪽 창문 옆이 현준의 자리였다. 하지만 다른 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살짝 열려 있던 문을 열며 들어가는 소리에 현준 옆에 서있던 누군가가 우릴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릴 보고 살짝 놀랐고 승우 역시 어 하고 말했지만 현준 옆 침대사람이 눈살을 찌푸리자 금세 입을 닫았다.

 현준의 옆에는 사흘 전에도, 불과 어제도 덜렁거린다고 나에게 잔소리를 들은 세정이 서있었다.

 “여, 너희도 왔냐? 좀 늦었네.”

 의외의 인물에 나와 승우는 놀랐지만 가연은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넌 빨리 왔네. 어이, 어때 몸은 좀 괜찮아?”첫마디는 누가 들어도 세정을 향한 것이다. 그런데 좀 늦었다느니 빨리 왔다느니 무슨 뜻이지?

 “난 바로 왔으니까. 여기서 30분을 있어도 넌 오질 않아서 전화라도 하려고 했는데. 옷 갈아입고 왔네.”

 뭐야, 원래 같이 오려고 한 거야? 하지만 아까 가연은 현준이 자신을 불렀다고 했는데. 승우도 무슨 일인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치다.

 “너흰 뭐해? 빨리 문 닫고 들어와.”

 두 소녀의 뒤에 있는 침대에서 익숙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원 복 차림의 현준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승우도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현준에게 다가가 섰다.

 “몸은 어때? 큰 문제없어 보이네. 그런데 너흰 뭐야? 원래 같이 오기로 한 거야?”

 “연락은 둘 다 받았는데 그냥 따로 오기로 한 거야. 얜 교복입고 오기 싫으니까 옷 좀 갈아입고 온다고 해서.”

 세정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직도 문 옆에 서있는 나에게로 네 명의 시선이 모였다. 어째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만 이상한 건가? 괜히 가연에게 신경 썼다고 생각했다. 그냥 우리와 같은 학생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현준 쪽으로 발걸음을 때는데 누군가의 표정이 변했다. 내 작은 미소를 본 현준의 표정이 변했다.

 저 눈치 빠른 녀석은 나의 생각을 대충 안 것이다. 갑자기 온몸이 싸해진다. 둘의, 그녀들의 웃음이 이상해 보였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오고 머리가 어지러워 졌다. 서둘러 뒤로 돌아 병실을 뛰어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입을 틀어막은 나를 간호사들이 돌아보았지만 내 머리 속은 그녀들의 웃음으로 꽉 차있었다.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내가 드디어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현준의 표정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내안의 본능 역시 내 사고에 강한 명령을 내렸다. ‘지금은 당장 도망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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