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장 X의 소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구나 다 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명대사이다. 살아가기 힘들고 자신을 죽이려하는 누군가가 있는 상황에서의 덴마크의 전대 왕이자 자신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죽을 수조차 없는 햄릿왕자의 심경이 담긴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이 문장이 생각났지?
그건 아마 그 ‘소년들’과 그 ‘소녀’를 보았기 때문일까?
낮이지만 멀리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예리한 그들은 왠지 재미있다.
왠지 극단적인 그들, ‘그’가 좋아하겠군. 그들의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그’가 설마?
뭐, 물론 ‘그’도 곧 파멸해 버리겠지? 만약 정말 그리되면 아마 나 때문이겠지?
9장 아침
아침 일찍 현준에게 방문했다.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5월5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다.
“여, 왔냐.”
“그래, 왔다. 어젠 그렇게 가서 미안하다.”
“뭘. 그런데 어젠 왜 그런 거야? 어디 아파?”
뭐야, 어제 자신이 보낸 신호 때문인 걸 모르나? 아니면, 진짜 내 착각인가?
“별거 아냐. 그건 그렇고 네가 더 심각한 거 아냐? 정확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뺑소니라고 해야 되나. 수요일 저녁에 잠깐 편의점 좀 가려고 나왔거든. 그런데 큰길가에서 횡단보도 건너려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튀어나오더라고. 크게는 아니고 다리만 살짝 친 정도야. 주위에 있던 사람이 구급차 불러줘서 빨리 병원 왔고.”
“그래? 다행이네.”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현준이 건너려 했으면 분명 차량 신호는 적색이고 다른 차들도 멈춰있었을 탠데. 아니, 갑자기 튀어 나왔단 건 달리다가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은 건 아닌 것 같고.
큰 길이라는 건 학교 가는 쪽의 그 길이겠지.
현준의 집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그길 건너편에 있다.
“그런데 진짜 드라마 같은 건 구급차를 불러준 사람이다.”
“응? 뭐? 누군데 그래. 나도 아는 사람이야?”
“너도 알지. 인연은 나보다 길고.”
“누군데? 우리학교 학생이야? 설마 동급생?”
“동급생은 맞아. 하지만 다른 학교 학생.”
누구지? 전부터 알던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그럼 누구지?
“그 얘는 이제 오빠 생각 안할까?”
뭐?
“뭐라고 그랬어? 오빠 생각? 에이 설마 그 얘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지 윤에게 들은 그녀의 오빠 이야기를 현준에게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이리도 장난스럽게 말할 놈은 아닌데.
“그런데 뭐야 그 레드 조크는?”
만약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절대로 내뱉어선 안 될, 농담이라 부를 수도 없는 말이었다.
“고인을 폄하는 건 너답지 않아.
“그러긴 하지. 그리고 이 정도는 고인을 욕한다고 하기 힘들지.”
내가 옆에 있는 보호자 침대에 앉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 10초 정도 침묵이 지나자 그가 다시 말을 했다. “이쯤 되면 이상하지 않아?”
“뭐가?”
“생각해보자. 우리가 입학하고 이제 겨우 두 달이야. 그런데 너무도 많은 일이 있잖아.”“그건 그렇지.”
“아마 시작이 그것부터지? 김 진 형 자살 건.”
“자살인지는 아직 모르잖아.”
“경찰은 알 수도. 병사라면 우리가 알지 못할 가능성은 적어. 동급생이 어린 나이에 죽어야 할 만큼 큰 병을 앓았다면 입학 전부터 그 애를 알던 우리가 모를 리 없지. 게다가 넌 그 애랑 같은 학급이었던 적 있잖아. 갑자기 걸렸으면 아마 우리도 조심하라고 학교에서 이미 말이 나왔겠지. 에이즈라던가 아니면 유전적인 병일 확률은 정말 극악이고.”
“갑자기 큰 병이 떨어지면 아마 전국이 난리가 나지. 조류 독감이나 사스 같은 거면.”
“그럼 병은 아마 아닐 거야. 우리나이에 자연사는 설명 자체가 힘들고.”
“그럼 사고사일 수도 있잖아.”
“사고사면 왜 말을 안 하겠어. 오히려 너희도 차도에서 조심해라, 계단이나 창가에서 조심해라 같은 말을 아마 수없이 하겠지. 사고의 위험성을 알려주는데 사상자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
“진짜 자살일까?”
“아마 그러지 않을 까.”
다시 침묵이 왔다. 둘 다 천장만 보고 있다. 열려 있는 창밖으로 시끄러운 차 소리가 들린다. 5월 5일인데다가 내일은 토요일이니 아마 고속도로부터 순환도로와 시내 큰 도로까지 차가 엄청 막힐 것이다.
현준 침대 맞은편의 침대에는 어제 본 그 중년의 두 남자들이 있다. 가운데 자리 남자는 누워 병실 가운데 위쪽에 있는 TV를 보고 있고 나머지 한명도 부인인 것 같은 사람이 깎아 준 사과를 손으로 집은 채 먹으며 TV를 주시하고 있다. TV에서는 들어본 적조차 없는 어떤 드라마의 재방송이 나오고 있다.
“거, 뉴스 좀 틀어 보소. 아침 뉴스 할 건데.”
사과를 먹던 중년 남자가 리모컨을 들고 있는 가운데 남자에게 말했다. 좁은 병실에서 치고 너무 큰 목소리다. 가운데 남자도 드라마에 흥미가 없는 지 바로 뉴스로 채널을 바꾼다. 아침 일찍 왔더니 이제야 아침 뉴스가 하나보다. 아마 나도 평소에 보는 일곱 시부터 하는 이 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방송사 뉴스일 것이다.
“다음 소식입니다..”
뉴스에서 늘 들리는 앵커의 말이 들린다. 뉴스 화면 오른 쪽 위를 보고 지금이 7시 55분임을 알았다.
“근데, 학생은 엄청 일찍도 왔네. 오늘 학교 안가지?”
사과를 먹던 현준 건너편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아침부터 사과를 깎아야 하던 부인도 접시에 칼을 내려놓으며 나를 보았다. 순간 예상치 못한 관심에 당황했다.
“네? 아, 네. 공휴일이니까요.”
“친구 아프다고 아침부터 와준거야? 좋은 친구네.”
“네, 뭐.”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대답할만한 말도 없다.
“그런데, 학생 어제도 왔었지? 급히 가지 않았나?"
옆에 있던 부인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저걸 어떡해 대답해야하지?
“아, 얘가 어제 급한 일이 갑자기 생겨서요.”
내가 대답하기 곤란해 하는 것을 안 현준이 대변해준다.
“아, 그래”
그 뒤로 5분정도 대화가 이어진 뒤 그 두 사람은 우리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그제야 난 현준에게 어제 일을 물었다.
“야, 그런데 어제 걔네는 뭐야?”
현준의 눈빛은 마치 그녀들이 평범치 않은 존재라는 걸 말해주려는 듯이 보였다.
“내가 얼마 전에 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게 말이지..”
마치 드라마처럼 현준의 말은 건너편 가운데 남자의 전화 받는 큰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뭐? 시체? 역 옆 공원서 시체가 나와? 것도 두 사람이나? 이야, 그럼 지금 거기 경찰이 쫙 깔렸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