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개천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40분 즈음이었다. 토요일 오후다보니 개천가를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슬슬 더워지는 때이니 물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어제부터 연휴다보니 서울을 떠난 사람이 제법 될 탠데 개천가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개를 산책시키거나 유모차를 밀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히야, 여기 좋다. 바람도 불고.”
가연이 우리보다 먼저 계단을 내려가며 말한다. 제법 큰 개천이라 물도 많고 장마 때 호우를 대비해 상당히 주변을 높게 만들었다. 그래서 계단으로 상당히 내려 가야한다. 계단만으로 따지면 건물 3~4층은 될 만한 계단을, 가연은 거침없이 뛰어 내려갔다. 세정도 신난 듯 그녀의 뒤를 따라 내려간다.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신난 건 처음 본다. 가연은 제대로 이름을 안 것도 이번 월요일이라 사실상 같이 있던 시간은 거의 없지만 세정은 두 달간 거의 매일 보았지만 저 정도로 들떠있는 걸 본 기억은 없다. 확실히 여기로 데려오길 잘한 것 같다.
나도 계단을 내려가자 둘은 나를 이끌며 우리가 내려온 계단을 기준으로 오른 쪽으로 걸어갔다. 신이 난 두 사람이 뒤에서 오던 자전거와 부딪칠 뻔 하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시원한 강가에 나온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워 보였다. 아무래도 평소에 많이 답답하고 갑갑했던 모양이다.
한 10분 쯤 걸었을 까. 갑자기 가연이 뒤를 돌아보며 그녀들 보다 뒤에서 가던 나에게 말했다.
“새삼스럽게 하는 이야기지만. 목요일에 왜 그런 거야?”
“목요일에? 뭐가?”
무슨 이야기 인지 알 것 같지만 일단 모른 척 했다.
“신 현준 병실에서 갑자기 뛰쳐 나갔잖아.”
그녀는 나를 보며, 즉 뒤를 보며 뒤로 걷고 있다.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자세다. 바람에 그녀의 머리가 휘날리고 있다.
“그거 대답하기 전에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뭐?”
“어제 나한테 왜 그 공원으로 오라고 한 거야? 거기서 시신이 나온 거, 너는 알았잖아.”
“흠, 그거에 대한 답은 간단해. 너라면 관심 있을 것 같아서.”“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너 내가 오기 전에 있던 김 진형이란 녀석이 죽은 거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있다며.”
“그걸 어떻게 안 거야?”
“신 현준이 알려줬어. 네가 정 지 윤의 오빠에 대해 듣고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도 그 녀석이 알려줬지.”
“도대체 왜?”
“나도 궁금하거든. 너도 알다시피 내 아버지는 경찰이야. 목요일에 엘리베이터에서 말했지? 아버지 일 때문에 여기 온 거라고. 아버지는 두 달 전에 이미 이곳으로 옮겨 지셨어. 나름의 사정이 있던 지라 원래 있던 곳에서 반쯤은 쫓겨난 셈이지. 그때 나도 같이 왔지만 그 사정 때문에 나도 학교에 다니기 힘들어서 전학 수속기간도 있으니까 두 달 정도 쉬다가 지금 이 학교에 온 거지.”
“그 사정이라는 거. 실례가 되지 않는 다면 묻고 싶은 데.”
“내 엄마가 바람이 났어. 딴 남자하고 잔거지. 그것도 지속적으로.”
이거 엄청 실례되는 질문이었다. 괜히 물었다.
“바람난 게 들켜도 옛날처럼 간통죄가 성립되는 것도 아니고. 결별을 하던 합의를 보고 이혼을 하던지 해야 하는 데. 아빤 이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네. 하지만 엄만 이미 그놈하고 새 출발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고. 그런데 그 빌어먹을 놈은 엄마를 가지고 논 거더라고. 모텔 방에서 엄마를 묶어두고 엄마 휴대폰으로 아빠한테 전화해서 당장 현금으로 천만 원 가져오라고 시켰대. 안 그럼 엄마 목숨은 없는 거고. 하지만, 놈은 자기가 골려먹으려던 여자 남편이 경찰인건 몰랐었지. 당장 서로 가서 납치 사건으로 등록하고 위치 추적했는데. 여기까지는 좋은데.”
“거기까지는 좋은데?”
“혼자 들어갔어. 다른 대원들 다 모텔 입구에 버리고 가서 모텔 방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쳤어. 당장 튀어나오라고.”
“잠깐, 그걸 넌 어떻게 아는 거야?”
“어떻게 알긴 우리 정의의 편이신 아버지께서 나를 거기까지 데리고 갔으니까 알지. 우리 부모 참 못났다. 어쨌든 놈이 방문을 여니까 발로 뻥 차버리고 방에 들어갔어. 놈은 당연히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내뱄으면서 아빠를 노려봤지. 근데, 또 이놈이 갑자기 옆에 있던 엄마한테 달려드는 거야. 그때 보니까 놈은 부엌칼을 하나 들고 있더라? 엄마 목에 겨누면서 이 여자 죽이기 싫으면 꺼지라고 돈 가지고 오라고 협박했지. 하지만 제일 어이없었던 건 그 자리에서 바로 총 꺼내든 아빠였어. 그대로 한 발 쏘니까 놈이 엄마를 밀치고 옆으로 몸을 던지더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대한민국 경찰의 첫 발은?”“공포탄이지. 소리는 진짜 실탄과 유사하고 때에 따라 상대를 기절시키기도 하는.”
“맞아. 놈도 알긴 했겠지만 당황했지. 그때 놈은 공포탄인 걸 알고 칼을 내밀며 아빠를 찌를 듯이 달려왔어. 그때 아빠는 한 발 더 쐈지. 놈 오른 쪽 어께에 제대로 맞았어. 그래도 놈은 왼손에 칼을 들고 아빠를 찌르려고 했고 살짝 찔려 자신의 피를 본 아빠는 놈에 머리에 그대로 총알을 박아 넣었어.”
“그걸 너는 전부 보고 있던 거야?”
“그래. 자기 아비가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지. 놈은 죽었지만 녀석이 먼저 인질극을 버렸고 출동한 경찰에게 칼로 덤벼 상처를 입혔으니 발포는 당연한 행위였지만 살인죄로 처벌만 받지 않을 뿐 아버지는 그 일로 위에 분들에게 제대로 찍히고 이번에 여기로 좌천되었어.”
“어머니는 지금?”
“따로 지내. 우리 엄마도 불쌍해. 어릴 때 아빠랑 결혼해서 젊을 때 나 낳고 남편은 경찰이라고 며칠에 한 번 들어오는 게 다반사고. 힘들었겠지. 그러니까 그놈이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거고. 나쁜 엄마는 아니었어. 이것 봐”
가연이 자신의 왼 팔을 들어 보여준다. 빨간 줄을 꼬아 만든 팔찌가 그녀의 가는 손목에 감겨 있었다.
“엄마랑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준거. 그 일이 있고 마지막으로 짐도 정리하면서 엄마랑 만났어. 그때 준거야.”
“허, 거참 엄청난 이야기군.”
“그렇지? 어째든 아버지는 여기에서 김 진형 사망 건을 조사했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어. 살인이라고.”
“뭐?”
“그래서 너에게 그 공원으로 오라고 한 거지. 김 진형이 타살당한걸 아는 건 학생 중에선 나뿐이고 너라면 왠지 이런 경우의 일에 좋은 답을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거든. 그래서 시신이 나온 날 너를 오라고 한 거야. 들어보니까 네 동창 부모라고 하던데.”
“이런 경우라는 건 살인을 말하는 거야?”
“그래.”
“하지만 나는 고작 중학생이고 알아도 전혀 현실적으로 도움 될게 없잖아.”
“없어도 돼. 나는 그냥 엄마 일 이후에 불편한 심정을 어디에 기대고 싶은 거 뿐 이야. 그게 사건이든. 너든. 자, 이제 네 이야기야. 목요일에 그렇게 나간 이유가 뭐야?”
적당한 대답을 찾으며 그녀를 보았다. 벌써 수백 미터를 뒤돌아 걷고 있다. 그녀의 머리가 계속 바람에 휘날린다. 새삼 그녀를 처음 보았던 입학식 날이 떠올랐다.
“별다른 이유 없어. 속이 많이 안 좋아져서 화장실로 간 거니까.”
“그래?”그렇게 그녀는 납득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어른스러워 보였다. 세정을 돌아보자. 그녀도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녀들을 보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만 돌아가자.”
내말에 그녀들은 예쁜 미소를 보이며 ‘그래’라고 대답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