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그만 돌아가자’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그녀들에게는 내 집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전달될 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들과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후, 제법 걸었더니 덥다. 씻어도 되냐?”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남의 집에서 씻겠다고?”
‘그냥 간단히 샤워만 할게’라는 세정을 겨우 뜯어말려 겨우 일단 그녀들을 집으로 보냈다. 문제는 ‘일단’이다. 다시 오겠다고 세정은 물론이고 가연도 몇 번을 나에게 일러두고 갔다. 한 시간 정도 뒤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지금이 여섯 시 오 분 전이니 아마 일곱 시 쯤에 온다는 소린데.
뭐야. 설마 오늘도 자고 갈 생각이야? 이 무슨 외국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인가.
일곱 시 십 분쯤, 초인종에 인터폰을 보니,
“나왔어.”
라는 황당한 소리와 함께 승우가 왔다. 이 집에 언제부터 이렇게 손님이 많았지?
“뭐하고 있었냐?”“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왜 왔어? 이 시간에.”
“엄마랑 싸웠다. 하루만 재워줘.”
정신 나간 놈. 그냥 가출이잖아. 어, 잠깐 조금 있으면 그녀들이 올 텐데.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이번엔 가연과 세정이 왔다.
“뭐야, 너희들이 왜 여기에 와?”
그녀들이 온 것에 승우는 상당히 놀라는 듯 보였다. 당연히 놀랄 것이다.
“너도 왔잖아. 우린 안 되냐?”
현관문을 열자 그녀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여기 있으면 제일 안 되는 사람이잖아!”
현준이 목발을 집고 그녀들 뒤에 서있었다. 심지어 환자복 차림이다.
“왜? 난 오면 안 돼?”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런 데를 왔으니 당연히 안 되지.”
“병원에만 있으면 답답하다고. 바람도 쐐 주는 게 좋아.”일단 보내기도 애매해서 셋을 집안으로 들였다. 본의 아니게 넓지 않은 거실에 다섯 명이나 들어와 버렸다. 원래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라 좁지는 않지만 평소엔 혼자 지내다가 갑자기 인원 수 가 늘어나버리니 상당히 좁게 느껴진다.
“벌써 일 곱 시가 넘었는데 저녁 먹으려면 가야 하지 않아?”
“난 여기서 자고 가야한다고. 오늘은 집에 못가.”
“우리도 문제없어.”
“이런. 그래도 넌 가야하지?”
“병원은 밥을 빨리 줘. 이미 먹고 왔어. 천천히 가도 돼”
“이런, 이런.”
“야, 우리 배고파. 밥 좀 줘.”
“네가 미쳤다는 걸 잘 알겠어.”
세정이 아까 발언에 이어 다시 어이없는 말을 한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속 돈 많은 사람 자식들은 남에게 무례하게 대하던데, 너도 그런 케이스냐. 부모가 T사 임원이면 돈이라면 부족하지 않을 태니.
“너희 말이야. 너희 말고도 같이 사는 사람 있다며. 안 가도 돼? 어제도 안 들어갔잖아.
“걔도 부를 까?”
“뭐야? 얘네 같이 사는 거야? 그리고 어제 안 들어가다니?”
일단 승우에게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걔도 부르자. 너희도 오늘 자고 갈 거지?”
“당연하지. 오케이, 부를게.”
“누구 마음대로.”
20분 뒤, 7시 30분, 정말로 그녀들이 부른 사람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모를 거라더니 아주 모르지는 않다. 같은 학교 동급생이다. 얼굴은 대충 아는데, 이름이 뭐더라?
“도경, 왔어?”
“어, 왔어. 흠, 얘가 권 하 준이고 쟤가 박 승우. 뭐야? 신 현준 너도 있었냐? 사고 나서 입원했다며?”
“진짜 입원했어. 지금은 잠깐 나온 거고.
“오호.”
맞아, 이 도경. 기억났다. 현준은 아는 것 같지만, 나는 정확히 누군지 모른 듯 했다. 권 하 준이 뭐하는 놈인지도 모른 체 세정의 연락만 받고 여기 온 거야? 정말이지 저 아가씨들 조심성이 많이 부족하다. 내가 여성에게 순종적이고 조신한 것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시대엔 조심성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 준아, 밥 좀 줘.”
아까 아침과 점심에는 있는 밥과 라면으로 때웠으니 저녁은 밥을 먹어야겠지. 현준은 먹었으니 그렇다 치고 도경도 먹지 않은 듯 하니 최소 오 인분, 밥을 새로 해야 한다. 뭐, 저 아가씨들도 자기들 끼리 지낸다니 반찬 정도는 하겠지.
“밥 할 건데, 좀 도와줘.”
라는 말에,
“싫어. 그리고 우린손님이잖아.”
“네 음식 솜씨 좀 보자.
“그러게. 네가 만든 음식은 나도 아직 못 먹었다.”
“병원 음식은 입에 안 맞아서 조금만 먹었어. 내 몫도 부탁해.”
“내 것도 부탁 좀 할게.”
이러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다들 당장 나가.”
“에이. 알았어.”
“알았어. 할게.”
가연과 세정은 이렇게 대답했지만, 승우와 도경과 현준은 차례로 이렇게 대답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
“미 투(me too, 나도)
“다친 사람 시키지 마.”
결국 가연과 세정만 나를 도왔다. 대신 설거지는 도경과 승우가 돕는다고 했다. 하지만, 승우 놈은 믿기 힘드니 설거지는 도경만 돕기로 했다. 물론 내가 육 인 분치 일을 해야 하는 건 변함없다.
8시 35분, 식사가 끝나고 나와 도경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동안 나머지들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왠지 이 나라의 어머니들이 공감되었다.
“이봐.”
설거지를 하던 중, 나는 도경을 불렀다.
“왜?”
“어제, 저 녀석들은 여기서 잤는데 넌 그냥 너희 집에서 잔거야?”
“어. 근데 왜?”
“아냐, 그냥.”
어제 가연이 나를 불렀을 때 도경은 같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 가연과 세정이 이 집에 왔을 때도 오지 않았다. 어제의 내가 도경을 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주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물며 같은 학교 동급생이다. 내가 도경과 아는 사이가 아니 여서 해서 같이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도경에게도 할 일과 그녀만의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공휴일 아침에 해야할만한 볼일이나 사정이 존재할까?
아, 맞다. 우린 고작 중학생이다. 가족과 같이 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가. 아니, 오히려 그걸 제외하면 다른 건 가능성이 더 적다.
가연과 세정은 오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오히려 가족과 있기에 상당히 불편해 보인다. 그래서 어제 이 집에 왔던 것이고 일부러 여기서 잤던 것일 수도 있다.
“저 녀석들 어떻게 생각해?”
“뭐?”
갑자기 도경이 알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의미조차 모르겠다. 저 녀석들?
“최 가연, 구 세정, 저 년들 말이야. 평범한 중1처럼 보이냐?”
“글쎄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던데.”
“어떤 식으로?”
“어떤 식으로라니, 네가 물어놓고. 굳이 어떤 식으로냐고 묻는 질문에 답하라면 부모 사정 같은 거?”
“흠, 고작 그 정도야?”
“뭔 소리야.”
“확실히 들어. 신 현준 저놈은 슬쩍 던져 놓으니까 알아서 이해했지만 네가 정 이해하기 어렵다면 설명해줄 태니까.”
“아니 도대체.”
‘내가 얼마 전에 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게 말이지..’라는 현준이 어제 아침 병실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였어?”
“이제 대강 이해가 되냐? 저 년들 보통 년들이 아냐.”
“무슨 소리야. 보통이 아니면.”
“천재, 아니면 그냥 정신나간 년들..”
현준이 우리 옆으로 오면 서 그렇게 말했다. 집안에서 정도는 목발 없이 벽을 짚는 정도로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다.
“너희 영화를 너무 많이 본거 아냐?
“어려도 인간은 인간이잖아.”
“그야 그렇지.”
“꼭 남에게 해약이 되거나 무언가를 실행하는 건 성인만 할 수 있는 게 아냐. 그리고 방금 말했다시피 천재라는 조건까지 있다면.”
“천재건 뭐건 무슨 관련이야. 더군다나 아무리 봐도 그렇게 머리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천재라고 대단한건 아냐. 게다가 내가 말한 천재는 어떤 한 부분에서의 사고능력이 평균을 뛰어 넘는 경우를 말한 거야. 성인마저 도움을 요청할 만큼.”
“성인마저 도움을? 무슨 뜻이야. 성인이 관련 된다는 거야? 무슨 일에?”
“방금 말했잖아. 보통이 아니라고 저 녀석들 자체를 넘어 지금 관여되는 일까지 전부.”
“게다가 뒤에 성인은 물론 사람의 생명까지 걸린.”
“야, 신 현준.”
나는 현준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를 불렀다. 우리 이야기는 나머지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데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너, 좀 이상해졌다.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어떤 면이?”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고 괜히 지금처럼 소설 같은 이야기나 짓거리고. 말도 조금 씩 이상하게 하잖아. 엄청 변했어.”
“인간은 변해. 시간만 있으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하물며 우리 같은 미완성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변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아직 채 다 성장조차 하지 않은 우리 같은 아이들이?”
“쓸데없는 소리.”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야.”
이번엔 도경이 말했다.
“뭐?”
“쓸데없는 소리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다 사실이고 헛소리가 아니야. 대한민국 경찰도 관여하고 있는 일이라고.”
경찰이? 무슨 소리인가. 채 묻기도 전에 도경은 다시 입을 열었다.
“살인에 경찰이 관여 안하는 거 봤어?”
“살인? 혹시 어제 오전에 발견된 시신? 그게 저 녀석들하고 무슨 연관이 있어?”
“우리도 몰라. 경찰도 모르고. 하지만, 어제 최 가연이 너를 시신이 나온 공원으로 불렀지?”
“어.”
“왜겠어?”
“왜라니, 나도 모르지.”
“아까도 말했지만 성인도 도움을 청한다면, 저 녀석들이 할 일중 하나가 뭐겠어.”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뭘 하긴 시킨 일을 하겠지.”
“그 시킨 일이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으라는 내용이면?”
“뭐?”
“도움이 된다면 학생이라도 일을 부탁한다. 학생도 유능하다면 도움이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학생 중에서라도 도움이 되는 녀석을 찾을 거 아냐?”
“그럼 누군가가 저 녀석들한테 도움이 되는 녀석을 찾으라고 시켰고 그 도움이 될 만한 녀석을 찾는다? 잠깐 그럼 어제 나를 부른 건, 왜?”
“눈치가 없구나. 네가 도움이 될 만한 존재라고 판단한 거지. 두 번째지만.”
“말도 안 돼.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야.”
“증거가 있다면?”
“증거?”
“아까 네가 두 번째라고 했지. 첫 번째가 이 녀석이야.”
“뭐?”
“간단히 정리할게. 제의한 내용은 대충, ‘일종의 게임이 있다. 머리 좋고 유능한 너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금액을 주겠다. 현금이든 계좌든 선택해라. 돈에 대해 부모에게 댈 핑계도 마련해 주겠다. 원한다면 네가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후원해 주겠다.’그‘는 그 정도 능력이 있으니.’ 이런 내용이었어.”
“‘한마디로 돈을 줄 테니 협력하라.’ 이 뜻이군. 그럼 살인이라는 건?”
“어제 그것 말고도 무언가 있을 것 같아. 이런 일까지 하는 사람인 걸보면.”
“그거 저 녀석들 장난 아니야?”“이걸 봐.”라며 현준은 휴대전화 액정을 보여주었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요즘 시대 이 나라에는 우리 또래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잡생각은 떨치고 화면을 보니,
“진짜 현금이야?”
오만 원 권 5장이 부채 모양으로 놓여있었다. 25만원이다. 성인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고 우리에겐 너무도 큰 금액이다. 합법적인 금전 소득은 우리 나이라면 내년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금이라더군. 생각해보고 제의를 받아들이면 같은 금액을 주고 일이 성공하면 3000까지 준데. 물론 아까 말했다시피 원하면 대학까지 무료로 다니게 해준 대고. 부모에게 말할 핑계도 만들어 주는 건 덤에.”
“3000?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무슨 일이기에 어린애한테 그런 거금까지 약속하고.”
‘T사 임원’ 가연의 말이 떠올랐다. 세정의 부모는 세계강호의 대기업 임원, 마음만 먹으면 큰 부담 없이 돈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딸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구 세정, 저 녀석. 도대체 무슨 일을.”“한 가지 더 알려줄게. 금액이 커서 구 세정 부모를 생각한 모양인데.”
“아니야?”
“나한테 이 제의를 한 사람은 최 가연이야. 참고로 구 세정은 아직 이 일과 눈에 띄는 관련은 없어.”
“그럼 왜, 저 녀석들이라고 한 거야?”
“아직까지 눈에 관련이 없을 수 가 없거든. 저 둘은 거의 항상 붙어 다닌다고 하니까.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건, 도무지 같이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해. 둘 중에 하나가 무언가 중요하고 장기적인 일을 하는 데 항상 같이 다니는 사람이 모를 리 없잖아. 오히려, 둘이 이 일을 같이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
“둘이 계속 같이 라는 걸 어떻게 알아?”“다른 동급생들에게 물어보면 금방이지. 너도 쟤네랑 같은 학급이잖아. 교실에서 못 봤어?”
“딱히 엊그저께 전까지는 관심이 없어서. 최가연 이라면 몰라도 구 세정은 관심 밖이 있으니까.”
더군다나 가연이 전학 온 것은 이번 월요일이다. 오늘로 겨우 닷 셋째다. 학교에 간 건 나흘뿐이었고 그때는 가연을 특이한 점 없는 전학생이라고 생각, 아니 일반적인 전학생이라고 믿기 위해 일부러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그때까지 그녀들은 특별한 점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최 가연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은 누구지? 필요한 사람을 찾는 이유는?”
“거기까지는 우리도 몰라.”
별일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고 현준이 보여준 사진이 정말이라면.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모른 척 무시해야하나. 그때 아까 도경의 말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까 ‘어제 최 가연이 너를 시신이 나온 공원으로 불렀지?’라고 했는데 그건 무슨 관련이야? 어제 발견된 시신과 이 일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야? 살인과 관련 있어서 경찰이 관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내 요청에 도경이 물 묻은 접시를 털며 말했다.
“살인이야기는 추측이지만 만약 어제의 두 구의 시체가 최 가연에게 일을 시킨 사람과 관련이 있다면? 경찰은 아무래도 최 가연 아버지인 형사가 어제 시신을 조사하고 있는 것 같아.”
“여기 관할의 서에서 근무하면 이상할 거야 없지. 게다가 어제 공원 앞에서 구 세정은 나에게 최 가연이 자기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고 했으니까.”
“어쨌든 이제 이야기는 끝 잘 생각해봐.”
“잠깐 어제 최 가연이 나를 부른 이유는 뭐야?”
“그건 본인에게 물어봐야지. 자,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뭘 어떡해. 본인들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넌 대답은 어떻게 했어?”
나는 현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어.”
“좋아. 본인들에게 말해서 간단히 끝내 버릴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가연과 세정에게 갔다.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설거지는 끝나 있었다.
“이봐.”
내가 말을 걸자. 가연이 돌아보고 곧이어 세정도 나를 보았다. 그녀들에게 방금 현준과 도경에게 들은 이야기의 자세한 것을 직접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위압감이 들었다. 이번엔 가연과 세정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깊은 심해처럼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걸린다. 신경에 거슬리고 마음에 심하게 걸린다. 커다란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왜?”
“아, 아니야. 오늘도 여기서 잘 건가 해서.”
“여기서 잘 거라고 말했잖아. 도경아, 너도 여기서 잘 거지?”
“어? 어. 그러지 뭐.”
“일단 너는 이제 가야지?”나는 현준에게 말했다. 그리고 도경과 현준을 향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일 물어볼게.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고. 만약 여차하면 우리끼리 여기서 더 알아보자. 너희 추리, 정말 멋졌으니까.”
사실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녀들이 나를 도움이 되는 녀석이라고 판단하고 목적 때문에 나에게 다가오고 나와 같이 있었고 지금도 함께 라고 생각하기 싫어서다. 어제 공원에서 발견된 시신이 지 윤의 부모라는 걸 알게 된 내가 저번 주 주말, 지 윤의 오빠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던 지난주의 주말과 같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있어준 그녀들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맙다는 감정뿐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녀들이 ‘인간’으로써, 그리고 우리 나이 대에는 심각하진 않지만 중요하고 많은 영향을 주는 ‘친구’로 써, 또, 어쩌면 비록 우린 어리지만 인간의 감성을 어느 정도 가진 인격체로써의 이야기로 그녀들이 ‘이성’으로써 좋아졌기 때문이다. 고작 이틀, 아니 아까부터 고작 몇 시간 만에.
어쩌면 가연의 부모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런 이야기마저 들은 내가 그녀들을 의심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을 수 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왜인지 모르게 아직 도경과 현준의 말을 믿을 정보가 부족해서이다. 그리고 왠지 도경은 너무도 날카롭다는 느낌이 든다. 잘 갈은 칼날 같아 함부로 잡을 수도 칼을 들 수도 없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아직’, 그리고 ‘왠지’, 도경은 믿기 어렵다. 어딘지 모르게 도경은 그녀들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도경은 어쩌다가 그녀들과 함께 살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