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소년소녀
작가 : 레슨
작품등록일 : 201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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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기댈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의 안식처
작성일 : 17-12-13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4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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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정을 넘긴 오전 2시, 평소라면 당연히 자고 있을 시간이다. 아무리 내일이 일요일이라고 하여도 이 시간까지 깨어있을 이유도, 의미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활 리듬은 깨지고 말았다. 이 녀석들 때문에.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상태인 현준은 9시가 채 되기 전에 병원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그녀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시간은 고작 20분 정도였다. 그 이야기가 끝나고 거의 바로 간 것이니 아마 9시 반 쯤엔 병원에 도착했을 거다. 목요일에 우리가 본 고장 난 엘리베이터는 이제 다시 운행을 하려나.

 현준은 갔지만 나머지는 아직도 이 집에 있다. 심지어 아직 잠도 자지 않고 거실서 떠들면 왁자지껄 하게 놀고들 있다. 아까 가연과 세정이 나가더니 빵이며 과자며 음료를 잔뜩 사왔다. 어디 놀러왔냐?

 어쨌든 남에 집에서 염치 따윈 옆 집 개한테나 던져주고 신나게 놀아 재끼고 있다. 나 역시 2시간 전 까지는 같이 어울렸으나 이미 지쳤다. 어질러진 거실을 보니 저걸 언제 치우나 하는 생각뿐이다.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도경도 슬슬 지쳐 보이는 데 가연과 세정과 승우는 대용량 건전지라도 몸에 넣었는지 지치는 기색이 없다. 이 집이 아파트나 공용 연립 주택이었다면 아마 민원 신고가 들어왔을 거다. 물론 이 기세면 언제 근처 주민이 항의하러 오거나 경찰에 신고를 할지 모를 일이다.

 잠시 바람이나 좀 쐬고 들어와서 자야겠다. 라고 생각한 뒤 현관으로 가는 데,

 “나도 같이 가.”

 라는 말과 함께 도경이 따라 나섰다. 방금까지 도경도 지친 듯이 가만히 이었기에 지금 나와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이다. 저 조심성 없는 여자들과 승우를 같이 두는 게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도경과 밖으로 나왔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우리 집은 단독 주택인데, 집은 작은 1층짜리지만 앞에 벽돌 바닥으로 된 마당 비스 무리한 작은 공간이 있고 앞에 담장과 두꺼운 현관문이 있다. 현관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일단 집 건물 밖 공터에 섰다. 서울의 하늘에서 별 따위 보일 리 없다. 기꺼해야 인공위성 몇 개 뿐, 삭막하기 그지없는 하늘이다. 할 짓 없는 사람처럼 하늘이나 보고 있으니 따라 나온 도경이 실없는 소리를 했다.

 “뭐야. 그냥 나온 거야? 뭐 담배라도 필 줄 알고 같이 왔는데.”

 “미쳤냐?”

 5월이라 제법 더운 감이 있다. 조금 있으면 선풍기도 꺼내야 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경이 다시 말을 걸었다.

 “정말이지?”

 “뭐가?”

 “그 두 년, 정말로 계속 같이 붙어 있잖아. 아까 슈퍼 갈 때도, 지금도 둘이 같이 딱 붙어 앉아서 있고.”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둘은 계속 같이 붙어있다. 도경과는 사이가 안 좋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셋이 같이 산다면 도경도 두 사람과 꽤나 친밀한 사이일 탠데.

 “일단 의심은 하고 싶지 않아. 저 녀석들도 너도. 네 말을 백 퍼센트 다 신뢰할 순 없어.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건 사실이니까.”

 “그야 그렇지. 나도 그런 이야기 바로 믿어 달라고는 안 해.”

 “최근에 말이지, 내가 조금 많은 일들이 있었어. 김 진 형 이라고 알지?”

 “그 자살한 얘?”

 “결국 자살로 소문이 났군.”

 “아니야?”

 “모르지. 정말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어쩌면 살인일지도.”

 “설마. 그렇진 않을 거야, 아마.”

 “그런데 그 얘가 왜?”

 “그 얘, 예전부터 알고 있었거든. 입학 전부터.”

 “초등 동창인건가. 되게 놀라고 슬펐겠네.”

 “놀라긴 엄청 놀랐는데, 솔직히 별로 슬프진 않았어. 그렇게 깊이 알던 사이도 아니고. 우리처럼 어린 나이에 삶이 끝나다니, 당사자 입장에선 엄청 슬프고 억울할 거야. 안타깝게도 정작 주위 사람들은 자살이냐, 이런 거에만 관심이 있으니.”

 “하긴. 그렇겠다. 우린 아직 어린데, ‘벌써 삶이 종료되어버린다.’라. 흠.”

 “입학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에 초등 동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린 어리고 어린 중학생이야. 무언가를 해내기에도 만들어내기에도 바꿔내기에도 부족한, 어른의 품은 떠나지 못하지만 어른인 척 열심히 흉내 내는 바보 어릿광대 같은 존재.”

 “하지만, 적어도 우리도 인간이니까, 어린 사람으로 써, 어린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 까?”

 “어떤 거?”

 “우리처럼 어린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소설 같은 거?”

 “하, 그것도 괜찮네. 나중에 한번 해볼까.”

 “해봐. 그런 건 너에게 가장 잘 어울려. 그런 건. 다른 녀석들은 다 하나같이 어리고 바보 같아. 지금 저 안에 있는 녀석들처럼.”

 “현준은 저 녀석들이 천재라고 했잖아. 물론 다른 의미에서지만.”

 “저 녀석들도 재밌고 좋은 녀석들이야.”

 처음으로 도경이 그녀들을 칭찬했다. 아니, 승우도 포함해서 한 말일까?

 “박 승우 저놈은 오늘 처음 알게 된 녀석이지만 유쾌하고 활기찬 놈이네.”

 “그렇지. 그 아가씨들도 재밌어. 상당히 어제 오늘 같이 생활해본 결과 알게 된 거니까, 너만큼은 아니어도 정확할 거야.”

 “그거 아냐?”

 “뭘?”

 “동급생 여자를 ‘아가씨’라고 불러주는 사람을 아마 너 밖에 없을 걸.”

 “얘라고 하기엔 이제 너무 아가씨 티가 많이 나잖아. 녀석이란 표현도 쓰긴 하지만 여자한테 쓰긴 좀 미안한 표현이고, 아직 제대로 된 여자라고 보기도 어렵고.”

 “뭐야. 우리 발육 무시 하냐.”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거, 운 나쁘면 성희롱이 되 버린다. 이 당돌한 아가씨와 대화할 때 주의가 필요하겠다.

 “못 미더우면 만져봐.”

 “너 미쳤지?”

 후, 그래도 왠지 답답하던 게 많이 사라졌다. 즐거운 대화였다. 도경도 이렇게 대화해보니 크게 모난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도경은 그녀들과 같이 살까.’라는 의문이 다시 들었다.

 라는 생각을 하던 그때,

 “아, 맞다. 아까 하던 얘긴데, 우리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어.”

 “뭔데?”

 “여자 동급생들 의심하기.”

 할 말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도경은 그 건에 대해 확실히 정리하고픈 모양이다.

 “의심은 내일, 정확히는 오늘 낮으로 미뤄뒀어. 해가 뜨면 그때 자세히 이야기 하자.”

 “응, 그래. 그러자. 그럼 지금은 휴식. 아, 그런데.”

 “뭐가, 또?”

 “아까 최근에 너한테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그걸로 김 진 형 이야기도 꺼내고 무슨 일들이 있던 거야? 힘들면 말해.”

 입학 이후에 있던 일들에 대해 내 심경은 말하고 공유해오고 있던 사람은 현준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다. 일 때문에 바쁘고 정신없을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최대한 혼자 참고 견뎌왔다. 아무리 힘들고 답답해도 남에게 말하지 못했다. 세정의 말대로다. 내 단점은 고민하는 것이다. 항상 고민한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미안에 하고. 남에게 내 고민 따위 말하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했다.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도경에게는, 그녀에게 만큼은 말하고 싶어졌다. 왜인지, 도경에게는 기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말하기 망설이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녀가 너무도 고맙고 어여쁘고 사랑스러웠다. 그 순간 결심이 섰다. 그 순간, 결심이 서버렸다.

 그녀에겐 기대자고. 만약 누군가에게 배신당한다면 그 사람을 철저히 복수하고 또, 복수하겠지만, 그녀에게 만큼은 배신당해도 좋으니까, 기대자고. 마음을 풀어 놓자고. 그녀에게 정신과 마음을 안기자고. 결심이 서버렸다.

 “왜? 말하기 힘들어?”

 “아니, 말할게.”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말했다. 입학식 날, 가연을 우연히 보고 신경 쓴 것부터, 지 윤의 인사, 진 형 의 죽음과 국어 선생에 대한 불신, 현준에게 들어 던 사춘기냐는 말, 지 윤의 오빠 이야기, 전학 온 가연, 뺑소니 당한 현준에 대한 감정과 그의 병실에서 가연과 세정에게서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느낀 것, 금요일에 발견된 시신이, 지 윤의 부모라는 이야기, 그리고 오늘, 정확히는 어제 그녀들의 사정에 대해들은 것까지, 전부 말했다. 입학 이후 두 달간의 이야기를 하는 데만 15분은 더 걸린 것 같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나의 몸 안의 모든 게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몸 안의 온갖 장기들부터 뇌까지 전부 산산이 잘게 부숴 져 빠져나간 듯한 허탈함이다. 육체를 넘어 감정부터 신경과 뇌의 사고까지 모두 맡겨졌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긴 기분이다. 이제 기대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모든 아픔도 상처도 전부 끝이라는 결말을 맞게 된 하나의 엔딩, 종말이 찾아 온 것 같다.

 그 순간, 도경이 나를 안아왔다.

 “이 녀석, 그렇게 힘들면서도 혼자 참은 거야? 참, 대단하다. 대단해. 징글징글 하기도 하고. 왜 남에게 기대지 않은 거야. 왜 참기만 한 거야. 넌, 인간이야. 사람이고, 그리고 아직 어린 존재야. 혼자만으론 끝낼 수도 없어. 시작은 몰라도 그렇게 혼자라면 도중에 쓰러져 버려. 그런데 왜 그렇게 고통 받기만 했어. 남에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남에게 미안해서 견디지 못하고. 네 탓이 아니잖아.”

 그녀의 반응은 너무도 예상외라서 나는 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너에게도 있는 거냐. 그 아가씨들처럼, 사정이, 불행이, 고통이.”

 지 윤과 가연과 세정이 떠올랐다. 그녀들에겐 사정과 불행과 고통이 이었다. 그녀들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의지라는 것을 나는 도경에게 하려했다. 하지만, 도경에게도 무언가 있는 것 같았다.

 “참지 말아야 할 건, 너만이 아니 것 같다. 같이 하자. 서로에게 의지라는 것이 되어보자. 나도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도경에게 그 말을 들은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도경도 어린 존재였다. 우리와 같다. 벌써 어른이 된 존재는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거다. 우린 아직도 너무도 어리고 약하다.

 그리고 처음 알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기대어지고 의지 되어지는 게 이 정도로 기쁜 일이라곤 몰랐다.

 어느 샌가 나 역시 그녀를 팔로 감싸고 있었다. 나를 안은, 나에게 안긴 그녀가 너무도 작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내가 처음으로 이성을 꼭 끌어안은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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