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런.”
“왜? 무슨 일 있어?”
박 승우는 벌써 잠들었다. 하긴 쉬지도 않고 그렇게 떠들어 댔으니 지쳐 잠들만도 하지. 뭐, 덕분에 즐거웠으니 우리도 불평하긴 힘들지.
“창밖을 봐봐.”
“응?”
세정도 창밖을 보더니 알겠다는 눈치다. 창 밖에는 이 집 앞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하 준과 도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도경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내 목소리를 들은 세정이 옆에서 묻는다.
“무슨 뜻이야? 도경이가 어떻게 되는 데.”
만일 하 준이 도경과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나중에 도경이 겪게 될 일을 알고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럼 하 준은 우리를 멀리 할 것이다. 나는 하 준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은 결코 원치 않는다. 적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싫다. 우린 그 없이는 안 된다. ‘그’가 원하는 것 때문에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싫다.
“이제는 아무도 내 곁을 떠나지마.”
세정이가 나를 쳐다 보았다.
“가연아.”
“제발, 부탁합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빨리 돌아와요, 아빠.”
이미 눈물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탁이에요, 아빠. 난, 그 사람의 ‘도구’같은 건 원치 않아.”
다리가 풀려버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눈물은 한없이 떨어진다.
“아빠, 아빠, 제발, 제발.”
그런 나를 세정이 안아 주었다.
‘아, 너무 좋다. 따뜻해서 이대로 잠들고 싶어.’
하 준에게 안긴 도경은 이런 느낌일까?
세정의 목소리도 흐리다. 그녀도 우는 것 같다. 그녀는 울면서도 나를 안고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 도경이를 믿어보자. 그 애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 지 모를 거야. 아니, 설령 알게된다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틀림없이 우리를 이해해줄거야. 그래, 틀림없어. 그 애는 좋은 애니까.”
세정의 말을 듣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도경이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정이도, 도경이 본인도 모르고 있는 미래.
“아, 아아.”
아아, 우린 어찌 이리 어리고 나약한 것인가. 그에게, 하 준에게 기대기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도 힘들 텐데 우리가 기대게 해주지 못할망정 우리 모두 그에게 기대고 있다.
이제 곧, ‘시험’의 두 번째 문제를 시작해야한다. 그걸 알고있는 세정도 나도, 너무도 슬프다. 이 ‘시험’은 가혹하고 또, 서글프다. 오히려 그가 믿지 못할 수도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거부할 권한 같은 건 없다.
아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른이 되기 전에 해야할 일있다. 나는 어떻게든 누군가를 ‘도구’로 만들어야한다.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