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소년소녀
작가 : 레슨
작품등록일 : 2017.12.1
  첫회보기
 
15장 버리지마
작성일 : 17-12-14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4028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도경과 집에 들어온 건 우리가 나가고 30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오전 3시 가까이 된 늦은 새벽이다. 들어와 보니 승우는 소파에서 자고 있었고 가연과 세정은 거실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이불을 펴고 있었다. 이미 씻고 완전히 잘 상태인 듯했다. 오늘은 도경도 있으니 이불을 더 많이 깔라고 말하려는 순간,

 “난 얘하고 자도 되냐?”

 라며 세정이 나에게 들러붙었다.

 “꺼져. 그리고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 마.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왜? 같이 자면 이상한 짓하려고?”

 “그딴 이야기는 같이 잔다는 생각은 추어도 안한 나에게는 성립되지 않아.”

 라고 말하고 이불을 더 가져다주고 나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유독 다양한 일이 있던 하루인지라 온몸이 찝찝해 샤워하고픈 욕구를 힘겹게 떨치고 간단히 씻고 나오니 이미 전부 자고 있었다. 진짜 자는 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이불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거실의 전등은 당연히 전부 꺼져있었다. 승우는 소파에서 누워 자고 있는데 몰래 술이라도 가져와 마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푹 자고 있다. 사내놈이니 저리 둬도 문제없겠지. 하고 생각하고 나도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

 피곤한 하루였다. 사흘간 연휴 중 이틀 동안, 정확히는 목요일 방과 후부터 사흘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겨우 사흘 지난 건가.’

 5분정도 뒤, 평소에도 누워서 꽤 긴 시간을 뒤척거린 후에나 잠에 드는 내가, 완전히 잠들기 전, 누군가 내방에 들어왔다.

 ‘승우 놈 깬 건가?’하는 생각인 든 순간 그 인물이 내 옆에 누웠다.

 ‘그 조심성 없고 덤벙거리는 아가씨들 중 한 명이군. 가연은 아마 아닐 거고 일단 보네야지.’ 너무 특이한 아가씨들이다.

 “뭐야, 너야?”

 내 옆에 누운 건 내 예상을 완전히 깨뜨린 채 큰 눈을 깜박이는 가연이었다.

 “네가 왜?”

 “쉿. 조용히 해, 다들 잠든 거, 지금 막 확인 했어. 언제 깰지 몰라. 사실 안자는 걸 수도 있고”

 그녀는 대담하게도 내 입술에 검지를 대며 말했다. 어이 어이, 이건 어디 미국 드라마에서나 나올 상황이지 한국 중학생들인 우리가 할만 한건 전혀 아니잖아.

 “너 미쳤냐?”

 “우리 안 미쳤어. 아까부터 미쳤냐고 하지 마.”

 “지금 상황에 무슨 말을 해. 제발 부탁이니까 다른 여중생들처럼 행동해줘. 너흰 너무 평범치 않다고.”

 그때,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평범해질 수 없어. 그러니까, 제발 부탁이니까, 우릴 버리지 마.”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 말이야, 우리가 아무 남자한테나 이러는, 어려서부터 창녀 기질이 있는 년들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보여? 아니야. 우리가 너한테 이러는 건 이유가 있다고.”

 순간 지 윤이 떠올랐다. 나에게 죽은 자기 오빠를 닮았다고 한 지 윤이 그녀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까.

 “넌 우리에게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애비가 살인자인 나랑, 부모에게 반 버림받은 세정이,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네가 아냐고. 세정이 는 자기 아버지 얼굴도 많이 못 봤어. 사창가에 창녀랑 제 명예만 챙기는 아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인 그 얘가, 이런 어리 디 어린 나이에 반 강제로 방 하나에 매달 생활비 조금 받으며 쫓겨난 그 얘 사정도 넌 제대로 몰랐잖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경과 세정은 이미 깨어났을 것이다. 승우도 잠에서 깼을지 모르겠다.

 “너흴 버리려고 한적 없어.”

 “그럼 왜, 도경이랑 안은 건데?”

 “그걸 봤냐? 이봐, 그걸 보고 내가 너희를 버리려고 했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야?”

 “아니야.”

 나는 확실하게 말했다.

 “난 너희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야. 너희가 기대고 싶다면 기대도 상관없어.”

 어이없게도 터무니없는 약속을 해버린 기분이다.

 “너희가 왜 나 같은 놈한테 기대려는지 나는 모르지만, 적어도 너희를 버리지는 않을게. 처음부터 그럴 생각 따위 없었어.”

 그녀가 말하는 버린다, 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들의 사정은 알겠다. 난 그녀들 모두가 좋다. 그녀들이 살인자의 딸이고 사생아라도 싫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이 소녀들이 좋다. 덕분에 많이 웃고 많이 치유되고 구워 받았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진심으로.

 그녀가 나가고서야 나는 잠들 수 있었고, 길고 긴 하루가 끝났다.

 

 9시 쯤 조금 늦게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통 옆에 새벽에 보지 못한 빈 소주병이 이었기 때문이다. 승우 이놈이 정말로 술을 까먹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건 언제 가져 온 거야. 알고 보니 가연과 세정도 한 잔씩 먹은 모양이다. 술잔도 가져왔던 것이다. 이 썩을 놈을 팔로 머리를 강하게 졸라 응징했다. 본인도 세잔 먹고 남은 건 부엌 싱크대에 버렸다고 한다. 미친놈 소리를 서른 번 정도 먹이고 욕실에 보내 억지로 씻게 했다.

 간단하게 있는 반찬으로 아침을 마련했다. 평소 내 아침 식탁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승우가 반찬을 가지고 불평을 조금 했지만 그럴 거면 돌아가라는 가연의 말에 금세 조용해졌다. 이 녀석, 유독 가연에게 약하다. 목요일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이 녀석 눈빛도 그렇고 어째 불길하다.

 그때, 가연을 이상한 존재라고 생각하던 그때랑은 다른 불길함이 느껴진다. 설마 질투심인가, 하는 생각이 약 1초정도 뇌리를 스쳐지나갔고 금세 생각을 고치고 나 자신에게도 아까 승우에게 한 것처럼 미친놈 소리를 몇 번 해주었다.

 아침을 먹고 10시 반 즈음엔 현준이 왔다. 소주 사건을 이야기 하자 현준도 승우에게 대략 오십 번의 욕설을 퍼부어 주었다. 특히, 가연과 세정에게도 먹였다는 부분에서 욕설은 더욱 심해졌다.

 “지들이 먹겠다고 한 거야.”

 “우리가 언제.”

 “이 썩을 놈아!”아무튼 오랜만에 활기찬 아침 풍경이었다. 마치 온 가족이 모인 명절 아침의 큰 집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마냥 화기애애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본래 십대란 지루함을 쉽게 느끼는 존재인가.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중 소파에 엎드려 있던 세정이 입을 열었다.

 “심심해.”

 “닥쳐.”

 자동 반사로 현준이 말했다. 이쯤 되면 현준은 세정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라도 하자. 심심해.”

 칭얼거리는 세정에게 내가 말했다.

 “그만 좀 해라. 어제도 그러더니.”

 “심심한 걸 어떡해, 아빠.”

 “야, 야.”

 뭐, 그런 그녀 덕에 모두 웃을 수 있었다. TV에서 하는 영화 두 편을 보더니 현준은 돌아갔다. 영화 좀 보고 났더니 이미 4시가 지났다. 어찌어찌 승우도 설득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니 이젠 가연과 도경도 가겠다고 한다.

 “이제 가게?”

 “응, 신세도 많이 졌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지. 이틀 만에 집에 가네.”

 그러더니 세정에게는,

 “넌 여기서 청소 좀 도와주고 와라.”

 “싫어, 싫어.”

 “됐어. 가지고 가.”

 “가지고 라니, 난 사람이야.”

 “사람처럼 행동을 먼저 해봐.”

 어찌 되던 나머지 셋도 보내고 나니 집이 썰렁해 졌다. 가연과 도경이 가기 전에 신경 써서 청소를 도와준 덕에 청소도 일찍 끝났다. 세정도 돕기는 했지만 여간 대충이 아니었다.

 

 그 뒤, 오후 여섯시, 나는 어제도 왔던 개천에 왔다. 자동차와 사람을 위해 만든 개천의 큰 다리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은 상당히 멋지다. 노을이 지면서 붉어진 부분과 아직 파란 부분으로 나뉜 하늘도 훤히 보인다.

 “하늘 한번 참 예쁘네.”

 후우, 힘들다. 연휴가 너무 힘들었어. 제대로 쉬지도 못한 것 같다. 아니, 제대로 쉬지 못한 거 맞나?

 개천 옆, 외곽도로에 연휴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량들이 많다. 다리 아래에 개천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연휴가 끝난 아쉬움이 있어 보인다.

 “여보세요?”

 휴대전화 벨소리에 무심코 전화를 받아보니 전화를 건건 엄마였다.

 “아, 네. 다음 주 주말이요? 벌써 두 달도 더 됐네요. 일이 많으면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아요. 네, 네. 기다릴 게요.”

 다음 주 주말, 이번에 오는 주말에 시간이 나서 부모님이 서울에 오신다고 한다. 한동안 일이 많아 두 달 반 만에 오시는 거다. 2월 말에 오셨으니 입학 이후로 처음 보는 거다. 난 두 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부모님은 어떨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리 난간에 기대 팔을 난간에 올리며, 보는 사람은 없지만 한껏 멋을 부리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상태로 나는 노을빛으로 평소보다 훨씬 어여뻐진 하늘을 보며 말했다.

 “후 아, 연휴 끝이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39 에필로그 겨울날 1/21 360 0
38 35장 내가 놓지 않을 이 손 1/20 376 0
37 34장 나는 너를 정말로 깊이 좋아하니까 1/18 372 0
36 33장 그 이름을 가진 너를 사랑한단다 1/17 319 0
35 32장 이 문을 열기 위한 각오 1/16 338 0
34 31장 이토록 사랑스러운 그녀와 1/15 345 0
33 30장 설령 아무것도 모른채 살아야할지라도 1/14 338 0
32 29장 반전은 낙서처럼 1/13 357 0
31 28장 사랑받을 소녀 1/5 347 0
30 27장 이제 숨기지마 1/5 342 0
29 26장 때론 진실이라는 것도 12/25 334 0
28 25장 이 손가락에 맹세를 걸고 12/25 355 0
27 24장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12/19 354 0
26 23장 어쩌면 우리가 위험해질지라도 12/18 331 0
25 22장 소녀들 12/18 323 0
24 21장 진상 12/18 341 0
23 20장 망자의 귀환 12/17 330 0
22 19장 조금 특별한 프러퍼즈 12/17 364 0
21 18장 리 스타트 12/16 351 0
20 17장 햇빛 한줌 없이 12/16 343 0
19 16장 하이드 앤드 시크 12/14 329 0
18 15장 버리지마 12/14 321 0
17 15.0장 떠나지마 12/14 314 0
16 14장 기댈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의 안식처 12/13 328 0
15 13장 작은 이들의 파라다이스 12/11 347 0
14 12장 소녀의 이야기 12/10 334 0
13 11.5장 계약, 12.0장 그녀들의 이야기 12/9 342 0
12 11장 어여쁜 소녀들 12/9 356 0
11 10장 여자아이 12/8 346 0
10 9.0장 X의 소녀, 9장 아침 12/8 314 0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