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환영은 처음인걸.”
가연이 내 질문에 내가 원한 대답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생각 많이 했나봐. 즉흥적으로 떠오른 문장은 아닌 것 같고. 게다가 분명 혼자 있어야 할 어두운 집안에서 인기척을 느끼면 그렇게 침착한 반응은 나오기 힘든데.”
“보통사람들은 그렇지. 두 달 반 정도 이 일 저 일 경험하다보면 좀 정신이 차분해지는 모양이야.”
“일단 불부터 켤까? 어두운 데서 이런 이야기 하는 거, 별로잖아? 너도 슬슬 뒤돌아봐주고.”
그 뒤 스위치 소리가 들리더니 방안이 환해졌다. 뒤를 돌아보자, 긴 생머리에서 짧은 단발머리가 된 가연이 서있었다. 역시 목요일에 본건, 가연이 맞던 건가? 헌데, 이상하게도 몸을 돌리는 데 왼쪽 팔이 욱신거리며 아팠다. 잠자는 자세불량은 아닌 것 같은데. 살짝 어지러운 듯한 느낌도 있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신경 쓸 수 없다. 아마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란 몸에 부담이 온 것일 거다.
“그건 그렇고, 네 부모님도 참 나쁘다. 어린 자식을 혼자 살게 하니까, 얘 같은 맛이 없잖아.”
“얘 같은 맛없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리고 이건 내 부모 탓이 보단 네 탓이 더 큰 것 같은데? 죽은 척 하면서 까지 제 아버지를 도우려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아버지?”
“도경에게 들었어. 내 아버지가 현준에게 했었다는 제안 말이야.”
“설마 순진하게 그 녀석이 하는 말을 다 믿은 거야?”
“죽었던 사람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 이상 못 믿을 말이 또 어디 있단 거야?”
“그 녀석이 도대체 뭐라고 했는데?”
나는 연휴 때, 도경에게 들었던 가연과 세정의 이야기를 간략히 가연에게 전했다.
“음, 그걸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면 상당히 충격이려나? 이봐, 내가 죽은 뒤에 전학 간 학생이 꽤 많았지?”
“그거야 그랬지.”
“너 정말로 이 도경이 전학 간 거라고 생각해?”
“잠깐. 그럼, 설마?”
“짐작했냐? 나는 이렇게 살아있어. 하지만, 시체는 존재했지. 삼학년 교실에서지만.”
“역시나, 그럼.”
“맞아.”
가연은 확실히 못 박 듯이 나에게 말했다.
“도경은 확실하게 죽었어. 그 시체는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거든.”
“일부러 삼학년 교실에서 발견되게 한 거군. 발견자는 죽은 사람이란 걸 안 순간 시신에서 떨어질 뻔하고 신고 받고 온 대원들은 학년이니 이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을 테고. 그런데 목을 매 자살한 것처럼 보였다면, 교살일 텐데. 누가 죽인 거야?”
“글쎄다? 누굴 것 같아?”
“분명 죽은 사람은 도경이지만, 네가 죽었다고 교사들조차 인정했어. 물론 사망신고는 도경으로 되었겠지만, 교내에서 그 정도 힘을 쓸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있겠지? 죽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겠지만.”
“왜 그런 예상을?”
“도경을 죽인 살인자는 국어교사겠지? 그리고 아마 그걸 사주한 사람은 교장본인이거나, 교장을 거친 세정의 부모.”
“오호라. 하지만, 교장의 지시나, 돈 많은 사람의 매수라고 해도 교사인 사람이 학생을 죽이기까지 할까?”
“국어교사의 경우, 지금까지 많은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소문과 증언이 있어. 피해자도 많고, 증인도 많은데, 왜 경찰 쪽으로 가거나, 적당한 처벌이 없었을까. 아마.”
“그 사람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혹은 지금까지 한 짓을 눈감아주고 다른 학교로 보내서 문제없이 교사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 다만 거부할 경우 다신 교직에 복귀할 수 없음은 물론, 미성년자 추행이란 죄목으로 감방에 넣어주겠다. 뭐, 죄를 지었다면 처벌을 받아야 맞긴 하지만.”
“역시 꽤 많이 알고 있네. 그럼 교장이 도경을 죽이라고 지시한 이유는?”
“교장 본인의 의사라기보다, 세정의 부모가 교장을 매수 했을 확률이 높다고 봐. 세정부모는 교장에게 도경을 죽여 달라고 의뢰했고 교장이 그걸 국어 교사에게 한 거지. 여기까지는 맞지 않나?”
거기까지 말하는 데 어지러움이 더 심해졌다. 이젠 몸에 힘도 잘들어가지 않는 다. 느낌 안 좋다. 왜 이러는 거지.
“맞았어. 그런데 아직 빈칸도, 남은 조각도 많잖아. 도경이 살해당한 거라면 저항한 흔적이 시체나 주변에 있어야지 않나? 아무리 성인남자라도 아주 어린애도 아니고, 이 정도 성장한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는 건, 아무래도 흔적이나 자국이 남지 않겠어.”
“당연히 흔적이 남지. 교살당한 시신에는 보통 줄을 풀기 위해 자신의 목을 잔뜩 긁지. 그래서 목에 세로의 상처가 남고 손톱에도 피부조각이 남아. 그런 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 마취제 같은 걸로 정신을 어느 정도...”
그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 정신을 덮쳤다.
“그렇구나. 이제야 눈치 채고 나도 참 어리석네.”
아까 왼 쪽 팔이 욱신거린 건, 주사한 직후여서 그런 거였다. 팔이 가는 편인 나는 빛만 비추면 어두운 방에서도 혈관이 비쳐 보인다. 나는 흐려져 가는 시야로 겨우 가연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같은 약인 거냐?”
“응, 삼촌이 국어 선생한테도 같은 약을 줬으니까.”
‘삼촌?’
결국 서있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그래, 그렇군. 어쩐지 둘이 닮았다, 했더니. 설마가 설마였나?”
“넌 감이 뛰어난 놈이야. 본인의 감을 좀 더 믿어보지 그래? 설마하면 사실이라고.”
“설마 살인자 경찰과 T사 임원이 친형제 일거라는 예상을 누가 하겠어. 동급생 둘이 사실 사촌 지간이라는 것도.”
“왜? 재밌지 않아?”
아니, 전혀, 라고 생각한 나는 남은 온갖 정신을 쥐어 짜내 가연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에 동참 한 거지?”
“동참 한 게 아니야. 삼촌에게 도경이를 죽여 달라고 한 건, 나야.”
정신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더 이상 말을 하는 것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이제 곧 신경과 의식이 완전히 차단 될 것이다.
“왜냐고 묻고 싶지.”
갑자기 위화감이 든다. 시신경의 기능이 완전히 끝나기 직전, 가연이 몸을 숙여 쭈그려 앉은 채,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안구에 비춰졌다.
남은 기력을 모아 마지막 한 마디를 던졌다.
“도대체, 왜?”
가연을 두 손으로 엎드려있는 내 양 뺨을 만지며 대답했다.
“오로지 너 때문이야. 그런 녀석한테 너를 넘기기 싫었거든. 나도, 세정이도.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우리는, 무언가가 필요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순간, 정신이 완전히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