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정이 나에게 매달려 울고 있다. 열 한 시 십오 분, 우린 개천 다리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세정을 찾았다. 정말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만약 정오까지 내게 연락이 없으면 나도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웬만한 건물 육 칠 층 높이인 이곳에서 뛰어내리려 한 것이다. 심지어 아래는 차들이 다니는 도로이니 그녀가 얼마나 확실히 목숨을 끊으려 하였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계속 울면서 ‘미안하다고’ 만하고 있다.
“도경이가 죽었단 걸 알면 네가 누구보다 슬퍼할 탠데, 알면서도 그 애를 죽게 만들었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이미 여러 사람에 죽음에 관여해 버렸어.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너무 많이 들고.”
변명 같은 그녀의 말이 듣기 싫지 않다. 살아있는 그녀를 그저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그만 돌아가자.”
옆에 있던 현준이 말했다. 나는 옆에서 그녀가 진정되기를 함께 기다려준 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세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정리는 그 이후에 해도 되니까 말이야.”
계속 그녀를 이런 곳에 둘 수는 없었다. 다시 집으로 향하며, 옆에서 걷는 세정의 옆얼굴을 보았다. 눈물을 흘린 흔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여느 평범한 10대 소녀의 얼굴이다.
집에 도착하자 환하게 웃는 가연이 우리를 반겼다. 아까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세정은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가연에게 가 그녀에게 안겼다. 세정은 말한다. 자기들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고. 혹시 내가 뭘 했는지 아는 건가? 내가 한 것처럼, 세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연도 눈물을 흘렸다. 끊임없이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고통스러워했다.
그제 서야 우리도 대강 알게 됐다. 가연도 고통을 받았다. 우리는 계속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들은 각자 사정이 이었을 거다. 이젠 직접 알 수 없겠지만 도경도 무언가 사정이 이었을 거다.
“미안.”
한참을 울던 가연이 고개를 숙이고 우릴 쳐다보지도 못한채 말했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한 마디에 현준이 말했다.
“사과 같은 건 필요 없어. 솔직히 우리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현준이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끊고 승우를 쳐다보았다. 현준의 시선을 받은 승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준의 말을 이었다.
“너희가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갖는게 아니야.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다시 예전처럼, 아니, 예전 이상으로 서로 가까이 친하게 지내는 거. 우리가 원하는 건 그거야.”
그에 이어 다시 현준이 말했다.
“우리랑 함께하면서 너희가 해온 일들의 잘못을 하나씩 만회해 나가자.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가 앞으로의 삶을 행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거야. 그저 ‘도구'가 아니라.”
현준과 승우의 말에 가연이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마찬가지로 눈물로 얼룩진 세정도 한 번 본 뒤에 내가 말했다.
“너희는 분명 살인에 관여 됐고 그건 용서받을 수 없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우린 용서하고 싶어. 이 시험의 후보자였던 사람들로써.”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이만 하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말 한 마디 정도는 더 해주고 싶다.
“그냥, 아주 평범하게 만나면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헤어질 때면 내일 보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이들로 살아가자.”
내 말이 끝나자 가연은 미소지어 보이며,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 말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젠 외로운 건 싫어. 그러니까 너희를 아주 못 살게 굴 거니까, 각오들하라고.”
그녀의 웃음에서 억지로 웃는 듯한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우린 진심으로 그녀들이 새 삶을 찾길 원했다. 비록 이 일의 배후에 있는 그 사람을 만나 담판을 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그녀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우리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좀 더 평범한 ‘소녀’들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