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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작가 : 레슨
작품등록일 : 2017.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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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어쩌면 우리가 위험해질지라도
작성일 : 17-12-18     조회 : 331     추천 : 0     분량 : 1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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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 텅 비니까 조용하고 좋다.”

 손에 부채를 들고 창가에 앉아 밖을 보고 있던 세정이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학교는 지금 텅빈 상태이다. 무언가 일이 있냐고 묻는다면 맞긴 하다. 학생들이 전부 수학여행을 가서 학교가 비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십중팔구 참가했지만, 일부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도 어느정도 있다. 우리는 약간 당연하게도 후자의 경우다. 가연이 돌아온 그날로부터 겨우 2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사망신고는 되지 않았겠지만 죽은 사람이 된 가연은 당연하고, 세정 역시 어느 정도는 예전의 모습이라고 해도 확실히 아직 그 일의 여파에서 제대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뭐, 세정만 따로 두기 힘들어서 나도 가지 않겠다고 하자 현준과 승우 역시 함께 남았다. 우리가 가지 않을 걸, 그녀들은 자신들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상당히 미안해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우린 그녀들에게 확실히 말해두었다. 우린 그녀들 때문에 ‘못’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들과 함께 있고 싶어, 가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불참학생들은 출석을 위해 학교에 나와야 하지만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많은 교사들이 연수를 가기도 해서 우리는 지정된 교실에서 슬쩍 나와 빈 교실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솔직히 어딘가 가야할 곳이 있다던가, 그런건 아니다. 그저 갑갑한게 싫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거다. 지금 우리가 있는 교실은 2학년 2반 교실이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이 교실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반에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어쩌다 눈에 띈 건지, 세정이 이 교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운 좋게도 교실의 문은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가연이도 이리로 온다고 했고, 교실도 알려 줬으니까, 금방 올거야.”

 교문에 있는 교내 경비원은 몇 주 전 자살한 학생의 얼굴을 모른다. 가연이 당당히 교문을 통과해도 문제는 없다. 설령 전학 왔던 학생으로 기억하고 다른 이에게 말할 가능성도 낮다. 이미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잘랐고, 내가 우연히 봤을 때처럼 적당히 모자만 써준다면, 문제없다. 물론 일학년 교사들은 피하는 게 좋겠지만. 생각해보니, 아직 그녀가 자살을 위장했던 이유는 듣지 못했다. 그것도 ‘시험’의 일환인가? 그녀는 출제자라고 볼 순 없지만, 일종의 감독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냥 우리 주변에 있는게 관리라던가 관찰은 훨씬 편했을 거다. 그날 이후 그녀의 삼촌이란 사람과 그 일을 어떻게 정리했는지는 모른다. 일부러 묻지 않기도 했지만, 그녀가 최대한 알아서 처리했다고 묻지 않아는데도 말해서, 일단 신경쓰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지?”

 “7일. 오늘이 6월 7일, 수요일이니까, 7,8,9일동안은 이렇게 학교가 비어있는 상태겠지.”

 세정의 물음에 현준이 대답하자, 갑자기 승우가 말했다.

 “그런데, 그 애말이야. 출석은 어떡해?”

 그 애라면 가연을 말하는 거다. 그날 이후로 승우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철 든 모습을 보여준다. 사망신고가 되지않아 정식으로 죽은 사람이 아니란걸 알고 묻는 듯하다. 꽤나 걱정한 모양이군. 아무래도 이 녀석은 그녀를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글쎄다. 이제 그 삼촌도 처리해주진 않을 탠데.”

 “아, 그 애 출석은 2학기에 다른 이름으로 전학 온 학생인척 해준데. 호적은 아마 정식으로 자기 양녀로 넣겠지만.”

 “외모는?”

 “적당히 화장으로 닮은 사람인 척 하겠지.”

 “1학기에 전학온 학생은 자살하고, 2학기에 같은 학년으로 닮은 사람이 전학 온다니, 게다가 성도 같잖아. 학생들에겐 공포의 학교가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그거야 그때가서 적당히 말 좀 맞추면 되겠지. 솔직히, 나는 그 애가 이 교실에 오면서 감시카메라에 찍힐 게 더 겁나.”

 ‘모자가 있으니 문제없어.’라고 말하려고 입을 연 순간, 복도를 보고 있던 승우가 ‘어?’하는 소리를 냈다.

 복도로 눈을 돌리자, 그 곳에는, 이 교실 안의 우리를 쳐다보고있는 지 윤이 서있었다. 옆에는 그녀의 여동생인 지연이라는 아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복도로 시선을 돌린 세정은 지 윤을 보자,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가족들이 죽은 데 자신이 연관되어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 모두 그들의 죽음의 배후를 알고 있어, 현준도 세정도 승우도 모두,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을 보고 완전히 얼어버렸다.

 “네가,”

 우리 중 가장 먼저 입을 연건, 현준이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거냐?”

 목소리에 떨림은 없었다. 확실히 현준은 제 3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 때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죄책감에 시달릴 정도니, 이제 와서 관련 없다고 할 만큼 뻔뻔 하진 않다.

 “내가 불렀어.”

 내말에 셋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다들 표정에 왜라는 단어가 올라와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왜 부른 거냐? 이제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승우에 물음에 나는 어젯밤에 온 한 통의 전화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최 가연이 부탁해었어. 저 애를 이 학교로 불러 달라고.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그 아가씨한테 뭔가 생각이 있겠지.’라고 하려고?”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현준은, 나를 너무 잘안다. 내가 혼자 지 윤을 불러낼 만큼 용기 있지 못하다는 것도 알것이다. 아마 지 윤을 본 순간 생각했겠지.

 “가연이가 저 애를 불렀다는 건, 혹시, 저 애한태 이 일에 대해 말하려는 거 아니야?”

 세정이 우리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 윤은 그저 계속 복도에 서있었다. 저대로 두기도 힘들다. 어찌해야 할지 상당히 애매하다. 불러낸 사람도 가연이니, 그녀가 오면 알아서 하지 않을 까.

 “그건 그렇고, 혹시 그 녀석이 구체적인 장소까지 이 교실로 정한 거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우연인건가?”

 현준이 복도를 향해 물었다. 그의 질문에 지 윤은 대답하지 못한 체, 그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일단은 들어와라. 그 녀석은 없지만 그렇게 계속있기도 애매한데.”

 현준이 한손으로 근처에 있는 책상에서 의자를 빼며 말했다. 한손으로 빼다보니 살짝 거칠어 져서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의외로 이 녀석 까칠하단 말이지.’

 지 윤은 겁먹은 듯한 여동생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와, 동생을 그 의자에 앉게 했다.

 “그런데 어떻게 가연이가 너에게 연락한거야?”

 세정이 나도 묻고 싶던 걸, 지 윤에게 대신 물었다. 둘 사이에 접점이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세정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세정만이 머쩍은 표정으로 우릴 한 번 볼 뿐이었다.

 지 윤에겐 뭔가 해줄 말도 없고, 우리끼리 따로 할 말도 없어, 조용히 침묵한 흐른 채 십 여 분이 지났다. 가연이 나타난 건, 지 윤이 오고 이 십분이 다 되었을 때다.

 “이거 좀 늦은 것 같네.”

 내가 그녀를 우연히 보았을 때와 같은 모자를 쓰고 온 가연은 멎쩍게 웃어 보인다.

 “이봐, 이 녀석을 여기로 부른 이유는 또 뭐야.”

 “응? 이유 같은 거 딱히 없는데 그냥 우리 학굔 비니까 그냥 부른 거야.”

 가연 역시 의자를 빼며 말한다. 왼 손잡이인 그녀는, 왼 손잡이지만 양손을 다쓰는 현준과 다르게 거의 모든 일을 왼 손으로 한다. 왼 손잡이임에도 팔찌를 왼 손목에 해서 불편하지 않을 까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니까 너랑 이름이 되게 비슷하네.”

 의자에 앉은 가연이 나를 처다보며 말한다.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와 나 사이에 있는 사람 중 나와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한 사람 떠올랐다.

 “권 하현?”

 권 하현, 권 하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남매인가, 싶을 만큼 비슷한 이름이다.

 “응, 걔 맞아.”

 “근데, 왜?”

 갑자기 여기서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 이유가 뭘까. 가연이 약간 뜸금없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단 한번도 터무니없거나 의미 없는 경우는 없었다. 그때서야, 하현도 그 후보 중 하나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이제야 알았다. 그녀가 지 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확실하게 말하려는 거다. 이번 일들을. 아마 제대로 끝내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 이야기가 나올듯 한 감이 확실히 들어 왔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이야기는 진행되지 못 했다. 교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이 었다.

 “너희, 여기서 뭐하는 거니?”

 교실 밖에 서서 우릴 부른 건, 수학교사였다. 교사의 모습을 본 가연은 재빠르게 모자를 깊이 눌러, 얼굴을 가렸다.

 학교에 남은 학생들을 통솔하고 지도하는 건 수학교사였다. 우리가 없어진걸 알고 찾으러 다닌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거나, 교내를 둘러보다 우연히 본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마땅한 핑계 거릴 찾지 못 한 우린, 말없이 교실을 줄지어 나갈 뿐이었다. 지 윤도 적당히 우리와 함께 있다, 이따가 슬쩍 나가면 된다. 문제는 가연과 지 윤의 동생, 지연이다. 수학교사는 가연의 얼굴을 어느 정도 기억할 거다. 수학교사는 지금 문 옆에 서있다. 밖으로 나가려면 그녀의 앞을 지나야 한다. 지연은 어느 정도 핑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가연은 그럴 수 없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는데, 핑계고 이유를 댈 수 있을 까?

 나는 가연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웃어보인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을까? 나도 밖으로 나오고, 이윽고 가연이 수학교사의 앞을 지났다. 모자를 쓴 가연의 모습을 그녀는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가연의 모자를 벗겼다. 그러고는 가연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얼굴을 보니 상당히 놀란 기색이다. 하지만, 곧 침착해지더니 그녀는 가연에게 말했다.

 “정말, 죽은 게 아니구나. 그럼 혹시 그날 국어선생님이, 정말.”

 그녀는 뭘 알고있는 듯 했다. 수학교사의 말에 가연은 “조심하세요.”라고 경고를 했고 그녀는 가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전부 교실 밖으로 나와 원래 있던 교실로 곧장 가지 않고, 수학교사의 눈을 피해 살짝 옆쪽 계단으로 빠져나왔다. 그 이유인 즉슨 가연이 우리에게만 들리게 한 한마디 때문이다.

 “국어교사를 교도소에 쳐넣자.”

 현준이 층계참에 털썩 앉더니 가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국어선생을 교도소에 넣자니, 그럼 너희도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어차피 우린 실질적으로 아무도 안 죽였어. 그리고 국어교사는삼촌과의 약속때문에 구속되서 취조를 받아도 우리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말 안할거고.”

 “어떤 약속이길레?”

 “삼촌은 만일 그가 체포 되도, 변호사 선임은 물론 경찰 안쪽에도 어느정도 손을 써줄 거라고 약속했어. 그 정도는 해줘야, 사람을 죽이지.”

 “어차피 돈많은 인간은 경찰 쪽과 관계가 없을 리가 없고, 하긴 몇년 쉬다 나오면 교직 복귀는 힘들어도, 어디 먹고 살만한 쪽으로 빼주는 것 정도는 가능 하겠지.”

 “그 대신, 국어교사는 사건에 대해 진술 할때 우리 쪽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 않기로 했어. 모두 단독 범행으로 하기로 했지.”

 그때 한 가지 놓치고 있던게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만약 경찰들이 학교교사들이나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하고 다니면? 교사들 입막음은 된다고 해도, 학생들이 전학와서 학교에서 자살한 학생에 대해 말하면? 실제로 죽은 건 네가 아니지만, 학생들은 너라고 생각 할텐데.”

 불과 얼마전까지 내가 그런 것처럼.

 “하긴, 학생들이라면 뭐든 연관지어 생각할테니까.”

 “일단 삼촌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체포당한 그는 모든 사실은 인정하고 사건의 경위를 진술할 거야. 모두 단독범죄로 말이지. 김 진형은 자살로 완전히 처리 되었지만, 그의 동기는 김진형의 자살로 충격을 받고,”

 가연이 거기에서 말을 멈추고 눈길을 이제까지와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지윤 자매가 있다. 지윤은 동생을 끌어 안은채 말 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연의 말은 도중에 끊어졌지만 우린 다음 말을 예상할 수있다. 아마.

 “충격을 받은채 결국 모르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리고 그게 불행히도 두 딸을 두고 있으며, 몇 년전에는 화제로 아들을 잃은 부모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세정이 말했다. 세정의 말을 들은 지윤은 벌떡 일어서더니 동생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려했다.

 “그렇군. 원래는 부모를 죽이려고 불을 질렀으나 운 나쁘게 아들만 죽었단 거군.”

 현준이 지윤의 반응 따윈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투로 말했다. 그때 가연이 계단을 내려가는 지윤에게 말했다.

 “그냥 가면 어떠잖거지? 네 가족의 원수잖아? 적어도 복수심정도는 있을 탠데.”

 지윤은 계단아래에서 우리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난 더 이상 이 따위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

 살해당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예전과 다르게 지윤의 눈은 말라있었다. 아마 동생을 자신이 지켜야한다는 책임감게 저도 모르게 의지가 강해진 것이 아닐까?

 가연이 지윤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와 함께 국어교사를 처벌하자. 가연은 국어교사를 처벌함으로써 자신은 더 이상 그 쪽애 관계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을 하려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 중에도 국어교사를 처벌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있어?”

 아무도 반응이 없었다. 나도, 현준도, 승우도, 모두 찬성했다.

 “그럼 여기에 한 명이 더 필요해. 너말이야.”

 가연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까 내가 권 하현 얘기한 거 기억하지? 그 녀석도 추가 시키자.”

 국어교사의 성추행 사건의 실제 피해자인 그녀라면, 그를 체포시키는 데 도움이 될거다.

 “단순히 경찰에 신고해서는 안돼. 증거를 모으고, 상황을 만들어서 경찰에 넘겨야해.”

 “그를 유인하자는 건가?”

 “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자세한 이야긴 장소를 옮겨서, 어딘지 알지?”

 가연이 나를 쳐다보며 씩 웃는 다.

 “이봐, 넌 어떨지 몰라도 우린 이대로 가면 무단으로 결석하는 샘이라고.”

 “몇 시까지 있어야 하는데?”

 “세 시.”

 내 말에 그녀가 ‘쳇’하고 혀를 찬다. 그녀 입장에선 이 학교는 혼자 있기엔 상당히 위험한 곳에 속한다. 일단 처신을 잘하는 게 좋겠지.

 그때, 세정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별말없이 있던 승우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할래?”

 

 잠시 뒤인 열 한시 반 쯤, 우린 예정보다 몇 시간이나, 일찍 학교를 나왔다. 승우가 제안 한 방법은 간단했다.

 “어차피, 아까 그 선생도 우리가 없어진 걸 알고 온 건 아니었잖아. 그냥 원래 교실에 가서 얼굴만 살짝 보여주고, 나오자.”

 “교문에 수위는?”

 “담을 넘으면 되지, 뭐.”

 “감시카메라는 어쩌고.”

 여기선 가연이 대답했다.

 “이 학교에 있는 카메라, 전부 가짜야. 만약에라도 진짜였으면 내가 죽었을 때 확인해서 진즉에 진상이 밝혀 졌겠지. 삼촌이 국어교사한테 알려준 거니까, 아마 정확할 거야.”

 “그럼 그냥 다 무시하고 나가자고?”

 해서, 진짜 그냥 나왔다.

 

 생각보다 간단히 학교를 나온 우린 조금 더 계획에 현실적인 내용을 추가 하기로 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일들이 법에 어긋나는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진짜 사람을 벌하는 건 쉽지 않을 거야.”

 여기까지가 내 의견이다. 그러자 현준이 말했다.

 “애당초, 넌 죽은 사람이야. 진짜 사망 신고는 하지 않아도,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네 삼촌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니까.”

 “물론 삼촌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을 만큼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맞아. 하지만, 일이 끝난 지금은 국어교사는 삼촌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

 “그 사람이 체포되면 당연히 본인도 곤란하게 될 테니 도움을 주지 않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아까 말했잖아. 국어교사는 잡혀도 우리는 관련 없다고 진술할 거라고.”

 “몇 년뒤 그가 나왔을 때, 그 사람이 다시 사회로 복귀하게 해준다는 네 삼촌의 약속은 아직 유효해?”

 현준의 물음에, 이번엔 놀라운 말이 되돌아왔다.

 “안하지만 국어교사도 의외에 독종이야. 오히려 처벌같은거, 생각도 안하고 덤벼 올 수도 있어. 차라리 논리같은 거,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나가는게 어쩌면 답이 될 수 도 있어.”

 그렇게 말한건 세정이었다. 우리가 보아온 국어교사의 모습도 사실, 그녀의 말과 큰 차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입을 열었다.

 “사주당한 사람부터 노리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머리를 치면 안돼?”

 내 말에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한거다.

 “우리, 아버지를 치자고?”

 세정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애당초 왜 국어교사를 벌해야 하지?”

 내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살인자다. 분명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우리에겐 그를 벌할 권리나 자격조차없다. 그 인간 이하의 사람보다 살아간 시간조차 훨씬 짧다.

 “나는 그런 선생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솔직히 만난 적도 없는 네 삼촌도, 나는 관심없고.”

 “그럼 왜 굳이 국어교사를 건너뛰고 그 사람을 먼저 치자는 말을 한거야?”

 “하자고 하지 않았어. 너희에게 그렇게 하라고 제안했지. 그리고 왜냐고 물으면 네가 돌아온 날, 나에게 했던 말이면 대답이 될 것 같은데.”

 “무슨 말?”

 가연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묻고, 현준과 세정도 곁눈질을 하며, 나를 바라본다.

 “‘왜 도경을 죽였냐’는 내 물음에 너는.”

 “아, 생각 났어. 너 때문이라고 했지. 기쁜 걸. 확실히 기억하고 있네.”

 “나도 같은 이유야. 네 삼촌을 치려는 이유.”

 내 말을 들은 승우가 조금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가연은 그런 승우따위 무시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두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가슴 앞에 둔다. 그런 가연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물론, 너 때문은 아니야.”

 그리고 세정을 향해 눈을 돌리며 말한다.

 “그 사람을 치려는 이유는 너 때문이야. 너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싶어.”

 우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내가 왜 이렇게 성격이 변했지. 삼 개월 전과 너무도 다르다. 비웃음을 사도 할 말없다.

 그런 내 생각대로 세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조롱이 아니었다.

 “왜 굳이 그런 생각을 한거야? 나한태 새로운 길이라니.”

 “저 녀석에게 들었어. 네 어머니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고 어떻게 네 아버지랑 만났는지.”

 예전에 가연이 곁에 누웠을 때 들려주었던 이야기. 그 이후의 이야기는 바로 얼마 전에야 이어 듣게 되었다. 그걸 듣고 서야, 그녀들, 세 명 모두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듣는 귀가 여럿있는 곳에서 해도 되나 싶어, 망설이고 있는 데, 세정이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 보았는 지, 나를 보지도 않으면서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그냥 말해.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그녀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일말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는 사창가에서 일했었다고, 들었어. 유독 외모도 뛰어나고 별다른 질병 같은 것도 없이 깨끗하던 그분은 여기저기 지목을 받아 다니기도 했다고 하고. 그러다 어느날 네 어머니는 평소처럼 지목을 받아 어떤 부유한 남자와 관계를 갖지. 그게 네 아버지고. 솔직히 그런 곳에서 그런 걸 할때 피임같은 걸하는 지 어떤지, 나는 전혀 몰라. 아마, 저 녀석도 그것까진 모르겠지. 어쨌든, 한 번인지 여러 번 만났는 지는, 우린 모르는 관계가 지나고 네 어머니는 임신을 했다는 걸 알게 돼. 그런 쪽 일에 몸 담근 여자라면 뱃속의 아이의 아버지를 찾는 다는 건 일반적으로는 힘들겠지만, 네 어머니 VIP전용 비슷한 거였으니까. 관계를 가진 사람이 네 아버지 밖에 없다면, 당연히 아이의 아버지는 그 사람이겠지. 임신 사실을 깨달은 네 어머니는 처음에는 너를 지우려고 했을 거야.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당시에 네 어머니에게 푹 빠져있던 네 아버지는 너를 낳게 하고 자신이 책임지려 했겠지. 실제로 네가 아주 어릴적까지는 문제 없었을 거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그 당시에도 이미, 미래가 유망한 젊은 이였고, 결혼식을 하지도 혼인신고를 하지도 않은 네 어머니와, 그런 사람과의 자식인 너를 마냥 가까이 둘 수는 없었겠지.”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돌리며 주위 반응을 살폈다. 맨 처음 문장때는 이 이야기를 모르는 현준과 승우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지만, 별다른 말없이, 내 말을 듣고 이었다.

 “주위 눈치를 신경 쓴 네 아버지는 네 어머니와 너를 제법 거리를 둔 채 어쩌다 한 번 보고 약간의 생활비를 주는 식이 전부 였지.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랬나, 네가 초등학생이 되던 해에, 결국 네 아버지는 네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어. 그럼에도 네 아버지가 네 어머니와의 관계를 함부로 끊을 수 없던 이유는, 네 어머니가 네 아버지의 약점을 강하게 잡고 있던 탓 이지. 그 약점이란건, 네 아버지가 그 위치까지 올라가는 데 수 많은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라는 거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니 젊은 나이에 부를 얻기 위해 여러 사람을 이미 희생시킨 상태였겠지. 결국 네 아버지는 네 어머니마저.”

 여기까지 말하고 이후를 이야기하는 건 꺼려졌다. 하지만 숨을 한 번 들이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마저 세상에서 지워 버렸겠지. 별다른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그분을 처리하는 건 쉬운 일이었겠지. 이미 수 많은 사람을 죽여본 사람이라면 다른 이의 손을 쓰지 않고도, 말이야. 하지만, 그런 네 아버지에게도 죽일 수 없는 사람이 한 사람있었어. 자신의 친딸인 너말이야.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자신의 어린 친딸을 죽이는 건 무리겠지. 그래서 너를 육 년간은 길렀던 거야. 그리고 네가 중학생으로 진급한 올해 너를 따로 독립시킨 거고. 마침 보호자를 잃은 조카와 함께.”

 여기까지가 가연에게 들은 이야기다. 나는 말을 끝내고 잠시 세정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뒤, 세정이 입을 열었다.

 “내 아빤, 사이코 살인자야. 누가 뭐래도 벌써 열 명도 넘게 죽인. 심지어 죽인 이유도 간단한 것도 많아. 정 지 윤 부모 있지? 그들을 죽인 이유는 학창시절 자신보다 유능했던 동창이라는 이유 때문이야. 어처구니 없을 만큼 단순하지? 나는 처음에는 몰랐는 데 최근에야 알았어.”

 “너는 왜 그런 사람에게 인정 받기 위해 우리와 시험에 참가했지?”

 현준이 그녀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차갑다.

 “내가 살아남을 방법을 그것뿐이니까. 가연이는 이미 그 사람의 ‘도구’로써 살아가고 있고, 정실 부인의 자식들도 점점 그 사람의 뜻대로 움직일 거야. 그럼 얼마 안가, 내 목도 달아날거고. 정식 자식들이 그 사람처럼되고, 시간이 지나 내 존재를 알게되면, 그땐 가연이의 보호로는 턱도 없어.”

 “그래서 그 제안을 한 거야. 네가 살아남을 다른 방법을 제시해줄게.”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 왔다.

 “그 사람을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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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에필로그 겨울날 1/21 360 0
38 35장 내가 놓지 않을 이 손 1/20 377 0
37 34장 나는 너를 정말로 깊이 좋아하니까 1/18 372 0
36 33장 그 이름을 가진 너를 사랑한단다 1/17 319 0
35 32장 이 문을 열기 위한 각오 1/16 338 0
34 31장 이토록 사랑스러운 그녀와 1/15 345 0
33 30장 설령 아무것도 모른채 살아야할지라도 1/14 338 0
32 29장 반전은 낙서처럼 1/13 357 0
31 28장 사랑받을 소녀 1/5 348 0
30 27장 이제 숨기지마 1/5 343 0
29 26장 때론 진실이라는 것도 12/25 334 0
28 25장 이 손가락에 맹세를 걸고 12/25 355 0
27 24장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12/19 354 0
26 23장 어쩌면 우리가 위험해질지라도 12/18 332 0
25 22장 소녀들 12/18 324 0
24 21장 진상 12/18 342 0
23 20장 망자의 귀환 12/17 331 0
22 19장 조금 특별한 프러퍼즈 12/17 365 0
21 18장 리 스타트 12/16 352 0
20 17장 햇빛 한줌 없이 12/16 345 0
19 16장 하이드 앤드 시크 12/14 330 0
18 15장 버리지마 12/14 322 0
17 15.0장 떠나지마 12/14 314 0
16 14장 기댈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의 안식처 12/13 328 0
15 13장 작은 이들의 파라다이스 12/11 347 0
14 12장 소녀의 이야기 12/10 334 0
13 11.5장 계약, 12.0장 그녀들의 이야기 12/9 342 0
12 11장 어여쁜 소녀들 12/9 356 0
11 10장 여자아이 12/8 346 0
10 9.0장 X의 소녀, 9장 아침 12/8 3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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