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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사악하지 않다.
작가 : 나흘째곰탕만
작품등록일 : 201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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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7     조회 : 288     추천 : 1     분량 : 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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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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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식 같은 청년이었다. 예고 없이 날아들어 하늘의 품속에 파묻히는 어둠은 몇 십년간의 외로움에 젖은 얼굴을 하곤 했다. 나른히 땅에 내려앉으려다가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웅성이는 소리에 마지못해 옅어지던 장막은, 사실은 자그마한 어리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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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지배하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져만 가고 있었다. 태양이 동산에서 움터 기지개라도 펼라치면 어느새 달은 울적한 얼굴을 내밀고 입술을 비죽이기 십상이었다. 물을 담뿍 바른 붓으로 칠한 수채화처럼 옅게 펴발라진 노란 초생달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태양을 추격하면, 이번에 울상을 짓는 쪽은 태양이었다.

 

  다시, 해가 진다.

 

  연보라와 짙은 주홍이 서서히 섞여 들어가는, 그 채도와 명도의 변화만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할 따름이다.

 

  지평선을 좌악 그은 위로 널찍하게 펼쳐지는 노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창가는, 마치 자연을 떼어내어 한 폭의 그림을 걸어놓은 것만 같았다.

 

  하늘에 매달린 천칭은 달에게서 해에게로 점차 기울어간다. 그 정직한 판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서울의 어느 아파트 402동 1604호의 문 앞에서는 사십 명은 넘을 법한 많은 사람들이 종이와 펜을 든 채 들뜬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네들 중에는 이른 추위에 손을 싹싹 비비는 이도 있고, 안절부절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이도 있고, 꾸준히 전화로 누군가에게 현재 상황을 중계하는 이도 있었다.

 

  주의에 주의를 기한다고 해도 사람이 모이면 소리가 나기 마련인지라 이 군중은 소음을 꽤 자아내었는데, 신기하게도 항의하는 주민이 한 사람도 없었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한 집권자의 권력 남용일까? 아니면 순종적인 주민들의 학습된 무기력일까? 그러나 이 둘 모두가 아니라면, 당신은 존경과 경외에서 우러나온 마음을 정답이라 칭할 수 있을지.

 

 “작가님께선 아직 안 나오시나?”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군고구마를 거칠게 베어 물었다.

 

 “초인종을 열 번도 넘게 눌렀으면 나올 법도 하신데.”

 

  사내는 초인종이 고장이라도 났나, 싶어 이번에는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도 더한 소음이 복도를 야금야금 갉아먹어들지만, 옆집도 옆옆집도 조용하기만 하다.

 

 “작가님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글을 많이 쓰시나?”

 

  중년의 여성이 소위 ‘작가님’에 대한 칭송을 시작했다.

 

 “완전 판타지고, 또 우리 전통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잖아! 나는 전통에 관한 주제의 책은 어려워서 딱 질색인데, 작가님께서는 쉽고 재미있게 술술 풀어나가신다니까~”

 

  추종자들의 찬양은 멈추지 않았다. 작가님은 이래서 좋아, 저래서 멋있어. 어지간한 종교의 경전 하나 뺨칠 듯 작가님에 대한 신앙을 좔좔 읊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었을 즈음, 집 안에 있던 작가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작가님’이라 불린, 머리칼을 쥐어뜯으려 하는 이 남자의 이름은 김유한으로, 최근 웬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을 정도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유한의 작가 인생은 내려올 줄 모르는 롤러코스터와도 같았다. 그저 재미로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별 생각 없이 웹사이트에 글을 업로드했더니, 본의 아니게 공모전에 당선되고 말았다. 상금도 넉넉히 받고, 웬 잡지사와 인터뷰도 하고, 특정 사이트와 연재 계약도 따내었다.

 

  웹소설 연재를 시작하기 무섭게 조회수가 만 명을 넘어섰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은 물론이다. 출판사 사장님은 당장 계약을 하자고 안달이셨다. 판판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더니 몇 십만 권이 팔려 2쇄를 찍잔다.

 

  그 사이에, 친구인 승빈의 손에서 유한의 소설이 웹툰으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더욱 역동적인 움직임, 화려한 배경, 생동감 있는 표정. 유한 자신이 보기에도 웹툰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해석되고 있었다.

 

  유한이 낸 책은 총 두 권이다. 하나는 <구미호 완전 정복 도감>이고, 다른 하나는 <구미호 완전 정복 도감>의 후속편 <천 년 묵은 구미호>이다. 이 두 권의 책 덕에 유한은 유명인사가 되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하며 유명세를 탔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지나갔다. 그동안 유한은 데뷔작 <구미호 완전 정복 도감>의 또다른 후속작품에 매진하고 있었다.

 

 “작가님, 이번 후속작은 어떤 이야기를 담으실 건가요?”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을 때, 저널리스트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유한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었다. 스마트폰은 유한의 숨소리 하나 마저도 잡으려는 듯 빨간 외눈을 빛내며 유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리 하나달린 여우부터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의 이야기를 담을 것입니다.”

 

  유한은 긴장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덤덤하게 자신이 할 일을 알렸을 뿐.

 

  약속한 대로 유한은 정말 아름다운 글을 써냈다. 장편소설이면서 복잡하지 않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읽을 수 있으면서 이해하기 쉬웠다. 액션신이 등장하되 대강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전투 장면이 어찌나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지 누구나 손에 땀을 쥐고 볼 정도였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면서도 인물의 특징이 겹치지 않았는데, 이는 인물설명을 자세하면서도 조리 있게 하는 유한의 문체가 한몫했다.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하나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역사적으로도 흔치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 베스트셀러 작가는 근심걱정에 싸여 있었다. 독자와의 약속대로 꼬리 하나 달린 일미호부터 아홉 개의 꼬리를 우아하게 흔드는 구미호까지, 이종족에 대한 지식을 책에 눌러 담으리라 생각했지만, 일은 말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평범한 여우인 일미호와 드디어 이종족에 발을 들인 이미호, 수련을 통해 꼬리를 얻기 시작한 삼미호의 이야기는 순탄히 써내려갔다. 다음으로 사미호의 차례가 되었을 때, 유한은 두뇌에 쥐가 나는 기분에 시달렸다.

 

  사미호는 어떤 수련을 거쳐 꼬리를 얻었고, 또 무슨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떠올리려 할수록 눈앞이 캄캄하다. 오리무중이다.

 

  예부터 온고지신이 최고라 하여서 유한은 자신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도 해보았다. 원목 책장으로 다가간 유한은 저자명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두 권의 책을 탐독했다. 단어도 음미해보고, 문장을 씹어도 보았지만, 남는 것은 입 안의 쌉쓰름한 뒷맛뿐이었다. 야속할 정도로 영감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바람이 등을 밀어주는 대로 달려왔다. 바람과 유한의 가는 길이 같았기에 유한은 아무런 어려움을 모르고, 사실은 다 제 덕인 줄 알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풍향계가 녹슨 쇳소리를 삐걱였을 때 유한은 알게 되었다. 이 언덕을 올라온 것은 어쩜 그냥 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바람이 뺨을 비스듬히 스쳐가는 지금, 유한은 그저 제자리만을 맴맴 돌고 있다.

 

  유한은 하루하루에 염증을 느꼈다. 둥그런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의 갑갑증을 뼈저리게 앓았다. 외출로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밀어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과거의 영광일 뿐.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팬들이 문 바로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관심이라는 세세한 그물코가 유한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자 아이디어는 더욱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한은 망연자실해 잠시 넋을 놓고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차가운 기운이 스물스물 머리통으로 흡수되었다. 머리가 이성으로 얼어버릴 즈음 유한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고지와 만년필을 옆으로 밀어놓은 유한은 대신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노트북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유한은 노트북 전원을 켰다. 윈도우 실행 도중 잠금 화면이 나타났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망설임 없이 춤을 추었다. 복잡한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바탕 화면이 나왔다.

 

  인터넷으로 직행한 유한은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유한에게 온 쪽지는 999통이 훌쩍 넘었고, 서로 이웃은 이미 꽉 차 더 이상 받지 못한다 공지를 띄웠는데도 신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들어간 유한은 이전에 작성중이던 여우와 구미호에 관한 글 대신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곧 글을 다 작성한 그는 글을 블로그에 게시했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유한의 서로 이웃들에게 새 글이 도착했다는 알림창이 떴다. 학원을 가던 재수생도,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도, 신문을 읽던 아저씨도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유한의 블로그를 보았다.

 

 ‘팬들이 몰려드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한이 작성한 질문의 제목이었다. 그 아래에는 유한이 처한 상황이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더불어 어떠한 방법을 써도 팬들이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니 글을 마감할 수조차 없고,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블로그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어찌 보면 타인에게 지혜를 빌리는 상황이요, 다르게 생각하면 자신의 인생을 남들의 손에 쥐어주는 꼴이다. 온갖 방법을 써도 안 되니 벼랑 끝에 내몰린 사냥감은 마지막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폭발적으로 증가한 조회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답변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중에 부디 도움이 되는 답변이 있기를 바라며 유한은 댓글의 내용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냥 나가지 마세요.]

 

  깔끔하되 몰이해로 점철된 답변이었다.

 

 ‘나가지 않으면 나 큰일 나. 필요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나는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고.’

 

  이건 탈락, 유한이 스크롤을 밑으로 내렸다.

 

 [그냥 나오세요! 사인만 해 주고 다른 곳으로 가시면 되잖아요!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거 아닌가요?!]

 

  공리주의를 원하되 희생양을 생각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더불어 답변자는 희생당할 인물이 다름 아닌 질문자인 유한임을 전혀 고려치 않았다.

 

 ‘무슨 사인만 해 주는 게 몇 시간이나 걸리는 지 알아? 최소 한 시간은 걸리고, 나가서도 기자며, 사람들이 다 따라온다고.’

 

  유한이 스크롤을 밑으로 또 내렸다.

 

 [꺄아악! 작가님! 빨리 나오세요!! 저 밖에 있는 팬이에요! 나와 주세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요!!!]

 

  기다렸다는 듯 달린 답변은 광분에 차있었다. 겨우 답변 하나가, 먹잇감의 등장에 눈을 번뜩이는 포식자처럼 보이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아, 제대로 된 댓글이 하나도 없네….’

 

  더 볼 것도 없었다. 유한은 그대로 인터넷 창을 끄고 노트북을 닫았다. 간만에 밖에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추락한 실망감이 오장육부를 내리눌렀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들어갔다. 출판사의 원고 독촉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데, 정작 유한의 만년필촉은 잉크 구경한지가 오래였다. 잉크가 말라붙은 만년필촉은, 아무렴 오아시스 없는 사막처럼 바짝 타들어가는 이 마음만 할까.

 

  물론 작가 내공이 얼마인데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야 쓰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단지 그 내용이 공허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구실이 전혀 없어서 문제이지.

 

  마음 한 구석이 뭉텅이채로 빠져나간 듯 허했다. 펜을 잡아보아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띠링, 메시지 도착 알림 음이 울렸다. 유한은 노트북 옆에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유연하게 잠금 화면을 풀었다. 장문의 메시지가 유한을 반기고 있었다. 발신인은 출판사였다.

 

 ‘…반 년 전쯤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셨습니까?…’

 

  앞뒤 다 잘라먹고, 가장 중요하고도 중심이 되는 내용은 벽에 잘못 꽂힌 못처럼 훤히 드러나 보였다. 굽어지고 휘어진 녹슨 못은 꽂히기도 강하게 꽂혀 빠지질 않아, 사람의 마음에 커다란 멍 자국을 남긴다. 사실 뽑고 나면 그저 철 덩어리일 뿐인 것을.

 

 ‘출판사는 재촉하는 말만 하고, 처리해주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차라리 재촉 좀 하지 말고 밖에 있는 팬들이나 돌려 보내주지.’

 

  속이 갑갑해진 유한은 손으로 명치를 턱턱 쳤다. 그 때 괜히 웹소설 공모전에 신청했었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제법 괜찮은 직장도 얻을 수 있을 스펙이었던 유한이지만, 공모전에 합격한 뒤로는 괜히 해이해져 직장 면접도 그만두었다.

 

 ‘유명세를 타지 말고, 공무원이나 돼서 평범하게 다닐 걸.’

 

  유명함이 손에 쥐어주는 돈보다 머리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유한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과거의 자신을 원망어린 시선으로 회상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관심 있던 여우와 이종족에 관한 글을 쓰던 때. 공모전이랍시고 무작정 도전해보던 때. 당선자 시상식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환을 받았을 때. 후속작을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밤낮 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있을 때. 웹툰을 그려주겠다는 친구에게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할 때….

 

  친구, 그래 친구였다. 유한을 이런 우울한 심정에서 건져내어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 세상과의 소통창구. 마음을 돌로 빻는 듯한 괴로움 속에서, 어느 옛날이야기의 오누이처럼, 친구라는 이름의 동앗줄만을 잡고, 유한은 필사적으로 버텨온 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유한은 당장 스마트폰을 들어 승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 신호가 몇 번 들리고 나서, 상대가 딸깍,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여보세요,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한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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