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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사악하지 않다.
작가 : 나흘째곰탕만
작품등록일 : 201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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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7     조회 : 343     추천 : 1     분량 : 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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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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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을 타고 흐르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타지에 보낸 아들에 대한 걱정, 친구의 안부에 대한 궁금증,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누가 떠올려냈을까. 음성의 떨림을 잡아 전류로 흘려보내려는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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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너 지금 뭐하고 있냐?”

 

  유한의 질문에 승빈은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마치 콧노래를 부르듯, 날아갈 듯한 목소리였다.

 

 “나야 지금 네 글을 열심히 웹툰으로 바꿔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근데 웬일이야? 나에게 전화도 다 하고. 네가 이번에 쓰고 있는 책 완결할 때까진 아무에게도 연락도 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유한의 친구, 승빈은 유한의 가장 친한 친구로, 두 사람은 서울의 꽤 알아주는 대학교의 국문학과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서로가 서로와 잘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1학년 1학기 종강 전에 벌써 끈끈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승빈의 직업은 웹툰 작가였다. 그는 유명 웹사이트에서 웹툰을 연재중이었다. 요일 랭킹에서 1위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승빈의 웹툰은 생각보다 독자들이 많았다. 유한은 승빈의 실력을 믿고, 무엇보다 그와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책을 웹툰으로 만들 작가로 승빈을 추천했다.

 

 “언제 그랬냐? 나 그리고 요즘 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어서 너에게 전화한 거거든. 괜히 오해하지 마라.”

 “에이, 내가 좋은데 숨기는 것 좀 봐~ 너 솔직히 친구 나밖에 없지? 그치?”

 “아, 아니거든. 너 말고도 다른 애들 많은데 그냥 너한테 전화해 본거거든.”

 

  유한이 퉁명스럽게 승빈의 말을 받아 넘겼다. 승빈은 아, 예, 그러시겠지요, 라며 낄낄 웃을 따름이다. 그 웃음이 괜히 민망해 유한의 두 뺨이 살짝 붉어진다.

 

 “야, 근데 그건 그렇고, 진짜 왜 전화한 건데? 나 지금 시간 많이 없어.”

 “왜?”

 “사실 네 글을 웹툰으로 열심히 만들어주고 있다는 건 뻥이었고, 나 지금 소개팅하고 있다? 얼굴은 그럭저럭 괜찮게 생겼고, 성격은 착해 보이는 것 같은데, 지금 지인이랑 전화한다고 나갔어. 그래서 돌아올 때까지 전화 끝내야 돼!”

 

  승빈은 자신이 만난 여성에 대해 아주 세세하게 소개했다. 얼굴은 어떠하며 성격은 또 어떤지, 첫인상과 현인상의 차이점부터, 당황하면 머리를 넘기는 버릇이 있으며, 여성의 보조개가 깊게 파여 있다는 사실까지 전부.

 

 “야, 나 밖에 나갈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줘.”

 

  승빈의 애절한 사연이 어쨌거나 말거나, 유한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말만 간단하고 간략하게 전달할 따름이었다.

 

 “아, 팬들 땜에~ 너, 팬들이 밖에 우글우글하게 몰려있으니까 지금 밖에 나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거지?”

 “응.”

 

  천리안이라도 지닌 것인지, 지금의 모습을 꿰뚫어보듯 승빈은 당연하게도 말한다. 수긍을 하긴 했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가 너무나도 의아하다.

 

 “근데 너 어떻게 알고 있냐? 나 너한테 말해준 적 없는데.”

 “앙~ 블로그에서 글 올라온 거 봤어! 완전 애절하게 썼던 걸? 너에게도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네~?”

 “…헛소리 그만하고, 내가 나갈 수 있는 방법이나 가르쳐줘.”

 

  소리에 실체가 있다면 유한의 목소리에는 손이나 베이지 않았을까. 싸늘한 응답에 승빈은 잠시 굳었다가도 곧 알았다며 넉살 좋게 웃어버린다.

 

 “음…. 변장하면 되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이 밖에 우글우글 몰려있는데. 문 열고 밖으로 나가면 어차피 팬들이 다 알아볼 걸?”

 

  유한은 기가 차다는 듯 허, 하는 소릴 내뱉었다. 폐포부터 교환되는 상실적인 감각이 그대로 허공에 전해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 여덟 시 정도 되면 사람이 몇 명 없을 거 아냐. 그러니까 그 때 모자 뒤집어쓰고 나와! 그리고 어디 호텔에 조금 묵으면 될 거 아니야! 그럼 해결되지?”

 “그러네.”

 

  잠시 동안 고개를 까딱이던 유한은 승빈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동안 이 생각을 못했는지 몰라도, 간단하면서 꽤나 괜찮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너. 소개팅, 그 사람이랑 내일도 할 거야?”

 

  유한이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뒤로 젖혔다. 비싼 값을 한다고, 의자는 유한의 등허리에 딱 들어맞는 굴곡을 그리며 우아하게 뒤로 넘어간다.

 

 “응? 지금 소개팅 하고 있는 여자? 아마도 내일은 데이트정도- 나는 솔직히 지금 여자가 마음에 들거든. 그래서 조금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

 “내일 그 사람이랑 만약에 데이트 한다고 하면, 데이트하는 장소 좀 알려줘.”

 “음…. 근데 우리 둘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는데 친구가 끼어들면 너는 좋겠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던 시간에 친구가 끼어든다, 라. 생각해 보니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유한은 내키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해야 했다. 지금 자신은 승빈에게 있어 방해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 우리 둘 사이에 끼고 싶으시다면, 내일 다른 여자가 있어야 해. 그래서 네 명이서 같이 다니는 거지. 그러면 나는 괜찮아. 그러면 이따 돌아오면 친한 친구 있냐고 물어봐야 되겠다!”

 “…그래서, 같이 갈 거지?”

 

  유한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의외로 넉살좋은 대답이 흔쾌하게 들려왔다.

 

 “응! 네 명이서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너도 솔직히 연애는 해야 하지 않겠어? 맨날 방에만 틀어박혀서 제대로 된 연애는 한 번도 못해보고. 그래서 장가는 갈 수…. 아, 저기 온다. 끊어!”

 

  제 할 말 다 한 승빈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기가 찬 유한은 여보세요, 하고 스마트폰에 대고 전화 상대를 불렀지만 기계음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친한 친구가, 그것도 하루 만난 소개팅 상대 때문에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리니 섭섭함이 익사 직전까지 차올랐다. 너울대는 허무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유한은 곧 정신을 차리고, 그래도 승빈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자신의 마음을 달래본다.

 

  유한은 승빈이 일러준 방법대로 하기 위해 일단 짐을 쌌다. 짐이라고 해봤자 조그마한 배낭가방 속에 생수 세 병, 라면 두 봉지, 휴대폰, 여분의 옷이 끝이었지만 유한은 나름 만족했다.

 

  마지막으로 유한은 옷장 문을 열었다. 한참이나 뒤진 결과, 조금 구겨졌지만 흠은 거의 없는, 깨끗한 양복을 구석기 시대 유물 발굴하듯 했다. 변장을 위해서였다.

 

  유한은 편한 복장을 선호했다. 어디서나 활동하기 좋은 옷을 입고 다녔다. 양복이란 것은 대학 시절 딱 한 번 입고 옷장에 처박아 둔지 오래였다. 그런 유한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팬들이기에, 설마 유한이 양복을 입고 밖에 나오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리라. 그 점을 파악한 유한이 허를 찌른 것이다.

 

  유한은 화이트 셔츠를 입고 단추를 하나하나 잠갔다. 그 뒤 양복바지로 갈아입고 재킷을 걸쳤다. 거울 속에 비친 유한은 영판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누가 봐도 뿌듯이 고개를 끄덕일 일이건만, 유한은 옷을 갈아입는 내내 불평불만을 토해내길 멈추지 않았다.

과하객 17-12-09 11:16
 
역시나 문장력이 발군이시네요. 구미호를 꼬리 순서로 배열한 스토리도 재미있고... 2인 공동창작이라시는데 것도 화제가 될 듯하고....  다음 회 뜨면 계속 보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문체가 예쁜 글을 찾은 듯싶은데 장현우님의 '너는 비가역'을 추천합니다. 최근에 올라온 글인데 일류 프로의 글이 아닌가 싶더군요.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와 장면 묘사가 소위 순수문학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의 글 냄새가 나요. 꼭 보아두시기를!
  ┖
나흘째곰탕만 17-12-09 23:53
 
앗 과하객 님이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
늘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러 보물같은 소설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비가역, 이번에도 기대하며 찾아가보겠습니다. 그럼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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