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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사악하지 않다.
작가 : 나흘째곰탕만
작품등록일 : 201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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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6     조회 : 290     추천 : 1     분량 : 5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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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데기가 나비가 되려면 괴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날개를 부들부들 떨며 껍질을 찢어내야 하지요. 그것이 불쌍하여 번데기를 가위로 잘라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 나비는 날지 못하고 비실비실 거리다가 이내 죽어버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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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래는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웃으며 연화를 바라보았다. 나래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밝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만나준다고 해서 정말 고마워, 연화야! 그렇지 않아도 그러겠다고 해 놓고선, 네가 만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거든. 다행이다!”

 “아아, 그랬구나. 그렇지 않아도 꼬리를 늘리려면 인간의 사랑을 얻어야 한데서 조금 힘들었거든. 근데 네 덕분에 해결됐네.”

 

  두 사람의 일치된 이해관계 속에서 분위기는 한결 더 화기애애해졌다. 봄 향기가 날릴 듯한 두 사람의 모습에 주변까지 화사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래의 스마트폰이 다시 한 번 울리자 그녀는 시선을 조금 숙여 내용을 확인했다. 액정 화면에서 시간을 확인한 나래는 눈동자를 한 바퀴 굴렸다.

 

 “그럼, 내일 세 시까지 너희 집 앞에서 만나면 되겠다. 내가 네 집 앞으로 갈게~”

 “알겠어. 근데 그 승빈이라는 사람이랑 만나기로 한 시각은 몇 시야?”

 “아, 세 시 삼십분까지 만나기로 했어! 근데 너 만나서 같이 갈 시간도 필요하니까 세 시에 만나자고 한 거야!”

 “그렇구나.”

 

  연화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래 나름의 계산법에 대한 약간의 놀라움과 동경심이 섞인 표정이었다.

 

  이후의 대화는 나래가 주도했다. 인간세계에 대한 설명과 주의할 점과 그간의 경험에서 나온 감상 등이 줄줄이 이어지면 나래는 동그랗게 뜬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래서….”

 

  진동벨 소리가 나래의 말을 칼같이 잘랐다. 나래는 말을 멈추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진동벨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화야, 나 주문한 음식 받아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연화는 진동벨을 가지고 자리를 뜨는 나래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다시 혼자가 된 시각, 연화의 마음에는 씁쓸함이 차올랐다.

 

  인간세계에 완벽히 적응한 나래는 연화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져있었다. 물론 나래의 성격은 그대로이지만 그렇다고 나래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연화는 나래의 성장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나래는 능숙하게 인간들을 대하고 거리낌 없이 인간세계를 활보했다.

 

  한층 성숙한 그녀에 비하면 연화 자신은 어떠한가. 사람들이 두렵다는 이유로 집안에 틀어박혀 번데기 흉내나 내고 있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친 나래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연화는 아무것도 발전한 것이 없는 자신에 내심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나래는 꼬리가 나보다 하나 더 있잖아. 남자친구도 먼저 사귀었고.’

 

  섭섭한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인간세계에서의 나래는 어째서인지 연화보다 한 발 먼저 나가 있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연화는 눈을 감고 자신의 감정선을 따라갔다. 그 끝에 묶여있는 어슴푸레한 물체가 어쩌면 질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연화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뒤돌아보면 늘 연화는 자신이 나래보다 더 뛰어나야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이 한 발 먼저 나서 나래를 이끌어주는 위치에 있어야지만 마음이 놓였다.

 

  감정의 근원을 찾아낸 연화는 얼굴을 신문지처럼 구겼다.

 

 ‘왜 이럴까?’

 

  아주 오래전부터 연화는 나래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챙겨주었다. 나래는 연화를 언니처럼 생각하고 따랐다. 그것이 너무나 익숙했던 연화는 나래가 자신을 챙겨주는 것이 너무도 낯설었다.

 

  지금 연화의 마음속을 떠도는 감정은, 그래, 익숙하지 않은 데서 나온 감정이었다.

 

 “짠, 음식 나왔습니다!”

 

  나래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물같이 청량하고 맑은 코코넛주스 두 잔이 한 눈에 봐도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막 요리한 듯 김이 솔솔 나는 핫케이크 위에는 십자 모양의 시럽이 보기 좋게 뿌려져있었다.

 

 “맛있겠다…!”

 

  속 아픈 생각도 잠시, 연화는 음식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나래는 연화의 말에 맞장구쳐주었다.

 

 “그치, 그치? 이 가게에서는 코코넛주스와 미니 핫케이크가 메인 요리라고! 다른 것도 먹어본 적 있는데, 전부 이것들만 못하더라!”

 

  나래가 연극조의 톤과 과장된 몸짓으로 분위기를 띄우자 연화는, 아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래가 오버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가게에 이것보다 맛있는 게 없다니, 허풍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뭐, 그만큼 맛있다는 이야기겠지.’

 

  목이 마른 것 보다 배가 고픈 마음이 더 강했기에 연화는 그릇 위에 있는 포크를 들었다. 포크로 핫케이크를 찍어 입에 넣자, 입 안에서 달짝지근한 맛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음, 맛있다!”

 

  연화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태어나서 이런 음식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먹어본 것이라곤 전통 한식, 더 나아가면 동양 음식이 전부였다. 그나마 단 것을 먹어본 경험이라곤 약과나 다과 등밖에 없었다. 그런 연화에게 핫케이크란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치? 맛있지?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네 입맛에 맞을 줄 알았다고!”

 

  탄성 섞인 반응에 신이 난 것은 오히려 나래였다. 연화가 좋아하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래는 연화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코코넛주스를 권했다.

 

 “이번엔 코코넛주스도 한 번 먹어보지 그래?”

 

  나래의 말에 연화가 이번엔 컵에 담겨있는 코코넛주스를 빨대로 쪽 빨아보았다. 입 안에서 달콤한 향이 퍼져나갔다. 거기에 잘게 썰린 코코넛이 젤리마냥 씹히는 재미가 있었다. 코코넛주스는 맛있기보다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이것도 맛있다…!”

 

  나래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는 연화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늘 도움만 받던 자신이 연화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내심 미안했는데, 이제 자신이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뿌듯하다. 내가 연화에게 도움이 되다니!’

 

  연화는 핫케이크와 코코넛주스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허기가 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음식들이 잘 넘어갔다.

 

  나래는 연화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코코넛주스를 마셨다. 어차피 배도 별로 안 고픈 터라 연화에게 음식을 전부 넘겨주는 것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연화는 순식간에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급하게 먹어치운 탓일까. 연화의 진한 입술에는 핫케이크 가루가 살포시 묻어있었다.

 

 “연화야.”

 “왜?”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개를 갸웃하는 연화를 보며 싱긋 웃은 나래는 검지로 그녀를 콕 찍어 가리켰다.

 

 “너 남자친구 사귀어 본 적 없지?”

 “응? 어떻게 알았어?”

 

  연화는 깜짝 놀라 포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나래에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나래는 어떻게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는 행동 보면 딱 티가 나. 이상하게 나는 그런 거 감을 잘 잡더라.”

 “그렇구나.”

 

  연화가 대답하자 나래는 갑자기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연화야, 네 나이가 벌써 스물다섯이야. 근데 그 동안 남자 한 명이라도 사귀어봐야지, 안 그러면 어쩌니? 이번에 잘 되길 빌게. 알았지? 꼭 사귀어봐.”

 

  연화는 갑자기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주는 나래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연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래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메시지 아이콘을 눌러 연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연화의 핸드폰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연화는 자신의 핸드폰을 켜 보았다.

 

 “이, 이걸 왜 나에게 보내주는 거야?”

 

  나래가 보낸 메시지에는 ‘네 예비 남자친구 전화번호 010-xxxx-xxxx’ 라고 적혀 있었다. 연화의 말에 나래가 생긋 웃었다.

 

 “그야 네 예비 남친이 될 사람인데 전화번호는 알아 놔야지~ 승빈이 알려줬어! 너에게 이 전화번호를 주라고 하더라고. 승빈도 그 친구에게 네 전화번호를 준댔어!”

 

  나래의 말에 연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다면 혹시…! 너 그 승빈인지 뭔지 하는 사람에게 내 전화번호 준거야?!”

 “빙고!”

 

  연화는 잠시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앞에 있는 자신의 친구가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다니.

 

  하지만 이 어이없는 일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

 

  어느 작은 호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올라가니 꽉 잠긴 문이 하나 보였다. 소통을 거부하듯 닫힌 문 너머에서는 두 남자가 소파에 걸터앉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실에 있었는데, 텔레비전과 탁상, 화분 등이 놓인 거실은 갈색과 하얀색 벽지로 앤티크하게 꾸며져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여유롭고 뻔뻔스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두 남자는 다름 아닌 유한과 승빈이었다.

 

  유한은 현재 작은 호텔에 묵고 있었다. 방금 전 유한은 양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쓴 뒤 사람들의 인기척이 드문 때를 골라 조심스럽게 집 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어서, 유한이 나오자마자 대여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집을 나서는 유한을 붙들었다.

 

 “작가님은 어디 계세요?”

 

  눈에 횃불을 켜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유한은 어줍지 않은 변명을 둘러대었다.

 

 “저는 작가를 보조하는 조수와 같은 역할만 합니다.”

 

  사람들은 끈질기게 달려들었지만 유한은 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했다. 군중은 그 말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유한의 복장을 보고 어느 정도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한 작가님이 양복을 입으실 리 없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쌓아놓은 이미지 덕분에 역으로 유한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군중 속을 빠져나온 유한은 차를 몰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작은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이 울렸다.

 

 “어디야?”

 “호텔에 거의 도착했어.”

 “그럼 나도 그 쪽으로 갈게~”

 

  전화를 끊은 승빈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능숙한 솜씨로 차를 몰고 유한이 알려준 호텔로 간 승빈은 로비에서 금방 유한과 만날 수 있었다. 마침 호텔이 승빈의 집 근처이기도 했고, 꽤 속도를 내어 차를 몰기도 해서 승빈이 유한보다 먼저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승빈은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나 한잔 하자고 권했지만 유한은 자신의 신분이 들통날 것을 걱정하여 승빈을 끌고 재빨리 객실로 올라갔다.

 

 “…그래서 내가 나래 양에게 전화번호를 줬지롱~ 잘했지, 잘했지?”

 

  승빈이 뿌듯한 표정으로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승빈이 즐겁게 웃으며 말을 하면 할수록 유한의 표정은 더 그늘지고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극성팬들에게서 풀려나 마음을 놓나 싶었더니, 가장 친한 친구라는 놈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는 말이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마음대로 줘버렸다는 말이라니. 유한은 어이가 없었다.

 

 “야.”

 “응? 아, 고맙다고 말하려고? 에이 뭐 괜찮아~ 친구사이에 그런 것쯤은 해 줄 수도 있지!”

 

  승빈은 유한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렇게 뻔뻔하게 말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너 자꾸 이러면 나는 너 안 만날 거다.”

 “에이, 왜 그래~ 미안, 내가 잘못했어. 그래도 나래양의 친구 분께 메시지로 미리 인사드리는 것도 나쁘지….”

 “그만 해라.”

 

  유한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승빈은 이쯤이면 유한을 놀리는 것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유한을 놀리는 건 그만 두지 못해! 내 재미란 말이야.’

 

  승빈은 유한이 들으면 기겁할 말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승빈은 유한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유한에게처럼 얄밉게 굴지 않았다. 그는 타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해서 오히려 매너남이라는 꼬리표가 늘 뒤따라 다녔다.

 

  유독 유한에게만은 짓궂은 사춘기 소년처럼 변하고 마는 까닭이 무엇일까. 아마도 뚱하니 차갑게 굴던 유한이 울컥 치미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 어린아이와 같아 귀엽다, 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지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당장에 절교하자는 말부터 꺼내겠지.’

 

  그것을 알기에 승빈은 유한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키득거리며 뿌듯하게 차오르는 맘을 들키지 않도록 억지로 내리 누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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