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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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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권에 돈 줬죠
작성일 : 17-12-04     조회 : 44     추천 : 0     분량 : 4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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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농담도. 물론 김 기자님이 우리 화성그룹을 진산이나 일성그룹 같은 대 그룹의 반열에 놓고 그렇게 얘기해 주는 건 화성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긴 한데, 우리가 뭐, 그렇게까지 해 가며 무리하게 사업을 벌일 일이야 있겠어요? 알았습니다. 그럼 한번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죠. ……아니, ……알았습니다. 예, 그럼 이만 전화 끊습니다.”

 

 

  창배는 곧 이것을 어찌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화성의 출입 기자인 제일신문의 김호진 기자가 얼마 전 비서실 김일동 상무에게 얘기했던 정치인 자금 수수 건에 대해 화성 관련을 넌지시 물어 온 것이다.

 

  경제부에 있는 김 기자야 그쪽 하고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창배는 혹시 김 기자가 정치부에 있는 동료 기자에게 무슨 얘기를 듣거나 아니면 다니다 혹시 시중에서 그런 떠도는 소문을 들고 전화를 한 것인지 궁금했다.

 

 

  “정말 미치겠군. 최미정 씨! 나, 박 전무님 방에 좀 갔다 올게.”

 

 

  창배는 일어나 나가려다 한 쪽이 칸막이로 막아진 박순업 부장 자리를 흘깃 쳐다봤다. 그래도 바로 위의 직속상관이니 얘기는 해줘야 될 것 같았다.

 

 

  “저…….”

 

  “으응, 앉아. 이리 앉아.”

 

 

  창배를 본 박순업은 읽던 책을 덮어 놓더니 자기 옆의 빈 의자를 당겨 권했다.

 

 

  “무슨 일 있어?”

 

  “제일신문 기자가 전화를 했어요. 우리가 정치권에 돈 준 것 없느냐고요.”

 

  “그래?”

 

 

  순간 창배는 박순업의 얼굴에서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히 떠오르는 것을 읽었다.

 

 

  “일단 박두식 전무에게 보고를 해야겠습니다.”

 

  “그래야지. 빨리 가서 보고해.”

 

 

  ‘젠장. 맨 날 그런 책이나 보고 앉았으면 뭐하노.’

 

 

  창배는 일어나 나오며 언뜻 본 박순업이 읽다 덮어 놓은 책 제목이 <기업에 있어서의 관리자의 역할>이었음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그럼, 내가 어떡해야 되는 거야?”

 

  “일단 전무님이 들어가 보고해야죠.”

 

  “뭐, 자세한 걸 알아야 보고를 하지.”

 

  “자세한 게 없어요. 있는 그대로 그냥 얘길 해요.”

 

  “그래도 물어보면 뭐라고 얘기는 해 줘야잖아?”

 

 

  박두식은 곤혹스러웠다.

 

  회사 내부의 일이라면 내용을 잘 몰라도 적당히 둘러대고 나와도 실무자인 최창배가 다 알아서 처리를 하니 별문제가 없지만 이번 일은 최창배도 모른다 하니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얘기를 듣고 보니 이건 잘못하다간 모처럼 안주하겠다고 생각한 한 홍보실장 자리가 문제 아니라 그룹 전체가 뒤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진산이나 일성 같은 대그룹들도 오너들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자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해외 투자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마당에 만일 화성 기사가 터져 나오면 대외 신용도는 물론 당장 은행 돈 줄부터 끊길지 모르는데, 중국에 잔뜩 투자해 놓고 그럼 어떻게 될 것인가. 최악의 생각이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박두식은 등허리가 서늘했다.

 

  거기다 더 답답하게 생각한 건 자신이 회장실에 들어가 이 사실을 보고했을 때 회장이 이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을 묻거나 대안 제시를 요구한다면 알아볼 데가 없는 자기로서는 어떠한 조치나 답변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박두식은 창배에게 맡기고 달콤한 과실을 먹기만 했지 아직 한 번도 따 보지 않은 게 후회됐다.

 

 

  “저…… 최 과장, 당신이 좀 들어가. 응? 들어가서 그대로 보고해.”

 

  “그래도 전무님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괜찮아. 들어가 봐. 일단 들어가서 나를 찾으면 내가 외출로 자리를 비워 급히 들어 왔다고 하고 나중에 나와서 다시 나하고 협의하면 될 것 아냐.”

 

  “알았습니다.”

 

  창배는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해 놓고 나오는데 박두식의 비서인 김윤희가 의자에 앉아있다 어젯밤 일을 생각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들은 어제 호텔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고 바로 회사로 출근했던 것이다.

 

  조심스레 그룹 회장실 문을 노크하는 창배의 손은 몹시 떨렸다.

 

  들어가기 전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심호흡을 크게 해 보기도 했지만 별로 달라지진 않았다.

 

  설사 과장인 주제에 깨지면 얼마나 깨지랴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 실내에 단둘이 맞닥뜨릴 회장을 생각하면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조만호 회장은 화성이라는 조직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대통령과 같은 존재였다.

 

  복도에 회장이 지나가게 될 경우 비서실에서는 사전에 직원들을 통제해 직원들은 회장이 지나갈 동안 잠시 사무실에 들어가 있거나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될 경우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회장이 다 지나가도록 들지를 못했다.

 

  창배는 회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만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십여 미터 거리의 소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조만호가 아무 반응이 없자 창배는 자신의 노크 소리가 너무 작아 회장이 못 들은 줄 알고 잠시 어정쩡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야?”

 

 

  창배가 선 채 큰 소리로 다시 인사를 하자 조만호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물었다. 창배는 그제야 회장이 졸고 있던 것을 알아챘다.

 

  소파에 묻혀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무슨 서류나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줄로 알았었다.

 

 

  “저는 홍보실에 근무하는 최창배 과장입니다.”

 

 

  조만호는 갑작스레 못 보던 직원 하나가 불쑥 들어와 인사를 하자 황당한 표정으로 창배를 올려다봤다.

 

 

  ‘건방진 좀 놈, 여기가 어디라고 과장 놈이 들어온단 말인가. 비서실장은 뭘 하기에 부장도 아닌 직원을 막 들여보내.’

 

 

  조만호는 잠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홍보실이면 박두식 전무는 어디 갔나?”

 

  “지금 외출 중이라 자리에 없어, 급한 일로 제가 들어왔습니다.”

 

  “……급한…… 일?”

 

  “예.”

 

  “뭔데, 그리 급해?”

 

  조만호는 가소롭다는 듯 앞에 놓인 녹차 잔을 집어 들었다.

 

 

  “회장님! 정치권에 돈 준 것 있죠?”

 

  “……!”

 

  조만호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다 멈춘 채 창배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얼굴 표정엔 다양한 의미가 있어 보였다.

 

 

  “거기…… 앉아 봐.”

 

 

  잠시 동요의 빛을 보이던 조만호는 한쪽 옆을 가리키며 앉기를 권했다.

 

  순간 창배는 정곡을 찌른 자신의 말이 먹힌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서두를 길게 풀어 상대방을 차분히 이해시키는 방법이 있고 순서와 상관없이 일의 핵심만을 찍어 본질에 바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창배는 어쩌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시간을 끌기보다는 단 순간에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것이 적당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조만호는 속으론 찔끔했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우선 중역이나 사장이 아닌 풋내 나는 과장 놈 앞에서 속내를 들어 내 관심을 갖는다는 건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우리 화성그룹에서 정치인들에게 돈 준 것 말입니다?”

 

  “정치인들?”

 

  “예. 국회의원들 말입니다.”

 

  “그게, 왜?”

 

  “어휴. 이거 잘못하단 큰일 나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조만호는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놈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와 턱밑에서 제멋대로 찧고 까부는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자네, 그 얘기 어디서 듣고 와하는 소린가?”

 

  “기자로부터 들었습니다. 확인을 좀 해달라고.”

 

  “뭐, 기자?”

 

  “예. 그렇습니다. 화성그룹에서 모 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설이 있으니 확인을 좀 해달랍니다.”

 

 

  순간 놀란 조만호의 눈엔 테이블 위에 소환되어 검찰청에 들어가는 대호 그룹 회장의 사진이 담긴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바람이 부는지 재계에 행해지는 수사가 빨리 마무리되길 빌었는데 자신에게도 그 불똥이 떨어지려 하니 큰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더구나 자신이 돈을 준 의원이 한 둘이 아니니 이놈이 어떤 건을 갖고 얘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럼, 그 의원이 누구인지 말해 보게.”

 

  “아직 그건 모릅니다.”

 

  “그럼 가 봐. 난 그런 일없어.”

 

 

  “정말 없습니까?”

  “없다니 깐!”

 

 

  조만호는 노여운 표정으로 창배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회장님, 솔직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다 만일 언론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그땐 걷잡을 수 없이 터집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없는 걸로 하고 그대로 가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실이 나오면 그땐 책임 못 집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럼, 이만…….”

 

  “자, 잠깐만…… 앉아 봐! 내가 아직 자네를 잘 모르지만 원래 성질이 그리 급한가?”

 

 

  창배는 일어나려다 조만호의 권유로 다시 주저앉았다.

 

 

  “…… 혹시 말이야, 자넨 그 기자를 잘 알고 있나?”

 

 

  한참 말이 없던 조만호가 물었다.

 

 

  “그저 조금 압니다.”

 

  “그럼 말이지, 자네가 그 친구를 좀 만나 보게. 만나서 우리는 그런 사실이 없다, 하고 어떻게 잘 좀 해 보게.”

 

  “예.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다른 신문들도 신경을 좀 챙겨 보도록 하게.”

 

 

  조만호가 불안한 듯 말했다.

 

 

  ***

 

  “에이, 영감이 돈을 줬다는 거야, 안 줬다는 거야?”

 

 

  창배는 회장실을 나오자 곧바로 박두식 전무 방으로 갔다.

 

 

  “어떻게, 회장님 만나 봤어?”

 

 

  들어오는 창배를 보고 박두식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예. 그런 일 없다는데요.”

 

  “그래. 그럼 그렇게 얘기해. 나는 일 때문에 나갔다고 했지?”

 

  “예.”

 

  “그럼, 그 기자는 언제 만날 거야?”

 

  “이따 저녁에 나갈 건 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나야, 뭘. 최 과장이 만나서 그냥 그렇게 얘기하면 되는 거지.”

 

 

  박두식은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카드 줄 테니 갖고 나갈래?”

 

  “됐습니다.”

 

 

  창배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김호진 기자와 저녁 약속을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바쁘다고 자꾸 빼는 듯해 신경이 쓰였지만 종국엔 그러마고 약속을 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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