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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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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름을 불러주는 것
작성일 : 17-12-05     조회 : 38     추천 : 0     분량 : 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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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아는 주방 시설이 있는 탕비실에서 간식을 먹다 회장실과 연결된 책상 위의 벨 소리가 나자 얼른 뛰어가 받았다.

 

 

  “예에…… 회장님.”

 

  “녹차 좀 한잔 다오.”

 

  “예. 알겠습니다.”

 

 

  정아는 녹차 잔을 가지고 들어가려다 그제야 창배가 아침에 회장님에게 전하라고 한 기사 스크랩 철이 아직 자신의 서랍 속에 그대로 들어 있는 걸 생각했다.

 

 

  “이건 뭐야?”

 

 

  조만호는 정아가 찻잔을 내려놓고 그 옆에 가져온 신문 스크랩을 올려놓자 조만호가 궁금한 듯 물었다.

 

 

  “며칠 전 회장님 해외출장 가셨을 때 각 신문에 회장님 관련 기사들을 모은 거예요.”

 

  “아니, 이걸 언제 찍었어?”

 

  조만호는 신문 스크랩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랐다.

 

  자신이 휴양 차 말레이시아에 쉬러 나갔다 인근에 화성그룹에서 끝낸 공사현장이 있어 현장을 돌아볼 겸 잠시 들렀는데 그때 자신을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이다.

 

  신문엔 화성그룹 조만호 회장이 공사한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사진이 화성그룹에서 건설한 고속도로가 말레이시아 물자 수송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현지인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게재가 되었다.

 

  조만호는 각 신문마다 자신의 사진이 실린 것을 알자 기분이 흐뭇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 화성그룹 회장으로 각인시키기에 아주 그럴듯한 사진이었다.

 

 

  “허허, 그거 아주 보기 좋구먼.”

 

 

  스크랩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는 조만호의 입가엔 만족스러운 웃음이 묻어 나왔다.

 

 

  “그런데, 이걸 누가 했어?”

 

  “홍보실, 최창배 과장입니다.”

 

  “최창배…… ?”

 

  “예. 홍보실에 오래 근무한 과장입니다.”

 

  “아, 그 친구……!”

 

 

  조만호는 그제야 다짜고짜 들어와 정치인들에 돈 준 걸 실토하라고 물어오던 황당한 젊은 과장이 생각났다.

 

 

  “그 친구 꽤 또릿또릿 하게 생겼더구먼.”

 

  “예. 우리 그룹과 관련해 신문에 나오는 기사는 모두 홍보실의 그 과장이 만들어 내고 있어요.”

 

  “위에도 누가 있을 텐데?”

 

 

  조만호는 자기가 홍보실에 있도록 한 박순업을 떠 올렸다.

 

 

  “박두식 전무하고 위에 부장이 있지만 일은 그 최 과장이 전부 다 하는걸요.”

 

 

 정아는 슬그머니 창배를 띄웠다.

 

 

  “흐음, 그래?”

 

 

  조만호는 일전에 창배에게 일을 지시했던 것을 생각했다.

 

  이사 나 상무 같은 임원도 아닌 일개 과장에게 회장인 자신이 직접 돈을 주기가 껄끄럽긴 했지만 일의 사안으로 볼 때 워낙 중차대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맡기긴 했으나 뒤탈이 없이 깨끗하게 마무리를 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또 지금 같이 가끔씩 올라오는 그룹 관련이나 자신의 홍보성 기사들을 볼 땐 젊은 과장이 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조만호 자신은 처음 박두식 전무에게 홍보 일을 맡기고 한편으론 염려를 했었지만 그런대로 잘 꾸려나간다 했는데 그게 바로 박 전무 밑에 있는 그 최 과장이란 자가 다 하고 있었다니 그저 신통한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 있으면 좀 오라고 해!”

 

 

  잠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조만호가 말했다.

 

  창배는 비서실의 정아로부터 지금 급히 회장이 찾는다는 전화를 받곤 깜짝 놀라 혹시 뭐 아침에 신문기사를 넣어준 게 잘 못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도 아니면 회장이 박 전무를 놔두고 자기를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창배는 궁금해 정아에게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지만 그냥 들어가 보라고만 얘기했다.

 

  창배가 회장실에 들어가자 조만호는 창배에게 앉으라고 해놓고는 곧 차를 내 오라고 지시했다. 여비서가 차를 내 올 때까지 창배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잔뜩 긴장했다.

 

 

  “최창배 과장은 입사한 지 얼마나 됐나?”

 

  “육 년 돼갑니다.”

 

  “흐음, 그래?”

 

  “자네, 홍보실에만 계속 근무했나?”

 

  “예, 그렇습니다.”

 

  “차 마시게.”

 

  “예.”

 

 

  창배는 조심스레 녹차가 담긴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 윽!”

 

  “왜 그러나?”

 

 

  순간 창배는 입안에 있는 찻물을 그냥 꿀꺽 삼켰다.

 

 

  “아, 아닙니다.”

 

 

  녹차 안에는 소금이 섞여 있었다. 창배는 곧 정아가 장난했음을 알았다.

 

 

  “그럼 자네, 언론 쪽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겠네?”

 

  “예. 밥 먹고 하는 일이 그 일이니까요.”

 

  “…….”

 

 

  창배는 갑자기 조만호 회장이 왜 물어보는지 궁금했지만 분명 좋은 일임은 틀림없을 거라 짐작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회장이 입사한지 얼마 되었냐고 물었을 때 회장은 분명히 자네나, 최 과장이 아닌 최창배 과장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룹의 임원이나 사장도 아닌 회장이 직접 실무 부서의 일개 과장을 기억해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 인가.

 

  창배는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 불러 줄 때는 서로 따뜻한 마음들이 상대방의 가슴과 이미 통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창배는 박두식 전무와의 광고료 결제 문제로 이견 충돌을 빚은 이후 홀로서기 위해 그 동안 자기가 의도적으로 회장의 눈에 띄기 위해 노력해 온 일들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회장이 보고 만족해하고 있는 신문 기사 건은 창배가 현지 지사에 나가있는 동기생에게 휴가 나오면 술 사준다고 특별히 부탁해 긴급히 찍어 보내라고 해 신문에 나오게 한 것이었다.

 

  특히 인터뷰한 현지인은 동기생의 지사 식당에 야채를 공급하고 있는 상인이었다.

 

  동기생은 서울에 있는 창배의 지시 그대로 움직여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다 그가 마침 식당에 야채를 싣고 오자 황급히 사진을 찍어 회장 사진과 함께 동봉해 보낸 것을 창배가 기사 내용을 작성해 신문사로 자료를 돌리고 기자들에게 단단히 부탁을 해 놓은 것이다.

 

  창배는 이것이 즉효로 회장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알아챘다.

 

 

  “신문에 내 사진이 이렇게 나오면 돈이 좀 필요했을 건데?”

 

  “아니 그거 뭐, 별거 아닙니다.”

 

 

  창배는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 대단하군. 그래도 그렇지 않아. 내가 돈을 좀 줄 테니 필요한데 쓰게.”

 

  “아니, 괜찮습니다.”

 

  “곧 자네 사무실로 내려보낼 테니 자리 비우지 말고 있게. 이건 나중을 위해서도…….”

 

  “그럼, 알겠습니다.”

 

 

  창배는 마지못한 듯 대답을 해 놓곤 속으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회장이 자신을 인정한 것 만해도 그동안 공들인 게 헛되지 않게 계획대로 목표는 충분히 이룬 셈인데, 생각지 않게 덤까지 얻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나중을 위해서도……’ 란 무슨 의미일까.

 

  창배는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됐어, 이제 나가 봐. 이런, 아직 차가 남아있었군. 어서 마저 다 마시고 가게.”

 

  “예.”

 

 

  창배는 눈을 질끈 감고 단숨에 찻물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무지 짰다.

 

  창배가 나가자 조만호는 서랍 속에서 봉투를 끄집어냈다.

 

 

  “됐어, 이젠 필요가 없게 됐어.”

 

 

  조만호는 속의 내용물을 꺼내 쓰레기 통속에 찢어 넣었다.

 

  화성그룹의 근무를 원하는 신문사 경제부장 출신의 홍보실장 후임의 이력서였다.

 

  그 이력서는 아는 의원이 추천해 온 사람으로 젊은 과장 한 놈이 들어와 화성에서 정치인들 돈 준 걸 얘기하라고 떠들어 댔을 때 아무래도 홍보 쪽이 약한 것 같아 채용하려고 받아두었으니 자칫 그를 통해 의원에게 은밀히 들어갈지 모를 회사 기밀을 우려해 그냥 서랍 속에 넣어 놓고 어찌할까 그간 고심해 오던 것이었다.

 

  조만호는 세상에 믿을 놈은 오로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최 과장, 차 한 잔 안 할래?”

 

  “지금 바쁜데요.”

 

  “에이, 잠깐 좀 들어왔다 가.”

 

 

  창배는 조만호 회장의 방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비서실장 김일동이 창배의 손을 자기 방으로 이끌었다.

 

 

  “그래, 회장님이 무슨 일로 찾은 거야?”

 

  “별일 아닙니다.”

 

  “그래도 무슨 용무가 있으셨으니 불렀을 거 아닌가?”

 

  “상무님이 보신 아침 신문에 난 기사 있죠? 그것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 뭐라 그러셔?”

 

  “그거 보고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김 상무님이 회장님과 말레이시아로 떠나시기 전에 그렇게 하도록 저한테 특별히 지시했다고 말했죠. 혹시 나중이라도 들어가실 때 그 얘길 하시면 회장님 이미지 업을 생각하다가 그렇게 한 거라고 말씀하십쇼. 그런데 어쩌면 얘기를 안 할지도 모릅니다. 자꾸 그 얘길 하면 회장님이라도 좀 쑥스럽지 않겠어요?”

 

 

  “오, 그래……? 최 과장이 정말 그랬어?”

 

  “물론이죠. 그래 봐야 실장님이 저를 생각하는 마음, 어디 반이나 따라가겠습니까.”

 

  “허어, 이거 참. 자네가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준다니 정말 고맙네. 내 이 은혜는 꼭 갚음세.”

 

  “참, 실장님도 저한테 뭐 그런 얘기까지. 그만 가 볼랍니다.”

 

  “차 도 한잔 안 하고 그냥 가기야?”

 

  “지금 바빠요. 실은 회장님이 아주 은밀히 지시한 게 있어서.”

 

  “뭐? 그, 그게 뭔데……?”

 

 

  창배는 혹한 김일동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김일동도 자기에게 코를 꿰어 간다고 생각했다.

 

  창배는 15층에 멈춰 서 있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며 내려가는가 하더니 곧 13층에 멈춰 서며 여직원 하나가 올라탔다.

 

  여직원은 타자마자 조심스레 쇼핑백을 가슴에 안은 채 등을 돌리고 섰다.

 

  창배는 여직원이 내릴 곳이 같은 10층인 것을 알자 유심히 그 여직원을 살폈다.

 

  그리곤 곧 그 여직원이 일전에 왔던 자금부 직원임을 알았다.

 

  화성그룹은 양재동의 15층 빌딩을 사옥으로 쓰고 있었다.

 

  15층에는 회장실이 있었고 14층엔 각 계열사 사장들의 방이 그리고 13층엔 그룹의 혈관 역할을 하는 각사 자금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창배는 매번 돈이 든 쇼핑백을 가져오는 이 여직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어…….”

 

 

  창배가 주저하며 말을 꺼내자 뒤를 돌아 본 여직원은 그제야 그가 최창배 임을 알아봤다.

 

 

  “어머, 바로 만났네요. 긴가민가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이거…….”

 

 

  여직원은 반가워하며 얼른 현금 뭉치가 든 쇼핑백을 창배에게 건넸다.

 

 

  “언제, 차라도 한 잔 했으면…….”

 

  “아니, 괜찮아요.”

 

 

  그녀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순간 창배는 그녀가 비록 예쁘지는 않지만 웃는 모습은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웃을 때 입가에 잡히는 보조개가 가공을 하지 않은 순수한 자연산이라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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