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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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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를 띄워다오
작성일 : 17-12-05     조회 : 42     추천 : 0     분량 : 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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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호, 회장님이 오빠를 얘길 하기에 내가 뻥을 좀 쳤지. 그래 회장님이 뭐라고 그래?”

 

  “홍보실에 근무한지 얼마나 되느냐고 묻더라고. 뭐, 별 얘긴 않더라.”

 

  “그래? 그런데 왜 오라 그랬지?”

 

  “글쎄, 무슨 얘기를 하려다 마음이 변한 게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 가끔씩 그런 경우가 있다더라.”

 

 

  창배는 정아에게 회장실 안에서 조만호 회장과 있었던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왠지 그것은 비밀로 놔두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줄 알고 술 한잔 사라고 일부러 나오라 그랬지.”

 

  “술? 그거야 얼마든지 사지. 그렇지만 지금은 안 돼. 내가 지금 약속이 있어 어딜 좀 갔다 와야 돼.”

 

  “어디를 가? 설마 다른 여자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니지?”

 

  “쓸데없는 소리.”

 

  “알았어. 갔다 와.”

 

  “기다려. 네 집으로 갈 게.”

 

  ***

 

  카페를 나온 창배는 정아가 차를 타고 떠나자 자신도 곧 택시를 잡아타고 부모님이 살고 있는 수색으로 갔다.

 

 택시는 한남대교를 건너 수색까지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창배는 차에서 내려 치킨 두 마리를 사 들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뉴타운 개발 붐을 타고 주변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 해쳐져 변해 가고 있지만 그곳은 아직 창배 어렸을 때의 모습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었다.

 

 창배는 대문의 페인트가 벗겨진 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 아귀가 맞지 않는 철 대문의 삐익 하는 소리가 신경을 거스를 정도로 울렸지만 안에선 아무 기척이 없었다.

 

 

  “엄마!”

 

 

  창배는 마루의 유리가 달린 미닫이문을 열며 아이들처럼 엄마를 불렀다. 그제야 한 늙수그레한 여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응. 어서 들어오너라.”

 

 

  창배는 엄마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왔냐?”

 

 

  텔레비전을 보느라 누워있던 남자가 일어나며 이불을 한쪽으로 밀쳐놓았다.

 

 

  “인수야! 인길아! 삼촌 왔다. 어여, 나와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삼촌.”

 

  “안녕하세요!”

 

 

  아이들 둘이 맞은편 방에서 쪼르륵 나오더니 창배에게 굽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공부들 잘 하고들 있지? 이것들 먹어.”

 

 

  창배는 사들고 온 치킨을 앞에 풀어 놓았다

 .

  “야, 치킨이다!”

 

  “아버지도 좀 잡수세요.”

 

  “난 뭐, 저녁 잔뜩 먹었는데.”

 

  “두 마리 샀어요.”

 

 

  창배는 다리 한쪽을 아버지에게 건넸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 이예요?”

 

  “난 말도 하기 싫으니, 얘한테 전화한 당신이 말해요.”

 

  “창배야, 이거 한번 봐라. 큰일 났다!”

 

 

  창배는 아버지가 건네는 우편물을 받아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했다.

 

  전부 카드 빚 연체로 채권을 떠안은 신용 정보 회사로부터 온 독촉장이었다. 창배가 얼추 계산을 해 보니 한 사천만 원은 되는 것 같았다.

 

 

  “참, 그보다 이걸 좀 봐라!”

 

 

 창배 아버지는 텔레비전이 놓인 문갑 서랍에서 다른 우편물 하나를 꺼내 창배에게 내밀었다.

 

 

  “이건 네 형이 사업하는 친구의 보증을 서 줬는데, 그 친구가 부도가 나 도망가는 바람에 우리 집을 압류하겠다고 온 통지다. 이젠 꼼짝없이 집 날아가게 생겼다.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창배는 아버지가 건넨 압류 예고장을 펴들었다. 일억 원에 대한 채무보증이었다. 한심한 형 같으니, 지금이 어느 땐 데, 창배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형수랑 다 나가 버린 거예요?”

 

  “그럼, 집에 있을 수가 없이 찾아들 와서 그 난리를 치는데 어떻게 집에 들 있어. 네 형수도 봐라. 그 카드 빚이 네 형수께 반이나 된다. 누구 하나라도 난 게 있어야지.”

 

  “그럼 지금 어디들 가 있는 거예요?”

 

  “나도 모르지. 아이들이 궁금한지 가끔 전화들이나 한 번 씩 하니.”

 

  “삼촌, 나는 피자보다 치킨이 더 맛있어요. 텔레비를 보니깐 요즘 닭하고 오리에 조류 인플루엔잔가 병이 있다고 다들 안 먹는다는데 나는 그래도 매일 먹고 싶어요.”

 

  “창배야, 참 내가 속이 터진다. 오죽했으면 네 아버지가 그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겠니.”

 

  “창배야, 이거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게 아니냐.”

 

  “대책은, 무슨 대책이 있어요? 돈이 있어야 대책을 세우는 거지. 난 그저 밤낮으로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네 형이나 형수를 찾으면 그냥 가슴이 꽝하고 주저앉는단다.”

 

 

  나이 든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창배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금 생각하니 자신과 달리 융통성 없고 유약한 형이 잘 다니던 초등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나온다 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말리지 않은 자신이 후회가 됐다.

 

  창배가 봤을 때 형은 평생을 아이들이나 가르치며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유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오자마자 생소한 무역업을 한다고 사무실을 차려 일 년도 안 되어 문을 닫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사이 벌써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공사 현장 일을 따라다니기도 했고 화물차를 운전하기도 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빚만 지게 되었다.

 

  창배는 형수의 빚은 아마 형의 빚을 갚아주려고 했거나 아니면 생활비로 쓰다 보니 그리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 이제 다들 먹었니? 그럼 이제 너희들 방으로 들어가야지. 잠깐, 있어 봐”

 

 

  창배는 지갑을 꺼냈다.

 

 

  “인수, 만 원, 그리고 인길이, 만 원. 이걸로 내일 뭐 맛있는 것 사 먹어라.”

 

  “돈도 없을 텐데, 뭔 만 원씩이나 줘. 어서 삼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고맙습니다.”

 

  “삼촌 고맙습니다.”

 

  “그래, 어서 들어들 가거라.”

 

  “그런데 너는 별일 없냐?”

 

  “저야, 뭐 늘 그렇죠.”

 

  “그때 네가 진작 집을 얻어 나가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꼴들을 어떻게 볼 뻔했냐.”

 

  “저는 아무래도 괜찮아요. 그리고 이거…….”

 

 

  창배는 손에 들고 온 검은색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돈뭉치 두개를 꺼내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아니, 이게 뭐냐!”

 

  “이천만 원인데 우선 쓰세요.”

 

  “네가 무슨 돈이 있어 이렇게 많은 돈을 갖고 다녀? 어디서 났어? 무슨 나쁜 짓 한 거 아냐?”

 

  “제가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이에요. 일단 급한 대로 빨리 카드빚부터 갚도록 하세요. 원금을 일부라도 갚고 하면 집으로 쫓아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도 곧 갚는다고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봐야겠어요.”

 

  “어이구, 네가 우리 집을 살리는구나. 고맙다. 창배야, 그런데……, 친구 보증 선건 또 어떡하니?”

 

  “그건 형한테 연락 오면 저한테 전화 좀 꼭 하라고 하세요.”

 

  “그래. 그렇게 하마. 웬만하면 자고 가든가 하지.”

 

  “가 봐야 돼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냥 가니, 엄마가 맘이 안 좋구나.”

 

 

  대문 앞까지 따라 나온 엄마의 목소리가 창배의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돌아 봤지만 어둠 속에 묻힌 엄마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외등의 전등이 고장 났는지 어두웠다. 빨리 집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집이라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나 지난겨울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지만 그래도 구옥이라 겨울에는 몹시 추웠다.

 

  ***

 

  “이제 오는 거야? 얼마나 기다렸는데.”

 

  “어쭈, 몸단장까지 하신 모양인데.”

 

 

  집에 갔다 온 창배가 팬티와 브래지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앗빛의 투명한 잠옷을 입은 정아를 보고 말했다.

 

 

  “자려고 했냐?”

 

  “자기는, 서방님도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자.”

 

  “야, 야 그러지마. 그러다 정말 네 신랑 될라.”

 

  “내가 오빠 색시 하면 안 될 거라도 있어?”

 

  “야, 다 늙은 너를 누가 데려 간 다냐?”

 

  “뭐, 내 가슴이 풍성하고 팽팽하다 할 땐 언제고.”

 

  “잔소리 그만하고, 저것 좀 가져와 봐. 맥주하고 먹을 것 잔뜩 사 왔다.”

 

  “여기서 먹게?”

 

  “그럼?”

 

  “나가. 이 밑에 얼마 전 새로 문 연 카페 있어. 나 거기 가려고 졸린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단 말이야.”

 

  “어쭈, 제법인데?”

 

 

  밖으로 나가자 정아는 슬그머니 창배의 팔짱을 껴 왔다.

 

  창배는 어색했지만 모른 척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차츰 그 따뜻함이 전해 오며 마음이 푸근해 지자 창배의 머릿속엔 정아에 대한 상념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배는 애써 그 상념들을 지우려 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이 정아를 알아보곤 인사를 해 왔다.

 

 

  “맥주 마실래?”

 

  “가만있어 봐. 지난번 내가 키핑 해 놓은 술 있죠? 그거 주세요.”

 

  “웬일로 여길 다 왔어?”

 

 

  창배가 밸런타인 17년산을 정아의 온더록스 잔에 따르며 말했다.

 

 

  “일주일 전쯤인가 비 왔잖아. 그때 느지막이 퇴근해 집에 가는데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지는 거야. 낙엽들이 비 맞아떨어져 뒹구는 꼴이 문득 내 신세같이 처량하게 느껴지데.”

 

  “전화하지 그랬어?”

 

  “오빠는 그날 기자들하고 술 약속이 있다고 했잖아.”

 

  “그날이었구나. 내가 끝나고 네 집으로 간다고 하니 혼자 있고 싶다고 오지 말라고 한 날.”

 

  “응. 맞아. 그런데 그날 몇 잔 먹지 않아 못 먹겠는 거야. 자꾸 지난 일들이 떠올라서.”

 

  “…….”

 

  “비가 내리는데 태식 씨 있는 시골에도 비가 올까, 별생각이 다 드는 거야. 그 사람은 마치 어린애 같았어. 그러니 남에게 당하기도 하고 저렇게 시골에 산다고 묻혀있지. 요즈음 사람 같지가 않아. 그 뭐야, 옛날 수양이 득세한 후 더러운 세상이 보기 싫어 초야에 묻혀 산 선비들이 많았잖아. 이맹전이란 사람은 수양이 단종을 죽인 후 현감의 직을 내놓고 고향으로 들어가 더러운 세상을 보지 않으려고 평생 장님 시늉을 하며 살았대. 태식 씨도 어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기분 나빠?”

 

  “내가 왜 기분이 나쁘냐?”

 

  “몰라. 그땐 왜 그 생각이 불현듯 났는지…….”

 

 

  실내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손님이 없어서인가 분위기는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너 비서일 이제 익숙해졌지?”

 

 

  술이 거의 비워 갈 무렵 창배가 말했다.

 

 

  “익숙해지고말고 가 어디 있어.”

 

  “회장님하고 가까워진 걸 말하는 거야.”

 

  “가깝긴 뭐가 가까워?”

 

  “남자 여자가 같이 있게 되면 아무래도 정들지 않겠냐? 우리나라 70대 노인의 이십 퍼센트가 정기적으로 섹스를 즐긴다는데.”

 

  “뭐?”

 

 

  정아는 날카롭게 창배를 노려봤다.

 

 

  “후후, 사내 커플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왜인 줄 알아? 매일 제한된 같은 공간에서 보게 되니 자연 정들 수밖에 없는 거라고. 폐쇄된 공간이 만드는 아이러니라 할까.”

 

  “오빠,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정아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 같았다.

 

 

  “하하하, 농담이야. 그런데, 정아야! 넌 이제부터 나 좀 도와줘야겠다.”

 

  “뭐? …… 도와 쥐?”

 

  “그래.”

 

  “뭘 어떻게 도와?”

 

 

  화난 눈으로 창배를 쳐다보던 정아의 표독한 표정은 이내 제 자리를 찾았다.

 

  창배의 말에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괜히 가슴이 철렁했던 것이었다.

 

  처음에 회장이 자신의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은 후 황당했던 생각도 시간이 흐르게 되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제 그 정도야 별게 아닌 게 되긴 했지만.

 

 

  “이리 좀 더 가까이 와 봐.”

 

 

  정아는 의아한 생각에 창배 앞으로 몸을 바싹 당겨 앉았다.

 

 

  “회장님에겐 화성그룹 사람뿐 아니라, 아마 외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돈을 얻기 위해 온갖 빌미로 찾아올 거란 말이야. 우선 화성 내부로 봐서도 많은 임원들이 회장실을 들락거리며 정말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일을 핑계로 개인적인 욕심을 차리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네가 전에 한번 얘기했지. 마음만 먹으면 개인적인 치부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난 그때 네가 한 얘길 듣고 많은 생각을 했는데…….”

 

  “무슨 생각…… ?”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고, 앞으로 너는 내게 여러 가지 정보를 좀 줬으면 좋겠다.”

 

  “뭐, 정보……?”

 

  “그래, 정보.”

 

  “그럼, 나더러 회장님을 모시면서 정보를 빼 내라는 거야?”

 

  “내가 원할 땐. 그렇지만 앞으로 회장님이 나에게 얻게 될 정보가 더 많게 될 거야. 신빙성이 없는 게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하하하!”

 

  “……?”

 

  “그리고 한 가지 더……. 앞으로 회장님에게 나를 좀 더 띄워줬으면 좋겠다.”

 

  “오빠를 띄워 달라고?”

 

  “그래. 그렇다고 크게 부담 가질 건 없고. 전에 네가 회장한테 내 얘기를 했던 것 있잖아. 그렇게 가끔씩 지나가는 것처럼 툭툭 한마디씩 해 주면 되는 거야.”

 

  “…….”

 

  “물론 지금은 무슨 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알게 될 기회가 있을 거야. 너도 언제까지 비서 일만 하고 있을 수 없잖아. 자, 이제 그만 나갈까. 너는 새벽 일찍 출근해야지. 이틀 전 인가 사무실에서 야근하고 새벽에 사우나 가려고 나오는데 회장님은 벌써 그 시간에 출근하던데.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는 게 맞긴 맞는 모양이더라.”

 

 

  정아는 창배의 팔에 어깨를 감싸 안겨 걸으며 언제까지 비서 일을 하고만 있을 수 없잖느냐는 창배의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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