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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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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임시거처
작성일 : 17-12-25     조회 : 52     추천 : 0     분량 : 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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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 직장인들로 붐비는 북창동 한 소줏집. 창배는 전에 유진 나노테크에 함께 근무하던 나영호와 자리를 함께했다.

 

 

 “어쨌든 그간 고생했습니다. 제대로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무슨 소릴……. 그래도 내가 거기 있을 때 나 부장이 구명 운동에 애를 많이 썼다고 하던데.”

 

 “원,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 애초 제가 간여 안 했더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래도 누굴 시켜서라도 했겠지. 그런데 이길호 소식 들은 것 있나?”

 

 “어휴, 그 새끼,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인디애나 어디가 있다고 인터폴에 수사 의뢰는 한 모양인데, 미국, 그 넓은 땅 어디서 그놈을 찾겠습니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길호가 이십억을 준다고 했을 때 한 번 의심을 해야 했는데, 에이!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바로 제가 그 짝이 나고 말았지 뭡니까.”

 

 “그래, 나 부장은 지금 뭘 해?”

 

 “저야 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돈 많은 전주 밑에서 이것저것 심부름이나 해주고 용돈이나 좀 받아 쓰고 있죠, 뭐. 그런데 이제 사장님은 무얼 하실 겁니까?”

 

 “글쎄, 나도 지금 당장은 할 게 마땅찮은데.”

 

 “에이, 그러지 마시고 빨리 무얼 하나 하셔야죠. 그리고 일을 하시게 되면 꼭 저를 좀 불러 주십시오. 그야말로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글쎄, 그런 일이 있게 될지 모르겠군.”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아무튼 고맙네. 그리고 이거…….”

 

 

 창배는 상의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나영호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나 때문에 이리저리 다니면서 생고생하고 돈도 좀 썼을 텐데,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아, 이러시면 안 됩니다. 본의 아니게 저 때문에 험악한 꼴을 당하셨는데.”

 

 “넣어 둬. 나영호 부장을 또 보게 될진 모르지만, 앞으론 이런 기회도 없을 거야.”

 

 “이러시면 제가 되레 미안하죠.”

 

 

 나영호는 어쩔 수 없이 창배가 건네는 봉투를 주춤거리며 받아들었다.

 

 

 “이게, 얼맙니까?”

 

 “뭘, 그런 걸 물어? 오백이야.”

 

 “사장님, 저어, 우리 이 돈으로 오늘 술 한번 거하게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 여기 북창동에 기똥차게 예쁜 애들 있는 집을 제가 잘 알거든요. 오늘 한번 가시죠?"

 

 “그냥 넣어 둬. 오늘은 내가 시간이 안 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내가 멋지게 한잔 살 게."

 

 “그럼 할 수 없죠, 뭐. 아무튼, 뭘 하게 돼 든 연락 한번 꼭 주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한껏 돕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나영호와 헤어져 나온 창배는 정아가 가져간 비자금에 자꾸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감춰둔 화성 비자금 오십억 원을 설마 정아가 통째 가져갈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그건 창배 자신이 분명히 경찰에 도난 신고를 하지 못하리란 것을 예상하고 저지른 행동이었다. 방배동 빌라도 분명 그 돈으로 샀을 것이다. 게다가 화성그룹에서 원수같이 지내던 이진영이와 그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니.

 

 창배는 비자금 중 다행히 이십억 원은 무기명 채권으로 바꿔 따로 챙겨두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년!”

 

 

 방배동에서 그날 지구대까지 끌려갈 뻔하며 당한 수모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자 창배의 입에선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

 

 나영호와 헤어져 시청 앞에서 일산 가는 버스를 탄 창배는 내리기 두어 정거장 전쯤에 창밖으로 일빛학원이란 네온사인 간판을 바로 형이 차린 학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창배는 바로 차에서 내려 버스가 지나온 후곡 마을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되돌렸다.

 

 강남의 대치동, 강북의 중계동 은행 사거리와 함께 신도시 일산에 학원가로 새로 떠오른 후곡 마을 사거리. 이 도로변엔 이미 수업이 끝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나온 엄마들 승용차와 아이들을 집까지 데려 줄 학원 버스가 도로변에 줄을 이었다.

 

 형 창식이 차린 학원은 일층에 대형 감자탕 집이 있는 건물의 사층이었지만 그 건물은 붐비지 않고 의외로 조용했다. 창배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층에서 내리자 바로 정면으로 일빛학원과 음악학원이 가운데 복도를 양옆으로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창배는 학원 출입문 앞에 선 채 벽에 붙여 놓은 입시 관련 홍보 안내 물을 읽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상담실이라고 써 붙인 안에서 여자가 인사를 건네 왔다.

 

 

 “저, 어떻게 오셨죠?”

 

 

 낯선 남자가 밤늦게 혼자 들어온 게 이상한 지 여자는 창배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다봤다.

 

 

 “저, 원장님 좀 뵈러 왔는데요.”

 

 “지금 수업 중이신데 잠깐만 기다리시겠어요? 곧 수업 끝날 때 됐습니다.”

 

 

 창배는 여자가 안내한 상담실 테이블 의자에 가 앉았다. 수업을 마치는 벨이 울리자 창식이가 교재를 들고 바쁘게 나왔다.

 

 

 “어, 네가 웬일이냐? 말도 없이. 자, 이리 와라.”

 

 

 창식은 창배를 맞은편 교무실로 이끌었다.

 

 

 “자, 좀 앉아라.”

 

 

 창식은 자기 책상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겼다.

 

 

 “여기가 형 자리야?”

 

 “응.”

 

 “학원은 원래 그런 거야? 원장실이 따로 없나?”

 

 “아니, 원래는 있었는데, 인수해 공사할 때, 교무실 하고 다 텄어. 어때, 꽤 넓어 보이지?”

 

 “원장님, 먼저 들어갑니다. 수고하세요!”

 

 

 수업을 마친 선생 하나가 인사를 하며 가방을 챙겨 들고 나갔다.

 

 

 “사실, 시작 초기에 원장실이 따로 있으면 아무래도 선생님들 관리하기가 힘들 것 같아 일부러 원장실을 없앴어. 어느 정도 자리 잡을때 까지는 직접 단도리를 해가며 챙겨야 할 것 같아서.”

 

 

 과연 형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한 창배는 교무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학교 다닐 때의 교무실과 별다름이 없어 보였다.

 

 

 “창배야 그러고 있지 말고 나가자. 수업도 끝났으니 어디 나가서 간단히 술이나 한잔하고 들어가자.”

 

 “그럽시다.”

 

 

 창식과 창배는 일층의 감자탕 집으로 들어갔다.

 

 

 “자, 그리 앉아라. 그래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응. 아는 사람 좀 만나고 들어오는 길에 간판이 훤히 보이잖아. 그런데 학생들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지금 마지막 고등부 수업이 끝나서 그래. 고등학생들은 문 이과 합해서 겨우 두 반이야. 그것도 합해야 열다섯 명 정도밖에 안 돼.”

 

 “그럼, 그게 전부야?”

 

 “종합학원이니까. 초등부, 중등부가 있지. 초등부 수업 끝나면 중등부 다음엔 고등부 순으로 수업이 있어. 전부 합하면 한 팔십 명 정도 되나.”

 

 “그거면 많은 건가?”

 

 “많긴, 한 백이십 명 만 돼도 우리는 그럭저럭 수지는 맞추겠는데.”

 

 “학생들 모으기가 그렇게 힘들어?”

 

 “말도 마라. 이 애들 모으는 것도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물론 돈이 있으면 계속 광고를 하면 좋겠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아무튼, 이 애들 모으느라고 네 형수하고 전단 만들어 아파트에 붙이고 다니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자, 한잔하자.”

 

 

 둘은 잔을 부딪치곤 단숨에 잔들을 비웠다.

 

 

 “그런데 오늘 누구 만났니?”

 

 “응, 전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

 

 

 창식은 동생 창배가 걱정이 돼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청년 실업자가 계속 늘어나는데 잘나가다가 급 추락해 앞으로 무엇을 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리 쉽지 않을 게다. 네가 전에 알던 많은 사람들, 그거 다 필요 없는 거야. 그건 네가 잘 나갔을 때 일이야. 내가 이미 겪어 봤잖아.”

 

 “그건 나도 알아.”

 

 “한번 만나자고 하면 무슨 피해라도 입히려는 줄 알고 슬금슬금 피한다. 그거참, 치사한 거다. 특히 너 같은 경우는 그 회사가 좋지 않은 일로 신문에 크게 오르내리고 했으니 사람들이 너 보기를 마치 무슨 벌레 보듯 할 거다. 명심해라.”

 

 

 형 창식이 말 한대로 창배는 그간 화성 그룹과 유진 나노테크에 있을 때 이리저리 알던 많은 사람 중 연락하면 그 전과같이 반겨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했으나 형 말대로 자신감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사이가 각별했던 조영기 사장이나 광고대행사인 휴먼의 오지희가 소개한 모임의 스페이스 건축연구소를 운영하는 최기원 소장 정도나 될지 의문이었다.

 

 

 “너, 매일 쓸데없이 다니지 말고, 내가 사무실 하나 마련해 줄 테니 그리 나와 있어라?”

 

 “사무실?”

 

 “그래. 매일 집에 있기도 그렇잖아. 그러니 당분간은 임시로 그곳에 나와 있도록 해.”

 

 

 창배가 혹시 집에서라도 제 형수의 눈치를 볼까 염려한 창식의 배려였다.

 

 

 “그럼, 사무실을 얻어……?”

 

 “아니, 지금 그럴 처지는 아직 안 되고, 학원 공사를 하다 보니깐 남는 공간이 있어. 강의실로 만들기는 너무 작고, 그래서 비품을 넣어 둔 곳이 있는데 너를 보니깐 갑자기 그 생각이 난 거야. 그걸 쓰도록 해라, 다 치워 줄 테니. 전에 원장이 쓰던 책상이랑 필요한 사무용 집기는 다 들어 있어. 아마 치우고 나면 제법 그럴듯할 거야.”

 

 “좋아. 그럼 당장 치워 줘. 내일부터라도 쓸 테니까.”

 

 

 형 창식의 제안을 창배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분간 그곳을 개인 사무실로 쓰면서 연락처로 쓸 생각이었다. 형이나 엄마, 아버지는 그렇다고 해도 피가 섞이지 않은 형수는 내색은 않고 아무리 잘해 주어도 창배 자신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창배는 우선 형 집에서 임시로 추스르고 있다가 그전처럼 오피스텔을 얻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 내일 당장 치워 주마!”

 

  ***

 

 창배는 이튿날 오전 형과 함께 학원에 나가 짐 정리를 했다. 치워놓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사무실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자, 이 학원 열쇠 하나는 네가 갖고 있어. 선생님들은 오후 세시나 돼야 출근하니까 그전에 필요하면 아무 때나 열고 들어가면 돼.”

 

 

 창배가 새로 꾸민 사무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밖에서는 분주히 오가는 소리가 났다. 창배가 문을 열고 보니 언제 왔는지 형수와 형 창식이 비와 걸레를 들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였다.

 

 

 “아니, 형수님은 언제 나왔어?”

 

 “조금 전에…….”

 

 “그런데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응. 청소.”

 

 “청소……?”

 

 “그래. 사실 청소를 맡기려면 돈이 들어가잖아. 그래서 네 형수와 내가 조금 일찍 나와 청소를 하는 거야.”

 

 “아니, 이 교실을 다……?”

 

 “뭐, 작고 일곱 개밖에 되지 않는데, 뭘. 그저 바닥이나 쓸고 쓰레기통이나 비우고 하는 정도지.”

 

 “형수님! 내일부터 형수님은 나오지 마요. 저하고 형하고 할 테니. 아니, 형도 나오지 마. 내가 다 할 게.”

 

 “네가 청소를 어떻게 하니?”

 

 “글쎄, 걱정하지 말고 맡겨 둬. 이곳에 있는 동안은 알아서 다 할게. 거, 청소하는 거 선생들 보면 창피하지 않나?”

 

 “그래서 한 시쯤 미리 나와 하는 거야.”

 

 “이젠 놔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무리 그래도 원장 체면이 있지. 그깟 청소 맡기는 데 돈이 얼마나 한다고.”

 

 “알았다. 그럼 네가 다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어휴, 애새끼들 더럽게 어지럽혔군.”

 

 

 형 창식에게 비를 뺏어 든 창식이 교실 바닥에 아이들이 먹고 함부로 버린 과자, 아이스크림 봉지 등을 쓸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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