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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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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자습감독
작성일 : 17-12-25     조회 : 78     추천 : 0     분량 :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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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배야, 너 지금 뭐 하냐?”

 

 “……?”

 

 

 창배는 형 창식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형을 건너다봤다.

 

 

 “왜, 무슨 일 있어?”

 

 “너 지금 2학년 문과 반 교실에 좀 들어가 있어야겠다.”

 

 “교실에……?”

 

 “그래, 영어 시간인데 김재건 선생이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아까 연락을 해왔는데 내가 그만 깜박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 뭘 하라고?”

 

 “그냥 들어가 애들 딴 짓 못하게 자습 감독이나 좀 해.”

 

 “다른 선생님은 안 계시나?”

 

 “지금 마지막 시간이라 선생도 없어. 잠시 좀 들어가 앉아 있다 와.”

 

 “에이, 참.”

 

 

 창배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형이 말한 교실로 들어갔다.

 

 

 “어, 영어 시간인데!”

 

 

 영어 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오자 아이들의 눈은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창배를 바라다봤다.

 

 

 “선생님이 오늘 급한 일이 생겨 못 나오셨다.”

 

 “와!!”

 

 “조용히들 해!”

 

 

 아이들이 시끄럽게 함성을 지르자 창배가 소리를 질렀다. 일순간 교실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대학 갈 놈들이 그렇게 떠들면 되겠냐? 내가 지금부터 여기 앉아 너희들 떠드나 감시할 테니 일체 딴짓 하지들 마라. 알겠나?”

 

 “네.”

 

 

 창배는 교단 위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을 바라다보다 자기가 어떻게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었는지 의아스러웠다.

 

 

 “선생님, 저 10.26 사건에 대해 좀 아세요?”

 

 

 이때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손을 들며 창배에게 물었다.

 

 

 “뭐? 10.26……?”

 

 “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면서요?”

 

 “인마, 공부나 하지.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질문 하라 그랬어?”

 

 “헤헤. 제가 근현대사 쪽에 좀 관심이 있걸랑요.”

 

 “그래? 저, 그게…….”

 

 

 창배는 순간 며칠 전 사무실 정리하다 나온 지난 월간지에서 10.26의 재평가란 특집기사를 대충 훑고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아, 그거는……말이지. 너희 아빠 술 드시지?”

 

 “네.”

 

 “너는 네 아빠가 왜 술을 드신다 생각하냐?”

 

 “그, 글쎄요.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그런 것 아닐까요?”

 

 “좋아, 그럼 그 술을 어디서 마시겠냐?”

 

 “……그야, 친구나 직장동료하고 술집에서 마시겠죠.”

 

 “바로, 그거야. 사실, 대통령도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어려움이 많거든. 더구나 독재정치를 했으니 국민들 원성이 얼마나 높겠냐. 뭐, 누가 나를 어떻게 하지 않을까,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겠지?”

 

 “네.”

 

 “똑같아. 네 아빠하고 대통령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건 똑같단 말이야. 그렇다고 대통령이, 네 아빠처럼 쪽팔리게 길거리 소줏집에 앉아 족발을 뜯겠냐, 골뱅이무침을 먹겠냐, 안 그래?”

 

 “그래요.”

 

 “아, 오해는 하지 마. 이건 네 아빠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고, 대통령일 경우 쪽팔리다는 거야. 뭐, 서민들이야 그게 일상사니깐 창피할 일이 없지만, 대통령은 경호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그럴 수가 없잖아. 그러니깐 대통령이 술 마실 공간이 필요해서 그 공간을 국가기관이 청와대 인근, 궁정동이란 곳에 만들어 관리를 했단 말이야. 그때 그 국가기관이 중앙정보부, 바로 지금의 국정원이야. 그래서 대통령이 술 먹는다고 통보하면 정보부에서는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하고 바로 술자리를 준비했다는 거야. 음식과 물론 여자도 있었지.”

 

 “크크크.”

 

 “너, 인마 뭘 안다고 웃어? 왜 웃어?”

 

 “아녜요, 선생님. 계속하세요.”

 

 “선생님은 무슨……. 아무튼 그때, 그러니까 1979년도 10월 26일인데 그때 대통령이 지방에 행사가 있어 갔다 오다 궁정동 안가, 바로 그 공간에서 술을 먹었던 말이야. 그때 누가 있었냐 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 실장,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대통령 양옆으로 당시 신인가수였던 심수봉, 너희 심수봉 알아?”

 

 “몰라요.”

 

 “그 왜 있잖아.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이 노래 불렀던 가수, 그리고 모델인 여학생이 있었다구.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문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와 경호실장인 차지철, 이 둘 간에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 문제가 있었어. 박통이 누구한테 총 맞아 죽냐?”

 

 “김재규요!”

 

 “그래. 김재규야. 그때 차지철이 여러 가지 월권을 많이 했어. 그래서 김재규가 가뜩이나 열 받아 있었는데. 그날 술자리에서 또 김재규를 긁는 거야. 그 당시 부산 마산에서 대규모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거든. 그런데 차지철이 이 친구가 그 책임을 김재규에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거야. 그래서 김재규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자기 서재에서 권총을 뒷주머니에 꽂아 갖고 나와 대통령에게 ‘각하, 이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잘되겠습니까? 너 이 새끼 차지철, 졸라 건방져! 죽일 놈!’하고 차지철을 향해 총을 쏜 거야. 이때 박통이 김재규에게 호통을 치자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하고 박통의 가슴에 ‘빵빵’하고 총을 쐈지. 이때 대통령 양옆에 있던 여자들이 얼마나 놀랐겠냐.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박통에게 놀란 것은…….”

 

 

 어느새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아이들까지 일어나 그들의 눈은 모두 창배를 향해 있었다.

 

 

 “그 총을 맞을 와중에도 말이지, 양옆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여자들이 ‘각하, 괜찮으십니까?’하고 사색이 되어 물었거든. 그러니까 박통이 이렇게 대답했어. ‘으음…… 나는 괜찮아. 어서 자네들이나 피하게’ 이러고 쓰러졌단 말이야. 봐라! 얼마나 멋있냐. 일국의 대통령이면 이 정도는 돼야지. 안 그래?”

 

 “그래요.”

 

 “우와, 정말 끝내주는데.”

 

 “박근혜가 그 대통령 딸이야.”

 

 

 학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래서 차지철은 어떻게 됐어요?”

 

 “이때 팔에 총을 맞은 차지철이 경호원을 찾으러 나가려는 순간 김재규가 차지철을 향해 ‘빵빵’ 다시 총을 쏴 죽인 거야. 뭐, 살려달라고 사정했겠지. 나중에 김재규는 체포되어 사형 당하는데 이때 혜성같이 나타나 10.26사건을 수사한 사람이 있었는데 너희들 혹시 누군지 알아?”

 

 “전두환이요!”

 

 “그래 맞아. 이때 전두환이 보안 사령관으로 있다가 합동 수사본부장으로 이 사건을 맡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거든. 나중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이 12.12사태를 일으켜 군부를 장악해 민주화 여론을 탄압하고 5.17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장악해 졸지에 대통령이 된다. 이때 내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들과 용감히 맞섰으나 이들의 총과 탱크 앞에 처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선생님, 뻥치지 말아요. 선생님이 지금 나이가 몇이라고…….”

 

 “인마, 형님이 말하는데, 누가 감히 말허리를 끊어? 계속 들어 봐야지. 물론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이때 아주 절실히 깨달았다. 이이가 임진왜란 전에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듯이, 나는 바로 힘을 길러야 전두환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때 이미 깨달은 거야.”

 

 “우 하하하!”

 

 

 학생들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창배를 보고 배꼽을 쥐고 웃었다. 어느새 아이들의 졸음은 저만치 달아나고 눈은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서 돌발 퀴즈. 여기서 내가 수수께끼 하나 낼 테니 맞춰 봐라.”

 

 “네. 내세요.”

 

 “전두환이 대통령 취임한 이튿날 전두환의 한쪽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왜 그럴까?”

 

 “……?”

 

 “혹시, 전두환 대통령한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단상 위로 올라와 몽둥이질을 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뭐, 우리나라 경호 수준이 그렇게 허약할 정도는 아니지.”

 

 “몰라요.”

 

 “인마. 한 번 맞춰 볼 생각은 않고 그렇게 쉽게 포기해서 어디 대학 시험 보겠냐. 좋다. 대답해 주마. 취임식 날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 옆에 앉아 ‘여보,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고 확인 차 대통령의 넓적다리를 꼬집어 비틀어 그런 거야. 알겠냐? 이제 떠들지 말고 모두 조용히 공부해!”

 

 “끝날 시간 다 됐는데 그만 해요. 그런데 선생님은 무슨 과목을 가르치세요?”

 

 “나? ……응…… 사회학.”

 

 “사회학이요?”

 

 "그래."

 

 

 창배는 아이들의 물음에 얼떨결에 학부에서 전공한 사회학 과목을 말했다.

 

 

 “사회 문화 말씀인가?”

 

 “우리 누나가 사회학관데 그럼 혹시 대학교수세요?”

 

 "저 새끼는, 인마! 교수가 이 학원엔 왜 오냐?"

 

 “시끄러! 모두 조용히 해. 자, 오늘 수업 끝.”

 

 

 창배는 마침 수업을 마치는 벨이 울리자 서둘러 교단을 내려갔다.

 

 

 “선생님, 언제 또 들어오세요?”

 

 “이제 안 와!”

 

 

 문을 열고 나가며 창배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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