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늦어 미안하다. 마감기사 한 꼭지가 있어서…….”
“그리 앉아라. 바쁜데 보자고 해 미안하다.”
“어쭈, 네가 웬일이냐. 미안한 것도 알고. 재보선 선거도 이제 다 끝나고 이제 바쁜 것도 다 지나갔다. 청록당 아싸리 판 됐으니 대통령도 국민 보기 아마 면목이 없을 거다. 물가와 전세난 등 서민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여권이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민생경제 정책 완전 실패다.”
“누가 정치부 기자 아니랄까 봐. 그만해, 인마!”
“알았어. 새끼, 그동안 자숙은커녕, 그 성질머리는……. 그런데 웬일이냐? 내가 그렇게 만나자고 할 때는 애들 가르친다고 늘 요리조리 빼더니.”
“너한테 볼일이 있어.”
“볼일……? 뭔데? 네가 화성그룹을 관뒀으니까 먼저처럼 조만호 회장 울궈먹을 일도 없을 테고, 뭐 다른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면 뭐 정아 씨 소식이라도 들었든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쓸데없는 소리?”
“그년 하곤 다 끝났다.”
“너, 정아 씨 만났었냐?”
“그래, 다 정리했다.”
“아깝다. 괜찮던데.”
“시끄러. 나 학원 할 생각인데, 네 생각은 어떠냐?”
“뭐, 학원……?”
“그래. 그것도 기숙학원 한 번 해보련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애들 좀 가르치더니 이젠 아주…….”
“우리나라 일 년 사교육비가 3조 원이다. 이런 노다지가 어디 있냐.”
“3조 원이 너 주워 가라고 길에 널려 있더냐? 네가 인마 무슨 학원이야, 학원은……. 그냥 좀 더 있어 봐. 내가 자리 알아보는 중이니까. 그쪽은 내가 몰라도 다 전문가들일 텐데.”
“누구든 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네 말대로라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하다못해 대학교 다니는 일 학년들은 전부 학교에 자퇴 원서를 내야겠다. 모두 처음 시작하니까.”
“그래도 그쪽에 대해 뭔가 좀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뭐 일반 보습학원하고 별 차이 있겠냐? 그동안 형 학원에 있으면서 감 잡았다.”
“그런데 왜 하필 기숙학원이냐? 애들 먹고 자고 하는 게 여간 머리 아픈 일은 아닐 텐데”
“덩어리가 크다. 완전 사업이다. 애들 한 명당 학원비가 이백만 원이 넘는다. 이런 노다지가 세상에 어디 있냐? 가둬놓고 스파르타식으로 밀어붙일 거다. 성적만 오르면 대박이고.”
“뭐, 가축 사육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때는 별로였던 거 같은데, 요즘은 꽤나 뜨는가 보더라.”
“응. 그게 70년대 종로통 YMCA 주변이 학원 밀집 가였대. 그러다 84년대 초인가 인구 분산 정책으로 사대문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는데, 그때 아마 그 일부가 수도권 쪽으로 옮겨가면서 점차로 이루어진 거래. 이때는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도 많고 완전 군대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을 했단다.”
“지금은 그렇게 강제로 해선 안 될 거다. 언젠간 학교서도 종교를 강요한다고 헌법소원 낸 애들도 있는 세상인데…….”
“물론이지. 다른 데선 그렇게 하진 않겠지만, 난 그 식으로 밀어붙일 거다. 완전히 정신을 개조시킬 거야.”
“새끼, 애들한테 무슨 원수진 놈 같네. 그런데 나한테 볼일이란 게 뭐냐? 설마 나한테 신문사 그만두고 와서 아이들 가르치라고 하라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필요하면 와서 아이들 논술이나 좀 가르쳐라.”
“새끼, 웃기고 있네. 그런데 기숙학원 차릴 돈은 있냐?”
“사실, 그런 것 때문에 의논 좀 하려고 그런다. 너 돈 가진 것 좀 내놔라.”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인마.”
“솔직히 말해 봐. 그때 그 돈 묻어났을 것 아냐?”
“인마, 그게 언젠데 아직 있어? 저번에 이길호 그 새끼한테 다 뜯겼다고 얘기했잖아.”
“그래도 남은 것 좀 있을 것 아냐. 그동안 기자 생활하면서 촌지 모아 둔 거랑.”
“야, 넌 어떻게 기숙학원 한다는 놈이 생각도 없이 그따위로 일을 시작하려는 거냐?”
“절대 실패는 안 할 테니, 두고 봐.”
“인마, 누군 실패하고 싶어 하냐? 그런데 그거 하려면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냐?”
“그거야 하기 나름이지만 최소 수십억은 들어가지 않겠냐?”
“뭐? 너 지금 수십억이라고 했냐?”
“그래. 일이 백억은 못 쓰겠냐? 사실 그동안 기숙학원 부지를 보러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땅 사고 건물 올리려면 이삼 백억도 들겠더라. 그래서 폐교나 연수원 자리 아니면 기존학원 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 너한테 미션 하나 줄게. 혹시 너 신문사 동료 중에 교육과학기술부 출입하는 친한 사람 있으면 한번 좀 알아봐라. 나도 더 알아볼 거니깐. 싼 가격에 구해주기만 하면 너는 해방이다. 나중에 네 마누라한테 욕먹기 싫으니까. 알았냐? 그런데 너무 멀면 안 된다. 가능한 수도권 쪽이면 딱이다.”
“한번 알아볼게. 그거면 됐냐?”
“알았어. 빨리 좀 알아봐.”
***
“뭐, 네가 기숙학원을 해?”
“응. 마음 정했어.”
“…….”
“왜 대답이 없어?”
“말 같은 말을 해야 대답을 하지.”
“형, 이런 코 묻은 돈으로 돈 못 벌어. 한번 벌려 볼 거야.”
“너 의욕만 갖고 될 일이 있고 되지 않을 일이 있지. 그게 이런 학원같이 한두 푼 갖고 될 일이 아니야. 당장 돈 있어?”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게.”
“창배야! 나는 솔직히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적은 돈이 아닐 텐데, 그걸 네가 어떻게 마련할지는……, 그리고 그게 의욕만 앞서서 되는 게 아니다. 애들 교육은 백년대계라 그랬어. 그냥 구멍가게 차리듯이 얼렁뚱땅 허투루 할 생각은 꿈에도 해선 안 돼. 더구나 기숙학원은 아이들 먹고 자는 일상생활 관리가 큰 문젠데, 그걸 어떻게 하려고 그래? 행여 관리 소홀로 불상사가 발생하면 그건 치명타야.”
“알아. 나도 다 생각을 했어. 마음 같아선 형을 끌어들이고 싶지만, 우리 모두가 올인 하는 건 바람직하지가 않다구. 하여튼 형은 그렇게 알고 있어.”
***
“자, 이쪽은 교육과학기술부 출입하는 내 후배 최진혁 기자, 그리고 여기는 내 친구 김창배, 알지? 그전에 유진 나노테크…….”
“아……, 알죠.”
“김창뱁니다. 공연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윤수 선배가 워낙 잘 챙겨줘서…….”
“저기, 우리 최 기자가 전에 우리 신문 교육 섹션을 담당했었거든. 그때 기사 관계로 기숙학원 회장을 알게 됐는데, 그곳이 문 닫은 지가 한 이 년이 넘었대. 그런데 그 학원이 너무 북쪽과 가깝다 보니 누가 인수할 사람도 없고 그냥 방치돼 이도 저도 못 하는 골칫거린 가봐. 작자만 있으면 임대든, 매매든 싸게 정리하고 자식들이 있는 미국으로 아주 건너가 살겠다는 거야.”
“그게 어디 있는 겁니까?”
“연천입니다.”
“연천……?”
“아주 연천은 아니고 포천하고 중간지점으로 의정부에서 한 사십 분 정도면 간답니다.”
“얼마에 넘기겠답니까?”
“이십억 원을 요구합니다.”
“네……? 이십억 원이요?”
“네.”
“알겠습니다. 한 오억 원만 깎자고 해주십시오. 그럼 당장 계약하겠다고.”
“오, 오억이 나요!”
“네. 싫으면 못하겠다고 하세요. 아니, 그러지 마시고 최 기자님, 내일 당장 약속을 잡아 주십시오. 제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짓죠.”
“글쎄, 그렇게는 하겠는데, 그래도 오억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