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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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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플라토닉 러브
작성일 : 17-12-28     조회 : 382     추천 : 0     분량 : 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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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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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가 14층에서 멈춰 서자 손에 케이크를 든 정아는 태영이 가르쳐 준 1413호의 벨을 조심스레 눌렀다. 안에서 기척이 없자 정아는 계속해 벨을 눌렀다.

 

 

 “네……나가요.”

 

 

 잠시 후 반팔 티에 허름한 추리닝 바지를 입은 태영이 잠을 잤는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와 문을 열었다.

 

 

 “아, 정아 씨…….”

 

 “뭐예요? 사람 온다는 것 알면서……, 잤어요?”

 

 “네. 누워 책을 읽다, 깜박 잠이 들었나 봐요. 어서 들어와요.”

 

 

 들어가며 주위를 살피던 정아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주방엔 언제 먹었는지 라면을 끓여 먹은 냄비와 그릇들이 설거지통 안에 산처럼 쌓여 있고, 작은 식탁 위엔 김칫국물이 시뻘겋게 묻은 행주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리 좀 앉아요.”

 

 “어디 앉을 공간이나 있어요?”

 

 “아, 그런가……?”

 

 

 태영이 소파 위에 놓인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한쪽으로 치우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게 밖에서 만나자고 한 건데, 뭐, 굳이 오시겠다고. 커피 마실래요?”

 

 “그러죠. 그런데 그 주전자는 왜 그래요?”

 

 “아, 이거요? 몇 번 태워 먹었어요. 하마터면 화재로 쫓겨날 뻔했지 뭐예요.”

 

 

 정아가 주전자를 바라보자 태영이 밑이 시커멓게 탄 주전자에 불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어떻게 화재 발생할 것보다 쫓겨날 것을 걱정해요?”

 

 “아, 그런가요. 하하하!”

 

 “집에서도 항상 그래요?”

 

 “뭐가요?”

 

 “항상 이렇게 있어요?”

  “그럼요. 여기는 내 고유 영역인데……. 사실 우리 엄마를 제외하면 여자는 여기 정아 씨가 처음이에요. 뭐, 우리 엄마가 시골에서 올라와도 냄새난다고 그냥 갈 정도니까요. 아, 물이 벌써 끓네.”

 

 

 태영이 주방으로 가 커피 두 잔을 내왔다.

 

 

 “전엔 커피를 직접 만들어 먹었는데, 이제 그것도 귀찮아요.”

 

 “그것도 귀찮아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요?”

 

 “뭐, 그래도 학원 강의 나갈 땐 먹이를 찾으러 나서는 하이에나 같다고나 할까요. 학원에선 빈틈없이 철저, 깔끔합니다.”

 

 “깔끔이라고요……?”

 

 “그럼요. 저는 학생들을 대할 때 고객 이념으로 최대한도의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하죠. 두 얼굴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아시죠?”

 

 “잠깐만요. 태영 씨, 옷장 좀 봐도 되죠?”

 

 “네……? 오, 옷장을요?”

 

 “아니. 왜 그리 놀라요? 그냥 한번 보려고 하는 건데.”

 

 “아……, 네. 그럼 보, 보세요.”

 

 

 정아는 장문을 열고 안의 옷을 살폈다. 주로 캐주얼 복으로 청바지와 면바지 그리고 점퍼 몇 개가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옷이 없어 그런가. 비교적 정리가 잘 돼 있네요. 그런데 이건 뭐예요?”

 

 “어, 어떤 거요?”

 

 “이 보자기에 싸 놓은 거요.”

 

 

 정아는 옷걸이 밑에 보자기를 싸 놓은 물건을 가리켰다.

 

 

 “아…… 이거요? 이건 세탁소 가져갈 옷이에요. 싸 놓고 깜박해서…….”

 

 “호호호호…….”

 

 “아니, 왜 웃어요?”

 

 “옷 담아 놓은 것도 태영 씨답네요. 보자기라니…….”

 

 “아, 네…….”

 

 “그런데 양복은 보이질 않네요.”

 

 “네. 정장 스타일은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그냥 편한 게 좋잖아요. 저는 옷이 불편하면 못 입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묻죠?"

 

 “아, 제가 양복 티켓을 가진 게 있어 필요하면 드릴까 하고요. 호텔 양복점인데 꽤 비쌀 거예요. 요즘 맞춤 양복이 유행이라잖아요.”

 

 “아닙니다. 필요한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세요. 그런데 정아 씨가 웬 양복 티켓을……?”

 

 “제가 비서실에 있을 때 몇 장 얻은 거예요. 태영 씬 참 욕심이 없으시네요. 그럼 필요할 땐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참, 좋은 와인 있는데 한잔 하실래요? 82년 산 샤토 페트루스 선물 받은 건데.”

 

 “아, 괜찮아요. 제가 어제 술을 좀 많이 해서요. 저는 술을 한번 많이 먹게 되면 한 일주일간은 냄새도 맡질 못하거든요. 토할 것 같아서요.”

 

 “그럼 이거라도 좀 드세요. 들어올 때 손수레에서 할머니가 팔고 있어 하나 사 들고 온 겁니다.”

 

 

 태영은 검정 비닐 안에 든 강냉이를 꺼내 놓았다.

 

 

 “강원도 옥수수로 튀겼다는데 아주 고소합니다.”

 

 “그래요. 맛있겠네요.”

 

 “강냉이는 중독성이 있어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에 자꾸 집어먹게 되죠. 많이 드세요. 정아 씨같이 날씬한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다이어트 식품, 오…… 예!”

 

 “참 그러고 보니 태영 씬 고향이 어디죠? 혹시 강원도 쪽 아닌가요?”

 

 “아니, 대전인데요. 왜요?”

 

 “일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구운 옥수수를 사서 먹었잖아요.”

 

 “아 네, 그러고 보니…….”

 

 “태영 씨!”

 

 “네……?”

 

 “아니, 왜 깜짝깜짝 놀라고 그래요? 꼭 죄지어 불안한 사람처럼…….”

 

 “에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태영 씨!”

 

 “네. 왜요?”

 

 “우리 섹스해요.”

 

 “……?”

 

 “몰라요, 섹스? 에스…… 이…… 엑스, 안 해 봤어요? 우리 그간 만난 지가 몇 차례 됐잖아요. 그런데 태영 씨는 아직 제 손목 한번 안 잡아 봤잖아요. 그렇다면 호, 혹시……고자?”

 

 “하하하. 하고 싶어요?”

 

 “네.”

 

 “전 싫어요.”

 

 “왜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의무적으로 섹스해야 한다는 그런 동물적인 게 싫어요.”

 

 “그게 왜 동물적인 거예요? 동물이 종족 본능이 아니라 사람처럼 쾌감을 얻기 위해 하나요?”

 

 “그럼 몇 번 만났다고 꼭 해야 합니까? 아무튼, 전 싫어요. 저는 결혼할 사람한테 꼭 제 순정만은 지킬 거예요. 제가 아직 여자와 한 번도 접촉 안 한 숫총각이라면 정아 씬, 믿으시겠어요?”

 

 “호호호. 그럼 저만 음탕한 년이 되고 말았네요.”

 

 “오해 마세요, 정아 씨. 저는 저와 결혼할 여자의 과거가 어떻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단지 결혼하기 전 서로 마음만 맞으면 여자의 과거가 어떻든 그건 개의치 않을 겁니다. 플라토닉 러브라 할까요.”

 

 

 정아는 태영의 말이 꼭 자기의 과거를 두고 말하는 것처럼 절실히 마음에 와닿았다.

 

 

 “섹스하기 싫으면 그럼 나가요. 강냉이 먹은 값으로 제가 저녁 살게요.”

 

 

 정아는 태영과 함께 차를 타고 나왔다. 진영에게 미국서 온 친구가 내일 들어가게 돼 오늘 집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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