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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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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바늘 허리에 실 매랴
작성일 : 17-12-30     조회 : 370     추천 : 0     분량 : 4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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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모두 잘 들어라. 지금 너희 친구들은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아니면 학원 간다고 아마 피시방에서 죽 때리고 있을 텐데 너희는 공부하려는 장한 뜻을 갖고 이곳에…….”

 

 

 서머스쿨 개강하는 날, 창배는 재학생들을 전부 운동장에 불러 모았다. 당초 김재건 교무부장의 예상과 달리 재학생들의 숫자는 105명이 입교를 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약 한 달간의 이곳 생활을 마치고 너희가 학교로 돌아가 2학기를 맞았을 때 놀랍게 달라진 새로운 모습들을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곳의 모든 선생님은 짧은 기간 동안 여러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 질문이든 상담이든 고민이 있을 때 가만히 있지 말고 이곳에서 부모님과 같은 선생님들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고 규칙을 잘 지켜주도록 부탁한다. 알았나!”

 

 “네!!”

 

 “만일 규칙을 위반하다 걸린 놈들은 죽을 줄 알아라. 그리고 만일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공부가 되지 않을 때는 여러분을 위한 건의함에 자기 이름을 써서 넣어라.”

 

 “그럼 어쩔 건데요?”

 

 

 앞줄에 있던 한 애가 당돌하게 물었다.

 

 

 “그거는 지금 말할 수 없다. 비밀!”

 

 “에이~!!”

 

 “시끄러워. 모두 해산!”

 

 

 훈시를 들은 아이들은 모두 제각기 자기 교실로 찾아 들어갔다. 공부하기 싫어 부모의 강권으로 억지로 들어온 아이들의 얼굴은 잔뜩 부어올랐다.

 

 창배는 선생들을 잠깐 교무실로 불러 모았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지금 우리 학원은 재수생이 15명, 재학생은 학년 29명, 이학년 53명, 삼학년이 23명으로 합해야 모두 120명밖에 되질 않습니다. 재학생들이 4주 후에 돌아갈 때면 그간 재수생들이 얼마나 늘게 될지는 모르지만, 만일 학생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학원 문을 닫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창배가 개강 날 하필 문 닫는 얘기를 꺼내자 교무실 안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쨌든…….”

 

 

 창배는 잠시 숨을 골랐다.

 

 

 “……여러분들은 지금 들어온 재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창배는 마치 당부라도 하듯 선생 하나하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들은 마치 하나의 밀알과 같은 존재들로 이들이 돌아가서 잘 돼야 우리 학원의 이름이 알려지고 학원이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앞장서 이끌어 갈 테니,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우리 대천 아카데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도록 노력해 주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창배가 이야기를 마치자 선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 수업 교실로 들어갔다.

 

  ***

 

 “교무부장!”

 

 “네.”

 

 “잠깐 나 좀 봐요.”

 

 

 창배는 교무부장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다름이 아니고 일학년은 내가 학년 담임을 맡을 테니 최창식 선생은 빼도록 해.”

 

 “학년 담임을 맡게요?”

 

 “응. 애들 갈 때까지 내가 직접 여기서 자며 지도할 거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일학년 중에 조재영 학생 있지.”

 

 “재영이요?”

 

 “그래 내가 직접 데리고 온 애 있잖아.”

 

 “아……, 네.”

 

 "걔, 틈나는 대로 불러다 영어 좀 봐줘.”

 

 

 창배는 서랍에서 봉투를 한 꺼내 교무부장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수고비야, 이백인데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주는 거야.”

 

 “아니, 원장님이 주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는데.”

 

 “받아 둬, 그래야 더 책임을 가질 것 아닌가.”

 

 “조재영이 누군데 그러십니까?”

 

 “응. 내가 좀 알아.”

 

 

 김재건은 봉투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부리나케 강의실 쪽으로 달려갔다.

 

 창배는 시계를 들여다봤다. 형 창식이 도착하려면 4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일산에서 학원을 운영하면서 이곳까지 강의를 하러 오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강의시간을 가능한 오후 편한 시간으로 돌려주고 싶은데, 그 시간은 우선 멀리서 오는 다른 선생들을 배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창배는 일단 대천 아카데미가 자리를 잡으면 형 문제는 그때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지갑에서 꺼낸 수표 다섯 장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

 

 “너, 누구냐?”

 

 “기, 김수용이요!”

 

 

 아이들이 취침에 들어간 후 그때까지 원장실에 앉아 있다 침실로 돌아가려던 창배는 화장실에 불이 켜진걸. 발견하고 화장실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그러다 어정쩡한 자세로 쭈그려 앉아 물을 틀어 놓고 있던 아이가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그런데 지금 시간에 여기서 뭘 하는 거야?”

 

 “저…… 저, 똥……똥을 쌌어요. 바지에…….”

 

 “뭐, 똥을 싸…….”

 

 “……네.”

 

 “이런 한심한 놈 같으니. 네가 이놈아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냐?”

 

 “무, 무서워서……,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서 억지로 참다가…….”

 

 “너 이학년이지?”

 

 “네. 맞아요.”

 

 

 창배는 교무부장에게 이학년 중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 아이임을 알아챘다.

 

 수업이 전부 끝나 침실로 들어갈 때도 다른 아이는 빨리빨리 정리해 교실을 떠난 후에도 책상 정리를 못 해 쩔쩔매고 침실엔 개인 사물들을 정리 못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소위 생활 부적응자라는 것이었다.

 

 

 “이리 와. 선생님하고 욕탕으로 가자. 여기서 물을 쓰면 소리가 나고 혹시 아이들한테 방해가 될지 모르니까 그리로 가자.”

 

 

 창배는 아이를 데리고 지하 욕탕으로 가 옷을 전부 벗겨 씻겼다.

 

 

 “인마, 너 다 큰 놈이 이게 뭐냐? 창피한 걸 알아야지. 너 혹시 집에서도 그러는 것 아니냐?”

 

 “아, 아니에요. 집에서는 안 그래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렇게 해봐. 손 떼 인마. 네 꼬추 안 따가. 어휴……냄새! 이거 큰일 났다.”

 

 

 창배는 아이를 씻긴 후 새벽에 닦으러 올 아이들이 냄새날까 싶어 욕실 바닥을 정성스레 물로 닦아냈다.

 

 

 “자, 가자. 이제 괜찮냐?”

 

 “네.”

 

 “사내놈이 뭐가 무섭다고 그래. 너보다 어린 여학생들도 있는데. 너 혹시 무서워 못 있겠으면 집에 가지 않을래? 선생님이 보내줄게.”

 

 “싫은데요. 끝날 때까지 있을 거예요.”

 

 “그럼. 그래야지. 앞으로는 무서우면 얘기해라. 선생님이 같이 가 줄 테니. 그리고 너, 선생님이 가만히 보니까 열심히 공부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선생님이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열심히 하자.”

 

 “네.”

 

 

 창배는 적응하기 힘들어하면서도 집에 가겠다고 하지 않는 아이를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창배가 접해 본 바로 재수생과 달리 재학생들은 아직 철들이 없어 그런지 모두 천방지축이었다. 비록 한두 살 차이지만 재수생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번 대학에 실패했다는 쓴맛이 그들에게 인생의 깊은 굴곡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창배는 재수생과 달리 재학생들에겐 적응 기간과 상관없이 나갈 때까지 일절 전화를 금하게 하고 학생들이 갖고 들어온 물건 외에 추가로 필요한 물건도 일체 보내지 못하도록 학부모들에게 간곡히 당부를 했다.

 

 부족한 걸 모르고 자라 모든 게 풍족한 아이들에게 물건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창배는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재수생과 달리 이번 여름 계절 학기에 들어온 학생들을 모델사례로 삼아 한 달을 일 년으로 압축한 텍스트로 삼을 예정이었다.

 

 다른 기숙학원에서는 어떻게 할지 몰라도 기숙학원 경험이 전무한 창배는 이들 학생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한 마리의 고기'가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아는 게 정말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 하나를 더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스스로가 공부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나태한 습관을 고치도록 하는 것, 이것을 스스로 깨쳐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였을까, 창배는 학생들을 깨우는 음악 소리에 일어나 추리닝으로 갈아입었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김재건 선생의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는 동안 창배는 아이들이 자는 침실을 돌며 침구 정돈 상태를 점검했다.

 

 아이들 스스로 규칙적으로 자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침실정돈 상태가 불량하면 체크해 다음 날 아침체조 시간에 벌을 가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태도는 놀라우리만치 달라졌다.

 

 수업시간 졸거나 떠드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들이 이름을 적어오면 아이들을 모아 학원 뒷산 산악구보를 시켰다. 그러자 교실은 수업시간이면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초실력이 없는 아이들이 문제였다. 특히 수학 시간이면 다른 과목 공부를 하거나 책상에 엎드려 있는 수포자가 한 반에 몇은 꼭 있었다.

 

 다른 과목 시간엔 상당히 열의를 갖고 하는데 꼭 자신 없는 과목 시간엔 공부를 포기한 아이처럼 딴짓을 하곤 했다. 이런 아이들은 면담 결과 기초학력이 부족했다. 특히 수학의 경우는 원래 셈이 느린 데다 중학교 때부터 수학에 별 관심이 없다 보니 거의 포기한 학생들이었다.

 

 창배는 각 학년별로 조사해 수학 기초가 아주 부족한 학생들은 학년 구분 없이 따로 모아 영 교시 수업과 정규 수업 후 중학교 과정을 다시 시작하도록 했다. 방법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공부를 하겠다면 어차피 한번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사안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창배는 이번 수능이 끝나면 바로 이 방법을 내년까지 일 년을 가야 할 재수반 학생들에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을 수는 없는 법. 여하튼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활용방법이라 생각했다.

 

 창배가 각 침실을 살핀 후 원장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행동이 빠른 아이들은 벌써 가방을 챙겨 교실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창배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선생들이 나올 것에 대비해 양복을 입는 동안 영 교시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늦은 아이들을 급히 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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