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사장님, 아니십니까?”
창배가 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자 최기원 스페이스 건축연구소 소장이 달려 나와 아는 체를 했다.
오지희가 간사를 맡고 있는 모임에 창배가 모처럼 얼굴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모두 반갑게 창배를 맞았다.
“참, 오랜만입니다. 정리는 잘 됐죠?”
“네. 덕분에…….”
“최 사장님 덕분에 제가 설계 공모 당선된 화성그룹 파주 프로젝트 건은 진행이 잘 되고 있습니다. 정말 공사만 완공되면 일본 디즈니랜드를 능가하게 될 겁니다.”
“그거야, 최기원 씨, 능력이죠.”
“무슨 말씀을, 오늘 제가 단단히 한턱 쏘겠습니다. 저녁에 시간 어떻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간 연락이 되질 않아, 최 사장님 옛 연락처로 몇 번이나 수소문을 했었어요.”
“그랬을 겁니다. 그간 경황이 없어서…….”
“최창배 씨, 그동안 도움을 못 줘 죄송합니다. 어쨌든 그 건은 처음부터 이길호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져 다행입니다. 그간 애꿎게 고생 많았습니다.”
재경원에 근무하는 이정빈이 말했다.
“저도 인사할 기회를 좀 주셔야죠.”
“최 부장님, 아니 최 사장님, 인사하세요. 지난번부터 우리 모임에 나오기 시작한 서울 재즈 오케스트라, 김명훈 단장입니다.”
오지희가 옆 사람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창배는 오랜만에 만나는 다시 보게 된 얼굴들이 반갑긴 하지만 예전과 달리 왠지 조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전에 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분위기 주도를 창배가 해 나갔지만, 지금은 내세울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돈과 명예 그 어느 것 하나도……. 특히 명예는, 부장으로 한 그룹의 중추적 역할을 했었고, 잘 나가는 벤처회사 대표를 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창배 씨, 혹시 연락처 좀…….”
“아, 제가, 아직 명함이…….”
정신 신경과 의사인 박재원이 말하자 창배는 주뼛하며 말했다.
“하긴……, 좀 있어야 되겠죠.”
“네, 이제 곧 시작할 겁니다.”
창배는 아직 학원을 한다고 말하기가 좀 쑥스러웠다. 사람들이 너무 생경하게 생각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제대로만 된다면, 상당히 매력 있는 분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사업으로 어디서든 떳떳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원들 모두가 저녁을 먹고 이차로 와인 바로 갔지만 창배는 선약을 핑계로 나와 인근의 카페에 가 앉았다.
잠시 후 모임에 합류했던 오지희가 슬그머니 빠져 카페에 나타났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최 부장, 아니 최 사장님, 어휴, 이거 참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최창배 씨라고 해요. 편안하게…….”
“최창배 씨? 아이, 좀 이상하네요. 그냥 화성 그룹에 있을 때처럼 최 부장님이라고 할래요. 최 사장님이란 것보다 낫죠?”
“그럼, 그렇게 해요.”
“그간 어쩜 그렇게 연락이 없었어요?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지희 씨도 구치소 한번 가 봐요. 그렇게 되나…….”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저, 진급했어요. 차장으로…….”
“그거참 잘됐네요. 진작 돼야 했었는데.”
“다 최 부장님 덕분이죠, 뭐.”
“그런가요?”
“참, 앞으로 뭐 하실 거예요?”
“사실, 아까 얘기를 안 했는데, 그간 학원을 하나 차렸어요.”
“…… 학원…… 이요?”
“네. 저기 연천 쪽에 기숙학원을 하나 냈어요.”
“어머, 그래요. 진작 알았더라면 축하 화환이라도 하나 보내는 건데…….”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기숙학원이면, 재수생들…….”
“네. 대학 재도전하는 학생들 먹고 자며 공부하는 데죠.”
“그런데 어떻게 그걸 할 생각을 하셨어요? 전혀 뜻밖인데…….”
“뭐, 사실 제가 2세 교육에 원대한 뜻을 갖고 있었다고 할까요. 하하하.”
“저기, 오늘 나오진 않았지만, 우리 모임에 나오는 교육과학기술부에 근무하는 양기태 씨, 혹시 모르세요?”
“글쎄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보면 알 것도 같은데.”
“아마 알 거예요. 처음부터 계속 모임에 나왔었으니. 뭐, 그쪽 일과 관련된 건 없나요?”
“뭐, 조그만 학원인데 거기까지…….”
“네에, 앞으로 빠지지 말고 참석하세요. 좋잖아요. 우리 모임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니 세상 돌아가는 알고.”
“그러죠. 그런데 저를 보자고 한 용건은 뭡니까?”
“저어…… 그게 다름 아니고, 화성그룹 광고 건 때문인데…….”
“광고……?”
“네. 대행 기간이 벌써 끝나가잖아요. 그래서 최 부장님이 한 번 더 신경 좀 써 주셨으면 하고요.”
“어휴, 제가 그만둔 지가 언젠데…… .”
“그래도 아직 그만한 힘은 있을 것 같은데요. 좀 부탁드릴게요. 저도 저지만, 이번엔 우리 휴먼의 김일두 부사장 진급이 달려 있거든요.”
창배는 순간 화성그룹에 있을 때 이 건으로 부사장 김일두로부터 오천만 원을 받아 챙긴 것을 떠 올렸다.
“꼭 알아봐 주세요. 부탁할게요. 참, 그리고 언제 우리 모임 회원들이 학원을 한번 방문하도록 추진할 건데, 최 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아마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텐데,”
“그래요? 거 좋은 생각입니다.”
창배는 유수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학원을 방문하게 되면 학원의 이미지를 높이는 홍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