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전화 좀 받아 주세요. 저 지금 수업 들어갑니다.”
창배는 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교무부장의 말을 듣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전화……?”
“오늘 아침부터 학원 입학에 관해 묻는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어요. 한 분은 오후에 상담 차 방문한답니다.”
“……?”
창배는 교무부장의 말을 들으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창배는 어젯밤에도 늦게 상담 선생을 찾는 전화를 받았던 것을 생각했다. 밤 한 시 경 아이들이 자는걸, 확인하고 들어오자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술에 취한 남자가 자기 아이 입학에 대해 물어보는데 아침에 다시 전화하라고 끊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치 마른 땅에 물 적시는 격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창배는 그게 혹시 <여성 성지> 효과를 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응. 알았어. 빨리 들어가 봐!”
교무부장이 들어가고 조금 있자 원장실 창 너머로 낯선 차가 한 대 들어와 멈춰 서는 것이 보였다. 창배는 문을 열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교무실 문이 열리더니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주춤하며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 학원 입학 때문에 왔는데요.”
“혹시 오늘 오후에 오시겠다고 전화하신 분인가요?”
창배는 교무부장이 한 말이 생각나 물었다.
“아니, 전화 한 적이 없는데…….”
창배는 상담실로 안내해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학생은 성적이 좋은 편으로 강남 대성학원을 5월까지 다니다, 집에서 죽 혼자 공부를 해왔다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묻혀 해오다 보니, 자꾸 뒤처지는 것 같고 점점 나태한 생각이 들어왔다고 했다.
창배가 교육 커리큘럼에 관해 이야기하고 학원시설 안내를 하려 하자 학생 엄마는 됐다며 바로 학원비와 교재비 등을 결제했다.
“저, 그럼 준비를 해서 내일 올게요.”
학생 엄마가 떠난 후 창배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아, 시발 진작 물어볼걸’
창배는 한번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아마 어디서 학원 소식을 들었는지 그렇게 입학을 쉽게 결정한 것을 보면 의외로 대천 아카데미의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
오후에는 두 학생의 부모가 찾아와 등록하고 세 명의 학부모가 와 상담을 하고 갔다.
정적 속에 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한꺼번에 학부모들이 찾아오자 창배는 얼떨떨했다.
교무부장도 쉴 틈도 없이 상담하다 수업에 바로 들어가고 이 상태가 얼마간 지속된다면 학생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빨리 필요 인원을 더 보강하고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이것 좀 보세요.”
창배는 교무부장이 들고 온 신입생 생활기록 카드를 들여다봤다.
학생의 아버지는 쓰리 스타 장군이었다.
“아까 오신 분들 대부분은 다 재남이 어머니가 소개해 오셨어요.”
창배는 조영기 사장 부인이 얌전한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마당발인 줄 생각도 못 했다. 창배가 조영기의 집에 갔다가 온 후 재영이 형 재남이가 학원에 입소하러 올 때 조영기의 부인은 친구 아들 넷을 함께 데리고 왔다.
그 후로도 조영기 부인이 소개해 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아빠가 변호사, 은행 임원, 국영기업체 사장 등 사회적으로 내로라하는 사람들로 자식이 재수해 학원 다닌다는 사실을 드러내 놓고 말하기가 좀 껄끄러운 사람들이었다.
“이러다 우리 대천 아카데미가 무슨 귀족 학원이 되는 것 아닙니까?”
“아 참, 내가 그걸 깜박하고 있었다.”
“……?”
창배는 종이에 조영기 부인이 데리고 온 네 명의 학생 이름을 적어 교무부장에게 건넸다.
“얘들도 재남이 처럼 영어 특별 수업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영어는 김윤식 선생하고 김 부장이 나누어서 해봐.”
“어떻게 나눌까요?”
“당신이 둘 맡고, 나머지는 김윤식 선생이 맡도록 하지.”
“저한테 세 명을 주세요. 제가 시간이 좀 있습니다.”
“걔들 모두 서울대 가야 해. 자신 있어?”
“책임지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 매달 육백, 아니 팔백을 줄 게.”
***
점차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자 창배는 형과 그 대책 마련에 부심하였다. 늘어나는 만큼 내부적으로도 어떤 제도화된 조직체계의 필요성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이젠 주먹구구식으로 해선 안 되고, 제대로 틀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이제 조직을 교무부, 총무부, 학생부, 관리부 이렇게 네 파트로 나누면 어떨까 싶다. 현재 있는 사람들은 하고 있는 일의 성격에 따라 그대로 집어넣으면 될 거고.”
“이 조그만 조직에 파트가 너무 많지 않아? 관리부는 그냥 총무부랑 합쳐 버리면 될 것 같고. 생각 같아서는 부 단위도 과로 바꿨으면 싶은데."
"대외적인 것도 생각해야 돼."
"그런가?”
“제일 중요한 것은 아마, 학생부가 될 거다. 서울대 갈 애가 연고 대 간다고 학원 문 닫는 일이야 없겠지만, 만일 학생 하나가 잘못돼 사고가 나거나 급작스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그 학원은 끝장이다. 그만큼 학생부 선생들의 역할은 중요한 거야. 이제 너나, 교무부장이나 학생부 일에서 손 떼고 제대로 학생부장과 생활지도 선생들을 뽑아 주먹구구식 운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의 아이들 생활지도는 지도 선생 세 명과 창배, 교무부장이 숙식을 함께하며 해왔는데, 점차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관리 업무 폭주로 몹시 힘이 들었다. 더구나 수업과 함께 그 일을 하려니 수업과 지도 둘 다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학생부 일을 맡아 끌고 나갈 마땅한 사람 어디 없을까?”
총무부 일은 때마침 회사를 그만둔 창식의 손아래 동서가 포천으로 이사 와 출퇴근을 하며 맡고 있어 문제 될 게없었지만, 학생부를 책임지고 끌어나갈 사람이 문제였다.
‘자릴 잡으면 연락 한번 주세요.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창배는 순간 시청 앞에서 나영호와 술을 먹었을 때 나영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영호는 창배가 유진 나노테크에 데리고 있기 전 윤수와 삼성동 센트럴 빌딩 20층에 자리 잡은 이길호의 벤처기업 엠엔 알을 방문했을 때 마침 이길호에게 보고를 마친 나영호가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 나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비록 그때 나영호가 이길호의 하수인이긴 했지만, 그의 능력과 충성심은 높이 살만했다. 결국, 나영호도 이길호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엠엔 알과 유진 나노테크의 각부 업무를 총괄했었으니까 학생부장으로서 아이들 관리 능력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저 사람 어떨까?”
“누구?”
“전에 내가 데리고 있던 나영호 부장.”
“왜, 하필…….”
“괜찮아. 그 사람도 결국 자기 일을 충실히 하다 당한 건데.”
“그럼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일은 시키는 사람이 편해야 하니까. 그리고 이제 내 수업은 그만 뺏으면 한다.”
“……?”
“이제 너도 학원 일을 어느 정도 해 봤고, 기업이란 큰 조직을 맡아 본 경험도 있으니까 충분히 혼자서 해나갈 수 있을 거야.”
“애들 특별 수업은……?”
“참, 그런데 걔들한테 돈 너무 많이 받는 거 아니냐.”
“많이는, 뭐. 대신 열심히만 해 줘.”
창배는 영수 과목당 일천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 심리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삼천만 원이라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창배가 기업에서 여러 큰일을 해본 배짱에서 해본 생각이었다.
“어쨌든 그 애들 수업은 힘이 들더라도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은 와서 해줄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때 나와 의논하면 되고.”
“그런데 대외적인 학원 원장은 형 이름으로 조금 더 그냥 놔두는 게 낫겠어.”
“그건 뭐, 누구라도 상관없잖아. 나야, 뭐 형식적인 원장인데, 뭐.”
어제 일자로 창배가 인원 현황을 보니 문 이과 합해서 거의 140명에 육박했다. 현재 5개 반을 운영 중인데 창배는 반을 두 개 더 늘려 7개 반을 만들어 기존 아이들을 위해 분반을, 그리고 더 들어올 아이들에 미리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