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이것 한번 보시죠!”
창배가 점심을 먹고 이를 닦기 위해 문을 나서는데 나영호가 뭔가 내밀었다.
“이게 뭐야?”
“일전에 내부 공모한 것 있잖습니까?”
“내부 공모……?”
“아, 얼마 전 스토리텔링에 관해 이야기한 것 있잖습니까?”
“아, 그거……?”
창배는 그제야 생각났다. 며칠 전 나영호가 와서 건의 한 내용이 있었다.
원장님, 이제 학원이 자릴 잡아가는데 우리 대천 아카데미도 뭔가 문화적으로 포장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화적 포장……?
네. 저, 스토리텔링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
함평은 나비 축제, 장성은 홍길동, 경춘선에 김유정역이 있는 것처럼 우리 학원도 나무, 돌 이런 자연물에도 뭔가 이야기를 꾸미자는 겁니다. 소위 말하면 신화를 만들자는 얘기죠. 단군신화도 사실 청동기 시대 부족의 선민사상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까.
그건 어떡하는 건데?
취지를 설명하고 한번 내부 공모를 해 보도록 하죠.
그래, 그럼 나 부장이 한번 해봐. 그런데 나 부장은 어떻게 그런 쪽으로도 재주가 있지?
제가 부모님 뜻대로 경제학을 했지만, 사실 김지하 선생 미학과 후배가 될 뻔했잖습니까.
“어디 한번 봐.”
“한 일곱 건이 들어왔는데, 취지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하고 너무 지역색이 나타나는 것은 뺐고, 이 세 가지가 실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의 나무……?”
창배는 종이를 받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희망의 나무>
우리는 공부하다 힘들 때마다
이 나무를 올려다보며
이 우뚝 선 거목을 키운 모진 비바람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 앞에 힘들고 좌절할 일-
그러나 세상에 힘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것 어디 있으랴
그간 우리 앞을 스쳐 간 대천의 많은 선배는
이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불렀다
이제 내가 이 나무 아래에서 다시 그 희망을 본다.
"이건 언어 김창호 선생이 제공한 건데, 우리 본관 앞에 있는 이 큰 나무 앞에 이 내용을 쓴 안내 게시판을 만들어 세우자는 겁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나무 앞에 서서, 이 나무가 겪어 온 수십 년간의 풍상을 생각하고 현재의 잠깐 힘든 것을 이겨나가자는 얘깁니다. 사실 재수 몇 개월은 극히 짧고 빨리 지나가는데 아이들은 그걸 깨닫지 못하는 거죠.”
“그럴듯하군. 그리고 이건……?”
“이건 윤리 선생이 낸 건데 대로에서 우리 학원 들어오는 길을 ‘산파로’라고 이름 지어 부르자는 겁니다.”
“산파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서 나온 말로 산파란 아이 낳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인데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걸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거는 제가 생각한 건데, 우리 이 본관 뒤에 샘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뭐, 조그만 샘 말인가?”
“네. 그것을 조금 꾸며 어사천(御賜泉)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사천?”
“네. 임금이 내리신 물이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등지에서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이곳을 지날 때 바로 이곳에 들러 이 샘물을 먹고 붙었다고 하는 겁니다. 특히 이 물을 먹은 문종 때 김시헌이라든가 예종 때 박수연, 이런 사람들은 장원급제는 물론이고 나중에 영의정까지 했다고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 실제 인물이야?”
“그건 아니죠. 제가 지금 막 생각해 낸 사람들이니까. 어쨌든 그때 과거 시험이나 지금 수능이나 같은 국가 고산데, 뭐 문제 될 게 있습니까?”
“음, 글쎄.”
“아마, 우리 학원을 찾는 학부모들에게 학원 안내를 해 줄 때 재미도 있고 상당히 마음에 와 닿지 않겠습니까?”
“좋아. 아주 좋은 아이디어야!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럼 어사천에도 관광지 안내에 붙는 그런 안내 게시판 있잖아? 그걸 붙여, 지금 당장!”
창배는 죽은 스티브 잡스도 신제품을 만들어 낼 때는 아마 이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문화적 충족감으로 기분이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