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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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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문화의 위대성
작성일 : 18-01-10     조회 : 354     추천 : 0     분량 : 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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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배야, 이번 전국 모의 평가, 난 정말 그렇게 대천 아카데미 애들 성적이 잘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물론, 뭐 교과부와 한국 교육과정평가원 방침대로 문제가 쉽게 나오긴 했다지만, 어떻게 우리 학원에서 언, 수, 외 만점자가 두 명이나 나올 수 있느냐는 얘기야.”

 

 

 창배는 수업을 하러 일부러 일산에서 온 형과 잠시 원장실에서 차를 나누었다.

 

 

 “문과, 이과 각 SM 반은 완전 대박이야, 대박. ST, SC 반도 모두 중상위권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그래서 격려 차원에서 이번에 선생 모두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할 거야.”

 

 “나는 재남이하고 혁준이가 수학을 어떻게 볼까, 약간 부담스럽긴 했는데, 이놈들 이대로 라면 서울에 있는 의대 어디고 골라서 갈 수 있겠다.”

 

 “그래도 형이 수학을 잘 가르치긴 하나 봐. 애들 부모들한테 과목당 한 천만 원씩 달라고 해볼까.”

 

 

 창배가 조영기 사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무튼, SM 반 애들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남은 기간 동안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연습을 계속 반복해 시켜라. 그리고 수능이 쉽게 출제되기 때문에 ST 반, 특히 SC 반 애들은 지금부터라도 마무리 잘하면 상위권 도약이 가능해. 다시 한번 기본 개념과 원리 중심으로 학습시키는 것 잊지 말고.”

 

 “지금 수시모집에도 바짝 신경 쓰고 있어. 형 말대로 문제가 쉽게 나오기 때문에 재수생과 최상위권 애들이 이번에 특히 수시에 많이 몰릴 거라구.”

 

 “나중에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급이 나오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이대로 수능 때까지 잘만 끌고 나가면 정말 대천 아카데미는 대박이다. 어쩌면 아마 이 시설로는 아이들을 더 받을 공간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

 

 

 창배는 형 창식의 말을 들으며 학원 사업에 대한 의욕이 부쩍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강의동과 침실 건물을 더 늘릴 생각이었다.

 

 이제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수능을 앞두고 창배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선생들이 최대한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도록 할 생각이었다. 필요하면 현재 다른 곳으로도 강의를 나가는 선생들을 이곳에 붙잡아두고 아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수능 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물론 선생들에 대한 그 보상은 파격적으로 해 대한민국 최고 강사라면 모두 이곳에서 강의하기를 원하는 그런 학원을 만들고 싶었다.

 

 학원이라는 게 말로는 이세 교육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구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철저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창배는 화성그룹과 벤처회사를 운영하면서 얻은 기업의 경영 논리를 철저히 학원사업에 활용할 생각을 했다.

 

 

 “지난번, 집 대출받은 것 이번에 갚아버려. 돈 마련해 줄 테니.”

 

 “그거 신경 쓰지 마라. 이자 잘 내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우선 이 학원 일 에나 바짝 신경 써.”

 

 “노인네들 괜히 걱정한 다구. 마음이나 편안하게 해 줘야지.”

 

 “걱정하지 마.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건 내가 갚도록 하마.”

 

 “원장님, 학부모님이 좀 뵙자고 하는데요.”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나영호가 말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이면 학생 면회 오는 부모들이 있지만, 원장을 찾는 경우가 없어 창배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 신데……?”

 

 “재남이 아빠랍니다.”

 

 “뭐, 재남이 아빠?”

 

 “네.”

 

 

 창배는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영기는 게시판 앞에 선채 붙여 놓은 게시물들을 보고 있었다.

 

 

 “어? 사장님이 웬일이십니까?”

 

 “아들 보러 왔다. 공부 잘 하는 우리 아들. 최 부장, 이리 좀 와 봐라.”

 

 “창배는 조영기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얘, 말이다. 얘. 내 아들이 맞지? 8월 모의고사 일급 장학생이 된 것 말이다.”

 

 “재남 이가 말 안 하던가요?”

 

 “그놈의 자식, 멋대가리가 없어가지고…….”

 

 “수학이 어렵게 나왔는데, 다행히 재남이 수학 점수가 좋아 표준점수가 연대 의대 갈 놈보다 3점이 더 높았습니다.”

 

 “그, 그런가…….”

 

 

 조영기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자, 그러지 마시고 이리 오세요.”

 

 

 창배는 조영기를 원장실로 안내해 갔다.

 

 

 “더구나 어제 실시한 전국 모의 평가 가채점 결과, 그 성적도 엄청 잘 나왔습니다. 뭐, 이제 의사 아들 하나 두게 생겼습니다.”

 

 “우 하하하!”

 

 “아니,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난, 너무 좋으면 사정없이 웃음이 나와.”

 

 “이번에 재남이 특별 과외 하는 선생들 돈 좀 올려줘야겠습니다.”

 

 “그래? 얼마나……?”

 

 “한 과목당 천만 원씩 주십쇼. 그리고 이번 기회에 아예 물리하고 화학 과목도 하나씩 더 붙이세요. 물리를 가르치는 천체우주 선생하고 화학의 칡덩굴 선생도 쪼이하고 고스트 선생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입시계를 뒤흔드는 최고 수준의 일타들 입니다. 한두 달만 바싹하면 의사 아들 봅니다.”

 

 “최 부장, 아니지. 여기서는 원장이라고 해야 맞겠지. 난 대천 아카데미 최 원장한테 모든 걸 다 일임한다. 아, 오늘 정말 기분 굿이다. 내 아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할 줄 몰랐어.”

 

 “저, 사장님!”

 

 “응? 왜?”

 

 “저…… 말입니다. 제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뭔데?”

 

 

 창배는 조영기가 기분이 좋은 걸 보고 오지희 건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화성그룹 광고건 말입니다.”

 

 “광고……?”

 

 “네. 그 광고 대행 기간이 끝 나가는데, 그 건을 휴먼에서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십쇼.”

 

 “휴먼이면……?”

 

 “그 왜 있잖습니까? 말레이시아 리조트 시에프 만든…….”

 

 “아, 거기? 흐흐흐.”

 

 “왜 그러십니까?”

 

 “응. 아, 아냐.”

 

 

 조영기는 정예와의 한때 뜨거웠던 추억이 떠올랐다.

 

 

 “잘 하잖습니까? 그곳에 한 번 더 주세요.”

 

 “응. 그렇게 하지, 뭐. 최 원장이 부탁하는데…….”

 

 “고맙습니다. 재남이 수업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나가시죠. 모처럼 오셨는데, 학원 구경도 한번 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창배는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 되어 조영기를 안내해 밖으로 나갔다.

 

 

 “저거, 사장님 타고 오신 차 아닙니까?”

 

 “응. 내가 직접 몰고 왔어.”

 

 “그런데,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아, 눈은 되게 밝네. 모른 척해라.”

 

 

 조영기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산정호수 바람 좀 쐬러 갔다 오는 길에……. 아 그런데 학원이 생각보다 꽤 크고만.”

 

 

 조영기는 쑥스러운지 말머리를 돌렸다.

 

 

 “이거 인수하는데 돈은 얼마나 들은 건가?”

 

 

 “거의 칠십억 들었습니다.”

 

 “음, 그렇군.”

 

 “저기 좀 보시죠?”

 

 

 조영기는 창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다봤다.

 

 

 “저기 사장님이 쭉 들어오신 저 길 이름이 산파 롭니다.”

 

 “산파로……?”

 

 ‘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서 그 이름을 차용했죠. 산파라는 게 뭐, 아기를 낳는 것을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지식을 알게끔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는 겁니다. 사장님 소크라테스가 한 말 있죠? ‘너 자신을 알라’는 거."

 

 “……?”

 

 “사장님, 재남이 왜 공부시킵니까?”

 

 “그야 물론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서지."

 

 “좋은 대학은 왜 보냅니까?”

 

 “그, 그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아닌가?”

 

 “왜 잘 먹고, 잘 살아야 하죠?”

 

 “좋으니까.”

 

 “왜 좋죠?”

 

 “잘 먹고, 잘 사…… 에이, 몰라. 더 이상 묻지 마!”

 

 “'너 자신을 알라' 바로 사장님이 모르고 있는 이 무지를 알도록 깨우쳐 주는 게 바로 이 산파술입니다. 자 이번엔 이리 오시죠. 여기가 한 삼천여 평 됩니다. 그래서 곳곳에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 나무가 바로 학원 홈페이지 바탕 화면에 나와 있는, 그 '희망의 나무'입니다.”

 

 

 조영기는 나무 아래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이 안내판에도 나와 있지만, 이곳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때론 힘들어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사실 재수 몇 개월은 잠깐이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 짧은 기간이라도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이 나무가 백여 년 동안 크면서 겪었을 그 험난한 세월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이 나무가 백 년이나 된 건가?”

 

 “정확히 백삼 년 됐습니다. 그래서 그 긴 세월을 생각했을 때 단 몇 개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을 받아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나무에서 희망을 얻어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간 아주 공이 큰 나무죠. 우리는 이 나무를 '부원장 목'이라고도 합니다."

 

 "부원장 목……?"

 

 “이 나무에 부원장 직함을 내린 거죠. 속리산에 있는 정이품송처럼. 자, 이젠 저쪽 본관 뒤, 산으로 연결된 곳으로 한 번 가실까요.”

 

 

 창배는 천천히 걸어 본관 뒤로 안내했다.

 

 

 “자, 이 물을 한번 마셔 보세요.”

 

 

 창배는 샘에서 표주박으로 물을 떠 조영기에게 건넸다.

 

 

 “카아-.”

 

 “어떠십니까?”

 

 “시원한데.”

 

 “혹시 머리에 어떤 느낌이 와닿지 않습니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 샘은 어사천 이라고 합니다.”

 

 “어사천?”

 

 “네. 임금이 내리신 물이라는 뜻이죠. 조선 시대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등지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우리 학원을 들러 바로 이 샘물을 먹고 급제했습니다. 특히 문종 때 김시헌 이라든가, 예종 때 박수연, 이들은 장원급제는 물론이고 나중 영의정까지 지냈죠. 이제는 우리 학원에서도 이런 인물이 나올 겁니다.”

 

 “참, 기막힌 학원이네! 백억 원을 주고 인수했더라도 아깝지 않을 학원이야.”

 

 '헉…… 백억!'

 

 창배는 새삼 문화의 위대성을 느꼈다.

 

 ‘맞아,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란 여자가 그랬어. 세상을 바꾸는 힘은 마법이 아니라 바로 상상력이라고'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창배와 조영기는 재남이 교실이 있는 본관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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