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씨, 지금 어디야?”
“응. 거의 다 왔어.”
“빨리 와. 음식 다 식어.”
정아는 식탁에 음식이 다 차려지자, 실내의 불을 모두 끄곤 준비한 촛불을 켰다. 식탁 위엔 하트 모양의 케이크가 놓여있다. 거울을 꺼내 다시 한번 얼굴을 매만지곤 귀밑에 살짝 향수를 뿌렸다.
이윽고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진영 씨?”
“응.”
진영이 들어서자 정아는 달려가듯 다가가 진영의 품에 안겼다. 정아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수 냄새에 진영은 불현듯 섹스 충동을 느꼈다.
“이것 봐, 진영 씨. 어때?”
“우와! 이거 정말 정아 씨가 다 한 거야?”
“그럼, 자기 생일인데.”
“완전 감동인데.”
“자기 좋아하는 생선구이도 준비했어.”
“오늘 웬일이야. 생일이라도 그렇지.”
유달리 생선을 좋아하는 진영이지만 굽거나 요리를 하면 집안에 냄새가 난다고 펄쩍 뛰던 정아였다.
“자 먼저 케이크부터 해야지. 서른일곱 맞지?”
케이크 위에 초를 꽂으며 정아가 말했다.
“생일 축하해."
정아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자, 이제 촛불 꺼도 돼.”
“후-.”
“와, 짝짝짝!”
“기분 좋은 데, 우리 와인 한잔할까?”
“식사는……?”
“응. 미안한데……, 됐어. 나오다 화성전자 함경희 이사가 갑자기 잠깐 보자고 해 치킨 몇 조각 먹었더니 생각이 없네.”
정아는 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담아 진영 앞에 내놓았다.
“진영 씨, 생일 축하해.”
정아가 진영의 잔에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거…….”
“이게 뭐야?”
“자기 선물, 넥타이 하나 샀는데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한번 꺼내 봐.”
“어, 이건……?”
선물 포장을 뜯다 하얀 봉투를 본 진영이 말했다.
“응. 현금 선물."
"현금?
“백만 원 수표 열 장이야. 밑에 직원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필요한 때 써.”
“우와 꼭 생일날 엄마한테 돈 받는 기분인데. 어때, 이 넥타이 잘 어울리지? 색깔하고 디자인 정말 마음에 든다.”
진영은 넥타이를 목에 갖다 대며 정아의 동의를 구하는 듯했다.
“응. 정말 잘 어울려.”
“정아 씨, 정말 고마워!”
정아는 순간 진영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자, 어서 마셔. 그동안 미안해. 내가 사촌 오빠 학원 하는데 나가느라 제대로 챙겨주지를 못해서.”
“챙겨주긴, 어린애도 아닌데…….”
“어쨌든 미안하고, 오늘 진영 씨 생일 정말 축하해. 그런 의미에서 자, 건배!”
둘은 잔을 부딪치며 입가로 가져갔다. 정아는 포크로 케이크를 떠 진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진영 씨, 아, 해봐.”
정아는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물고는 진영의 무릎에 걸터앉아 입속으로 흘려 넣었다.
“아아, 정아 씨!”
흥분한 진영이 신음소리를 내자 정아는 진영의 무릎에서 내려와 옆자리에 앉았다.
“저기, 진영 씨!”
“으응……, 왜?”
진영은 갑자기 의아한 표정으로 정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기, 나 좋아하지?”
“그럼.”
“정말이야?”
“……?”
“빨리 말해 봐. 정말 좋아하는 거야?”
“그럼.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이런 말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알았지?”
“뭔데……그래?”
“저기…… 우리 돈을 좀 만들자.”
“……돈?”
“그래, 우리도 돈이 있어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고…….”
“돈이 어디 있는데?”
“곧 화성전자 중국 공장을 매각한다며?”
“응. 그것 때문에 내가 중국을 자주 가잖아. 기흥공장을 확장하고 시설 일부를 그리로 옮길 거야. 독일 노엘 사하고 막판 협상 중인데 다음 주 중으로 아마 계약될 거야.”
“매각 금액이 얼마야?”
“회장님은 오천억 정도 예상하고 있어.”
“그거 자기가 하는 거지?”
“응. 화성전자 함경희 이사하고, 나는 뭐 회사 감독관이라고 할까?”
“진영 씨, 자기 거기서 커미션 좀 얻어낼 수 있어?”
“커미션……?”
“응. 그러니까 이면계약으로 돈 좀 챙길 수 있겠냐는 얘기야. 왜? 함경희 이사 때문에 어려워? 함 이사도 회장님 눈 밖에 나 화성에 그리 오래 있게 될 것 같지 않은데.”
“정아 씨, 사실은…….”
“잠깐, 진영 씨, 우선 한잔하고 나서 말해. 사랑해, 진영 씨.”
정아와 잔을 부딪친 진영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어머, 진영 씨 오늘 웬일이야! 술도 못 하면서 원 샷이네."
“응. 괜찮아."
"자, 말하려는 게 뭔데? 어서 말해 봐."
"실은, 나도 커미션 그것 때문에 고민이야. 요즘 함 이사하고 자주 만나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
“매각금액은 오천억 정도지만, 잘하면 커미션으로 백억을 만들 가능성이 있어.”
“어머, 그럼 그거 함 이사하고 나눠 먹는 거야?”
“응. 함 이사는 자꾸 이면 계약해 그 돈을 나누어 갖자는 거야. 우리가 한평생 벌어 그만한 돈을 만질 수 있냐고. 사실 맞는 말이지. 함 이사는 공장을 매각하고 회사를 그만두겠대. 아까도 사실 그 문제 때문에 만났던 거야. 생각을 해 보겠다고는 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내가 안 하겠으면 내부 고발을 해야 하는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진영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진영 씨, 그런데 그 얘길 왜 지금 하는 거야? 정말 섭섭해. 꼭 결혼을 해야만 부분가? 난 어떤 일이 있어도 다 이야기하잖아.”
“미안해, 정아 씨. 그냥 함 이사가 갖든 말든 난 모른 척할까 생각도 해 봤어. 나만 모른 척하고 입 다물면 끝이잖아.”
“진영 씨!”
“……?”
“바보같이 그러지 말고, 그 돈 당장 챙겨. 그거 안전하게 국내로 들여올 수는 있는 거지?”
“함 이사는 이미 그것까지 다 알아봤어.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스위스 은행에 잠시 넣었다가 환치기를 통해 국내로 들여오는 조직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데 수수료가 비싸. 깨끗하게 처리해 주는 대가로 그쪽에서 대금의 4할이나 요구한대.”
“그럼 30억씩 나눠 갖게 되는 거야?”
“응.”
“그 수수료 혹시, 함 이사가 중간에서 장난치는 건 아냐?”
“글쎄, 그건 모르겠어.”
“진영 씨, 어쨌든 그 돈 챙겨! 어떻게 해서라도 그 돈 꼭 챙겨, 진영 씨 알았지?”
정아는 혹시 진영의 입에서 안 된다는 대답이 나오기라도 할까 싶어, 황급히 진영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적극적 정아의 공세에 진영도 더는 못 참겠는지 정아를 안고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