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배는 모임의 회원들이 탄 버스가 학원에 도착하자 현관 앞에 나와 이들을 맞이했다.
회원들은 스페이스 건축연구소 소장 최기원이 화성그룹이 공모했던 파주의 일본 디즈니랜드를 능가할 대규모 놀이시설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창배의 학원을 찾은 것이다.
이는 일전 모임에서 오지희가 창배에게 약속한 일이었다.
“와, 좋아요!”
서울 재즈오케스트라 단장인 김명훈이 말했다. 창배는 이들을 안내해 학원 곳곳을 구경시켰다.
“총면적이 얼마나 됩니까?”
건축하는 사람답게 최기원이 물었다.
“한 삼천 평 되죠.”
“어사천 위쪽으로 보니까 전에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이 있네요.”
“전엔 저 위로 도로가 생기기 전엔 이쪽이 등산로였나 봅니다.”
“제가 교과부에 몸담곤 있지만 사실 이런 사교육 학원 방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잘 봐두면 나중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양기태가 말했다.
“마치 한적한 시골 학교에 온 것 같아요.”
일행을 이끌고 온 오지희가 말했다.
“여러분, 지금 저 무슨 소리 들리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
"딱 타다다다…… 클락, 클락.“
“크낙새예요. 저 나무 쪼는 소리 들리죠? 딱, 타, 타……!”
"하하하, 오지희 씨 저건 크낙새가 아녜요.“
"어머, 그럼 뭐예요?“
"까막딱따구리예요, 까막딱따구리. 저놈은 크낙새와 서식환경이 비슷한 데서 살고 있죠. 크낙새는 우리나라에서 93년도 인가 한번 한 쌍이 발견된 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환경부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판단해 멸종 위기종 해제 후보로 지정했어요. 아마 1, 2년 정도 추가 조사를 한 후 전문가 자문 기구인 '멸종 위기종 관리위원회'에서 최종 멸종 여부를 확인할 겁니다.“
"양기태 씨는 교과부가 아니라 혹시 환경부에 근무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제가 이런 쪽에 좀 관심이 있어서요. 국립수목원에서 어쩌면 북한에서 크낙새의 알을 반입해 저 까막딱따구리 둥지에 알을 넣어 키울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 정말 신기하네요. 여긴 완전 자연 친화적 학원인데.”
“최 부장님, 그런데 학생들이 수업 중이라 그런가요? 왜 이렇게 조용하죠?”
오지희가 물었다.
“아, 그건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는 외출일 이라, 지금 남아있는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아 그래요. 지금 이 애들은 공부하겠다고 집에 가지 않고 있는 거죠.”
“기특한 학생들이네.”
“최창배 씨, 잘 나가는 벤처회사 대표를 하다 어떻게 이런 학원을 하게 됐어요? 정말 대단해요.”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했다.
“자, 이제 모두 식당으로 가세요. 전화 연락을 받고 간단한 음료를 준비했답니다.”
오지희의 말에 회원 모두는 지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테이블 위엔 음료와 과일 등 다과가 접시에 담겨 놓여 있었다.
“자, 여러분! 비록 술이 아닌 음료수지만 대천 아카데미의 발전을 위하여 다 같이 건배합시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모든 학생이 가고자 하는 대학의 합격을 위하여, 위하여!”
“합격을 위하여!!”
정신 신경과 의사인 박재원의 갑작스러운 제의로 모두 ‘합격을 위하여’를 크게 외쳤다.
“최창배 원장님도 한마디 하셔야죠!”
김명훈 단장이 말했다.
“에이, 쑥스럽게. 어쨌든 오늘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세심하게 준비를 하는 건데. 저는 학원을 하면서 사실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요. 뭐,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긴 하지만 이 아이들의 장래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이란 시험에 달려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자꾸 양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아무튼, 오늘 뜻하지 않은 방문을 받고 보니 여러분들이 고맙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와-. 짝짝짝!”
“여러분, 우리가 여기를 갑자기 오긴 했지만, 이 애들을 위해 뭔가 하나 남겨 놓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쪽에 서 있던 오지희가 나서서 말했다.
“뭘 남겨 놓고 가죠?”
방문객들 사이에 잠시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박재원 박사님!”
“네.”
“여기 남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 수험생의 심리 안정, 뭐 이런 주제로 강연 한번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와,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오지희의 뜻하지 않은 제의에 같이 온 일행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할 수 없군요. 최 원장님, 그럼 아이들 시간을 한번 잡아 주세요.”
“그럼 저도 한번 해도 될까요? ‘우리 고건축 문화의 특징’ 이런 거나 아니면 미국 유학 시절 고생했던 경험담은 어떨까요?”
최기원 건축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최 소장님은 매사추세추 공대를 수석 졸업했으니, 아무래도 유학 경험담이 더 낫겠죠?”
"맞아요. 그게 좋겠습니다.“
오지희의 제안에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창배의 지시로 대 강의실에 모인 학생과 그들을 면회 온 부모님들은 뜻하지 않은 두 사람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는 모두 감동한 모양으로 강연이 끝나도 박수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김명호 서울 재즈 오케스트라 단장은 수능 시험이 끝나는 날 저녁, 단원들을 이끌고 와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한 특별공연을 베풀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최 원장님, 잠깐 저 좀 볼까요?”
최기원은 창배를 불러 사람이 없는 한쪽으로 이끌었다.
“아까, 사람들이 다녔었다는 길을 보는 순간, 이 학원 주위로 올레길이 하나 있었으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입시에 시달리는 이 학원 학생들이나 찾아오는 학부모님들이 산책할 수 있는 그런 길을 하나 만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파주 놀이시설 건이 어느 정도 되면 제가 하나 만들어 드리죠.”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소위, 한국의 디즈니랜드가 될 파주 프로젝트 설계 건을 어떤 대가 하나 없이 제가 할 수 있게 해 주셨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신문에도 제 이름이 오르내려 큰 경력으로도 남게 되었고 더구나 미래의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을 위한 일인데.”
“정 그렇다면 제가 돈을 좀 보태겠습니다.”
“아닙니다. 돈은 그렇게 많이 들진 않을 겁니다. 가능한 자연훼손은 하지 않고 그저 사람 둘 거닐 정도의 보폭으로 해서 황토를 깔 예정입니다. 맨발로도 다닐 수 있게. 이렇게 되면 일석이좁니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자연적으로 흙이 덮여 치유가 되는 거죠.”
“허, 참……!”
“그리고 아까 정문을 들어오다 보니 정문 바로 위쪽에 커다란 콘크리트 조형물이 서 있던데, 그거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
“정문 위 양옆으로 운동장까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지 않습니까, 그 크고 좋은 나무들을 가립니다. 마치 경관이 좋은 산 앞에 높다란 아파트를 세운 꼴이 되는 거죠. 뭐, 그건 제 생각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런가요?”
창배는 역시 건축하는 사람의 안목은 남과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어때요, 최 부장님? 우리 의도대로 잘 됐나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기 전 오지희가 슬그머니 창배에 다가와 말했다.
“어사천, 정말 압권이에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