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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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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
작성일 : 18-01-16     조회 : 349     추천 : 0     분량 : 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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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개원 준비는 다 끝나가고 최종 학원 이름만 남았는데, 학원 이름은 대천학원으로 할 생각이에요. 어때요, 부원장님?”

 

 “대천학원이면, 저기 연천에 있는 그것…….”

 

 

 부원장인 태영이 말했다.

 

 

 “네. 그래요. 그 새로 이름을 짓는 것보다는 유명세가 있었던 것을 활용할 생각이에요.”

 

 “그거야, 그런 이점은 있지만, 거긴 대천 아카데미가 있는데…….”

 

 “원조예요! 원조. 우리 가평 대천학원이 원조란 말이에요."

 

 

 정아의 목소리가 유난히 높았다.

 

 

 "이렇게 하세요. 확실히 원조 도장을 찍기 위해 부원장님하고 교무부장은 빨리 대천학원, 설립자를 한번 수소문해 보세요. 그 사람을 만나 돈을 주고 확실하게 원조 도장을 꽉 찍을 거예요.”

 

 “원장님, 그건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교무부장이 말했다.

 

 정아는 성보그룹 연수원이 자신이 의도한 최신 시설로 준비되는 동안 일간지에 조그맣게 광고를 냈다. 학원 이름은 밝히지 않고 부원장인 태영의 핸드폰 번호만 들어간 광고가 나가자 전화를 해온 강사들은 학원 측이 제시하는 조건에 경악들을 했다.

 

 첫해 연봉 일억에 이 년 차부터는 무조건 이억을 지급하고 개인 기사를 둘 경우 기사 봉급까지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은 학원 강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돌아 인터넷에서 강의하는 유명 강사들이 대거 지원을 해왔다.

 

 교무부장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 소위 학원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비에스 영어 강사였다. 정아는 그에게 에쿠스 차량을 제공해 줬다.

 기숙학원 중 최고의 시설과 최고 강사진, 그리고 거기에 따른 최고 대우. 이 완벽한 최상의 조건으로 정아는 단기간에 기숙학원들을 평정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학원 이름만 결정되면 티브이 광고까지 할 막대한 광고비를 이미 책정해 놓았다.

 이제 창배가 하든 누가 하든 대천 아카데미는 끝이라 생각했다.

 

 

 “자, 이제 일들 봐요.”

 

 

 창밖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단박에 조만호가 탄 차임을 알아본 정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정아는 궁금해 찾아온 조만호에게 학원 곳곳을 안내했다.

 

 학원은 본관인 강의실이 있는 5층 건물, 각 남학생과 여학생 침실로 나누어진 3층 건물 두 동, 단층인 식당, 그리고 체육실, 독서실 인터넷 강의실이 있는 3층 건물 등 총 다섯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이 침실이 남학생 침실인데, 한 번 보세요, 회장님.”

 

 

 정아는 3층 건물의 남학생 1층 침실로 안내했다.

 

 정아가 안내한 침실은 각 2인실로 화장실이 딸린 싱글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어 마치 작은 호텔 방을 보는 것 같았다.

 

 

 “기숙학원 침실들은 다 이렇게 생겼는가?”

 

 “네. 보통 2인실이나 4인실을 써요.”

 

 “이곳은 집에서 생활하는 거랑 별 차이가 없겠군.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하곤 구조가 좀 바뀐 것 같은데.”

 

 “네. 남학생, 여학생 침실 건물 각층마다 하나씩 샤워장을 더 넣었어요.”

 

 “샤워장은 원래 건물 지하에 있지 않았나?”

 

 “거긴 실내 골프장으로 꾸몄어요, 나는 남과 다르다는 그런 의식도 필요해요.”

 

 “이 한 층엔 방이 모두 몇 개지?”

 

 “60개로 한 층에 120명이, 이 3층 다하면 360명이 들어갑니다.”

 

 “여학생까지 하면 모두 720명이 되겠군.”

 

 

 조만호는 순간 머릿수 계산을 하였다. 월 250만 원을 잡으면 18억 원, 일 년이면 216억 원 이었다.

 

 

 “이왕 하는 것 한 천명쯤 받을 걸 그랬나?”

 

 “양이 안 차세요? 이번 애들 왔다 가면 건물 하나 더 짓죠, 뭐.”

 

 “이건 뭐냐?”

 

 

 밖으로 나온 조만호가 말뚝에 빨간 줄을 매어 표시해 놓은 땅을 보고 물었다.

 

 

 “봄이 되면 그곳에 야외 수영장을 지을 거예요.”

 

 “수영장?”

 

 “네. 바로 이 옆에 청정 계곡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물을 끌어다 수영장을 지을 거예요. 참, 그리고 학원 이름은 ‘대천학원’으로 결정했어요.”

 

 “……대천?”

 

 “대천(大川), 이 계곡 하고도 딱 맞아떨어지잖아요. 괜찮죠?”

 

 “…….”

 

 

 조만호는 순간 오래전에 지어 놓은 자기 호가 청석(靑石) 임을 상기했다.

 

 지금 여기 이 나무 밑에 아직도 푸른 이끼를 잔뜩 덮어쓴 바위가 있잖나. 너는 내 호가 청석임을 알고는 있느냐, 하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그만 입으로 삼키고 말았다.

 

 이번엔 강의실이 있는 5층 건물로 안내했다. 건물 양 끝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지만, 중앙계단을 걸어 올라가 2층 강의실로 들어갔다.

 

 

 “여기 있는 책걸상은 다른 학원들 것과는 좀 다를 거예요. 책상도 높낮이가 조절되고 요즘 학생들의 체형에 맞춰, 인체공학적으로 크게 만들었어요.”

 

 

 조만호는 의자 하나를 뒤로 빼더니 그 자리에 앉았다.

 

 

 “호호호, 마치 덩치 큰 학생 같아요.”

 

 “기분이 이상한걸.”

 

 

 책상과 의자는 비대한 조만호가 앉아도 그리 옹색해 보이지 않았다.

 

 

 “참, 우리 손자 놈도 어디 기숙학원 다닌다고 했는데.”

 

 “……!”

 

 

 순간 정아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일전에 미용실에서 여성 잡지를 봤을 때 학원 광고란에 조만호의 부인이 썼던 홍보성 기사 건이 떠올랐다. 정아는 순간 대천 아카데미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학생 모집은 언제 할 거야?”

 

 “이제 곧 시작합니다. 준비는 다 돼 있어요. 재학생 겨울방학 캠프 예약부터 시작해, 수능 후 본격 재수 선행반 모집을 할 거예요.”

 

 “하여튼 잘 해라. 난 이제 이곳에 오지 않으마. 괜히 오해 불러일으킬 것 없다. 가끔 의논할 일 있으면 연락해 밖에서 만나자 꾸나.”

 

 “염려 마세요.”

 

 

 정아와 조만호가 본관 앞으로 걸어 나가자 어느새 조만호 기사가 그 앞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조만호는 서서 학원 전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만한 위치라면 고급 주택을 지어 한 채에 백억 씩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누구세요?”

 

 

 조만호를 보낸 정아가 교무실로 들어가자 밖을 내다보고 있던 태영이 물었다.

 

 

 “아버지예요.”

 

 “맞아요. 정아 씨 아버님이 사업을 크게 하신다고 했었죠.”

 

 

 태영은 한편으론 좀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횐데 기왕이면 자기와 사귀고 있다고 소개를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네. 그래서 이 학원을 하는데 들어가는 돈도 아버지가 주신 거라고 제가 얘기했었죠?”

 

 “정아 씨가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네? 아버지를 닮아요?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보셨어요?”

 

 

 정아는 약간 당황했다.

 

 

 “먼발치서 보긴 했지만, 그런 것 같았어요.”

 

 “그래요? 호호호.”

 

 

 정아가 기숙학원을 시작하면서 태영은 정아가 점차 큰 태산같이 느껴졌다. 중계동에서 했던 학원은 권리금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전세금만 간신히 빼 나왔을 때도 정아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전세보증금을 정아에게 돌려주지 않고 슬그머니 태영 자신이 갖고 있는데도 정아는 그것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태영은 정아가 혹시 그 돈이 제 돈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태영은 전세 보증금을 챙겨놓고 한동안은 어정쩡했었지만 기숙학원 문제가 본격 논의되고 나서부터는 분주한 탓인지 어느새 무덤덤해졌다.

 

 우진과 정아, 이 사이에서 태영은 점차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진과 처음 의도했던 대로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이제 정아와 결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쑥 불쑥 솟아오르곤 했다. 그렇게만 하면 이 기숙학원은 당연히 자기 소유로 되어 잘만 하면 한 평생을 번잡하지 않고 일상의 안락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태영이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정아는 자신의 먼 밖에 있는 사람마냥 왠지 점차 범접하기 어렵게 느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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