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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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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무섭다 정아
작성일 : 18-01-22     조회 : 356     추천 : 0     분량 : 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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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대천학원!”

 

 

 원장실 의자에 앉아 동아일보를 펴든 창배는 일면 광고기사를 보고 놀라 허리를 곧추세웠다. 대천학원 학생 모집 광고가 일면 하단을 크게 장식한 것이다.

 

 창배는 이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나머지 신문들도 펼쳤다. 거기도 똑같은 크기의 같은 광고가 게재되었다.

 창배는 신문에 난 광고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개원 5년간 서울대 18명, 연고 대 90명의 신화를 이어 갑니다!’

 

 연천 대천학원이 가평 대천학원에서 새로 시작된다는 내용으로 겨울방학 재학생과 재수 선행 반을 모집하는 광고였다.

 

 놀란 창배는 곧 윤수에게 전화했다.

 

 

 “야, 윤수야, 너 신문 봤냐?”

 

 “무슨 신문……?”

 

 “지금, 신문 일 면 하단 좀 봐!”

 

 “가만있어 봐, 오피스텔 분양 광곤데……?”

 

 “너희 신문 말고 조·중·동 아무거나 봐!”

 

 “알았어. ……어, 이게 뭐냐? 대천학원?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우린 기사는 다 봐도 광고는 잘 안 보거든. 그런데 조·중·동은 다 나왔는데 우리 신문은 왜 광고가 빠졌지?”

 

 “야, 새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래, 미, 미안하다. 야, 창배야! 그런데 좀 이상하다. 그때 너한테 학원을 넘긴 김연아, 그 여자는 지금 미국에 가 있어야 할 텐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그걸 내가 알아? 나중에 다시 통화해!”

 

 

 전화를 끊은 창배는 대천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아니, 이건……!”

 

 

 ‘대천 학원의 신화가 다시 시작됩니다‘라는 카피 아래 두 여자가 손을 맞잡고 있었는데, 나이 먹은 여자는 분명, 대천 학원의 바로 그 김연아 회장이 틀림없었다.

 

 

 “이 여자는 미국에 간다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창배는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오히려 덤덤해지기까지 했다.

 

 

 “뭐야, 나한테 넘기고 그럼 가평 가서 차린 거야.”

 

 

 이때 책상 위에 놓인 창배의 핸드폰에서 드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윤수의 전화였다.

 

 

 “왜?”

 

 “창배야, 너 지금 빨리 그 대천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보고 있어.”

 

 “그 여자가, 정아 씨야!"

 

 “누가……?”

 

 “그 대천학원 회장과 손잡고 있는 여자, 잘 봐. 정아 씨가 틀림없다니깐. 빨리 한번 봐!”

 창배는 모니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아니, 이건……!”

 

 

 창배는 깜짝 놀랐다.

 

 

 “정아 씨가 그 학원을 차린 게 분명해. 네가 차린 학원이 잘 되는 것 같으니까, 김연아 회장이 그 이름을 팔아넘긴 게 분명하고.”

 

 “……끊어.”

 

 

 창배는 의자에 가 앉았다.

 

 ‘정아……정아가…… 왜…….’

 

 창배는 어디서부터 갈피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천 아카데미는 자신이 원장, 대천학원은 정아가 원장’이라니!

 창배는 의문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정아가 대천학원 김연아, 그 여자를 어떻게 알게 됐으며, 창배가 보고 놀랄만한 규모의 시설을 갖출만한 대천학원의 그 자금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학원 이름을 대천학원이라 한 것에서는 다분히 고의성이 느껴졌다.

 

 대천학원이 과거에 애들 몇을 좋은 대학에 보냈다곤 하지만 그 많은 돈을 들여 굳이 그 학원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창배는 정아가 자신이 대천 아카데미를 한다는 것을 어쩌면 알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과연 자기와의 관계 때문에 학원에 문외한인 정아가 그 큰돈을 들여 일부러 그 학원을 세웠을까 하는 데선 생각이 자꾸 원점을 맴돌았다.

 

 창배는 가평 대천학원이 대천학원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하든 자신의 대천 아카데미에 여파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인수하기 전 대천학원의 명성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혔을지 몰라도 자신의 대천아카데미의 명성은 이제 막 대천이란 이름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샛별이기 때문이었다.

 

 “참, 모든 게 뜻대로 안 된다. 왜 하필 그 여자는 가평에 대천이란 이름으로 학원을 차려 이렇게 속을 썩이냐. 이 년이나 문 닫았었던 학원이 뭐가 그리 유명세가 있다고.”

 

 “…….”

 

 “창배야, 지금이라도 내가 그 김연아 회장을 한번 만나보면 어떻겠냐?”

 

 “필요 없어.”

 

 “왜?”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그 여자로는 해결이 안 돼.”

 

 "그럼 누가 되는 건데?"

 

 "그 학원 원장."

 

 "원장……?"

 

 

 창배는 형 창식에게 그 학원 원장인 정아에 대해 일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창배는 만일 자신이 대천이란 학원명을 쓰지 않고 아마 다른 이름으로 학원명을 사용했더라도 정아가 그 사실을 안다면 아마 동일하게 그 이름을 사용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형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참, 호사다마라고, 애들 시험 잘 봤는데 이제 잘못하다간 그 공도 다 가평 대천학원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애쓴 보람도 없이……. 대천이 우리 고유 상호라고 법적 대응도 할 수 없고 말이야. 난 정말 재남 이 이놈이 그렇게 시험을 잘 볼 줄 몰랐어. 수능 성적 나올 때까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가채점 결과하고 그렇게 달라지지 않을 거다. 이과 재남 이, 혁준 이, 문고 태호, 얘들 분명히 서울대 합격할 거야. 정말 대박이야. 첫해에 연 고대는 일단 빼더라도 서울대에만 거의 확실하게 세 명을 보내게 생겼으니. 그런데 참, 이게 무슨 일이냐.”

 

 "일전에 나영호 부장도 한번 찾아가 뒤집어 놓겠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말렸어. 생각 같아서는 모른 척 놔두고 싶었지만 나 부장 성격으론 누가 다쳐도 크게 다쳐."

 

 "하긴 그렇게 해서 뒤탈만 나지 않는다면야 무엇인들 못 하겠냐?"

 

 “데르릉-.”

 

 “받아 봐라.”

 

 

 상담 전화일까 싶어 창배는 얼른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전화를 받았다.

 

 

 “네, 대천 아카데미입니다. ……네, 가평이 아니고 연천입니다. ……네.”

 

 “뭐냐?”

 

 “가평에 있는 대천학원이 아니냐고 묻고는 끊었어.”

 

 “…….”

 

 

 내색은 하지 않지만 창배는 고민이 많아 근래 들어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능이 끝난 직후라 문의 전화와 상담 방문객들이 많이 올 텐데. 예상과 달리 그러지 않았다. 전화도 대천학원인 줄 알고 했다가 오는 길을 가르쳐 주려고 하면 가평 대천이 아니냐고 하며 냉정하게 끊었다.

 

 재학생 윈터도 처음 400명 예상과 달리 350명이 접수해 그중 이미 50여 명가량이 예약을 해지했으며 자칫 12월 선행반 개강도 대박을 예상했던 것과 반대로 서너 명 갖고 시작하게 돼 곧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었다. 참, 생각해 보면 속이 터지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기에 비자금 50억 원을 통째 가로채질 않나 새로운 사업이라고 벌여놓은 학원이 빛이 보인다 했더니 그것마저 헤살을 놓아 어렵게 만드는지 창배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도대체 대천학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아가 그 많은 돈을 투자해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월급쟁이 원장인지, 원장이라도 경험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언제 학원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창배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정아를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치솟다가도 구차한 생각이 들어 곧 지워 버리곤 했다.

 

 

 "휴우……, 정말 걱정이다. 이제 집 담보로 융자받은 이자야 내가 벌어 갚는다고 하지만 원금은 고스란히 빛으로 떠안게 됐으니."

 

 

 창배는 형의 하소연을 듣곤 자신이 학원에 투자해 일 년도 버티지 못하고 날리게 된 20억 보다 형이 집을 담보 잡아 빌린 일억 원에 대한 부채감이 더 크게 양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만 가봐. 노인네들 걱정해."

 

 “어린애도 아닌데, 걱정은 무슨……. 너 웬만하면 오늘은 집에 들어가 자지 그러니? 여기 애들도 없는데.”

 

 “됐어. 여기가 편해.”

 

 “편하긴……, 그럼 나 그만 간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응…….”

 

 

 창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이길호에게 속아 주가조작으로 유진 나노테크가 무너졌을 때 보다 오히려 정아 때문에 겪는 지금의 고통이 더 큰 배신감으로 다가섰다.

 아무래도 창배는 정아를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원장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학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학부모의 건의사항에 답변을 달던 정아는 교무부장이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죠?”

 

 “글쎄, 원장님을 잘 안다며 만날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여직원이 문을 나서자 바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아니……!”

 

 

 상대를 알아본 정아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설마, 나를 잊진 않았겠지?”

 

 “호호호. 어떻게 여길…….”

 

 

 상대가 창배인 것을 알아본 정아는 곧 태연한 미소를 지었다.

 

 

 “이, 나쁜……!”

 

 

 창배는 절대 흥분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왔지만, 막상 정아의 뻔뻔한 얼굴을 보자 입 밖으로 절로 욕이 튀어나오려 했다.

 

 

 "어떻게 알고 용케 찾아왔군. 왜 그때 내가 준 용돈이 다 떨어졌나 보지."

 

 “닥치지 못해!”

 

 “호호호. 용돈이라면 주지. 자, 그리 앉으시지.”

 

 

 창배는 정아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그래, 갑자기 학원이 어려워지기라도 했나? 우린 벌써 자리가 없어 학생 모집을 마감했는데.”

 

 “과거의 지난 얘기는 않겠다. 내 돈 50억 원을 통째 가져간 것도. 네가 내 학원과 같은 이름 쓰는 것도. 그런데 왜 하필 우리 학원에서 선생을 빼 가야 하는 거냐?”

 

 “호호호. 참, 너그럽기도 하시네. 그런데 최 원장과 내가 이렇게 또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 그전 생각이 나는데. 내가 화성그룹 비서실에 처음 들어가 우리가 만났을 때 내가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이젠 오빠를……’, 그래 맞아, 그땐 오빠라고 했었지. 아, 그러고 보니 참 옛날이야. ‘이젠 오빠를 안 놓치고 지구 끝까지라도 좇아가겠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이제 그 반대가 되고 말았군. 당신이 여기까지 나를 좇아왔으니.”

 

 “딴말하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최 원장, 잘 들어 둬!”

 

 

 정아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싸늘히 굳었다.

 

 

 “경쟁 사회 특징이 뭔 줄 알아? 내가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거야. 학원들이 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인기 강사를 확보하려는 것은 당연한 거야. 네가 이비에스에 있던 김인수나 원종호 선생을 대천 아카데미로 데려갔을 때는 다른 학원보다 뭔가 더 나은 대우가 있었을 거 아냐? 더구나 그 구석까지 가는데 말이지. 그리고 강사들 또한 더 많은 몸값을 주는데 안 갈 선생이 어딨어! 지금이라도 이 두 선생에게 나보다 더 높은 몸값을 제시해 봐. 과연 이들이 가나, 안 가나?”

 

 “…….”

 

 

 정아의 말에 창배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선생들을 빼가 앞뒤 안 가리고 흥분해 달려왔지만, 갑자기 괜히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침반 김인수 선생과 천체우주 원종호 선생을 순진하게도 너무 믿었던데 있었다.

 

 이들을 대천 아카데미에 데리고 와서도 나름대로 배려를 해주고 친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돈 몇 푼에 훌쩍 다른 학원으로 가 버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었다. 역시 돈이었다. 창배는 그것에서는 정아가 한발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그 두 선생을 스카우트하는데 비용을 얼마나 쓴 줄이나 알아?” 3억을 줬어. 그러니 당신이 그 이상 줄 수 있다면 당장 데리고 가. 물론 그럴 여유야 없겠지만. 그리고 자꾸 대천 아카데미를 우리 대천 학원과 비교하지 마. 기분 나빠. 우리가 김연아 회장을 설득해 대천학원의 이름을 쓰고 있긴 하지만 연천 대천 아카데미하곤 차원이 달라. 자금력도 강사진도. 우리는 지금이라도 영어나 수학 일타 강사들을 수십 명이라도 더 데려다 쓸 여력이 있어.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할까? 이건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마. 내년엔 온라인 교육업체인 이카로스를 인수해 본격 교육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야. 지금 그 지분을 놓고 협의 중이야."

 

 “……!”

 

 

 창배는 정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랍고 자신이 한없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과연 저 자신만만함, 저 여유 만만한 뒤에 있는 배경은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옛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정 어려우면 우리한테 대천 아카데미를 넘겨. 우리 분원으로 할 용의는 있으니까. 좋은 기회일 텐데, 놓치지 말고 잘 생각을 해봐. 알았으면 그만 가봐!”

 

 

 창배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왜, 그러고 있는 거야. 호호호. 설마 지금 나에게 섹스 충동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정아는 일어나 옆에 놓인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김희선 씨, 김인수 선생 아직 안 왔어요? ……알았어요. 오면 나한테 좀 오라고 하세요.”

 

 

 창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정아가 의도적으로 했든 안 했든 그 자리에서 김인수 선생을 만나는 건 서로 입장이 난처한 일이 될 것 같아서였다.

 

 창배는 차를 세워 놓은 곳으로 가면서 잠시 학원 주위를 살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방금 나온 본관 5층 건물에서 아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금세 주위가 온통 학생들로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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