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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nom
작가 : 초파기
작품등록일 :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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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죽음의 의미
작성일 : 18-01-28     조회 : 358     추천 : 0     분량 : 6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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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이렇게 밖에 나와 가족끼리 밥을 먹으니까 참 좋구나. 특히 창배야, 네가 이렇게 저녁 자리를 마련한 게 얼마 만이냐? 그전에 네가 직장 다닐 때는 그래도 자주 했었는데 말이다."

 "이제 제가 집에 올 때는 늘 하죠, 뭐."

 

 창배는 서울과 가까운 포천 시내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온 참에 부모님을 모시고 형네 가족과 함께 집 근처의 갈빗집에 들렀다.

 

 "인수야, 인길아! 많이들 먹어라."

 "네. 맛있어요."

 

 조카들이 맛있게 갈비를 먹는 모습을 보자 창배는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너희 엄마나 나나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인수 아범 그리고 창배, 너희는 형제간에 우애를 갖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부부간에 화목해야 하고, 조상을 공경해야 한다. 이 말할 거 아니우?"

 "나 참……."

 

 창배 아버지가 옆에 앉은 엄마에게 눈을 흘겼다.

 

 "너희 아버지 이제 술 그만 드려라.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걸 보니 이제 술이 취하시는 모양이다."

 "안 취했어!"

 "그냥 놔두세요. 기분 좋아 모처럼 한잔하시는데."

 "너네 엄마가 이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한다."

 

 창식이 화장실에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창배에게 눈짓을 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창배는 창식을 따라 일어났다. 둘은 커피를 빼 들고 식당 앞 야외 공간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식당 안은 손님들로 혼잡했지만, 날씨가 추워 그런지 밖은 한산했다.

 

 "참,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를 도와주는 뭐가 있는 것 같다."

 "……?"

 "그 대천학원 말이다. 학생들이 꽤 많이 접수했을 텐데 왜 갑자기 학원을 접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처음에 대천학원이 문 닫게 될 거라고 네가 얘기해 난 도통 믿기지가 않아 그 학원 홈페이지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어가 봤어. 그런데 어제 갑자기 홈페이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그곳에 등록했던 학생들이 전부 우리 학원으로 몰려와 정원을 채우고 자리가 없어 돌아간다냐? 대천 아카데미가 잘 되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불가사의한 일들 같다."

 

 창배 자신도 대천학원이 문 닫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쪽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천 아카데미로 오게 된 건 의문이었다.

 

 "난 이제 일빛 학원에 전념해야겠다. 이제 일산에서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꽤 오고 있어. 그리고 이제 네가 학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출퇴근하게 됐으니 잘 됐다. 일이란 게 할 때와 쉴 때가 분명한 분별이 있어야 능률이 오르는 거다. 이제 학원 일에 바싹 매달리도록 해라. 이제 우리 모두 일이 잘 풀리는가 보다."

 "모두 잘 되겠지."

 "참, 너 뉴스 봤냐? 아까 뉴스 보니까 그 대천학원 원장 죽었더라."

 "……!"

 "그 여자, 자기 학원 뒷산에서 목매 죽었어."

 "……정아가……죽어?"

 "정아? 그 여자 알아?"

 "정말 죽었어?"

 "너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잠깐 봤어."

 

 창배는 핸드폰을 꺼내 기사 검색을 했다.

 

 '기숙학원 여 원장 목매 자살'

 

 기사 내용은 심한 우울증을 앓던 원장이 학원을 정리하고 자살한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명함 외에 개인 소지품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창배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정아가 죽어? 그것도 자살을……!‘

 

 창배의 그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대학시절 서클에서, 화성그룹에서 우연찮게 만나 사귀어 오다 자신이 의원 딸인 정미와 결혼을 약속하며 멀어지던 일, 그리고 자신이 감추어 놓은 비자금 50억 원을 가로채고 봉변당하던 일과 대천이란 학원으로 연관되어 다시 만나게 된 일 등 일련의 일들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창배는 왜 정아가 극단적인 죽음을 택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영의 말로는 정아가 30억을 투자했다고 했는데 혹시 그 과정에서 조만호 회장과 어떤 트러블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조만호 회장의 성격으로 봐서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창배는 혹시 끝내 자신을 파멸시키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 패배감 때문은 아닌가도 생각했다.

 

 그리고 자살했을 때 유일하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지니고 있던 명함.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극단적으로 나무에 목을 매면서 주민등록증이나 자동차 면허증 같은 게 아니라 굳이 대천학원 원장 유정아라고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지니고 있었을까. 창배는 집에서 필요한 짐을 싣고 대천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까지 계속 혼란스러웠다.

 

  ***

 

 조만호는 정아의 죽음이 빨리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히기를 기다렸다.

 

 기숙학원 젊은 여원장이 갖는 자살이란 호기심에 혹시라도 시사지 나 다른 매스컴의 추적으로 여원장이 자신의 전직 비서였고, 더 나아가 그 기숙학원의 소유주가 화성그룹 회장인 자신이었다는 연결고리가 밝혀질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학원을 접기로 결심했던 그날 저녁 조만호는 정아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정아는 급작스러운 조민호의 호출을 받아 서울로 오는 내내 조만호가 왜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조만호와 약속한 방으로 들어가면서 더 커졌다. 어쩐 일인지 조만호가 먼저 들어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 오늘 일찍 웬일이세요? 무슨 일 있어요?"

 "거기 좀 앉아라."

 

 정아는 평소와 다른 조만호의 태도에 의아한 표정으로 조만호의 맞은편 의자에 가 앉았다.

 

 "아이, 무슨 일인데요. 궁금해요."

 "저, 너한테 이런 얘기하기 뭐 하다만……."

 "……?"

 

 정아는 조만호가 자기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처음 봤다. 언제나 한마디 한마디에는 단호하고 절대적 권위가 따르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마치 말하기 곤란한 것이라도 있는 듯 머뭇하는 저 태도는 뭐란 말인가.

 

 "빨리 말씀하세요! 답답해 죽겠어요."

 "아무래도 학원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정아는 혹시 자신이 잘못 들었는가 싶어 조만호에게 되물었다.

 

 "학원을 접어야겠어."

 "……!"

 

 정아는 놀라 한순간 말이 나오지 않아 조만호의 얼굴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다봤다.

 

 "하, 학원을 접어요?"

 "그래."

 "왜요?"

 "내가 이 학원을 하는 것을 시기해 음해하려는 놈들이 있어."

 "회장님이 한다는 것을 누가 알죠?"

 "그놈 있지."

 "……?"

 "기획실에 있던 이 부장인가 하는 놈."

 "……이진영 …… 부장……?"

 "그래, 그놈! 바로 그놈이 나하고 얘기했던 것을 몰래 전부 다 녹음했어."

 

 '진영 씨가……?'

 

 정아는 그제야 자기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진영으로부터 학원에 투자한다고 30억을 받아 챙기고, 자신이 가평에 방을 얻어 나오면서 진영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게 결국 화근이었다. 낚시꾼이 잡아 가둔 고기였지만 먹이는 지속적으로 줬어야 했다.

 

 "어떤 내용이죠? 녹음을 했다는 게."

 "내가 비밀리에 기숙학원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를 했어. 그런데 그놈이 그 내용을 다 녹음을 한 거야. 왜 그 짓을 했는지……."

 "그래요……?"

 

 정아는 그제야 일전에 회장님이 지시한 게 있다고 일찍 들어온 진영에게 태영이 만든 보고서를 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진영은 화성 같은 대기업이 학원 같은 소규모 업종을 하는 것을 혼자 말로 우려했었다. 그럼 언제고 그것을 빌미로 꼬투리를 잡기 위해 녹음을 한 것인가. 정아는 그제야 조만호 회장이 학원사업을 접어야 하겠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 학원을 접으면 어떡하시게요. 손해가 많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사업을 하다 보면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는 게지."

 

 큰 사업가는 다른가. 조만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학원을 그만두면 너는 앞으로 어떡할래?"

 "……."

 "비서실에 다시 근무할래? 아니면 내가 집을 하나 마련해 줄 테니, 들어앉아 있던가?"

 

 결국은 자신의 애첩이 되라는 이야기였다.

 

 "……됐어요. 당분간 그냥 있겠어요."

 "허어, 그것참. 모처럼 좋은 교육 사업을 한번 해 보려고 했더니……."

 "저 먼저 갈게요. 오늘 가족 모임이 있어요."

 

 정아는 핑계를 대고 나오며 까닭 모를 공허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

 

 하루 종일 누워있던 진영은 오후가 되어 출출해지자 슬리퍼를 꿰차고 나가 원룸 앞 편의점에 나가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들어왔다. 예전같이 회사에 근무한다면 퇴근 두어 시간을 앞두고 한창 바쁘게 움직일 시간이었다.

 

 진영은 식탁 위에 놓인 컵에 소주를 반쯤 따라 마시고는 일회용 포장 김을 뜯어 입어 넣었다.

 그리곤 도대체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갑자기 꼬이기 시작했는지 곰곰이 생각을 했다.

 

 애초에 정아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업무를 도와준다고 순진하게 꼬임에 넘어가 그녀의 집에서 섹스를 나눈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챙겨주는 정아의 배려에 그만 푹 빠진 게 잘못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화성그룹 기획실에서 이사 자리 정도는 하나 꿰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모두 끝난 일이었다. 진영은 병에 반쯤 남아 있는 소주를 마저 컵에 따라 부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누워 지내다가 바깥 외출이라고는 오후가 되면 술 사러 원룸 앞 편의점에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

 

 매일 두세 병씩 마시며 이러다 폐인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도 덜컥 나곤 했지만, 이 술이 아니면 도무지 답답한 가슴을 가라앉힐 방법이 없었다.

 

 어느덧 취기가 오르고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하자 한 가지 후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것은 좀 더 참고 창배가 있는 학원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었다.

 

 정아가 전화한 자신에게 화를 내고 멀리하게 된 것은 아마 정아가 학원 일이 몹시 바빠서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학원이 자리를 잡고 모든 게 안정을 찾게 되면 정아가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아마 자기가 대천학원 원장으로 정아와 학원을 꾸려가고 결혼도 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 내가 경솔했어. 창배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그에게 준 녹음테이프 그것을 다시 돌려받아야 돼'

 

 진영은 곧 창배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최 부장! 나 이진영이야."

 "웬일이야?"

 "저, 말이야. 내가 갖다 준 거 그것 지금 다시 돌려받을 수 없을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아 씨하고 화해하고, 이제 우리 사이가 다시 좋아졌어. 이제 그게 필요가 없게 됐어."

 "……?"

 "번거롭게 해 미안해. 그리고 우리 곧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

 "이 부장! 꿈 깨! 당신 지금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다 끝난 일을 갖고."

 "……끝나다니?"

 "대천학원 문 닫았어. 그리고 정아 씨는……."

 "……."

 "……죽었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죽어? 정아 씨가…… 죽어?"

 "이 부장은 뉴스도 안 보나? 빨리 지금이라도 신문이나 인터넷 들어가 봐. 어제 정아 씨가 목을 맸어."

 "……!"

 

 창배와 통화 후 충격을 받은 진영은 한동안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바깥과 담을 쌓고 산지가 벌써 꽤 오래됐다. 은둔해 술과 벗하는 동안 시간은 벌써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마무리를 지어 놓고 있었다.

 

 "뭐, 정아가 죽어? 그럼 난 뭐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으하하하!"

 

 전도양양하게 잘 나가던 직장을 잃고, 30억 원은 만져 보지도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진영은 단 하나, 챙겨 줄 사람을 잃게 된 슬픔에 겨워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찔끔찔끔 술을 마셨다.

 

 

  ***

 

 "우진 아, 우진 아! 빨리 좀 와 봐!"

 "뭔데 이리 호들갑이야?"

 "정아가 죽었어!"

 "……?"

 "정아가 목을 매 자살했어. 그 대천학원 뒷산에서."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으며 신문을 펴든 태영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우진은 머리를 감다 말고 뚝뚝 떨어져 내리는 물을 수건으로 감싼 채 튀어나오며 태영이 펴든 신문을 빼 들었다.

 

 "어머! 이게 웬일이냐? 세상에……!"

 "정아 씨가 우울증이 있었어? 난 몰랐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전혀 몰랐어. 어떻게 목을 매. 무섭게."

 "믿기지가 않아, 그렇게 나를 몰아세우더니."

 "이렇게 죽을 것 같았으면, 돈을 주지 말고 시간을 좀 더 끌어 볼 걸 그랬나 봐. 에이, 이왕 죽으려면 조금 더 빨리 죽든가 하지."

 "누가 이럴 줄 알았나? 쯧쯧, 정아 정말 아까운데."

 "뭐가?"

 "한참 젊고, 돈도 많은데."

 "뭐야?"

 "아니, 그렇다는 얘기지, 뭐. 참 사람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그럼 그 대천학원은 어떻게 되는 거야?"

 "뭐, 누가 정아 씨 대신 원장으로 나설 테지. 그런데 조만호 회장한테는 왜 아직 연락이 없을까? 내가 편지 봉투에 조만호 회장 친전이라고 큼직하게 썼으니 바로 봤을 텐데. 분명히 전달했지?"

 "그럼. 내가 직접 전했는데. 녹차를 갖고 들어갔을 때 찻잔 옆에다 놓고 왔으니 분명 봤을 거라고."

 "그런데 왜 연락이 없지?"

 "기다려 봐. 곧 연락하겠지. 아마 얼마를 줄까 고심하고 있을지도 몰라."

 "눈 감아 주는 조건으로 5억이라도 받아야 학원을 다시 시작할 텐데. 우진아! 이번에 하게 되면 정말 정신 차리고 한번 잘 해보자."

 "내 걱정은 말고 태영 씨나 정신 차리면 돼."

 "어찌 됐든 이번 주까지 기다려 보고 연락이 없으면, 내가 조만호 회장실로 직접 찾아가 봐야겠어. 아, 그런데 정아 씨가 정말 그렇게 죽다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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