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개화
작가 : SUN
작품등록일 : 201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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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년과 선택(3)
작성일 : 16-08-24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6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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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과 클라이드를 놔주세요.”

 “웬 꼬맹이가 나에게 명령하는 건가.”

 “…부탁입니다.”

 

  유진은 부들거리는 다리로 그의 앞에 섰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위압감, 겉보기에도 그는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다. 남자는 유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등에 꽂힌 대검을 꺼내들었다. 제 키 만한 검이 위용을 드러냈고 유진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저 없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남자는 전사, 아니 흡사 야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유진은 양 팔로 얼굴을 가드하며 제 능력으로 공원에 심어진 나무를 뽑아 그의 앞에 던졌다. 돌진해오던 남자는 제 눈앞의 나무를 베어버렸다. 유진의 옆으로 빗겨간 검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건물에 거대한 흠집을 냈다. 하마터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유진은 제 다리로 서있는 게 용할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였다.

 

 “클라이드!”

 

  유진을 따라온 채프먼이 공원의 한 쪽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클라이드를 보자마자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남자에게 금방 가로막혀 그의 몸이 들렸다. 그는 숨도 못 쉬어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채프먼을 보며 악마같이 웃었다.

  채프먼! 유진은 정신을 차리곤 염력을 사용해 공원의 벤치를 뜯어 그에게 날렸다. 채프먼의 목을 쥐고 있는 남자의 팔에 정확히 명중했고 그는 고통을 호소하며 그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프먼이 양 손으로 목을 잡아 켈록거렸다.

 

 “꼬맹이가 제법이군, 그래.”

 

  유진은 공원에 박힌 나무 두 그루를 들어 올려 두 팔을 교차시켰다. 허공에 떠오른 양 나무가 마일로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그의 몸에 직격으로 맞았다. 우드득, 나무의 몸이 부서질 정도의 힘을 가했음에도 그 공격을 직격으로 맞은 남자는 멀쩡하게 유진의 앞에 서 있었다.

  남자의 상처는 조금 느리긴 했지만 보통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회복하고 있었다. 피부에 난 상처가 금세 사라져 깨끗해졌다. 그는 재미있는 능력이라며, 유진을 비웃고는 황소가 붉은 천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듯 단단한 몸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유진은 그와의 거리가 몇 걸음 차이가 나지 않을 때,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굴려 그의 돌진을 피했다. 남자는 유진이 있던 자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속도를 늦춰 유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꽤 빠른 판단력과 깡이 있다며 몸을 풀었다.

  유진은 여전히 여유로운 그를 보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이 될 거란 걸 직감했다.

 

 “로빈이라고 했나, 그냥 꼬꼬마 히어로 새싹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하나같이 실력은 봐 줄만하군.”

 

  그의 거만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이 남자를 이길 수 없었다. 야생에서 만난 호랑이와 토끼의 위치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어쩌면 영악한 토끼가 되어 저 놈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이 있을 지도 몰랐다. 유진은 부들거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듯, 쥐었다 피며 남자를 주시했다.

  …자신이 지켜야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모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검사이신가요?”

 “뭐, -그렇긴 하지.”

 “전 5초간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에요. 한 번이라도 검으로 절 벨 수 있다면 제가 물러나도록 하죠.”

 

  남자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일 거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유진의 예상대로 그의 눈에 힘이 살짝 들어가 맹수의 눈빛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 이를 부득이며 낮게 으르렁 거리는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 번 베이는 순간, 넌 죽은 거다. 꼬마야.”

 

  그는 거대한 검을 다시 쥐고는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유진은 겁에 질린 자신을 애써 감추며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찌를까, 아니면 벨까. 만약 아까처럼 무지막지한 검기를 날린다면 기회를 잡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곧이어 남자는 검을 위로 올려 유진의 어깨를 향해 칼날을 내보였다.

  유진의 어깨를 향하던 그의 검이 허공에 멈춰 떨리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칼날을 보던 그는 얼른 검을 제 쪽으로 당겨보지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제자리에서 꼼짝도 안한 채 떨리기만 하는 그것을 보다가 제 눈앞에 있던 유진을 놓쳤다.

 

 “-어디로 간 거냐.”

 

  낮게 으르렁 거리는 놈의 뒤로 숨어 걸어간 유진은 그와의 격차를 벌리고선 다시 능력을 이용해 검을 그에게서 튕겨내 땅에 깊게 박았다. 공원 모래바닥에 칼집의 모양만 남겨놓고 깊게 박아 넣자 남자의 얼굴에 드러난 핏줄이 터질 것 같이 튀어나왔다.

 

 “한낱 꼬꼬마 녀석이, 날 농락한다 이거지.”

 

  이내 그의 몸이 들썩이더니, 소매에서 검은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몸집이 더 커지며, 그르렁 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옷이 찢어지며 검은 털이 남자의 등을 덮었다. 유진은 양 손으로 입을 가려보지만 거대한 곰으로 변한 그는 유진의 냄새를 맡으며 뒤를 돌았다.

  -크르르, 낮게 울던 놈이 몸을 움직여 천천히 유진에게 걸어갔다. 유진의 앞에 있던 나무를 뽑아내 막무가내로 내던진 그는 한 마디로 말해, 짐승 그 자체였다. 능력을 이용해 나무나 벤치를 그의 몸에 내던져도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 왼쪽 이마에서부터 오른쪽 눈까지 깊게 베인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놈은 도망가려는 유진을 빠르게 낚아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뼈도 남지 않을 거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유진의 앞에 선 남자는 유진을 향해 큰 발톱을 휘둘렀다.

  -쾅, 제 머리를 향해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발톱은커녕 그의 털끝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사라졌다.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가 있었던 방향에 모래먼지가 자욱하게 껴있었다.

 

 “안 늦었지?”

 

  지난 새벽에 봤었던 회색머리의 여인이 어깨를 풀며 공원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유진을 보자마자 수고했다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유진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렸다. 혹시나 싶었던 것이 역시나, 자욱한 먼지 속에서 금발의 소년의 뒷모습이 그의 시야에 담겼다.

  유진은 그가 앤드류라는 것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그녀에게 묻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유진에게 건넸다. ‘클레어’ 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나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나비문양은, 로빈의…….”

 

  유진은 경악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이젠 괜찮다고 말했다. 먼지 속에서 굉음이 들리고 두 그림자가 사정없이 부딪히고 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정말, 히어로에요?”

 “속고만 살았나 봐?”

 

  클레어의 되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제 눈앞에 일어난 상황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이제는 오늘 새벽까지 다리에서 이야기하던 사람이 로빈의 히어로라고 말한다. 특별한 사람이란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유진은 남자의 공격은 세다며 앤드류를 걱정했지만 클레어는 괜찮다며 유진을 안심시켰다.

 

 “우린 네 친구들을 구출하러 가자”

 

  클레어는 먼지를 바라보다가 그들의 그림자가 머무는 곳과는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진은 여전히 부들거리는 다리로 클레어를 따라 먼지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 지났음에도 먼지는 사라질 줄 몰랐다. 유진은 시야가 안 보여 좀 더 눈에 힘을 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그림자를 놓칠 세라, 열심히 따라 붙어 팀과 클라이드를 찾아냈다.

  유진은, 울먹이며 자신들을 경계하는 채프먼을 발견하고는 안도했다. 혼자서 클라이드의 팀을 옮기고 있던 채프먼은 패닉상태이긴 했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유진은 클레어와 함께 정신을 잃은 둘을 부축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시선을 돌린 사이에 그들을 안전한 자리에 옮겨야만했다. 주변에 자욱한 먼지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클레어가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게 전부였다.

  유진은 어쩐지 조용하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채프먼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답이 없었다.

 

 “…채프먼?”

 

  유진은 덜컥 겁이나 뒤를 돌아보았고 뒤에서 따라올 거라 생각했던 채프먼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클레어를 불렀지만 클레어는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서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유진은 조급해진 듯, 빨라지는 그녀의 걸음에 맞추며 묵묵히 모래 사이를 빠져나왔다.

  자욱했던 모래로 된 먼지가 비교적 오래 되는 것만 같았다. 곧이어 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서둘러 걸어갔다. 시야가 환해지고 주변의 모래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채프먼이 의식을 잃은 채 한 여인의 손에 들려있었다.

 

 “드디어 나왔네.”

 

  여인이 눈꼬리를 휘며 그들을 환영했다.

  클레어가 유진의 앞에 서 그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말했다. 여인은 경계하는 거냐며 섭섭한 투로 말하곤 그녀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 섰다. 클레어의 턱을 들어 올리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왜, 놀랐어?”

 

  씨익, 올라간 입 꼬리와는 달리 여인의 눈은 매섭게 클레어를 쳐다보고 있었다.

 

 “용건이 뭐야.”

 

  클레어는 기분 나쁜 기색으로 그녀의 손을 쳐내며 경계했다. 여인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쓰러져있는 클라이드를 지목했다. 저 놈만 내놔. 사람이 물건인 것마냥 내놓으라는 그녀의 말엔 협박이 담겨있었다. 내놓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우리를 죽일 의향이 있어보였다.

 

 “-안 된다면?”

 

  클레어가 비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녀의 몸이 살짝 뒤로 밀렸고 여인은 미소를 지우고선 표정을 구겼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여인은 클레어의 목을 잡아 그대로 옆으로 던졌다. 그녀의 몸이 힘없이 날아가 공원 바닥에 널브러졌다.

  유진을 잡으려하는 것을, 그는 어렵게 피해 염력으로 그녀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그녀의 팔에 빗겨 맞아 그녀가 제 팔을 쥐고 유진을 노려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유진의 귀에 노랫가락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등에 활짝 핀 그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여인은 화려하고 깔끔한 날개를 펼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를 듣자마자 정신이 흐릿해졌다. 뿌연 안개로 뒤덮이는 시야에 집중해 고개를 저어보지만 그녀의 노랫가락이 진행될수록 온 몸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여인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며 유진의 옆에 쓰러진 클라이드를 집어 들었다. 모래가 걷히고 천을 두른 남자가 혀를 차며 그녀에게 걸어왔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더니?”

 “…그러는 너도 올 생각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여인의 손에 들린 그와 여인을 번갈아보던 남자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를 보며 얼굴을 구겼다. 쓰러진 놈, 둘을 데려가는 여인의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던 그는 여자를 불러 세워 고개를 까닥였다.

 

 “처리는?”

 “어머, 지금 내 손에 피를 묻히란 소리야?”

 

  매너 없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두 날개를 펼쳐 비상했다.

  남자는 쓰러진 그들을 바라보다가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선심이다. 몸에 두른 천을 단단히 싸매며 유유히 공원에서 사라졌다.

 

  유진이 정신을 차린 뒤에는 이미 그녀가 클라이드를 데리고 간 뒤였다.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나 다름없었다. 앤드류와 클레어 또한 공원에 쓰러져있었고 앤드류는 꽤 다친 모양이었다. 유진은 자신이 제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했음을 톡톡히 느꼈다. 그들과의 실력 차이가 상당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자 채프먼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간 걸까? 유진이 그를 찾는 사이 앤드류와 클레어가 눈을 떴다. 한 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두통을 호소하던 앤드류는 맨손으로 땅을 치며 분개했다.

  힘만 믿고 나대다가 그에게 된통 당했다. 능력을 잘 활용해 자신을 위협하기까지 한 남자.

 

 “-마일로.”

 

  앤드류는 이를 까득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모래는 가라앉아 있었고 바람도 멈췄다. 앤드류는 클레어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상태와 다른 이들을 물었지만 클레어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의 반응에 앤드류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침묵은 임무를 실패했을 때밖에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앤드류는 쓰러진 팀을 데리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길 기다렸다.

 

 “…아무것도 못했어.”

 

  그녀의 눈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당해버렸다. 그것도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사실을 부정했다. 그녀는 살아있었고 그녀의 노래에 또 다시 당했다.

 

  앤드류는 일어나는 그녀를 보고선 팀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잠깐만요!”

 

  유진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들이 어디 갔는지 알려달라는 유진의 물음에 앤드류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을 따라오라 말하곤 다시 걸어갔다.

 

 “어디 가시는 건데요?”

 “먼저 로빈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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