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작년 늦가을에 뵈었을 때와 그다지 변한 곳이 없었다. 아직도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이시는 데다가 아버지 특유의 분위기도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머리가 더 하얗게 센 것도 아니었고 눈가에 주름이 더 깊게 잡힌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반년 만에 뵙는 아버지는 무척이나 지치고 늙어 보이셨다. 마치 빛이 바랜 옷과 같은 느낌이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장례식을 하는 도중에 도착할 거라 생각했거든.”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시곤 서재 한쪽에 있는 소파에 가셔서 천천히 몸을 묻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오랜만에 익숙한 소파에 앉은 것만으로도 피곤이 한결 가시는 느낌이다.
“그래도 명색이 소꿉친구인데 장례식에 지각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고생했다.”
이 말을 끝으로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여기로 오는 내내 내 안에 수많은 질문이 있었다. 아직 한창 젊은 오펠리아는 왜 갑자기 그렇게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되었는가부터 남은 가족들 이야기와 이후에 있을 장례식에 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쉬이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아버지의 얼굴에 너무나 깊은 슬픔이 있어서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의 친구 오펠리아를 참으로 예뻐하시고 아끼셨다. 오랜 세월 친분을 나누신 해밀턴 변경백에 대한 우정의 연장이었을 수도 있다. 나를 비롯해 두 명의 내 동생들이 전부 무뚝뚝한 아들이어서 그녀를 당신의 딸처럼 여긴 것일 수도 있다. 그랬기에 그분의 침묵에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과 같은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 상태였다.
“주인님, 테오 도련님. 잠시 들어갑니다.”
우리가 침묵으로 오랫동안 가족같이 여겼던 젊은 처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안 하녀 소피가 들어와 따뜻한 차와 다과를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따끈하게 데운 우유를 듬뿍 넣은 홍차와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호두파이가 그녀의 손을 따라 테이블 위로 놓여진다.
“고마워 소피.”
“별말씀을요.”
나의 인사말에 소피가 그렇게 대꾸하고선 서둘러 서재를 나갔다. 향긋하고 그윽한 홍차와 갓 구운 호두파이의 냄새를 맡자 허기가 확 몰려왔다.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시장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내 몫으로 나온 호두파이를 서둘러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피가 가져온 호두파이는 차에 곁들일 것으로는 상당히 많은 양이었지만, 허기가 진 젊은 사내의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의 접시는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그런 내 모습을 아버지께서 유심히 지켜보셨다.
“저녁을 아직 먹지 않은 모양이구나.”
“아, 네.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시장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호두파이를 허급지급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도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전혀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고향에 왔다는 것만으로 어린 시절의 몸가짐으로 흐트러져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그런 내 쪽으로 자신의 호두파이를 밀어주시며 다시금 입을 여셨다.
“그래, 산 사람은 많이 먹고 부지런히 힘을 써야 하는 법이지. 이것도 먹거라. 나는 별로 생각이 없구나.”
“감사합니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아버지의 몫으로 나온 호두파이 접시를 내 쪽으로 가져갔다. 호두파이 조각이 부지런히 사라지는 것을 보시며 아버지께서 다시 입을 여셨다.
“먼 길을 갑자기 오느라 조금 피곤하겠지만 말이다.”
“네. 말씀하세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갑자기 뜸을 들이시는 통에 나는 호두파이에서 시선을 떼고 내 아버지의 눈을 응시했다. 아버지의 푸른 눈은 내가 아닌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나와 함께 오펠리아를 보러 갔으면 좋겠구나.”
이곳은 아직 수도인 린턴에 비해 발전하지 못한 곳이다. 그 덕에 도시에서는 비합리적이라고 비판받은 여러 가지 미신과 관습이 아직도 불문율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중의 하나가 밤에 혼자서 망인을 보러가지 않는 것이다. 망인의 악령과 미련이 산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같이 보러가야죠. 안 그래도 제 쪽에서 부탁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아버지의 얼굴에 흐린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남은 호두파이에 시선을 주었다. 내 앞에 있는 호두파이는 어릴 적의 오펠리아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간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싸늘한 시신이 된 그녀는 다시는 이 달콤함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살아있는 자의 의무감으로 남아있는 조각에 포크를 가져갔다.
*
오펠리아는 해밀턴의 사람들이 주말마다 모여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데바교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다. 망인의 혼령이 악령이 되어 살아있는 자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미신과도 같은 관습이다.
신전은 지키는 사람이 없음에도 환하게 불이 밝혀진 상태였다. 망자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과 악한 영령이 망자의 몸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것이었다.
작은 관에 누워 두 손을 모은 오펠리아는 평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릴 때 심심하면 꽃을 꺾어서 꽂아준 아름다운 금발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고, 하얀 얼굴도 핏기가 없다는 것 외에는 기억과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잠자듯이 작은 관에 누워 있다. 창백한 얼굴색만 아니면 잠이 든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녀가 누운 옆으로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이 꺾어온 오월의 화려한 꽃들이 가득 들어있다. 아마도 꽃다운 나이에 채 피지도 못한 처녀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부장품 대신 넣어둔 것이리라.
“무슨 일로 저렇게…….”
이때까지 그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던 나는 작은 관에 누워있는 소꿉동무의 모습에 그만 목이 메였다. 그런 나의 곁에서 묵묵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께서 한참 만에 입을 여셨다.
“나도 정확한 사인은 잘 모른단다. 오펠리아의 아버지 해밀턴 백작이 요즘 몇 년간 병이 있어서 자리에 누웠다는 것은 너도 잘 알 거다.”
“네.”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계속 간호를 했었단다. 그러다가 무리한 모양인 게지. 네가 지난 늦가을에 이곳에 들른 이후에 자꾸 쓰러져서 병원신세를 지곤 했었거든.”
“그래요? 금시초문입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한두 달에 한번 고향의 이야기를 담은 안부편지를 보내던 그녀가 지난 가을부터 통 소식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늦가을에 그녀를 만난 이후로 그녀는 내게 단 한통의 편지도 보내지 않았다.
원래 사람 일이라는 것이 원래 자신의 일상이 바쁘면 연락이 좀 뜸해지지 않던가. 그랬기에 나는 더 이상 알아보지 않고 연락이 좀 늦어지는가 보다 하며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것이 몸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라니. 아파서 병원 신세를 졌었던 거라니. 전혀 몰랐었다. 갑자기 나의 무심함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병을 얻어서 저리 된 것입니까?”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구나. 원래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사망하기도 하지 않느냐.”
“그렇긴 합니다.”
“저 애가 사망한 다음 의사가 만약을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했다 하더구나. 그런데 자연사라고 결론을 났다고 해. 원래는 날이 더워서 3일장을 하려고 했는데 의사의 소견서 때문에 4일장으로 늦춰지게 되었고.”
아버지의 덤덤한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잠들어있는 내 친구의 얼굴과 손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만 보면 언제나 웃어주던 녹음의 초록 눈동자는 전혀 미동을 하지 않는다. 나를 보면 바로 웃으며 “테오.”라고 이름을 불러주던 그 입술도 핏기를 잃은 채 굳게 닫혀 있다.
일체의 혈색을 잃고 불빛 아래서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얼마 전까지 살아있었던 사람의 신체라기보다는 하얀 대리석상 같은 느낌을 준다. 아니 그녀의 몸에서 색깔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손끝에 선홍색의 붉은 꽃잎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도에서 최근 유행하는 매니큐어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