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자들이란 여자가 착용하는 보석에 대해 그리 눈이 밝지 않은 법이다. 보석의 종류에 관해서는 조금 알지만 등급이나 디자인 같은 자세한 분야로 들어가면 완전 까막눈이 되어버린다. 그 보석이 무척이나 크거나 희귀해서 막대한 재산의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니면 더 그렇다.
어떤 보석이 어떤 의복에 어울리는지 그리고 어떤 보석을 어떤 상황에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기에, 여인이 착용하는 보석을 보면 언제나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단 그 보석이 일반적인 보석이라면 말이다.
장례식에 참석한 에리카가 손에 끼고 있는 반지는 오펠리아가 살아있을 때 유일하게 장식품으로 끼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어린애 손톱만한 사파이어가 중심에 자리 잡고, 그 주변으로 작은 사이즈의 다이아몬드가 꽃잎처럼 둘러싼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백금반지였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끝난 이후 검은 상복차림의 어린 오펠리아는 어린애가 끼고 다니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그 반지를 가는 금줄에 걸어 목걸이로 하고 다녔다. 이후 손가락에 서서히 들어갈 정도로 그녀가 성장했을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반지만을 희고 가는 손가락에 끼고 다녔다.
사실 어린소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크고 화려한 반지를 끼는 풍경은 해밀턴의 영애들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일이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나 강도를 만나서 값비싼 반지를 강탈당할 수도 있다. 힘이 있는 남자라면 몰라도 힘없는 여인들이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재빨리 대처하기란 정말이지 힘들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이들은 그 누구도 반지에 대해서 가타부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반지는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유품이었기 때문이다. 오펠리아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유품을 낀다는 것은 단순하게 보석을 착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언제나 어디나 동행을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중요한 반지가 이제 자매가 된지 2년밖에 안된 여동생의 손가락에 있다. 그것도 죽은 망인의 장례식장에서 말이다. 말이 자매이지 피 한방을 섞이지 않은, 실질적으로는 남과 같은 사이가 아니던가. 나는 천천히 얼굴을 굳혔다. 이전에 오펠리아가 반지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이 생각이 날 듯 하면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오 오빠는 언제 해밀턴으로 내려오셨어요? 수도 린턴에서 못 내려오실 줄 알았는데…….”
에리카가 그렇게 말하면서 말끝을 끌었다. 마치 애교를 부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제 저녁 즈음에 내려 왔어. 아버지께서 급히 연락을 주셨거든.”
나는 조금 무뚝뚝한 어조로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어조만큼이나 내 얼굴도 굳어진 상태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자 에리카가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렇군요. 그렇게 좋은 일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오빠의 얼굴을 이렇게 보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내 눈썹이 절로 찌푸려졌다. 에리카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야 대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참석한 자리는 장례식 자리가 맞았다. 그런데 에리카는 아무 거리낌 없이 웃고 있었다. 마치 타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 타인의 장례식에 온 것이 맞다 해도 저런 식의 표정을 짓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장례식이 아니라 마치 축제에 온 것과 같은 들뜸이 있었다. 그 분위기 때문에 그녀가 입고 있던 상복에 다른 분위기를 흘러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밀턴 백작님은……. 어떤 상태시지? 충격이 크시겠구나.”
어제 신전에서 돌아오면서 아버지께 대충 이야기를 들었지만 안부인사 삼아서 말을 건네어 본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조금 수심이 담기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오펠리아 언니가 갑자기 저렇게 되고 나셔서…….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으세요. 아무래도 충격이 크시겠죠. 원래부터 건강이 그리 좋지도 않으셨지만요.”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선 내 옛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오펠리아의 어머니께서 몸이 약하신 것은 기억에 남지만 그녀의 아버지였던 해밀턴 백작이 몸이 허약했던가? 아니다. 내 기억상의 해밀턴 백작은 상당히 외부 활동을 좋아하시는 성품으로 하기의 사교 활동인 사냥이나 낚시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분이 원래 건강이 안 좋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을 거듭하는 중에도 내 시선은 에리카가 끼고 있는 오펠리아의 반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나 다소곳하면서 품위가 넘쳤던 오펠리아에게 잘 어울리던 반지는 에리카의 손에서 이질적인 광채를 빛내고 있다. 마치 여왕의 보석이 하녀에게 건너간 형상이다. 내 시선을 느낀 에리카가 천천히 손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이 반지는 언니에게 받은 거예요.”
“받은 거라니? 오펠리아가 그 반지를 너에게 줬어?”
“네. 언니가 숨이 넘어가기 전에 제게 넘긴다고 유언을 남겼어요.”
“그랬구나.”
일반적으로 먼저 떠나는 여인은 남은 여인에게 자신의 보석을 유품으로 남긴다. 그 보석 자체가 재산이란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유품을 보면서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오펠리아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린 딸에게 반지를 남겼듯이, 그녀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동생에게 반지를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에리카와의 대화를 끝내려고 한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에 온 몸을 멈춰야만 했다. 내 귓가로 어린 날 오펠리아가 했던 반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상복을 입은 오펠리아가 처음으로 어머니의 반지를 내게 보여준 날이었다.
-이거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직접 내게 물려주신 거야.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물려주는 반지래. 나도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하면 내 딸에게 이 반지를 물려줄 거야.
이제 겨우 열 살에 불과한 어린 오펠리아는 그 순간 너무나 어른같이 보였다. 그때 같은 열 살이었던 나는 그녀의 말에 담긴 무게에 조금 존경의 눈빛을 보냈던 것 같다. 오펠리아는 자신의 목에 걸린 반지를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듯 몇 번이나 쓰다듬다가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가 바로 나를 응시했던 것 같다.
“에리카 잠시만.”
나는 냉정한 눈으로 내게 인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향하던 에리카를 불러 세웠다. 에리카가 내 부름에 몸을 돌렸다. 나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그녀의 손끝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오펠리아의 반지와 손가락 끝에 잠시 보이는 붉은 색에 못 박혀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 붉은 색은 오펠리아의 손끝에서 봤던 매니큐어와 동일한 빛깔이었다.
“테오 오빠 왜요?”
에리카가 나를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마치 오월에 핀 싱그러운 장미처럼 아름다운 미소가 빛났지만 굳어진 내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 오펠리아의 반지 말이야.”
“네.”
반지란 단어를 듣자 에리카가 잠시 얼굴을 굳혔다. 나는 아까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반사적으로 알아챘다. 저런 표정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주로 법정에서 위증을 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보여주는 표정들이다.
“네게 물려준다고 망인이 유언을 했을 때 혹시 옆에 다른 증인이 있었어?”
“네? 아, 그게… 잘 기억이…….”
그녀가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마치 무언가 자신의 무죄를 짜 맞추려는 사기꾼들이 흔히 그렇듯이 말이다. 그런 그녀를 보던 내 얼굴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진다. 저 반지는 오펠리아가 직접 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테오 있잖아.
귓가로 열 살의 오펠리아가 귀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의 그녀는 엄숙한 분위기의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어린애 특유의 천진함을 가지고 있었다.
-응.
-오늘 보여준 내 반지 말이야.
-그게 왜?
-혹시라도 내가 결혼을 못하고 자식이 없이 죽게 되면 말이야. 이 반지 테오 네게 줄게.
어린 날의 오펠리아가 그렇게 말하고선 까르르 웃었다. 여자에게 대대로 전해오는 반지를 왜 자신의 집안사람도 아닌 남인 내게 주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오펠리아는 그때부터…….
“그 반지 훔친 거지?”
“테오 오빠.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에리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내 목소리가 조금 컸던 모양인지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들 쪽으로 모였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 반지 훔친 거 맞잖아.”
“그건 절대 아니에요.”
“훔친 거 맞아.”
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진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반지는 이제 내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