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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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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지막 축제.-5
작성일 : 17-12-14     조회 : 331     추천 : 0     분량 : 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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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에리카의 눈동자가 심하게 동요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웃음기가 거의 사라진 얼굴은 창백 그 자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나의 추측이 거의 사실일 거라는 확신을 더욱 굳혔다. 에리카가 떨리는 입술을 단속하듯이 잘근잘근 씹었다.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오펠리아 언니의 반지가 테오 오빠의 것이라니요? 언니는 분명 저에게 물려준다고 유언을 남겼어요.”

 

 “그게 정확하게 언제지? 시간과 장소를 말해 봐.”

 

 “그, 그건……. 언니가 너무 순식간에 말해서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때가 너무 급박하고 경황이 없어서 말이죠.”

 

 에리카의 눈은 사시나무 떨 듯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논리에 맞는 편이었다. 사람의 숨이 넘어가는 때에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시선을 그녀에게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나도 오펠리아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들었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녀의 친 어머니 장례식을 끝낸 다음날에 말이야. 시간은 티타임을 시작하기 전인 오후 두시 정도 되었을 거야.”

 

 “그래서요?”

 

 에리카가 조금 세게 나왔다. 이 정도로 말을 하게 되면 한발 뒤로 물러서기도 하련만 그녀의 태도는 투사와 같았다. 아마도 예전부터 오펠리아의 반지가 엄청나게 탐이 났던 모양이다. 그 반지가 이제 자신의 손에 들어올 절호의 기회가 아니던가. 아무래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겠지.

 

 “10년이면 아주 긴 시간이에요. 사람의 마음이 열두 번도 넘게 변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잖아요. 언니가 그때는 오빠에게 주겠다 했는지 몰라도, 뒤에 얼마든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 않나요?”

 

 “그건 맞아.”

 

 반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반발심에서 막 던진 말이지만 에리카의 말은 논리가 정연했다.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만했기에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무기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에리카, 미안하지만 말이야. 오펠리아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해에 유언장을 작성해뒀어. 어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 망인의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곤란했던 것 때문에 말이지. 거기에 그 반지를 내게 주기로 한 내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유, 유언장이요?”

 

 유언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에리카의 얼굴에 낭패의 기색이 감돌았다. 아마 그녀는 죽은 오펠리아가 유언장을 만들어두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나는 충분히 그녀의 당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못한 젊은 처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예순이 넘어 이제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드는 노부인이 아니라.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음을 생각하는 나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미래와 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나이에 유언장이란 것을 작성할 리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냉정한 어조로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래. 어찌 보면 11살밖에 안된 어린애의 유치한 청일 수도 있었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어린애의 감상 어린 청일 수도 있었어. 하지만 해밀턴 백작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어. 그래서 정식으로 변호사의 입회하에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하시고, 해마다 유언장의 내용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해두셨어.”

 

 “그런…….”

 

 “원래 유언장이란 장례를 다 마치고 공개하는 것이 정상이겠지. 하지만 그 반지에 관해서라면 문제가 조금 달라. 지금 나의 물건이 될 지도 모르는 반지가 네 손에 끼워져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담당 변호사에게 말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공개를…….”

 

 “자! 줄게요. 주면 되잖아요.”

 

 에리카가 부들부들 떨면서 손에 낀 반지를 벗어서 내 앞에 마구 던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까의 아름다운 미소가 죄다 사라지고 악귀와 같은 분함과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피가 통하지 않았다고 해도 2년 동안 가족으로 살았던 이의 장례식에서 할 만한 품위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녀가 망인의 반지를 훔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사실 보석이란 것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갈망과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그런 보석이 망인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에리카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찬란한 5월의 햇살 아래서 바다보다 푸른빛의 사파이어 반지가 광채를 발했다. 내가 서둘러 그 반지에게 다가가 주워드는 동안 에리카는 쌩 바람을 일으키며 장례식이 열리는 신전 쪽으로 돌아가 버렸다. 내 곁을 멀어지는 그녀에게는 너무나 분하다는 기색뿐이었다.

 

 

 *

 

 

 식전에 약간의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장례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해밀턴 백작가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몸이 아픈 백작님 대신 2년 전에 그와 재혼한 칼리아 해밀턴 백작부인이 가주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에리카의 친모인 그녀는 30대 후반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딸 에리카와 같이 서 있는데도 모녀 사이가 아닌 자매 사이로 보일 정도로,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상복에 불과한 옷도 가진 그녀가 입고 있으니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는 의상이 될 정도였다.

 

 “정말 와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때마다 그녀는 특유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예의바르게 화답했다. 에리카와 같은 젊은 싱그러움은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성숙한 여인의 농익은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시간이 되자 데바교 사제의 주제로 엄숙한 분위기에서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에리카는 자신의 어머니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은 상태였다. 그녀는 내게 한방 당하고 반지를 빼앗긴 것이 무척이나 분했던 모양인지,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돌아가며 관속에 있는 오펠리아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빽빽한 편지지가 가득 든 편지를 그녀의 관에 넣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오늘 아침에 딴 것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꽃을 그녀의 관에 넣어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인형으로 보이는 것을 넣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내 손에는 편지도, 아름다운 꽃도 귀여운 인형도 전혀 들려있지 않았다. 그저 아까 에리카에게서 되찾은 그녀의 반지만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의 유언장을 열어보지 않아도 그녀는 분명 내게 이 반지를 남겼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 깨달은 사랑이었다. 언제나 곁에서 숨 쉬던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사랑이었다. 그런 사랑이 남긴 반지를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절대 넘기고 싶지 않았다. 값비싼 반지가 그대로 흙속으로 묻히는 것은 조금 안타까웠지만, 그것이 본격적인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내 사랑에 대한 내 마지막 보답이었다.

 

 내 손이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있는 오펠리아의 손가락을 향했다. 그녀의 손은 어젯밤 느꼈던 것과 동일하게 너무나 차가웠다. 그 차가운 손가락을 움직여 겨우 그녀의 반지를 끼웠다. 아까 살아있던 에리카의 손에서 이질적인 빛을 보이던 반지는 원래의 주인을 찾아 다시 고상한 빛을 발했다. 나는 반지를 되찾은 오펠리아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테오 이제 그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오펠리아와 만날 기회를 줘야지.”

 

 내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자 아버지께서 다가 오셔서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하지만 내 눈은 오펠리아의 손을 떠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어젯밤에 발견하지 못한 사실 하나를 지금 알아서다.

 

 “테오도르.”

 

 “아니, 아버지 잠깐만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오펠리아의 차가운 손보다 더 싸늘한 감각이 나의 몸을 휩쓸고 갔기 때문이다.

 

 “아버지, 해밀턴에서 제일 유능한 의사는 누구죠?”

 

 나는 냉정한 눈으로 내 아버지께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가 심상치 않은 나의 반응을 보시곤 곧바로 내 곁으로 와 대답을 하셨다.

 

 “닥터 코닝이 섬세하게 진료를 잘 보는 편이지. 무슨 일이냐? 어디가 편찮은 거냐?”

 

 “저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오펠리아입니다.”

 

 “뭐?”

 

 아버지의 눈이 내게 설명을 요구하셨지만 내 눈은 오펠리아의 손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손끝, 바로 매니큐어가 발린 곳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발린 매니큐어는 싸구려였던 모양인지 바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끝이 벗겨진 채였다. 그리고 그 벗겨진 손끝색이 내게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내가 계속 오펠리아의 관 옆에서 자리를 지키자 해밀턴 백작부인이 내 곁으로 왔다. 그녀의 뒤로 딸인 에리카도 함께 온 상태였다. 나는 백작부인과 에리카를 차례로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장례식은 이만 중지하도록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 당장 행정관을 불러서 수사를 해야겠어요.”

 

 “수사라뇨? 그게 무슨. 오펠리아는…….”

 

 “네. 살해당했습니다.”

 

 나는 분명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나의 시선이 다시금 자신의 반지를 낀 오펠리아를 향했다. 매니큐어가 벗겨진 손톱의 일부에 선명하게 드러난 바늘 자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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