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에서 나온 ‘살해’란 단어는 금세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궁금증에 가득한 얼굴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엄숙한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음에도 마치 즐거운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온 관람객과 같은 모습이었다.
내 단호한 표정에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지셨다. 아버지가 잠시 내 곁에서 멀어지신다. 아마도 방금 말한 닥터 코닝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실 모양이다. 나는 멀어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한번 쳐다보고선 내 앞에 떨며 서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보냈다.
“살해라니요. 그게 무슨 끔찍한 말이죠?”
해밀턴 백작부인의 얼굴이 그 단어를 듣자마자 새파랗게 질렸다. 아직은 그녀를 범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 증거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내 속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살인입니다. 그것도 독살입니다.”
“독살이라고요?”
백작부인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 전형적인 피해자 가족의 반응이다. 그녀의 반응이 연기인지 아니면 실제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기에, 나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 의견을 밝혔다.
“오펠리아의 손톱 끝에 묘한 자국이 있습니다. 바늘로 찌른 자국 같아요.”
“바늘이요?”
“네. 의사가 와서 정확하게 검시를 해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독극물을 묻힌 바늘을 손톱 끝으로 찔러 넣는 방식을 쓴 것 같습니다.”
“설마요. 그럴 리가.”
“그리고 그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 범인은 오펠리아의 손끝에 매니큐어를 발라두었더군요. 독극물이 주입된 부분은 표시가 나기 마련이니까요.”
나의 시선이 오펠리아의 손끝을 향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녀의 매니큐어에 신경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반지를 훔쳐 낀 에리카에게서 반지를 돌려받지 않았더라면, 돌려받은 반지를 오펠리아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녀는 살해당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 채로 땅에 묻혔을 것이다.
“평화로운 해밀턴에서 살인이라뇨. 이런!”
“신이시여.”
“저렇게 착하고 선량한 오펠리아가 살해당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너무 끔찍해요. 도대체 누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너무나 무섭다는 얼굴로 한마디씩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한 상태였다. 황태자 전하의 젊은 서기관으로 발탁된 이후 내가 가장 먼저 익혔던 덕목이 바로 이 평정심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감정에 더욱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 감정 때문에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펠리아가 죽기 전에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자세한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 작은 단서들을 전부 짜 맞춘 후에 감정을 폭발시켜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백작부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지요.”
백작부인이 창백하지만 아직 절도 있는 모습으로 내 말에 대답했다. 나는 최대한 사무적으로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해밀턴 백작님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상태는 지금 어떠하십니까? 대화는 가능하신지요?”
“대화라……. 지금 말입니까?”
그녀가 조금 묘한 얼굴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직접 만나 뵙고 여쭈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오펠리아가 최근 교제한 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은 에리카가 더 잘 알고 있답니다. 아마 아시겠지만 둘은 친자매가 아니어도 상당히 친했답니다. 차라리 에리카에게 이야기를 들으시는 것이 더 나으실 겁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잠시 입술을 닫았다. 잠시 적당한 말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내가 의문을 가지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을 그녀에게 전부 말할 수는 없다. 그녀는 지금 오펠리아의 죽음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보는 사람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적과 아군으로 나뉘는 전장이 아닌 곳에서의 살인은 순간의 격한 감정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의 서기관으로 여러 자료를 정리하면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살인은 감정이 아닌 이성과 치밀한 계산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살인현장에서 가장 의심을 많이 받아야 하는 이는 살인현장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이 아니면 그 살인으로 가장 이득을 많이 챙길 수 있는 사람이다. 죽은 자의 원통함을 풀어주고자 한다면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움직여야만 한다. 살인자는 되도록 빨리 검거하는 것이 좋다. 살인은 언제나 한건만 일어나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젊은 아가씨의 죽음의 경우 사귀는 남자가 연관이 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젊은 남자는 때로는 격렬한 법이니까요. 혹시 그녀가 최근에 혼담이 오고가는 일은 없었나요?”
일부러 사고의 혼선을 주기 위해 다른 쪽의 이야기를 던져본다. 이제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미혼여성이니 일반적인 수사관이라면 충분히 피해자의 가족에게 던질 만한 이야기다. 백작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원래 해밀턴에서 자식의 혼담은 아버지의 몫입니다. 그러니 새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추진했을 수도 있습니다. 백작님을 좀 뵈어야겠어요.”
“하지만 남편은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안 그래도 오펠리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예요. 그런데 그 애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면… 또 다른 장례식을 치르게 될 수도 있어요.”
“살인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단순하게 사실관계만 조금 들을 예정이에요.”
나는 그녀의 설득을 위해 조곤조곤한 어투로 말투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밝은 편이 아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른 조건을 붙였다. 지금 현재 해밀턴 가의 실질적인 가장은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저의 아버지께서 사람을 보내셔서 닥터 코닝을 부르러 가셨습니다. 유능한 의사라고 하더군요. 정 걱정되시면 그 사람을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까지 한다면야. 좋습니다.”
백작 부인이 무언가를 망설이는 표정을 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수사에 필요할 지도 모르는 면담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서기관으로 일하면서 익혀둔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신 이야기는 짧을수록 좋겠어요. 남편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서 말입니다.”
“네. 10분을 넘지 않을 겁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정말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렇게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녀의 반응을 유심하게 살피면서 말이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30대 초반의 한 사내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닥터 코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그날 장례식은 취소되었다. 오펠리아의 손끝을 자세히 진찰하던 닥터 코닝이 독에 의한 사망이 확실하다는 진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오고갔다.
독은 내가 추측한 대로 열 손톱의 밑으로 주입된 상태였다. 닥터 코닝은 이곳으로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가져온 약품을 이용해 오펠리아의 손끝에 발린 매니큐어를 섬세하게 지워나갔다. 그리고 붉은 색의 매니큐어가 사라진 곳에서는 누가 봐도 선명한 독 주입의 흔적이 나타났다.
의사의 선고를 들은 백작부인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쓰러지거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아마도 일말의 책임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이 지방의 치안을 맡은 행정관을 부르러 갔고, 오펠리아의 시신은 즉시 부패하지 않도록 얼음을 넣은 상태로 신전 안으로 다시 안치되었다.
서둘러 도착한 행정관이 그녀의 시신을 조사하는 동안 나는 닥터 코닝과 함께 백작가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독의 정체는 유능한 행정관이 알아서 밝힐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다른 것이었다.
거의 2년 만에 찾아가는 백작가는 이전 어렸던 내가 자주 놀러가던 때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마도 안주인이 바뀐 것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모양이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입니다. 해밀턴 백작님.”
나는 완전히 쇠약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오펠리아의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인사말을 건넸다.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