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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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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지막 축제.-7
작성일 : 17-12-14     조회 : 342     추천 : 0     분량 : 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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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억하는 오펠리아의 아버지 존스 해밀턴 백작은 산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해밀턴 내의 가장 유서 깊은 가문의 후계자인 그는 지역 내의 대소사를 전부 자신의 일처럼 챙기는 귀족 중의 귀족이었다. 어릴 때의 내가 아버지와 더불어 진심으로 존경했던 어른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2년 만에 거의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사냥과 낚시를 좋아하여 내게 송어 잡는 법을 직접 가르쳐주었던 그가, 자신의 어린 딸을 애마에 태워서 근처로 산책하는 것을 즐겨하던 그가, 낚싯대는커녕 지팡이조차 쥘 수 없을 정도의 가는 몸을 하고 누워있는 것이다.

 

 그 변화가 너무나 놀라워 나는 몇 번이고 그의 얼굴을 확인해야만 했다. 내 기억속의 해밀턴 백작이 맞는지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가 맞았다. 그렇게 심하게 얼굴이 상하고 부드러운 금발이 새하얗게 변했음에도, 나를 향해 자상하게 웃던 그 눈매는 여전하다. 그 눈이 열리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말이다.

 

 “무슨 병이신 건가요? 부인과의 결혼식 때만 해도 그렇게 건강하시고 정정하시던 분이 이렇게 급속도로 나빠지시다니요.”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옆에 서 있던 해밀턴 백작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가 수심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와 결혼하고 나서 6개월도 안되어서 심장이 아프다, 밤에 잠을 못 이룬다 하시더니…….”

 

 “그래요?”

 

 “근처에 유명하다는 의사는 전부 다 진료를 해봤고요. 수도 린턴에 계시는 유능한 닥터에게까지 진료를 받아봤답니다. 하지만 전혀 이유를 모른대요.”

 

 “그렇군요.”

 

 나는 잠들어 있는 병자의 가는 손을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던 손이다. 그 큰 손이 저렇게 가늘어지다니. 나는 혈색이 마른 손을 가만히 잡았다. 시든 나무와 비슷한 손에는 생명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부인,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기에 온 저와 닥터에게 차 한 잔만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금 목이 말라서요.”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나와 백작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 백작부인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아, 네.”

 

 백작부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무언가 백작에게 감시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걸까. 나는 백작의 자는 얼굴을 살핀 후 차갑게 입을 다문 그녀를 응시했다.

 

 “곤히 잠드신 백작님을 깨울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그분이 깨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차 한 잔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백작은 현재 깊이 잠이 든 상태였다. 편안하게 오르내리는 그의 가슴팍이 현재의 수면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이런 그를 깨워서 질문한다 하더라도 원하는 답을 듣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건강이 이렇게 나쁜 상황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알겠습니다. 곧 준비하도록 하지요.”

 

 백작부인이 승낙의 뜻으로 방에 있는 나와 닥터 코닝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 일어섰다. 방 밖으로 나가는 걸음걸이에 망설이는 기운이 느껴졌지만 우리들 중에 거기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나가자 방안에는 졸지에 우리만 남게 되었다.

 

 나는 백작부인이 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백작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서둘러 확인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오월인데도 제법 두꺼운 솜이불을 들추자 팔과 상황이 비슷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인상이 그려졌다.

 

 “무슨 일인가요. 아이멜 서기관.”

 

 닥터 코닝이 심각한 얼굴로 백작의 양말을 벗기고 있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대낮에는 한 여름에 육박하는 온도였음에도 백작은 두꺼운 양말을 신은 채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양말을 벗기자마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

 

 닥터 코닝의 얼굴색이 변했다. 양말 속에서 들어난 백작의 발톱들 위로 오펠리아의 손톱에서 볼 수 있었던 자국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던 탓이다. 나는 다른 쪽의 양말도 서둘러 벗겨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에도 독침으로 찌른 흔적이 선명하다. 그것도 여러 번 말이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한번 살인에 성공한 범인은 결코 한번만 일을 저지르지 않는 법이다. 한 번의 성공이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손에 자국이 없다면 발을 살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범인의 패인이 될 것이다.

 

 “오펠리아와 마찬가지였군요. 범인은 누굴까요?”

 

 닥터 코닝이 심각한 어투로 질문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범인에 관해 조금 짐작하고 있는 기색이다. 나는 그에게 동조의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원래 살인 시도가 있다면 그 살인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을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죠.”

 

 “닥터, 해밀턴 백작과 백작 영애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급사하게 된다면 가장 이득을 많이 얻는 이는 과연 누구겠습니까?”

 

 말을 마친 나의 눈이 방문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차 세트를 직접 들고 있던 해밀턴 백작부인이 새하얀 얼굴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의 차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여름날 축제의 마지막 날 나타나는 축제의 여왕처럼 말이다.

 

 

 *

 

 

 낮에 오펠리아의 시신을 검시한 행정관이 급히 연락을 받고 오후에 해밀턴 백작가를 방문했다. 해밀턴 백작의 발톱 안에 난 상처자국을 본 행정관의 얼굴이 경악에 휩싸였다. 동일범에 의한 동일한 살해시도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체를 많이 노출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에스틴 제국에서 통념적으로 발은 남에게 거의 보여서는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사람의 건강을 살피는 의사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거의 볼 수 없는 곳이다. 부모자식 사이거나 부부 사이가 아니면 거의 볼 수 없는 부분에 독을 주입했다는 점에서 해밀턴 백작부인은 가장 유력한 살인미수 용의자가 된 상태였다.

 

 “집안의 곳곳을 샅샅이 수색해. 하나의 증거라도 빼놓으면 안 된다.”

 

 행정관은 수많은 관리들을 대동하고 집안의 온 구석을 전부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남자들의 공간뿐 아니라 여자들의 공간도 전부 수색의 대상이었다. 살인과 살인미수라는 중대 범죄 앞에서 남녀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예법은 그 빛을 잃었다. 심각한 얼굴의 관리들이 이곳저곳을 뒤지며 범죄와 관련이 있을 법한 증거들을 죄다 긁어모았다.

 

 나는 수사관들에게 눈을 떼고선 해밀턴 백작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동시에 그의 옆에 있는 닥터 코닝과 행정관이 데려온 의사들이 주입된 독의 종류를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책을 뒤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한 사람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육친이 살해되는 것을 막아냈으니 말이다. 그래도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테오, 정말 수고가 많았다.”

 

 어느새 소문을 듣고 내 곁으로 오신 아버지께서 내게 중얼거리셨다. 아버지의 얼굴은 어젯밤 그분을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밝아진 편이었다.

 

 “그동안 키워주신 값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그제야 아버지께서 오펠리아의 부고를 급하게 알리신 의도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미 오펠리아가 살해당했다는 심증을 가지신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의 의심을 진실로 밝히기 위해서 수도 린턴에 있던 유능한 서기관인 나를 일부러 부르신 것이었다.

 

 “언제부터 의심을 하셨던 것입니까?”

 

 “처음 해밀턴 백작이 자리에 누웠을 때부터였다. 해밀턴 백작과 결혼한 칼리아는 이전부터 소문이 좋지 않았었거든.”

 

 “소문이라 하시면…….”

 

 “이상하게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었다. 그래서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라는 소문이 붙어 있었지. 그래서 결혼 전부터 존스를 말렸었어. 존스는 내 충고에 그저 코웃음을 쳤을 뿐이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여기까지 말씀 하시고선 입을 다무셨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상 입에 험한 말을 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버지의 침묵 안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어있는지 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오펠리아의 반지 말이다.”

 

 “네.”

 

 나는 오펠리아의 손가락을 다시 장식한 반지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몇 번을 망설이시더니 다시 입을 여셨다.

 

 “닥터 코닝이 그것과 관련해서 네가 할 말이 있다고 하는구나.”

 

 “닥터 코닝이 말입니까?”

 

 의외의 인물이 화제에 등장하자 내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아버지께서 주변을 살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꼭 만나보도록 해라.”

 

 “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의 최후에 벌어지는 마지막 축제가 또 다른 축제로 연결되는 것을 감상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말
 

 '마지막 축제'란 소제목은 장례식을 지칭한 은유라 보시면 됩니다. 더 길어질 것 같아서 몇개의 에피는 쳐내고 8화로 압축했습니다. 오펠리아를 언제까지 죽은 상태로 두면 안되니까요.

 

 이글을 쓰면서 몇번이나 닥터 코닝을 닥쳐 코닝으로 썼다가 고친 것은 안 비밀입니다.

 

 저는 내일 오겠습니다. 비축분이 한 30만자 정도라 내일은 2장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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