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현재의 팍팍한 삶에서 가끔 이러한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에 시간을 돌려서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잘해서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인간이 이런 상상을 하는 이유는 한쪽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을 치열하게 살 수만은 없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진 반지라니. 믿을 수가 없다. 어쩌면 눈앞에 있는 사내가 내게 농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내 앞에서 묵묵히 찻잔을 비우는 닥터 코닝을 응시했다.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눈앞의 이 인간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시는 것 다 압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것은 전부 10년도 전에 제 누님이신 해밀턴 백작부인께 직접 들은 말입니다.”
“아니, 그런 말을 왜 제게…….”
의문이 너무 많았다. 집안에서 내려온 반지의 비밀이라면 집안 내에서만 전해지는 비밀이 아니던가. 그런 중요한 비밀을 누나가 이복 남동생에게 이야기해준 것은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이복이라 해도 형제는 형제니 말이다. 하지만 왜 다음으로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나란 말인가.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반지의 정식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반지의 주인이 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게다가 그 반지는 지금 제 손에 없습니다.”
문제의 반지는 지금 신전 안에 누워있는 오펠리아의 손에 끼워진 상태다. 아직 수사 중이라 장례식이 중단된 상태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전부 나오면 곧 원래의 주인과 함께 땅속에 영원히 묻히게 될 반지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반지를 취할 생각이 결코 없으니 말이다. 코닝이 다 마셔서 비어버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반지는 혈통의 힘으로 작동되는 게 아닙니다. 반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반지의 정식 주인뿐입니다. 게다가 반지의 주인이 정식으로 다른 사람으로 이동하는 때는 원 주인이 사망할 때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반지의 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비록 오펠리아의 외삼촌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렇군요.”
내 마음속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단 며칠만이라도 좋았다. 시간을 되돌리게 된다면 저렇게 작고 좁은 관에 누운 차가운 오펠리아가 아닌 살아있는 오펠리아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 경고의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일반적인 법칙에서 비롯된 경고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자신이 먹을 빵을 위해서 인간은 농사를 짓고, 밀을 빻고, 빵을 반죽해서 구워야 한다. 요즘처럼 산업화가 시작되는 때에는 그런 모든 번거로운 작업을 직접 안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이 한 노동의 대가는 지불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빵이 아닌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것을 얻는 것에도 이렇게 대가가 필요하다면 인간의 힘을 넘어선 기적과 같은 힘에는 어떠한 대가가 필요할까. 어쩌면 일반적인 대가가 아닐 수도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생명을 구하는 일이니 혹시 다른 생명을 대가로 요구할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 아니던가.
“혹시, 저를 부른 이유가 말입니다.”
나는 말을 골랐다. 닥터 코닝의 얼굴에 피로가 점점 겹치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어려운 말을 꺼내지 못해서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한다면 내가 선수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네.”
“이 반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가가 필요한 건가요?”
“조금 비슷합니다.”
“어떤… 대가죠?”
“음, 생각에 따라서 조금 다르겠지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큰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닥터 코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를 위해서는 차가 한잔 더 필요한 것 같았지만 이미 포트는 비어있는 상태다. 그가 그대로 포트의 뚜껑을 한번 열어본 뒤에 그대로 닫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거슬러 올라간 시간이 이전에 살아온 삶과 다른 인생일 수 있어요.”
“물론 그렇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거세게 흘러가는 강물과 비슷하다. 언제나 비슷한 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세부적인 강물의 양상은 매번 다른 법 아니겠는가. 인간의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과 선택의 연속이다. 매번 같은 선택을 해도 결과가 달라지는데 다른 선택을 하면 얼마나 원 선택과 멀어질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반지의 힘으로 시간을 거스른 그 본인은 바뀐 미래에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합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피곤에 몸이 축축 쳐지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어서다. 시간을 거스른 그 본인이 바뀐 미래에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면 무슨 목적으로 시간을 거스른단 말인가. 닥터 코닝이 망설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 반지의 주인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서 말씀을 제대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님이 일러준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합니다.”
“…….”
“대대로 이 반지를 물려받은 사람들 중에 실지로 반지의 힘을 사용한 사람은 세 사람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세 사람 중에서 어느 누구도 행복한 미래를 맞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반지가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고 입을 닫았다. 나는 왜 그가 그렇게 망설였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용자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결말을 가진다면 시간을 거슬러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세 명이란 숫자도 상당히 많은 숫자일 수도 있다.
“오늘 아이멜 서기관에게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기 전부터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미 그 아이는 죽었고, 이대로 전혀 모른 채로 그냥 넘어가도 그만이니까요. 반지의 힘을 사용한 대가도 너무 크고요.”
닥터 코닝의 얼굴에는 익숙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 내려왔을 때 봤던 내 아버지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과도 유사한 것이었다. 그의 눈이 다음 순간 나를 응시했다. 그 예전 자주 보았던 오펠리아의 어머니와 동일한 따뜻한 갈색 눈동자였다.
“하지만 단 하나의 기회를 이대로 놔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할 수 있으면 제가 직접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 세상으로 가신 누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는군요.”
그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내게 무거운 짐을 떠맡긴다는 자각 때문이리라.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저는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반지의 현재 주인인 당신의 희생이 너무나 크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 말과 몇 가지 말을 끝으로 자신의 말을 전부 마쳤다. 나는 한참이나 침묵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
나는 천천히 그의 집을 나섰다. 인간은 언제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출세를 하고 학문을 쌓는다. 그런데 그런 행복을 모두 포기하는 삶이라니.
맹세코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물론 내 출세를 위해 다른 사람을 모함하거나 짓밟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정말 떳떳하다. 하지만 나의 것을 얻기 위해 양보가 아닌 쟁취하는 삶을 산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대로 오펠리아를 땅에 묻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의 유년이었으며 나의 순수였다. 물론 그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좋은 집안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새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그 미래의 부인은 오펠리아의 자리를 결코 차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행복과 과거로 시간을 돌린 후 그녀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발걸음은 절로 오펠리아가 안치되어 있는 데바교 신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전 앞에는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신체는 이번 사건의 중요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경비병이 나의 얼굴을 알아보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오늘 일련의 사건 이후로 나는 일종의 영웅이 된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와 내가 과거에 오랜 우정을 이어왔다는 것을 모르는 해밀턴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네. 안녕하십니까?”
“고인을 보러 오신 겁니까?”
“그런 셈이죠.”
“그러면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아마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경비병이 그렇게 말하고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의례적인 미소였지만 그 작은 동작에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나는 경비병에게 감사의 목례를 하고 신전 안으로 들어섰다. 신전 안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오펠리아가 관안에 누워 있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표정의 그녀는 사파이어 반지를 끼고 편히 눈을 감고 있다. 예의 반지가 안의 불빛을 받아 묘한 광채를 뿜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