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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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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전환점.-3
작성일 : 17-12-15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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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전의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가끔 켜놓은 가스등에서 찌지직 하는 파열음을 낼 뿐, 이곳에서 스스로 소리를 내는 살아있는 존재는 내 자신이 유일했다. 나는 밤의 고요 속에서 천천히 망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어젯밤에 봤던 것과 다름없이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천천히 내 손을 오펠리아의 뺨에 가져갔다. 그녀의 뺨은 어제 입을 맞춘 손과 마찬가지로 차디찼다. 미뤄진 장례식 덕에 시체의 곁에 얼음을 놔둬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 심장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망자가 누워있는 곳에 살아있는 자가 혼자 와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망자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 해도 서슴지 않고 저질러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지금의 내가 조금 그러했다.

 

 그녀가 끼고 있는 푸른 사파이어가 박한 반지가 내 눈 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질 좋은 사파이어는 마치 밤의 눈동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조용히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를 다시 시작하였을 경우 혹시라도 놓게 될 것들을 말이다.

 

 지금의 나는 영특한 머리와 상황 판단력으로 남들보다도 빠른 나이에 정식 서기관에 발탁되었고, 아드리안 황태자 전하의 신망을 얻는 서기관 중의 한 사람이 된 상태다. 이대로 황태자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시게 된다면 나의 출세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과거를 되풀이한다 해도 나의 능력을 바탕으로 얻은 출세라 그다지 변하는 부분은 없을 것 같다.

 

 출세를 위해서 이렇게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족 관계는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처음 수도 린턴으로 떠날 때에 아버지와 조금 대립하긴 했으나, 지금은 회복되어서 아버지와 친밀하게 편지를 주고받는 편이다. 다정하신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과도 역시 사이가 좋아서 과거를 되풀이한다 해도 변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수도 린턴에서 서기관을 하면서 사귄 사람들의 관계를 돌이켜 보았지만 그다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테오도르 아이멜로 있는 이상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들은 과거로 회귀한다 해도 호감을 보일 것이고, 내게 적대감을 느끼는 이들은 여전히 나를 적대하게 될 것이다.

 

 단 하나 조금 짜증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얻은 것들을 위해 같은 노력을 두 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같은 길을 두 번 걷는 것이 얼마나 진저리치게 싫은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아마 군을 제대한 사람들이 서류 이상으로 한 번 더 군 복무를 해야 한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닥터 코닝이 말한 ‘행복해질 수 없다.’란 것이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내 상태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진행되어도 변하지 않는다면, 다시 되풀이하는 삶이 내게 그렇게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는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가까운 상황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상대가 이미 죽은 상태가 아니던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죽은 자에게 그 노력은 결코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하나, 시간을 돌리는 것 외에는 말이다.

 

 이대로 그녀를 반지와 함께 땅에 묻는다 해도 나는 완전한 행복을 누리진 못할 것이다. 그녀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고 새로운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 해도 그 행복은 오펠리아가 줄 수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될 것이었다. 내 마음속 신전의 주인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닥터 코닝은 나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내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비난하지 않는다 해서 끝난 게 아니다. 내 속에 있는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준엄한 검사가 되어 나를 비난할 것이다. 내 심장이 뛰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모든 생각을 마친 나는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오늘 낮에 내가 손수 끼워준 반지를 되찾아가기 위함이었다. 반지가 요사스러운 광채를 뿜으며 스르르 그녀의 손을 벗어나 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다섯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반지는 맞춘 것처럼 내 손가락에 딱 맞게 들어갔다.

 

 -여자의 네 번째 손가락에 들어간 반지가 남자의 다섯 번째 손가락에 맞으면 그 커플은 완전 천생연분이래.

 

 내게 처음으로 반지를 보여줬던 오펠리아가 그렇게 말하고선 내게 그것을 끼워줬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나도 아직 열 살밖에 안된 소년이었기 때문에 성인여성의 반지가 당연히 내 손에 헐렁헐렁하게 돌아갔었다.

 

 그런데 고작 십 년 만에 네 번째 손가락은커녕 세 번째, 두 번째 손가락에도 자연스럽게 쑥쑥 들어간 예전의 반지가 다섯 번째 손가락에 딱 맞다니. 정말 세월의 무상함이 막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펠리아. 나의 친구, 나의 누이.”

 

 가만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본다. 손을 장식한 반지가 사라지자 그녀의 손이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녀는 당연히 말이 없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다정스럽게 대답해주던 이전기억이 떠올라서 막 목이 막힌다.

 

 “우리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둘 다 살아있는 상대로 말이야.”

 

 내 눈이 뜨거워지더니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아있는 자의 눈물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도 나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미 죽어버린 그녀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그녀가 들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때늦은 고백을 해본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혈색 없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현재의 오펠리아에게 주는 작별의 인사이자 또 다른 사랑의 고백인 셈이다.

 

 뜨거운 내 입술과 차가운 그녀의 입술이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왕자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긴 입맞춤에 공주님이 되살아난 동화속의 이야기와는 달리,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공주님인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채로 관 속에 누워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곧 시간을 되돌릴 것이니 말이다.

 

 “외롭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줘.”

 

 나는 이렇게 속삭이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망설이거나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그녀를 등지고 신전을 떠나는 와중에도 그녀는 여전히 요동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내 손안에 끼워진 반지만이 자신의 존재를 내게 각인시킬 뿐이었다.

 

 

 *

 

 

 “인사는 다 끝나셨습니까?”

 

 내가 나오자 신전밖에 서 있던 경비병이 다시 아는 척을 했다. 그의 눈이 내 얼굴을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그의 눈에 측은한 감정이 도는 것을 본 나는 서둘러 눈가에 아직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이런 악독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범인에게 철퇴를 내리는 것도 중요하고 말입니다.”

 

 경비병이 위로하듯 다정히 말을 건넸다. 그는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일러주는 것 같다.

 

 “그렇죠.”

 

 나는 이번 독살 사건의 범인인 칼리아 새튼 해밀턴과 그녀의 딸 에리카의 이름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겼다. 그녀들이 이곳에서 저지른 흉악한 범죄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범인으로 지목된 해밀턴 백작부인은 사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 한다. 그녀의 범죄가 이번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그녀 주변에 있었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유해가 속속히 파헤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에도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면 중벌을 면지 못할 게 분명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절대 그녀들에 대해 잊어서는 안 된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녀들이 해밀턴 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녀들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

 

 

 경비병과의 대화를 나는 즉시 닥터 코닝의 병원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두 명 정도 있었을 뿐 텅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 빈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주파해 나갔다. 마음을 정한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닥터 코닝의 병원은 지방에 있는 개인병원이 다 그렇듯이 병원 바로 옆에 살림집이 붙어있는 형식이었다. 그의 병원 앞으로 뛰다시피 돌아온 내가 문을 두드리자 바로 문이 열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멜 서기관.”

 

 닥터 코닝이 상당히 피곤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잠의 기운이 전혀 없었다. 내게 그런 말들을 하고 나서 그도 분명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방법을… 시간을 되돌릴 방법을…….”

 

 전력질주를 하다시피 돌아온 지라 나의 말은 중간 중간이 끊어졌지만 그는 내 말의 요지를 금방 알아들었다. 그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선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의 말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내 뒤로 깊은 밤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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