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코닝은 나를 불이 켜진 자신의 병원 진료실로 데리고 갔다. 병원 옆에 붙어있는 살림집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거의 나질 않았다. 진료실에 나를 앉힌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는 손수 찻잔과 티 포트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고양이의 걸음처럼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내가 방금 잠이 들어서 깨우고 싶지 않아서요.”
“그러시군요.”
역시 아까 방문한 나를 맞이했던 부인은 역시 그의 아내가 맞는 모양이다. 그는 최대한 소리를 자제하면서 자신과 내가 마칠 차를 따르는 중이었다. 이런 작은 모습에서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용건은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만 알면 되니까요.”
“네. 그러실 테지요.”
그가 내게 찻잔을 건네고선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잠시 뜸을 들이듯 다시 입을 연다.
“반지를 챙겨오셨나요?”
“네.”
나는 나의 다섯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묘하게 반지와 나를 한 번씩 응시한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고마움, 미안함, 그리고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감정들도 말이다.
“제가 듣기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이 반지를 끼고 그대로 잠들면 된다고 했습니다. 쉽다면 참 쉬운 방법이지요.”
“특별한 의식이라던지, 그런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요?”
너무나 쉬운 방법에 나는 조금 허탈해졌다. 반지를 끼고 잠들면 된다니, 정말 그것뿐이란 말인가. 그러자 닥터가 빙그레 웃었다.
“네. 저도 이전에 누님의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면서 들은 것이라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이 반지가 시간을 거슬러간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을 누님에게 들은 적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갓난아기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중요한 디테일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놓친 게 많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또래 중에서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지, 아직도 경험이나 지식에 있어 모자란 면이 많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런 부분도 잊지 않고 채워 가리라 다짐한다. 이런 내 옆에서 닥터 코닝이 정다운 눈빛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만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처음 인식된 때가 만약 십년 내라면 말입니다.”
“네.”
“도착하자마자 저를 찾아오세요.”
“네?”
순간 그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기가 힘들다. 내가 설명을 바라며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자 그가 웃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누님에게 반지의 비밀을 처음 들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일 년 전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열 살로 되돌아갔다면 저는 이미 반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미 이곳 해밀턴에 정착하고 있을 때이기도 하고요.”
“아아, 그렇군요.”
“혈족이 아닌 당신이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 직접 시간을 돌리는 상황에 오펠리아의 외삼촌인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반드시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닥터 코닝이 그렇게 말하고선 내 손을 잡았다. 정확히는 내 손위에 있는 반지 위에 손을 얹은 것이지만 말이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아까 신전에서 느꼈던 오펠리아의 차가움과 대비되는 느낌이다. 싸늘한 그녀의 손에 이 따뜻함을 반드시 불러올 것이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네.”
“어쩌면 잠이 든다는 것은 죽음과 더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흐려지는 것은 비슷하니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닥터가 마중하듯 함께 일어섰다. 그의 말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불안해지는 마음을 잡으며 내가 잠시 대꾸했다.
“그래도 잠이 들었을 때는 꿈을 꿀 수 있잖아요.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고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영감을 주는 꿈 말입니다.”
“맞습니다. 데바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병원을 나섰다. 밤이 깊어진 탓에 거리는 아까보다 더 한적해져 있었다. 내가 밤길을 서두르는 와중에도, 등을 든 그가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그의 말없는 응원에 힘을 얻어 나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
되돌아간 나의 집은 고요 그 자체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피곤한 하루를 마감했다. 어젯밤부터 오늘밤까지 쉴 새 없이 사건의 연속이어서인지 온몸의 근육이 마구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내가 올 때까지 잠자지 않고 기다린 톰슨의 도움으로 깨끗이 씻은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18년의 세월을 보냈던 내방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맞아주었다. 시간을 돌렸을 때에 내가 도대체 몇 살로 돌아갈지 알 수 없지만 그런다 해도 이 방은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다섯 번째 손가락에 그녀에게 물려받은 반지를 끼고 누우니 내 침대가 이상하게 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나의 의식이 흐려지는 때 서둘러 꿈을 불러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은 눈 안으로 까만 밤하늘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수많은 여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려서 그 여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녀들이 혈통관계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내 손에 끼고 있는 반지의 주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다양한 유행의 옷을 입은 여인들이 끝도 없이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그녀들이 입은 옷들이 역사적인 유행과 상관이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존재를 눈치 채는 여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그녀들의 곁에서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중에서 한 여인이 나를 돌아다보았다. 무척이나 안면이 있는 여인이다. 아니, 안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를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바로 오펠리아의 친 어머니인 케이트 해밀턴 백작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시선이 나의 얼굴을 지나 내 반지에 닿았다.
“테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울림이 있는 여성의 목소리. 내 기억 속에 남은 고 해밀턴 백작부인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생동감 있는 여성, 아니 아직은 소녀의 목소리다. 서둘러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오펠리아라는 것을 깨달아서다.
“테오. 이제 일어나야지.”
그녀가 다시금 분명하게 말했다. 이전 그녀에게서 자주 들었던 목소리다. 순간 번쩍 눈이 떠졌다. 바로 잠에서 깬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시선을 돌려야 했다. 분명 밤 시간에 내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지금은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는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테오! 남에 집에 놀러 온 주제에, 무슨 낮잠을 그렇게 오래 자?”
눈앞에 살아있는 그녀가 서 있었다. 관에 누워있던 모습보다 몇 살은 어린 젊고 생생한 오펠리아다. 현실을 판단할 수가 없다. 내가 너무나 그녀가 그리운 나머지 꾸는 꿈인지, 아니면 진짜 반지의 힘으로 되돌아온 것인지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가 잠들어있던 나무 그늘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은 그저 허공만을 만졌을 뿐이다.
“그 속도로 날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선 까르르 웃었다. 지금 온 들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같은 환한 웃음소리였다.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것 같아도 쉽게 잡을 수 없는 나비처럼, 그녀가 원피스 자락을 흩날리며 내게서 도망쳤다. 너무나 애가 달아서 부지런히 다리를 놀려보지만 어려진 나의 다리는 이전보다 능숙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곧 나는 내가 손으로 만지고 싶은 여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소년보다 달리기가 더 익숙하지 않은 소녀였으니 말이다. 손 안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이 너무나 따뜻하다. 그 체온으로 나는 무사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왔음을 깨달았다. 때는 3년 전, 그러니 오펠리아가 열일곱이 되기 직전의 늦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