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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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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새로운 오솔길-5
작성일 : 17-12-16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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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그 길로 오늘 숙박하기로 한 린턴 그랜드 호텔로 갔다. 오랜 여행의 여독을 풀기 위함이었다. 호텔은 우리가 계약 이야기를 한 곳에서 두 블록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 호텔로 가 예약된 숙소에 몸을 뉘일 수가 있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서둘러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친구라…….”

 

 한 방울의 물방울이 떨어져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황태자 전하의 마지막 호칭이 아직도 내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분을 이번 생에서는 처음 만났는데 만난 날에 친구라 불릴 줄이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단 한마디의 단어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쉽게 흔들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나와 오펠리아의 사이를 친구로 지칭하셨지.”

 

 순간 마음속에서 불안한 기운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한다. 전하께서 오펠리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남달랐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다시 오늘의 일을 생각해 보니 오늘의 전하는 내가 알던 전하와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다. 단지 18세와 20세의 차이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친구’라는 말처럼 많은 관계를 포괄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어릴 때 우연히 옆집에서 만나서 가족처럼 자란 사이에도, 나이 차가 많든 적든,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을 넘어서 친밀감을 가지는 무리를 우리는 주로 친구라고 말한다.

 

 나와 오펠리아 사이를 지칭하던 황태자 전하의 ‘사이좋은 친구’라는 말은 분명 의도가 있는 단어선택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조금 특별한 관계라는 것은 전하께서도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원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신 분이셨으니. 하지만 전하의 단어는 그 관계를 ‘친구’로 규정하고 있었다.

 

 언어에는 비록 형태는 없지만 그보다 더 형태가 없는 것을 무언가로 틀에 지울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언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때로 상대방에게 사용하면서 그 사람의 사고를 제약하는 일도 함께 진행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유도 심문이다.

 

 나와 오펠리아의 관계는 사이좋은 친구를 분명 넘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황태자 전하의 말씀에 자신도 모르게 사이좋은 친구에 긍정하면서 우리의 한계는 전하의 안에서 사이좋은 친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설마.”

 

 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어쩌면 반지의 힘을 사용한 대가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대로 황태자 전하께서 오펠리아에게 호감을 가지신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가정을 하자마자 몸이 으스스 떨리는 기분이다.

 

 그래, 어쩌면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겠다. 오펠리아의 행복을 위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지만 나와 오펠리아는 맺어지지 않는다. 이런 결론이라면 사용자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닥터 코닝의 말에도 딱 맞는 편이다. 오펠리아가 그쪽의 인생을 선택하게 되면 말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황태자 전하는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신사다우신 좋은 분이셨다. 뭇 여성들이 찬양하는 아름답고 화사한 외모와 황족다운 품위가 넘치는 태도, 그리고 좋은 황제가 되실 자질을 가득 갖추신 분이다. 그런 분의 배우자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자 영광일 것이다.

 

 그분의 서기관으로 있으면서 많은 사교계의 소문을 들었지만 그분과 관련된 추문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명문가의 영애들이 더욱 열렬한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마음 한자락이라고 얻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머리는 분명 좋은 일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가슴에 이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내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심장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상태다. 하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

 

 

 호텔에 도착하여 한동안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저녁이 되어 로비로 내려와 식사를 했다. 우리가 식사하는 레스토랑은 정장을 필수 요건으로 하였기에 나는 야회복으로 갈아입고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에서 일행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한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테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펠리아는 단순하고 편한 여행용 드레스가 아닌 녹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녹색 눈빛에 맞춘 아름다운 드레스가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린다.

 

 그녀의 옆에는 해밀턴 백작님과 닥터 코닝이 함께 레스토랑 앞에 있는 대기석에 앉아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도 나와 같은 야회복 차림이다. 나는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갔다.

 

 “제가 조금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우리가 조금 빨리 내려왔단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5분이나 넘게 남았는걸.”

 

 백작님이 그렇게 말하시곤 내 옷차림을 바라보셨다. 아무래도 야회복을 입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시고 옷차림을 봐주시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야회복을 어떤 식으로 입어야 격식에 맞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백작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테오가 이런 자리를 한 번도 안 왔을 거라 생각해서 미리 내려왔던 건데 그럴 필요가 없었구나.”

 

 “예전에 아버지의 서재에서 드레스코드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요. 그때 조금 흥미로워서 열심히 읽어둔 보람이 있었네요.”

 

 “그래? 그 책을 나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백작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내 어깨를 두드리신다. 아버지께서 예전부터 내게 칭찬하실 일이 있을 때 자주하시던 동작이었다. 그 동작을 오펠리아의 아버지인 백작님께 받으니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아마 백작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이런 칭찬을 하시는 것을 부러워하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생기면 이런 동작을 해보려고 하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오펠리아와 무사히 결혼하게 된다면 나는 그분의 사위자식이 되는 셈이니 한번 해보시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일곱 시 정각이 되자 우리는 예약되어 있는 자리로 안내되었다. 4인승 마차의 자리가 그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에 해밀턴 백작가의 집사는 따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온 닥터 코닝이 대신해 집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메뉴판을 주세요.”

 

 닥터 코닝이 우리 옆에 서 있는 웨이터에게 그렇게 말하자 웨이터가 4장의 메뉴판을 우아한 태도로 우리의 앞에 내려놓았다. 해밀턴 백작님, 오펠리아, 나, 그리고 닥터 코닝의 순서대로 말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귀족 계급이 아닌 사람이 사용인처럼 임시로 고용되어서 함께 온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오펠리아와 백작님, 그리고 나는 엄밀히 말해 귀족 계급이고, 닥터 코닝은 같은 상류층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도 중상계급이니까.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리 편치 못했다.

 

 나는 지금껏 그에게 수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전 삶에서 오펠리아가 독살 당했다는 것을 증언해준 것도 닥터 코닝이었고, 그녀를 되살리기 위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법을 알려준 사람도 바로 그였다. 이번 삶에서 이후로 있을 일들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여러 가지 도움을 준 것도 바로 그다.

 

 나는 그의 숨겨진 출생의 비밀을 잘 알고 있다. 그가 오펠리아 어머니의 이복 남동생이란 것 말이다. 그가 이야기한 반지의 힘은 실존하는 것이었고 그 힘으로 조카를 되살렸으니, 그는 오펠리아의 외숙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닥터 코닝의 부탁 때문이었다.

 

 “닥터 코닝과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대화를 나눠보네요. 정기적인 건강검진 때 얼굴은 자주 뵈었지만요.”

 

 우리 일행 중에 홍일점인 오펠리아가 자신의 메뉴를 결정하고선 닥터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닥터가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사정을 아는 내가 보기에는 조금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원래 의사란 자주 만나지 않는 쪽이 더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랍니다. 레이디 해밀턴. 그러니 앞으로 더 건강에 유의하셔서 서로 얼굴을 잊어버리도록 하죠.”

 

 “그러는 게 좋기는 하지만요. 이렇게 젊고 미남이신 의사 선생님께 이런 차가운 말을 들으니 제가 조금 슬퍼지는 걸요?”

 

 “레이디를 슬프게 하다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시지요.”

 

 “그럴까요?”

 

 두 사람의 모습은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봐도 인척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서로 닮아 있었다. 오펠리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말 못할 비밀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것일 줄이야. 오펠리아가 발랄한 얼굴로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은 어떤 계기로 함께 하시게 되신 거예요? 저는 전혀 사정을 몰라서요.”

 

 “아, 그것이 말입니다.”

 

 닥터 코닝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때 대화를 들으시던 백작님이 자신의 딸을 응시하시곤 입을 여셨다.

 

 “닥터 코닝은 내가 불렀단다.”

 

 “아, 그러셨군요. 아버지.”

 

 “네게 할 말도 조금 있고 해서 말이다.”

 

 “네?”

 

 오펠리아의 초록빛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 나는 점점 차오르는 긴장에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작가의 말
 

 그러고보면 오펠리아 주변에는 다 좋은 남자밖에 없네요. 이러려고 회귀하는 거 맞습니다. 후후후후

 

 저의 개인적인 취향은 염전입니다. 하지만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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