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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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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새로운 오솔길-6
작성일 : 17-12-16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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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말을 들은 오펠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아버지와 닥터 코닝, 그리고 나를 번갈아 한 번씩 응시하더니 다시금 아버지 쪽으로 향했다. 나는 멍한 얼굴의 닥터 코닝을 한번 응시한 후에 백작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언가 급전개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닥터 코닝이 이곳 해밀턴에 살았던 것은 오펠리아의 친모이신 고 케이트 백작 부인이 살아계셨을 때라 분명 들었다. 소년이었을 때부터 꾸준히 후원을 받았다고 그는 분명히 말했다. 여기서 문득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그러면 백작님은? 이분은 전혀 모르시는 일이었을까.

 

 잘 생각해보자. 한 소년을 의학공부를 시킬 때까지 후원하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 의학은 일반적인 고등교육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대학의 졸업장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 사람에게 대학공부를 시키려면 보통의 재산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대학의 많은 학문들 중에서 가장 학비가 많이 드는 학문이 바로 법률과 의학이다.

 

 그 돈을 과연 백작부인 혼자서 후원할 수 있었을까? 분명 아니다. 오펠리아의 외가인 버밍턴 백작가가 상당히 부유한 귀족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시집간 딸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줄 정도로 부유한 것은 또 아니다. 해밀턴 가로 시집오신 오펠리아의 어머니 외에도 자식들이 많은 집안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백작부인의 후원을 백작님이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는 것이다. 그랬기에 닥터 코닝은 해밀턴에서 평온하게 자라 무사히 대학공부까지 마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오펠리아, 네게 오랫동안 밝히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는데 말이다.”

 

 백작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분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딸을 응시하고 계셨다. 역시 내 생각대로 백작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닥터 코닝이 이미 죽은 아내의 이복동생이며 딸의 외숙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랬기에 닥터와 동행해 수도로 갔으면 좋겠다는 내 제안에 별 반대 없이 허락하신 것이고.

 

 그러고 보니 짚이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1년이나 6개월마다 있는 해밀턴 가의 건강검진을 아직 젊은 편인 닥터 코닝이 담당했던 것부터, 이전 생에서 아버지가 오펠리아의 손톱 감식을 위해 의사를 부르셨을 때 닥터 코닝을 부르신 것까지 말이다. 아버지와 백작님은 퍼스트네임을 부르실 정도로 친하신 사이니 이런 정보가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높겠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 더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이전 생에서 칼리아 새튼이 결혼하자마자 자신과 친한 의사라며 닥터 코닝이 아닌 다른 의사를 주치의로 정했던 일이다. 닥터 코닝이 너무 젊어서 경험이 없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고, 집안이 시끄러운 것을 원치 않던 백작님이 마지못해 거기에 동의하셨던 것도 말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칼리아 새튼은 처음부터 오펠리아와 백작님을 독살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독살의 예비 단계에서 가장 먼저 주변에서 치워야 하는 것은 오랫동안 환자를 진료한 주치의다. 같은 환자를 오랫동안 진료했기에 환자 몸의 작은 이상이라도 놓치지 않고 금세 원인을 발견할 수가 있을 테니까. 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이렇게 새로 생을 시작한 이상, 칼리아 새튼을 해밀턴 가문의 울타리 안으로 절대 넣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는 눈앞에 있는 다정한 부녀가 중독으로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

 

 해밀턴 가의 비극과는 별도로 내 안에서 다른 생각이 하나 싹이 트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 칼리아 새튼 해밀턴은 해밀턴 가의 일을 제외하고도 6건의 독살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 덕에 해밀턴의 치안을 담당하던 치안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증거수집에 혈안이 된 상태였었다.

 

 아마 내가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악행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사건 조사가 아직 초기 단계여서 6건이지 더 많은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다. 시간을 거슬러온 지금 어쩌면 그 독살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을 터.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의 소행으로 강하게 의심이 가는 사건만 6건이라 들었다. 찾아보면 전부는 물론 아니겠지만 최소한 마지막 사망자라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은 정의감의 발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하다. 어쩌면 이미 시기를 놓쳐서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 앞에 있는 소녀만은 구하지 않았던가. 눈앞에서 일어나게 될 불행한 일에 더 이상 눈감고 싶지는 않다. 내가 손잡아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더 늘어나기만 바랄 뿐이다.

 

 

 내가 마음대로 생각의 나래를 쭉쭉 펴는 동안 우리가 주문한 식전주와 간단한 에피타이져가 나왔다. 웨이터가 우아한 태도로 서빙을 하는 동안 테이블 위의 대화는 잠시 끊어진 상태였다. 웨이터가 다음 코스를 서빙 하러 잠시 자리를 비우자 오펠리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모르는 비밀이라뇨? 아버지, 그게 뭔가요?”

 

 오펠리아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는 얼굴을 했다. 내 맞은편에 앉은 닥터 코닝의 얼굴이 창백하다. 닥터 코닝도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다. 그는 린턴으로 여행하기 전에 내게 자신의 정체를 오펠리아에게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덕은커녕 해만 될 수 있다 여긴 것이리라.

 

 “그게 말이다. 여기 우리와 함께 있는 닥터 코닝은…….”

 

 “백작님!”

 

 닥터가 다급한 얼굴로 백작님의 말을 잘랐다. 그러자 백작님의 초록빛 눈동자가 자신의 숨겨진 처남에게 닿았다.

 

 “윌리엄. 오펠리아도 알아야 할 사실이잖나. 그 애도 이제 성인이니까.”

 

 “하지만 저는…….”

 

 “이제껏 자네의 뜻을 존중해왔네. 하지만 이제 슬슬 진실을 밝혀도 될 거 같아서 말이지.”

 

 “아버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오펠리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아버지를 불렀다. 두 남자 사이에서 돌던 긴장감이 더욱 팽팽해지는 기분이라, 그녀 옆자리에 있던 나는 심히 목마른 나머지 나도 모르게 식전주를 전부 마셔버렸다.

 

 “그래. 내 딸아.”

 

 “아버지의 말씀인즉슨 닥터 코닝이 우리 집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녀가 예리하게 핵심을 찔러온다. 순간 같은 테이블에 있던 세 남자가 동시에 침묵했다. 그러자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으음, 생각해보니 경우의 수가 제법 될 거 같네요.”

 

 그녀의 말에 비밀을 아는 세 남자가 전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오펠리아가 자신의 식전주 잔을 입술에 대고선 말을 이어간다.

 

 “아직 신혼으로 보이던 젊고 잘생긴 닥터 코닝이 우리 집 가정부와 불륜을 할 리는 없을 테고요.”

 

 “…….”

 

 “아니면 아버지의 숨겨놓은 자식이라고 하면 제가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가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녀의 말에 백작님이 갑자기 발끈하신다. 백작님이 40대 중반에 닥터 코닝이 20대 말이니 부자관계가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거의 닮지 않았다. 오펠리아와 닥터의 유사성에 비한다면 말이다.

 

 “아니면 어머니의 숨겨놓은 자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이차가 적으니 이것은 패스네요. 하여튼 저와 인척인 거죠?”

 

 그녀가 금세 정답에 가까운 답을 도출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경악이라던가, 불쾌라던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가 확인하듯 다시금 자신의 아버지를 응시했다.

 

 “제 결론이 틀린 것인가요?”

 

 “아니, 네가 말한 대로다. 닥터 코닝은 네 어머니의 이복동생, 정확하게 말하면 네 외삼촌이 된단다.”

 

 “어쩐지.”

 

 오펠리아가 그렇게 말하고선 빙그레 웃었다. 이제껏 그와 알아오면서 그녀도 무언가 느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부터 닥터를 보면 왠지 친근감이 가고 그랬어요. 무언가 모르게 어머니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렇구나.”

 

 그녀의 밝은 태도에 마음을 놓은 백작님이 닥터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도 닥터도 한결 가벼운 얼굴로 서로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은 무거운 비밀을 이제 내려놓을 수 있다는 안도와 비슷한 것이었다.

 

 “잘 되었어요. 아버지, 저는 가족이 이렇게 늘어서 정말 기뻐요. 우리 건배를 하는 게 어떨까요?”

 

 오펠리아가 그렇게 말하고선 닥터와 나를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한 가족이란 단어에 내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일 줄을 이전에는 몰랐다. 백작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웨이터를 호출하려고 하셨다.

 

 “저기 해밀턴 백작님이십니까?”

 

 백작님이 부르시기도 전에 웨이터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우리가 의아한 얼굴을 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동안 백작님이 대답하셨다.

 

 “그렇소.”

 

 “백작님 앞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웨이터가 공손한 태도로 편지를 내밀었다. 그것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봉투에 담긴 편지였다.

 

작가의 말
 

 오펠리아는 얌전한 공주님이 아닙니다. 꽃길은 가겠지만 걸어갈지 뛰어갈지 자신이 정하는 편이죠.

 

 원래 유유상종이라 책도 많이 읽은 편이고 테오처럼 머리도 제법 좋은 편입니다. 설정은요.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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