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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리아를 위한 연가(戀歌)
작가 : 리체르카레
작품등록일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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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오후의 다과회.
작성일 : 17-12-17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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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린턴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전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에 새로운 일정이 더해진 탓이었다. 일행의 최 연장자이신 백작님이 황태자 전하의 내일 오후 다과회 초대에 응하신 만큼, 전부 다음날 황실에 입고 갈 의상이 필요해졌다.

 

 이곳에 올라오면서 우리가 들고 온 옷들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용으로 입을 옷 두어 벌과 정찬을 먹으러 갈 때 입을 수 있는 야회복, 호텔에서 편하게 지낼 때 입을 평상복 정도다. 일정이 워낙 짧은데다가 지인을 만날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차림이었다.

 

 아무리 급한 초대라 해도 장소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했다가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특히 우리는 린턴 사람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유행이 늦은 지방 사람이 아니던가. 괜히 우리가 가진 옷을 입고 갔다가 우리를 초대하신 황태자 전하의 얼굴을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하께서는 백작님과 오펠리아는 물론 나와 닥터 코닝까지 전부 초대하신 상황이다. 시간이 오후인 만큼 저녁에 입는 야회복을 입고 참석할 수는 없었다. 그 덕에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팔자에도 없는 양품점 행이었다.

 

 “테오 네가 말한 곳이 여기인가 보구나.”

 

 마차에서 내린 후 백작님이 건물의 외형을 살피시며 중얼거리셨다. 우리가 찾은 양품점은 린턴에서 제법 잘나가는 곳으로 세련되고 우아한 옷으로 레이디들의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린턴의 양품점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없었기에 여기 이름을 말한다고 바로 이렇게 갈 줄은 정말 몰랐다.

 

 “저도 신문에서 좋은 평을 읽은 게 다입니다.”

 

 내가 조금 자신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사실 신문에서 좋은 평을 직접 읽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양장점이나 옷의 유행 같은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이전 삶에서 사람들의 대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라 이곳의 이름을 언급한 것뿐이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곳은 인기가 많은 곳이란 것과 같은 말이므로.

 

 이전 삶에서 수도에 올라와 옷을 몇 번 맞추긴 했지만 단체로 맞춘 기억이 전부다. 공식적인 자리에 입는 제복 외에는 수도에서 특별하게 옷을 산 적이 없어서다. 해서 나는 이렇게 여성 고객이 많은 곳은 익숙하지 않았다. 물론 함께 자리한 백작님이나 닥터도 나와 비슷한 떨떠름한 표정이라 조금은 안심이 되는 상황이었다.

 

 “얼른 들어가죠.”

 

 세련되고 화려할 것 같은 현관을 보며 다들 멈칫하자 오펠리아가 대표로 말하고선 앞으로 걸어갔다. 이전 삶에서는 언제나 얌전한 옷만 입어서 그녀도 어쩌면 이런 곳이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그녀의 뒤를 내가 바로 따라잡자 백작님과 닥터가 마지못해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문을 밀자 문에 달린 청아한 벨 소리가 울린다. 양품점 안은 제국 유행의 선두를 이끄는 곳답게 세련되고 우아한 양식으로 되어 있었다. 이왕 문을 열었으니 후퇴는 없다. 나는 그녀와 함께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천정이 높은 거실과 그 뒤에 이어지는 몇 개의 빼곡한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몇 명의 지배인이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을 여러 개 있는 응접실에 안내한 다음 그들의 취향을 들어 옷을 만드는 시스템으로 보였다.

 

 

 “어서 오세요.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양품점 안으로 들어서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지배인이 나와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고 세련된 옷차림에 몸매도 무척이나 날씬한 편이었다. 그녀가 갖추고 있는 보석을 봐서 급이 낮은 지배인은 아닌 것 같다.

 

 “여행 중에 갑작스럽게 예정에도 없는 다과회에 초대를 받았답니다. 지금 당장 맞춰서 내일까지 입기는 힘드니, 간단하게 빌릴 수 있는 옷을 좀 보여주세요.”

 

 우리들 중에서 그래도 이런 곳에 가장 많이 다닌 오펠리아가 남자 세 명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 지배인의 예리한 시선이 우리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아마도 체형과 눈 색에 어울리는 옷을 가늠하기 위함일 것이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전부 다과회에 참석하시나 봐요?”

 

 “네. 그렇게 되었답니다.”

 

 오펠리아가 그렇게 말하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지배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일단 응접실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지요. 서서 이야기를 들으시면 다리가 아프실 거예요. 제가 샘플 몇 개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배인이 그렇게 말하고선 우리를 거실 뒤쪽에 빼곡히 있는 응접실로 안내했다. 양품점 안은 여러 개의 응접실이 있는 듯 여기저기에 화려한 장식이 된 나무문이 보였다. 우리는 그중의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우리가 자리를 하자마자 깔끔한 제복을 입은 하녀가 와서 우리에게 차를 한잔씩 주었다.

 

 “요즘 신사분이 입으시는 옷의 유행은 허리에 약간의 다트를 잡아서 선을 유려하게 보이도록 하는 디자인이랍니다. 이쪽 젊으신 두 신사분이 입으시면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아, 네. 전부 멋지군요.”

 

 “색은 가을이니만큼 다크 브라운이나, 차콜, 아니면 네이비도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중간에 스트라이트나 도트, 체크로 포인트를 주는 게 최근의 유행이지요.”

 

 지배인이 그렇게 말하고선 몇 개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상당히 세련된 형태의 다과회용 신사복 여러 개가 있긴 했지만 솔직히 관심이 가지는 않는다. 백작님이나 닥터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어서 지배인은 전적으로 오펠리아와 대화를 나누는 형편이었다.

 

 “이것과 이것, 그리고 이것이 마음에 들어요. 지금 바로 입어볼 수 있을까요? 내일 오후에 당장 필요한 것이라 수선이 가능한 부분은 지금 당장 고쳤으면 좋겠어요. 오늘 가져가고 싶거든요.”

 

 오펠리아가 몇 개의 디자인을 빼놓은 후에 지배인에게 말했다. 지배인이 무언가를 가늠하다가 바로 입을 열었다.

 

 “이 옷과 이 옷은 아마 바로 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디자인이 체형별로 다 갖춰져 있으니까요.”

 

 “네. 잘 되었군요.”

 

 “문제는 여기 계신 남자 신사분의 것인데요. 일단은 어울리실 만한 것으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배인의 눈이 나와 닥터를 지나 어색한 태도로 차만 마시고 계신 백작님께 향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우리들 중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 백작님이라는 것을 파악한 뒤였다. 아마 귀한 신분에 맞는 적당한 옷을 그다지 많이 구비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부모 아래에서 용돈을 받는 젊은이들의 경우 원하는 옷이 필요하다면 자주 빌리러 올 것이다. 부유한 귀족의 자제라 해도 집안의 재산이 전부 자신의 것이 아니니 함부로 목돈을 쓸 수는 없다.

 

 그러니 필요한 때 옷을 구입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헐값으로 좋은 옷을 빌리는 것은 그들에게나 양장점에게나 다 도움이 되는 일이다. 젊은이들은 같은 값으로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어서 좋고 양장점은 그런 옷을 빌려주고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작님 또래의 신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재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거라면 그 어떤 값을 주고서라도 지불하는 것이 중년 신사들의 특징이다. 게다가 젊은이들과는 달리 다른 어디에서 무언가를 빌린다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 별로 취향이 확고한 것도 있고. 그 덕에 양장점에는 중년 남자들이 잘 입는 디자인의 옷이 부족한 모양이다.

 

 정 맞는 게 없다면 조금 예의는 아니더라도 백작님께서 원래 가지고 오신 야회복을 그대로 입고 가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에 스쳤다. 좋은 옷을 입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이 입은 옷의 품질과 가치를 금방 알아채는 법이므로.

 

 시간, 장소에 안 맞는 옷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차라리 낫지, 해밀턴 백작가의 가세가 기울었니 역시 시골 출신의 귀족은 안목이 떨어지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지배인이 양해를 구하고 응접실에서 일어섰다. 아마도 오펠리아가 골랐던 옷과 백작님께 어울릴 만한 옷을 고르려 나가는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차를 대접한 메이드와 함께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적당히 몸을 뉘이며 대화에 몰입했다. 대화의 주 내용은 내일 있을 다과회에 관한 것이었다.

 

 

 똑똑똑!

 

 지배인이 나간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있는 응접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벌써 옷을 다 찾아서 돌아온 것인가?

 

 “네, 들어오세요.”

 

 나는 의아한 얼굴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들어온 것은 지배인이 아니었다.

 

 “어머, 죄송합니다. 제가 방을 착각했나 봐요.”

 

 30대 중반의 상복을 입은 여인이 우리 앞에서 당황한 얼굴을 했다. 검은 머리를 가진 청초한 미인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은 바로 얼어붙는다. 저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녀는 바로 칼리아 새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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